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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6화 (1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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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 16화

5. 어서 와, 미래의 남편님! 미래의 처갓집은 처음이지?

"아버지. 어머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저택으로 돌아온 직후, 유진은 에른스트 부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꽤 진지한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했다.

'미안해.'

나는 유진의 등에 업혀 가는 동안 귀를 간질였던 낮은 속삭임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잠시 할 말을 잃었을 뿐인데 그는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후 유진은 몇 번이나 더 혼잣말처럼 같은 말을 읊조렸다.

그가 그러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귓가에 나붓이 날아드는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자, 이건 유진이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유진은 그날 에른스트 부부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듯, 우리가 모두 잠들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상하게도 에른스트가 내부의 분위기가 약간 바뀌었다.

"이건 카벨이 좋아하는 호두 파이."

"예에!"

일단 다 같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생겨났다.

"에리히는 체리가 들어간 초코 케이크를 제일 좋아하지?"

"와아!"

에른스트 부인은 에리히의 앞에 접시를 놓아준 뒤 이번에는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하리는 지난번에 보니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전 다 좋아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왜냐면! 케이크는 존재 자체로 신성하니까!

나는 세 형제와 함께 접시에 놓인 케이크를 냠냠 먹기 시작하며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다 같이 시간을 내 다과 시간을 갖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에른스트 사람들은 다들 각자 따로 노는 걸 즐겼던 것 같은데?

"엄마, 나 딸기 먹고 싶어."

"딱 하나만이야?"

"응!"

에리히가 어리광부리며 하는 말에 에른스트 부인이 케이크 위에 있던 딸기를 에리히에게 먹여 주었다.

"하리도 딸기 하나 먹을래?"

에른스트 부인은 내 접시에도 딸기를 하나 놓아주었다.

슬쩍 쳐다보니 에리히는 나를 노려보는 대신 얌전히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요즘 에른스트 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지 셋째는 요즘 들어 나한테 보내는 독기가 부쩍 줄어들어 있었다.

음. 이렇게 쓸 만한 효과라면 이런 시간도 가져 볼 만한 것 같기도······.

"하리야. 아빠 것도 같이 나눠 먹을까? 자, '아~' 하렴."

오소소!

나는 방금 전 내가 한 생각을 취소하기로 했다. 빨리 끝나라, 이 망할 다과회!

***

"매디슨 씨가 방문했습니다."

다과 시간이 끝날 무렵 집사 휴버트가 누군가의 방문을 고해 왔다.

"가 봐야겠네요."

"옆에 있겠소."

매디슨 씨는 얼마 전부터 에른스트 부인을 진찰 중인 의사로, 에른스트가의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에른스트 부부는 근래 들어 에른스트 부인의 기력이 약해져 치료를 받는 것이라 설명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약간 의심 어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숨기고 싶다면 굳이 캐낼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반년 후 예정된 에른스트 부부의 죽음이 그들의 지병에 관련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그건 분명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약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들의 죽음이 이 에른스트가에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컸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번에는 그들이 죽지 않게 막을 수 있을까?

"하리."

나는 때마침 다가온 에른스트 부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앉은 그녀가 웃는 낯으로 내게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약은 이제 안 먹지만 그래도 선물이란다."

그것은 반짝이는 설탕 가루가 붙어 있는 알사탕이었다.

지난번 내가 유진에게 빼앗겼던 노란 사탕 대신인 걸까?

나는 힐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들의 모습을 제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 주렴."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약간 쑥스러워져서 코를 움찔거렸다. 에른스트 부인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에게도 사탕을 준 뒤 남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나는 곧바로 사탕을 까서 날름 먹어버렸다. 또 누가 뺏어가기 전에 먹어버려야지.

"에리히. 나 네 장난감 빌려줘."

"싫어. 형 거 가지고 놀면 되잖아."

"내 건 질렸단 말이야! 그리고 지난번에 뺏긴 건 반만 돌려받았다고."

오도독. 오도독.

오독!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사탕을 씹다 말고 쩡하고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왜 그러십니까, 하리 아가씨?"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집사 휴버트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제야 세 형제도 내 이상함을 알아차린 듯했다.

"너 왜 그래?"

곧 유진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헐. 허얼. 헐헐헐.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망부석처럼 제자리에 굳어 있을 뿐이었다.

"뱉어."

입에 물고 있는 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 알았는지 유진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니, 지금 네 손에 내가 먹던 걸 뱉으라고? 그, 그건 좀.

"빨리 뱉으라고."

하지만 유진은 또 한 번 닦달할 뿐이었다. 댁이 그렇게 원한다면 뭐. 나는 입안에 있던 걸 요리조리 굴려 최대한 말끔하게 만든 뒤 눈앞에 있는 그의 손에 퉤 뱉어 냈다.

곧 손에 있는 것을 확인한 유진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졌다.

"유치군요."

집사 휴버트가 외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잠시만 입을 벌려 보시겠습니까."

나는 민망한 기분으로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휴버트와 유진에게 결국 보여 버리고 말았다. 뻥 뚫려 있는 내 앞니를!

***

"크헤헤헤! 이빨에 구멍 났대요!"

내 나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7살이면 슬슬 유치가 빠질 시기였는데.

사탕을 씹어 먹다가 이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앞니 빠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카벨은 나를 볼 때마다 좋다고 놀려 대서 내 이마에 빠직 힘줄이 서게 만들었다.

"카벨. 너도 저런 때가 있었어."

놀랍게도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유진이었다. 하지만 카벨은 유진의 만류에도 끈질기게 나를 보며 깐죽거렸다.

"아닌데, 아닌데? 난 그런 기억 없는데?"

아오. 진짜 너 좀 때려 주고 싶다.

"그거 알아? 너 지금 되게 바보 같아."

에리히도 앞니가 빠진 나를 비식거리며 비웃었다.

우윽. 이건 굴욕이야! 내 앞니는 왜 하필 지금 빠져서!

27살의 나이로 앞니를 잃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한동안 울적하게 지냈다. 하지만 나는 약 보름 뒤 다시 기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난 구멍이 하나인데 넌 두 개네?"

바로 에리히의 앞니가 두 개 모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어지간히 깊은 실의에 빠진 듯 한동안 넋을 놓고 지냈다. 하지만 에리히는 '유치가 빠지는 건 이제 너도 점점 어른이 되고 있다는 의미야'라고 유진이 말해준 뒤부터 오히려 가슴을 쭉 펴고 우쭐거려서 나를 조금 짜증 나게 만들었다.

믿을 수 없게도 한동안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갔다. 물론 진상들은 여전히 가끔씩 내 복장을 뒤집어 놓았지만,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잔잔한 일상들이었다.

"이번 사냥철에 바스티에도 초대하실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에른스트 부인이 내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리를 꺼냈다.

뭐? 바스티에라면 내 미래 시댁이잖아!

"얼마 전 받은 서신에 의하면 바스티에에서 은빛 여우 사냥을 기대하고 있다고 하오."

나는 수프를 떠먹다 말고 에른스트 부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당신이 내키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방문은 거절하리다."

"아니에요. 에른스트에 손님을 맞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네요."

에른스트 공작은 괜찮겠냐는 듯이 에른스트 부인을 응시했으나 그녀는 어렴풋이 웃어 보이기만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맞이는 저도 도울게요."

"고맙구나, 유진."

대화를 들어보니 이번 겨울이 지나기 전에 은빛 여우 사냥을 할 계획인가 보다.

내가 알기로 에른스트는 나와 혼담이 오가기 전까지 바스티에와 별다른 교분이 없었는데 이번 사냥철에 저택으로 직접 초대를 할 예정이라니.

어쩐지 내 기억과는 다른 일들이 에른스트에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이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어쩌면 바스티에의 아이들도 함께 올지 모르겠네요. 너희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친구?"

"그래. 바스티에의 장남은 카벨과 동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단순히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내 미래 남편의 어릴 적 모습이라니. 그건 좀 궁금하잖아!

'요하네스 바스티에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리 에른스트 양.'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내 결혼이 반쯤 결정된 직후의 일이었다. 왜 '반쯤'이라고 말하냐면, 놀랍게도 유진이 이 결혼에 대한 마지막 결정권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하여 약속 시간을 정해 처음 만나게 된 요하네스 바스티에는 진중한 느낌을 풍기는 짙푸른 눈동자를 가진 단정한 외모의 남자였다.

'이렇게 직접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군요.'

'이전에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먼발치에서 뵈었던 적이 있을 뿐이니 아마 에른스트 양은 저를 모르실 겁니다.'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편안했다. 요하네스 바스티에는 잘 웃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화하는 내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지 않는 남자였다.

나는 그를 두 번 만난 뒤 이 결혼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따로 연인이 있던 것도 아니고 결혼에 별다른 환상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그냥 웬만큼 괜찮은 남자라면 결혼해서 에른스트를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법, 아니, 굉장히 좋은 신랑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로 '이런 좋은 남자가 왜 아직까지도 결혼을 안 하고 있었지?'라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두 번째로 '에른스트에 20년간 눌어붙다 못해 노처녀까지 된 내 혼처를 이 정도로까지 열심히 구해 주다니 유진이 뭘 잘못 먹었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 정도로 내 예비 신랑감은 훌륭했다. 내가 날마다 웨딩드레스를 보며 히죽거릴 만큼!

그런데 난 지금 27살이 아니라 7살이 되어버렸어. 으허헝! 신 양반, 이게 도대체 웬 말이오!

"집사 아저씨!"

벽을 붙잡고 통탄하던 중 눈앞에 집사 휴버트가 보여서 나는 그를 향해 도도도 뛰어갔다.

"하리 오늘 오이 먹었어요! 맛없는 브로콜리도 꾹 참고 두 개나 먹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에게 노골적으로 스윽 머리를 내밀었다.

"참 잘하셨습니다."

"헤헤."

머리 위에 내려앉는 손길을 느끼며 나는 헤실 웃었다.

솔직히 이 나이 먹고 이러는 게 창피하기도 하지만 상관없어! 난 지금 외양만은 7살이니까!

그리고 지난번에 집사 아저씨랑 에른스트 부인이 머리를 쓰다듬어줬을 때 느낀 건데, 어른에게 이런 식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집사 휴버트와 달리 에른스트 부부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로 조금 주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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