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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빠들을 조심해!-10화 (10/138)

# 10

그 오빠들을 조심해 10화

"지금 거기서 둘이 뭐 하는 거야?"

응? 하긴 뭘 해.

"형한테 달라붙어서 뭐 하는 거냐고."

나는 과민 반응을 보이는 에리히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카벨은 여전히 어버버거리며 멍청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에리히는 뛰다시피 다가와 카벨의 얼굴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을 앙칼지게 쳐 냈다.

"너 우리 형한테 친한 척하지 마!"

아하, 아무래도 내가 카벨하고 찰싹 붙어 있는 게 불만이었나 보다.

별로 친목 도모를 하는 건 아니었는데, 셋째 눈에는 사이좋게 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나?

"멍!"

바로 그때, 옆에 있던 페니가 에리히를 향해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그런 페니를 보고 에리히가 나를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 페니한테도 친한 척하지 마! 누가 내 허락 없이 놀아주랬어? 아까도 네가 페니한테 간식 줬지! 페니랑 놀아주는 것도 나고, 페니한테 간식 주는 것도 나야! 네가 아니라! 알겠어?"

음, 저기. 그런데 에리히야. 왜인지 너, 내가 카벨한테 친한 척을 하는 것보다 페니한테 친한 척을 하는 데 훨씬 더 민감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이니? 지금도 카벨보다는 페니의 일에 더 화르륵 불타오르고 있잖아.

크흑, 알고는 있었지만 너한테는 카벨보다 페니가 더 우위에 있구나······ 우리 둘째 놈, 짠한 것.

나는 그래도 좀 정신을 차렸는지 방금 전보다 붉은 기운이 덜한 카벨의 얼굴을 조금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눈길을 옮겨 보니 시종들과 하녀들이 복도 구석구석에서 우리를 힐끔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럼 네가 페니랑 놀아줘."

뭐, 어차피 슬슬 팔이 아프기도 했으니까.

"흥! 네가 그런 말 안 해도 그럴 거거든?"

에리히는 한껏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페니와 함께 퇴장했다. 아무래도 나한테서 페니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슬슬 팔이 저릴 뿐이고. 이제 그만 침대랑 혼연일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고.

"야, 너. 크흠, 크흠."

바로 그때, 아직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카벨이 갑자기 나를 불러왔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다음 순간 둘째 놈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내뱉은 말은 황당했다.

"이제부터 할 일이 없으면 내가 특별히 너랑 같이 어울려 주지!"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카벨은 고마운 줄 알라는 듯이 내게 말했다.

"나랑 같이 검술 연습······ 은 됐고! 난 너처럼 약한 애랑은 안 싸우니까! 그러니까 나랑, 나랑······ 그래! 술래잡기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마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더니 그새 살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기운 좋은 놈.

하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어."

"뭐?!"

"싫다고. 내가 오빠랑 술래잡기를 왜 해?"

그러자 카벨이 동그랗게 뜬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 집에 오고 나서 나는 카벨에게 '하기 싫다' 혹은 '더는 못하겠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고 그가 하는 대로 끌려다니기만 했으니까.

"왜 싫은데?!"

곧 카벨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척 보아하니 내 거부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오빠랑 노는 거 재미없으니까."

노잼 중에서도 핵노잼이라는 말 아시나?

솔직히 둘째 놈은 같이 논다고 해봤자 언제나 자기 좋을 대로만 행동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재미있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솔직히 정신연령까지 차이가 나다 보니 더 그랬다.

"나랑 노는 게 왜 재미없어?!"

"오빠보다 페니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

쿠궁!

카벨은 그 말에 2차로 충격을 받은 듯이 버벅거렸다.

아이고, 여기서 더 했다가는 귀찮아지겠네. 나는 이쯤 해서 판을 접기로 하고 다시금 카벨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것보다 이제 이마 안 아파?"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카벨이 또다시 멍청한 얼굴을 하며 말을 더듬는 것이었다.

"아, 아, 아프······."

"하긴 카벨 오빠가 고작 이 정도로 아플 리가 없지? 그럴 줄 알았어."

"그, 그래! 하나도 안 아파! 이까짓 게 뭐가 아프다고! 완전! 별거 아니거든!"

카벨은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잘난 척을 하다가 콧김을 팍 내뿜으며 또다시 헛기침을 했다.

"크흠흠. 야, 너 이거나 먹어!"

둘째가 제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내게 던진 것은 언제 꿍쳐 놨는지 모를 과자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 놓고 미묘한 눈빛을 짓고 말았다.

"내가,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귀찮아서 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너 혼자 다 먹어! 알았어? 비쩍 말라 가지고, 그게 나뭇가지지 팔이냐?"

나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축! 호구의 부활!

아니, 아니. 이 경우에는 둘째가 아직 9살이니까 부활이 아니라 탄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둘째가 남다른 호구력을 뽐내며 내게 과자를 던진 순간, 내 귀에는 축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런데 내가 지금 뭘 했다고 과자를 던져 주는 거지? 어쨌든 반갑다, 호구야!

"고마워, 카벨 오빠!"

나는 둘째에게 웃어주었다. 크으. 오늘을 둘째가 새롭게 호구로 태어난 역사적인 날로 기록하겠어!

"허억!"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카벨이 헉 숨을 들이켜며 뻣뻣이 굳어져 버렸다.

잉?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왜 저렇게 못 볼 걸 본 것처럼?

"오빠, 왜 그래?"

더 이상한 일은 바로 그다음 순간 일어났다. 둘째가 내게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이제까지 중에 제일 심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 너! 왜 갑자기 쪼개고 난리야!"

이놈이? 웃어줘도 난리네.

"우, 웃지 마! 너, 너 앞으로 내 앞에서 웃지······. 딸꾹."

뒷걸음질 치는 동안 딸꾹질을 하지 않나, 아주 갈수록 가관이었다. 카벨은 손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어라 횡설수설하더니 복도의 저편으로 두다다다 달려갔다.

그래서 방금 뭐였던 거지.

나는 아픈 아이를 보는 눈빛으로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뛰어가는 카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쓰읍. 지난번 유진 반응도 그렇고 내가 웃는 모습이 그렇게 성질날 정도로 흉측한가? 이상하네.

"하리 아가씨는 둘째 도련님과 사이가 좋으시군요."

내가 한참 의구심에 빠져 있을 때 옆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반백의 중년 남성은 바로 에른스트의 집사인 휴버트였다.

"휴버트!"

"오늘은 집사 아저씨라고 안 불러 주시는 겁니까?"

아차. 내가 집사 휴버트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였지.

"헤헤. 하리도 유진 오빠처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요!"

집사 휴버트는 20년 후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나와의 사이는 데면데면한 정도로, 어릴 때의 나는 웃음기 하나 없이 늘 무게감 있는 표정만 짓고 다니는 휴버트를 무서워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내가 자신을 향해 웃자 약간 놀란 것 같았다. 여전히 표정 변화는 별로 없었지만 조금 크게 떠진 눈동자에서 옅은 감정 변화가 느껴졌다.

"그러십니까."

곧 휴버트가 나를 향해 어렴풋이 미소 지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놀라고 말았다. 더욱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서툰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편이 좋은 법이지요."

내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그는 원래의 무뚝뚝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게서 손을 거두고 자로 잰 듯한 걸음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식료품 창고 정리는 다 한 건가?"

"예, 예! 방금 전에 다 끝냈습니다."

나는 저 멀리서 하녀와 하인들에게 말을 거는 휴버트의 뒷모습을 약간 멍하게 쳐다보았다.

설마······. 이건 혹시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 준 건가······?

나는 머리 위에 내려앉았던 손길을 덧그리듯 그 자리를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으허. 뭐지, 뭐지. 어, 어쩐지 이거 조금 쑥스러운데.

나는 공연히 낯이 부끄러워져서 후다닥 내 방을 향해 뛰어갔다.

***

"다들 준비됐니?"

오늘은 에른스트의 온 식구가 시가지로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사납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멎은 뒤 겨울은 급격히 한풀 꺾여 이전보다 포근한 날씨를 자랑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바깥에 쌓여 있던 눈도 대부분 녹아 있었다.

"하리는 또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옷을 따뜻하게 입자."

나는 토끼털로 만든 망토를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채 에른스트 부인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섰다. 아직 바닥이 미끄러웠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야만 했다.

"엄마! 나 장갑!"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못 봤니?"

"으응. 아무 데도 안 보여."

에리히의 부름에 에른스트 부인은 결국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에리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장갑, 아까 네가 서랍 속에 숨겨 놓고는! 하여간 내가 자기 엄마랑 붙어 있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를 못 한다니까.

"이예에! 밖이다! 밖에 나간다! 우오오오!"

"카벨! 겉옷은 어디에 뒀니?"

카벨은 신이 나서 옷도 덜 입은 상태로 튀어나왔다가 에른스트 부인에게 혼이 나며 다시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카벨보다 먼저 밖으로 나온 에리히가 나를 건방진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난 너랑 같이 가기 싫어."

참나.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난 너랑 같이 가는 거 좋은데."

"뭐?"

내 말에 깜짝 놀란 듯이 셋째 새침이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그래도 이 표정은 제법 귀염성이 있네. 어린놈이 허구한 날 나만 보면 도끼눈을 뜨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에리히는 잠깐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한테 놀림받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흥. 정 같이 가고 싶으면 넌 저기 타든가."

에리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말을 모는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얘들아, 이제는 정말 준비 다 됐니?"

"이요옵!"

카벨의 괴상한 구령과 함께 에른스트 부인이 밖으로 나왔다. 에른스트 공작과 유진도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동은 에른스트 공작과 유진, 카벨이 한 마차를 타고 에른스트 부인과 에리히, 그리고 내가 같은 마차를 타기로 했다.

"자, 가자."

에른스트 부인은 양쪽에 나와 에리히의 손을 한 짝씩 잡고 우리가 타야 할 마차로 향했다.

마차에 다다랐을 때,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셋째를 쳐다보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에른스트 부인의 손을 잡아당겼다.

"저 엄마 옆에 앉아도 돼요?"

"어머, 물론이지."

나는 에른스트 부인이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고개를 다시 내리고 에리히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어떠냐? 얄밉지? 한 대 때리고 싶지? 나도 방금 전에 네가 그랬거든! 요놈, 너도 한번 당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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