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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을 사랑한 신룡 (80)화 (80/122)

80

몸종은 말까지 더듬어가며 수줍게 말했다. 마치 한 눈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연은 잠깐 멈칫했다가 이윽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그렇지. 내가 좀 아름답기는 하지.”

그러다 연은 뒤늦게 허둥거리며 놀란 시늉을 했다.

“아니, 아니지. 내가 아름답다고? 저주흔 때문에 내 용모가 눈에 들어올 리 없을 텐데?”

“아닙니다.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저주흔이 사라졌어요! 생각해보니 본인께서는 모르고 계셨을 수도 있겠네요! 얼른 거울을 가져올게요!”

몸종이 다급히 일어나 거울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연은 몸종이 들고 온 작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연이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창백한 눈가에 옅은 홍조가 어려 있었고, 진줏빛 머리칼은 침상에서 막 일어나 약간 헝클어진 채였다.

“정말, 너무나 아름다우세요….”

몸종이 거울 속에서 연을 함께 바라보다 말고 홀린 듯 중얼거렸다. 참으로 솔직한 몸종이었다.

연은 괜히 멋쩍어져서 거울을 물리며, 말을 돌리듯 물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럼 너는 앞으로 계속 나를 돌봐주는 거야?”

연을 돌아보는 몸종의 눈은 놀랄 만큼 반짝거리고 있었다. 몸종은 거울을 제자리에 돌려놓고서는 냉큼 연의 앞으로 돌아와 몸을 조아렸다.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 있다면 영광일 거예요.”

진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어찌나 솔직한지 연은 내심 살짝 당황이 될 정도였다.

‘내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단숨에 홀릴 정도였던가? 아니, 아니지. 나는 아름답고 기품 넘치는 신룡이야. 그러니까 이런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어째 좀 너무 심한걸?’

연은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약간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네 이름은 뭐야?”

“저는 옥이라고 해요. 조금 전 소식을 전하러 간 언니는 안홍이에요.”

“내 친구 이름은 다홍인데. 이름이 비슷하네.”

“그렇군요. 다홍 님께선 연 님처럼 아름다우신 분과 벗이 되셨다니, 참으로 좋으시겠네요.”

몸종 옥은 꿈꾸듯 몽롱한 눈빛으로 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연은 조금 더 당황했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옥의 그 몽롱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약간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연은 그 묘한 열감 같은 동통을 모른 척 무시했다. 오래 잠들어 있었던 까닭에 몸이 둔해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게다가 연은 자신의 상태에 긴밀하게 관심을 기울이기에 앞서, 더욱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하신후-. 아니, 북왕 전하는 요즘 많이 바빠?”

옥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전하께서는 상화성에 가셨어요. 언제 돌아오시는지는 몰라요.”

상화성?

그게 어디였지. 분명히 들어본 이름이었다. 연은 멍한 머리를 애써 재촉해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상화성, 그래, 그곳은 봉화와 국경의 성문이 있는 땅이었다. 상화성과 회운성, 그리고 하화성은 동북과 북단, 서북의 세 요지였다. 각각이 성문을 지니고 있어 문을 나서면 부토와 닿을 수 있었다.

“전하께서는 연 님께서 깨어나시거든 저희에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꼭 지월 님께만 말씀을 전하라고 이르셨어요.”

“상화성으로… 언제 떠났는데? 아니, 그러고 보니 나는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야?”

“연 님께서는 이레 동안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오늘은 여드레째고요.”

이레라니, 생각보다 더 길었다. 연의 얼굴에 옅은 수심이 드리워졌다.

하필이면 하신후에게 ‘고문’이니 ‘박제’니 운운하며 경계심 가득한 말을 뱉은 뒤 잠들어버리다니.

돌이켜볼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어대며 약한 모습을 연달아 보인 것도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면 부토에서부터 자신은 영 시들시들하지 않았던가.

그런 모습만 보이다가 헤어지다니. 그래봤자 며칠 뒤에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고 답답했다.

연은 절로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만나고 싶은데 또 멀리에 있다니. 꼭 가짜 술병이 나서 쓰러졌을 때 같네. 하신후는 늘 너무 바빠.’

풀이 죽은 모습을 본 옥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시장하지는 않으냐 마구 물어댈 즈음이었다.

지월을 부르러 갔던 안홍이 돌아왔다. 그녀 곁에는 지월도 함께였다.

하신후를 보지 못해서일까, 지월이라도 약간 반가울 정도였다. 그라면 좀 더 하신후에 관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휘적휘적 방으로 들어온 지월은 연을 보자마자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 얼굴은-.”

연은 얼른 시치미를 떼며 당황한 시늉을 했다.

“저주흔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이, 이유는 모르겠어요.”

지월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곧바로 연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대신 몸종들을 물린 뒤,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연을 마주했다.

“지금 상황이 꽤나 좋지 않습니다. 연 씨가 부토의 원혼들 손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그래, 연도 알고 있었다. 깨어나며 몸종들이 하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신후가 부토에 함께 간 정찰원들에게 연의 일을 그렇게 설명했음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와 그 일에 대해 논의하기 전까지, 모두 입단속을 하라 이르지 않았던가?

“아마 폐하께서 직접 소문을 퍼뜨리신 것 같습니다.”

“…하을령-. 아니, 황제 폐, 폐하께서요?”

“전하께서도 그것만큼은 굳이 막지 않으셨겠죠. 폐하와 벌써부터 대립할 필요 없으니까요. 안 그래도 폐하께서는 연 씨가 전하 곁에 있는 걸 아주, 아주 불쾌해하시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왜일까. 연이 사인이기 때문일까?

물론 연은 사실 사인도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 혼자 아는 사실일 뿐, 하을령의 생각은 전혀 다를 것이다.

연은 괜히 초조해져 눈을 가늘게 찡그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지월이 뜻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폐하께서도 연 씨를 직접 만나시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지금처럼 전하께서 그저 악취미로 사인 여인을 수집하듯 만나는 것이라 여기진 않으실지도 모르죠.”

“…수집하듯?”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연 씨를 보면 다들 그런 말은 안 할 거 같습니다.”

“…….”

“주인의 정인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말 굉장히 아름다우시네요. 저주흔이 이렇게나 뛰어난 용모를 가리고 있었다니….”

지월이 연에게 홀린 듯 한 걸음 다가왔다. 마치 지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서 연에게 다가선 것만 같았다.

연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 모르게 몸을 조금 뒤로 물릴 정도였다. 그 바람에 지월도 움찔 걸음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아, 실례를 했군요. 그러려던 것이 아닌데-, 아니, 제가 뭘 한 건 아니지만-.”

지월의 두 볼이 새빨갛게 변했다. 만날 때마다 유들유들하던 사내가 저렇게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보니 연이 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무튼 전하께서는 부토와 관련된 소란을 잠재우시려 상향성에 가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시는 건지는 저도 몰라요.”

“…연락을 취할 길은 없, 없어요?”

“있지요.”

“그럼-.”

연은 반색하며 하신후에게 연통이든 통령이든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지월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누구든 연락을 취하지 말라는 분부가 있으셨습니다.”

지월의 표정이 어색했다. 그 말이 연에게 어떻게 들릴지 짐작이 되는 듯했다.

연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잖아. 그런데 언제 일어날지 정말 궁금하지도 않았던 건가…? 아니, 괜히 서운해 하지 말자. 그가 이렇게 정신없이 바빠진 건 내 탓이기도 한걸. 내가 현한에게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부토에서 본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연은 애써 마음속을 스치는 이상한 느낌을 무시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어쩌면 지월이 그의 명령을 과대 해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하신후라면, 연이 깨어났을지 누구보다 궁금해하고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그녀가 고문이니 뭐니 하며 약간 어리석은 말들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까지 하지 않았던가.

연은 순간 울컥하여 지월과 눈을 마주했다.

“그래도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은 알리면 안 돼요?”

지월은 순간 붉은 금빛을 머금은 연의 오묘한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홀린 듯 그 신이한 눈동자와, 연의 얼굴을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연락을 드릴게요.”

지월은 잠깐 머뭇거렸으나 결국 그렇게 답했다. 연은 설레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습니다. 전하께서 괴이한 변덕으로 일부러 저주흔 가득한 사인 여인을 가까이 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곁에 두신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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