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그 오빠들을 조심해 9화
방금 전까지 함께 충동적으로 유치한 짓거리를 해놓고 둘 다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어 잠깐 동안 말문이 막혀 있었다.
벌컥!
"방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니?"
바로 그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에른스트 공작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유진과 나는 얼음땡 상태에서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유진이 내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냉큼 고자질했다.
"엄마가 준 사탕을 유진 오빠가 뺏어갔어요."
"사탕이라고?"
유진은 설마 내가 에른스트 공작에게 이렇게 홀랑 일러바칠 줄은 몰랐다는 듯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나는 에른스트 공작이 아들에게 고개를 돌린 사이 몰래 유진에게 메롱 혀를 내밀어주었다.
"왜 그런 짓을 했지? 어서 이리 주거라."
"이미 먹어버려서 없어요."
"유진."
먹어버리기는 개뿔. 지금 네 손에 있잖아?
어찌 보면 별것 아니라 할 수 있는 사탕이었지만 나는 에른스트 부인이 내게 준 것을 유진에게 빼앗길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에른스트 공작에게 사실을 말할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철썩!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동생들과 어울리더니 너마저 덩달아 생각이 어려진 모양이구나. 당장 하리에게 사과해라."
"······미안해, 하리."
유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숨을 죽인 채 한 쪽 뺨이 달아오른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리야, 사탕은 아빠가 새로 사 주마. 내일 밖에 나가서 가게에 있는 사탕을 종류별로 사 올까 하는데 어떠니?"
"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유진이 네가 쉬는 걸 방해했구나. 내가 데리고 나갈 테니 그만 누우렴."
에른스트 공작은 평소처럼 나를 향해 자상히 웃어준 뒤 정말 그 말처럼 유진을 이끌고 함께 방을 나섰다.
달칵.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폐에 고여 있던 얕은 숨을 밖으로 내쉴 수 있었다.
깜짝이야. 아저씨가 저렇게 내 앞에서 유진을 때리는 건 처음 봐서 놀랐잖아. 그, 그런데 왜 내가 잘못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지금까지 쟤네가 나한테 했던 짓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유진이 지금 쓸데없이 어린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나는 알 수 없는 찝찝함에 꽉 닫힌 문을 괜히 한 번 더 시야에 담았다.
방을 나서는 마지막까지 무표정하기만 했던 유진의 얼굴과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쥐어져 있던 그의 손이 이상하게 눈앞에 어른거렸다.
***
다음 날 에른스트 공작은 정말 사탕을 산더미처럼 사서 내게 안겨 주었다. 유리병 안에 알알이 담긴 알록달록한 사탕들이 예뻐서 나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사실은 어제 일로 계속 마음이 좋지 않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건 너희들 거란다."
"와아!"
선물을 받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어서 간만에 에른스트가에는 짧은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카벨과 에리히가 달콤한 간식에 정신이 팔린 사이 층계참으로 슬쩍 눈길을 옮겼다. 밑에서 울리는 소리가 위층에까지 닿지 않을 리 없었는데도 유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른스트 부인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둘이 함께 있기라도 한 걸까?
"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렴, 하리야."
"전 이거면 좋아요. 고맙습니다."
어제 일 때문인지 에른스트 공작이 괜히 서먹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유진에게 유달리 엄격하게 구는 건 알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때려야만 했을까.
삼 형제가 에른스트 공작 부부에게 혼 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맞았지만 어쩐지 이건 기분이 통쾌하다기보다는 뭔가 좀······.
"어머나, 전부 다 당신이 사 온 거예요?"
그때, 에른스트 부인이 위층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엄마! 이거 아빠가 줬어!"
"이것도, 이것도!"
두 녀석은 신이 나서 꺄꺄 소리를 질러 댔다.
"착한 아이만 다음에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앞으로도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응!"
"네!"
"하리하고도 싸우지 말고."
"알겠어!"
단순무식한 카벨은 선물에 눈이 팔려 대번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에리히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 어물어물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에른스트 부부는 그 모습을 웃는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오직 나만이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위화감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파생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지? 그냥 기분 탓인가?
나는 혼자서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에른스트 부인과 눈이 마주치고는 반사적으로 헤헷 미소 지었다.
"유진하고 어제 작은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단다."
어, 음. 그걸 다툼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것 같지만요.
"그 아이도 반성하고 있으니 하리가 이해해 주렴."
유진에게 빼앗긴 사탕이 아깝긴 했지만 뭐. 그건 나중에 슬쩍 훔쳐 오든가 해야지. 물론 유진이 아직 내 사탕을 처리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나는 에른스트 부인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요. 대신 아빠가 사탕을 이마안큼! 사 주셨으니까!"
으아아! 7살처럼 끼 부리기 너무 어렵잖아요! 팔다리가 오그라들다 못해 말린 오징어가 될 것 같다구요!
평소 7살짜리 애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에리히를 관찰하고는 했는데, 그 눈빛이 좀 집요했는지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셋째 놈은 도깨비라도 본 듯이 파드득 놀라곤 했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시비를 걸려고 쳐다본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셋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번뜩이며 놈의 엑기스를 쭉쭉쭉 빨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는 그나마 에른스트 부인이 나를 보고 귀엽다는 듯 활짝 웃어줘서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 받을 수 있었다.
크흑. 맨정신으로 이런 짓을 하려니 너무 괴롭다! 갑자기 막 술이 당기고 인생에 회의감이 들고 그래. 으흐흑.
그러고 보니 이 집에 꽤 귀한 술들이 많았는데. 쓰읍.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전부 다 내가 마셔 주겠어. 물론 그전에 다시 20년 후로 돌아가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말이죠······.
"후우."
생각해 보니 또다시 울적해져서 나는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하, 하리야? 왜 그러니?"
헉. 에른스트 부부가 날 보고 있는 걸 잠깐 잊었네. 어린애가 갑자기 회한에 젖은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니 당황할 만도 하지.
나는 순발력을 발휘해 아아,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갑자기 어지러워요."
"어머. 방에 가서 누워야겠구나."
"자, 아빠에게 안기렴."
나는 에른스트 공작에게 공주님 안기로 덥석 들렸다. 으, 으윽. 이거 좀 창피한데. 아저씨, 좀 평범하게 안아줄 수는 없어요? 난 과년한 처자라 이런 거 민망하단 말이야!
"카벨. 우린 잠시 이 층에 올라갔다 올 테니 네가 에리히를 돌봐 주고 있으려무나."
"응, 알았어!"
카벨은 여전히 초콜릿과 사탕 등등에 정신이 팔린 채 대답했다. 음. 그 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럽지 못하기도 했다. 에리히는 내가 에른스트 공작에게 안겨 가는 모습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리야, 아빠가 올라가서 자장가 불러 줄까?"
"노래도 못 부르면서 이이는."
에른스트 부부가 나를 사이에 두고 금슬 좋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방금 전 느꼈던 위화감이 또 한 번 주위에 어른거려서, 나는 멀어지는 두 녀석을 찜찜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
에른스트 부부의 보살핌 아래 잘 먹고 잘 자고 잘 쉰 덕분인지 시간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도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 봤자 빼빼 마른 나뭇가지에서 덜 빼빼 마른 나뭇가지가 되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으어엉.
"멍멍!"
"페니, 오구오구."
그동안 나는 페니와 완전히 친해지는 데 성공했다. 원래의 내가 페니를 길들이는 데 몇 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자면 눈부신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페니가 좋아하는 간식인 애견용 소시지가 큰 역할을 했다.
"손!"
"컹!"
"발!"
"컹컹!"
"굴러!"
"헥헥!"
크으, 훌륭해! 페니, 넌 아주 멋진 강아지야! 나는 감격에 차서 페니를 쓰담쓰담해 준 뒤 내친김에 조금 더 놀아주기로 했다.
"페니, 뛰어!"
나는 잠시 하녀나 시종들이 있는지 확인하러 주위를 힐끔거리다가 페니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비록 저택 내부이기는 했으나 에른스트의 저택은 천장이 높아서 이 정도는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멍!"
겨울이라 줄곧 실내에만 있던 데다가 삼 형제가 좀처럼 이런 놀이를 해주지 않기 때문인지 페니는 신이 나서 금색 털을 휘날리며 달려갔다.
퍼억!
"어억!"
그런데 페니와 놀아주고 있던 복도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가 던진 공에 대신 머리를 얻어맞았다.
"악, 으악, 아파! 내 머리 터진 거 아니야?!"
둘째 카벨이었다.
놀이를 방해받은 페니가 분노해서 짖든 말든 카벨은 머리를 감싸 안고 쭈그려 앉아 소리 질렀다.
어이구. 아프긴 하겠네. 아니, 그러게 누가 갑자기 튀어나오랬나?
물론 이런 데서 공을 던진 내 잘못이 컸지만 상대가 상대라 그런지 아무래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아마 공에 맞은 사람이 다른 하녀들이나 휴버트였다면 달려가서 사과했을 텐데.
"이씨! 야, 네가 지금 날 공격했어?!"
카벨이 나를 향해 홱 고개를 들며 외쳤다. 난데없이 공에 얻어맞아 화가 났는지 그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앞을 잘 보고 다녔어야지. 왜 예고도 없이 튀어나오고 그래?"
"지금 이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어, 오빠 설마 울어?"
그런데 어쩐지 이놈의 눈동자에 그렁그렁하게 매달린 게 꼭 눈물 같았다.
앗, 별로 세게 안 던진 것 같은데 많이 아팠나?
"우, 울긴 누가 울어! 씨이, 아니거든!"
하지만 자신이 이까짓 일로 눈물을 보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카벨은 끝까지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겨 댔다.
으윽, 그래도 저렇게 울먹이는 걸 보니까 조금 미안해지기는 하는데.
"어디 봐봐."
"어, 어, 지금 뭘······."
나는 둘째에게 다가가 놈에게 손을 뻗었다. 앞머리를 휙 걷어내자 발갛게 달아오른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이구, 혹은 안 났는데 좀 부었긴 하네. 이러면 좀 아프긴 할지도. 아니, 그런데 이놈이 왜 이렇게 정신 사납게 몸을 비틀어?
나는 카벨이 움직이지 못하게 그의 얼굴을 더욱 단단히 붙잡으며 말했다.
"아, 좀 가만히 있어 봐. 많이 다쳤는지 봐주는 거잖아."
"너, 이, 이, 마음대로 어딜 만지는······."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댔을 때부터 카벨이 심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음? 이제 보니 얼굴 전체가 좀 빨간 것 같기도 하고. 이마가 아파서 열이 오르나?
"이런 건 침 바르면 나아."
퉤퉤!
마음 같아서는 치료를 핑계로 둘째 놈의 이마에 침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게다가 왜인지 카벨의 상태가 평소와 달리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그때, 복도에서의 소란을 듣고 온 에리히가 우리를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