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104화 (완결) (104/104)

104. Epilogue

2018.04.27.

투명한 햇볕이 포근히 내리쬐는 아침.

조용한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려오던 침실에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새로 살금살금 들어오는 여자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숨죽여 키득거리는 중이었다.

“아빠, 엄마 아직도 자.”

몇 걸음 가다 멈춘 아이는 문밖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누가 봐도 여자아이에게 이목구비를 물려준 듯한 남자는 딸과 비슷한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미인이라서 그래. 원래 미인은 잠이 많거든.”

그를 아는 사람이 지금의 표정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거다.

천하의 단태오에게서 저런 꿀 떨어지는 표정이 나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

올해로 결혼한 지 5년 차, 사랑스러운 딸 하나의 아빠가 된 지는 4년 차.

참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태오는 흐른 시간만큼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감정이 곧잘 드러나던 눈빛도 많이 유해졌고, 입꼬리에 번진 미소는 편안한 마음만큼이나 여유롭다.

최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회사 ‘Made by Forest’가 상장회사로 선정된 탓에 사랑하는 두 여자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해졌지만, 그는 온전히 쉴 수 있는 일요일 하루라도 보람차게 보내려 노력 중이다.

지금은 그 첫 번째 일과로 잠꾸러기 나봄에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둔 참.

“하나야, 엄마 뽀뽀해서 깨워 줘.”

태오는 나직한 목소리로 딸에게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아이는 곤히 잠든 나봄의 뺨에 가벼운 뽀뽀를 쪽!

“으음…… 하나, 안녕.”

그제야 깨어난 나봄의 입에서 새어 나온 음성은 제대로 잠겨 있다.

그 목소리를 항상 섹시하다고 생각해 온 태오는 침실 입구에 기대서서 흐뭇한 시선으로 나봄을 지켜본다.

“미안미안, 엄마가 너무 오래 잤지.”

“괜찮아. 아빠가 엄마는 미인이라서 오래 자는 거래.”

“그랬어? 아빠 눈엔 아직도 엄마가 예뻐 보이나 보다.”

당연하지. 그걸 말해 뭐해.

막 잠에서 깬 나봄의 흐트러진 모습까지도 사랑해 마지않은 태오는 힘주어 대답해 주려 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나봄의 눈에 걸려 들어온 딸의 헤어스타일이 그녀를 웃음 터지게 만들었다.

양 갈래로 묶으려 시도한 듯 보이지만 좌우 균형이 조금도 맞지 않는데다가 높낮이까지 다른 이 스타일은 분명 태오의 서툰 작품이다.

“하하하, 이 머리는 뭐야. 아빠가 묶어 줬어?”

“응! 토끼래!”

“토끼? 진짜?”

“응, 근데 안 예뻐.”

아이의 솔직한 반응에 태오는 살짝 억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봄이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던 딸의 헤어스타일에 태오는 황금 같은 아침 시간 20분을 투자했으니.

“나 되게 열심히 묶었는데 평가가 너무 야박하시다.”

태오는 두 여자에게 장난 섞인 투정을 부렸다.

그 심통 난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봄은 그에게도 눈길을 주었고,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우리 태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근데 정말 오늘 하나 머리 별로야? 난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추구하시는 스타일이 이런 언밸런스 스타일이었다면 대성공이지.”

“어어, 약간 그런 걸 원했어. 트랜디하게.”

“와, 그럼 엄청 잘 묶었네. 앞뒤 좌우가 하나도 안 맞으니까.”

친절하면서도 냉정한 나봄은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넸다.

태오는 그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다가 결국 안 좋은 평이라는 것을 깨닫고 작게 꿍얼거렸다.

“이상하네. 한쪽만 묶었을 땐 분명 성공이었는데.”

그런 태오가 여전히도 귀여웠던 나봄은 침대를 떠나 그에게로 다가갔고, 따스한 손으로 그의 따듯한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덕분에 하나가 더 귀여워졌어. 우리 여보 금손이네.”

하여간. 예전부터 채찍질하고 당근 던져 주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여자라니까.

태오는 자신을 매만지는 그녀의 손을 맞잡고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금손으로 아침 차려 놨다. 이따 선우차준이 점심 식사 거하게 대접할 것 같아서 간단하게 차렸어.”

그러고선 오늘의 착한 일을 자랑하듯 말하자, 그제야 잊고 있던 약속이 생각난 나봄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아, 맞다. 오늘이 상장회사 된 거 자축하는 날이었지? 새까맣게 잊고 있어서 옷도 못 골랐는데!”

“자축이라고 해 봤자 선우 브라더스 집에서 밥 한 끼 하고 오는 건데, 뭐.”

“그래도 파티잖아. 신경 쓰고 가야지.”

“넌 뭘 입어도 예뻐. 여기서 얼마나 더 빛이 나려고 그러실까.”

그리 말하는 태오의 눈엔 늘 그렇듯 사랑이 한가득이다.

나봄은 짝사랑 9년에 연애 1년, 그리고 결혼 5년까지 도합 15년 동안 내리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그가 고마우면서도 신기하다.

“내가 그렇게 좋아?”

나봄은 나른한 눈빛으로 다 아는 그의 속마음을 물었다.

그러자 태오는 대답 대신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띠더니.

“하나야, 나가서 사탕 먹을까?”

사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딸내미가 절대 거부하지 못할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은 아이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진짜? 아빠 나 아직 밥 안 먹었는데 사탕 먹어도 돼?”

“응, 오늘 하나가 엄마 깨웠으니까 특별히 허락해 준다.”

“우와! 아빠 최고!”

아이는 그 말에 곧바로 방을 뛰어나갔지만 나봄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태오의 어깨를 톡 쳤다.

“저러다 아침밥 안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태오는 느긋하게 나봄을 달랬다.

“아냐, 하나는 똑똑해서 사탕 하나 더 먹으려고 밥 한 공기 다 비울걸?”

“당신도 참.”

“그리고 왠지 미안하잖아. 나 혼자만 달콤한 거 실컷 먹으면.”

그런 뒤 은근슬쩍 안방 문을 닫으며 흘려보내는 말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했다.

“달콤한 거 뭐?”

“쉬잇.”

태오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나봄의 입술을 톡 건드렸다.

그와 동시에 농염하게 젖어 드는 그의 시선.

그건 그의 스위치가 켜졌다는 신호였다. 그런 태오에게 여전히 가슴 설레는 나봄은 당장이라도 그를 침대로 데려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얇은 나무 문 밖엔 또 다른 식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욕심대로 할 수 있나.

“키스만이야.”

나봄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아무렴요, 여왕님.”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가오는 그의 입술은 흐른 세월이 무색할 만큼 섹시했다.

여유롭게 다가와 강렬하게 파고드는 그의 애타는 혀끝.

입술이 녹을 것만 같이 다디단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이다. 영원히 이렇게 머금은 채로 달콤하게 녹여 주고 싶어지잖아.

* * *

“자, 준비는 이만하면 됐겠지?”

와인 잔 세팅까지 마친 차준이 허리에 손을 얹고 완성된 테이블을 훑어보았다.

직접 만든 오븐 치킨과 파스타, 그리고 태준이 솜씨를 부린 가든 샐러드 피자까지.

넓은 원목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들은 스스로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이 정도라면 우리의 성공을 자축하기에 충분한 식탁이다.

“태오 씨랑 나봄 씨 도착했어.”

방금 막 경비실에서 연락을 받은 태준이 차준에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준은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었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지나간 시간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했었는지, 둥글게 휘어진 차준의 눈웃음은 확실히 5년 전보다 밝고 여유로워져 있었다.

“와인은 나봄 씨가 달콤한 걸 좋아해서 일부러 콩코드로 준비했는데. 태오 씨가 싫어하진 않겠지?”

훨씬 생기 있어 보이는 건 태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자축 파티를 주최한 태준은 더 이상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지 않는다.

비록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삶의 모양새가 많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테니. 태준은 좌절하는 데 남은 시간을 소비하진 않을 생각이다.

절망보다는 희망에 더 어울리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이 요즘 새로 생긴 그의 소망이다.

“단태오는 아무거나 잘 마시잖아.”

“디저트는 이따 꺼낼 거지?”

“응, 식사 끝나고 내오려고 준비만 해 뒀어.”

두 남자가 막바지 점검에 여념이 없는 사이.

띵동―

드디어 포근한 펜트하우스에 반가운 벨 소리가 울렸다.

“네, 갑니다.”

한걸음에 현관까지 달려 나간 차준은 한껏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삼촌!”

그러자 씩씩한 인사와 함께 제일 먼저 들어오는 꼬마 숙녀는 오늘도 차준의 기분을 한껏 들떠 오르게 만든다.

“하나 왔구나! 그동안 삼촌 안 보고 싶었어?”

차준은 언제 봐도 제 엄마 아빠와 쏙 빼닮은 아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요즘 차준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작은 숙녀는 한 살 두 살 먹어 갈수록 어찌나 예쁜 짓을 많이 하는지. 퇴근하는 태오에게 장난감을 한 박스 사 들려 보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하나 머리가 왜 그래? 하나가 묶었어?”

그런 그에게 독특해도 너무 독특한 아이의 헤어스타일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눈엣가시였다.

“우리 딸 머리가 어때서. 귀엽기만 하구만.”

그 말에 예민하게 대꾸하는 건 딸의 머리를 저리 묶어 놓은 장본인 태오였다.

차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태오를 흘겨보며 장난 섞인 핀잔을 주었다.

“너 머리는 잘만 만지면서 딸내미 머리는 저렇게 해놓은 거야?”

“안 예뻐도 마음에 든대서 내버려 뒀다. 이런 게 더 난이도 높은 거 알지? 투박한데 은근히 마음에 드는 가구가 원래 만들기 어려운 법이잖냐.”

“하여간 갈수록 말은 잘해.”

몇 년간 중요한 자리에서 브리핑 좀 몇 번 해 봤다고, 그새 늘어난 태오의 화술.

차준은 못 말리겠다는 듯 실웃음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는 맨 마지막에 들어온 나봄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붉은색 플레어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나봄은 오늘따라 더욱 생기 있어 보였다.

“나봄이 오랜만. 오늘 원피스 잘 어울린다.”

“그래요? 신경 써서 골랐는데 잘됐네.”

“원래 있었던 거야? 처음 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화려한 색은 입을 일이 잘 없으니까 그렇지. 산 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개시하네요.”

가벼운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조금의 어색함 없이 친밀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이따금 지어 보이는 미소도 절친한 친구를 대할 때처럼 편안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우리 거의 두 달 만에 보는 것 같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보다시피 잘 지냈어요. 차준 오빤 별일 없었죠?”

이젠 당연히 잘 지냈으리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안부.

“어, 나야 뭐 늘 그렇듯 너무 잘 지냈지.”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네지는 차준의 대답은 온전히 진심이었다.

한때는 잘 지냈냐는 가벼운 인사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혹시나 그렇지 못한 제 처지가 드러날까 두려웠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일에 치였던 하루라고 해도 마무리하는 게 아쉬울 만큼 정말 잘 지내고 있다.

딱 바라 왔던 만큼 행복하게.

“나봄 씨 잘 왔어요. 주말인데 차 막히진 않았어요?”

그 행복을 제일 가까이서 나누고 있는 태준이 차준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에게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옮긴 나봄은 들고 있던 와인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낮이라서 괜찮았어요. 그나저나 이거 자축 파티 기념으로 사온 와인.”

“와인은 여기도 있는데 그냥 오지.”

“평소에도 와인 즐겨 마신다면서요. 많이 모아 두면 모아 둘수록 좋지 않을까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태준은 나봄이 건넨 와인을 두 손으로 넘겨받았다. 그의 눈가에 어린 미소는 차준과 점점 더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았다.

“그럼 밥부터 먹고 얘기할까? 얼른 식탁으로 가.”

그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차준은 찾아온 손님들을 근사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는 다이닝룸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한가롭게 점심 한 끼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아마 우리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에, 지금 이 순간조차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인연을 놓지 않고 지켜 와 준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 *

수준급이었던 선우차준표 식사를 마치고, 집 안을 뛰어놀던 아이마저 잠들어 한결 차분해진 다이닝룸.

“아, 커피가 다 떨어졌네.”

디저트를 꺼내 놓던 차준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동안 커피를 사 놔야지 하면서도 막상 마트에 가면 생각이 나지 않아 못 사 왔었는데, 기어이 오늘 동이 나고 말았다.

“밑에 잘하는 카페 있는데 거기서 테이크아웃 해 올게.”

디저트 타임까지 완벽하게 치르고 싶었던 차준은 서둘러 집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때.

“바로 길 건너서 카페 말하는 거지? 나 거기 알아. 나랑 나봄이랑 다녀올게.”

태오가 커피 심부름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무리 편한 사이가 됐다 해도 명색이 손님인지라, 차준은 손을 휘휘 저으며 그를 말렸다.

“됐어, 앉아 있어. 손님이 무슨 심부름을 가.”

“내 여자랑 데이트 좀 하고 싶어서 그런다.”

“뭐?”

“우리 하나 좀 잘 부탁한다. 여보, 가자.”

역시나. 그럼 그렇지.

겉으로 드러난 태오의 속내에 차준은 헛웃음을 쳤다.

그사이 태오는 재빨리 겉옷을 챙겨 들며 나봄의 손을 붙잡았다. 쿠키를 막 베어 물었던 나봄은 얼떨결에 그의 손에 이끌려 심부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하, 다녀오세요.”

태준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손인사로 배웅했다.

혹시나 잠든 아이가 깰까 싶었던 태오는 대답 대신 고갯짓으로 화답했고, 살금살금 빈집을 털고 나온 도둑처럼 현관문을 나섰다.

끼익― 철컥.

그렇게 성공적으로 빠져나와 문을 닫고 나서야 한결 느슨해진 태오의 어깨.

“갑자기 뭐야. 놀랬잖아.”

갑작스레 딸려 나온 나봄은 입 안에 있던 쿠키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태오는 나봄의 손을 꼭 붙들고는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모처럼 둘이 데이트할 수 있는 시간인데 놓치기 아깝잖아.”

“그래 봤자 이 앞 카페 가는 거면서.”

“아닌데요, 이 앞 카페 말고 더 멀리 훌쩍 떠날 건데요.”

그리 말하는 태오의 눈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나봄은 긴장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충동적으로 결심한 일이라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태오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진짜.”

“안 돼! 하나 여기 놔두고 어딜 가!”

그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봄은 지금이라도 다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태오는 그런 그녀를 와락 껴안아 품에 가두었고.

“엄마야!”

“어디 멀리 안 가. 조금 더 먼 카페로 갈 거야.”

“뭐, 뭐?”

“딱 30분만. 그 정도 손잡고 같이 걷는 건 괜찮잖아.”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봄에게 매달렸다.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은 그의 모습에 나봄은 결국 실웃음을 흘려보내고 만다.

“아, 뭐야. 놀랐잖아. 진짜 어디 가려는 줄 알고.”

“내가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놈으로 보여?”

“하나 만들 땐 뭐 앞뒤 가리고 밀어붙였어?”

“쉿, 하나 듣겠다. 그날 밤엔 너도 뜨거웠으면서.”

태오는 나봄을 어르고 달래며 그녀의 어깨를 감싼 팔을 풀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옮겼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향해 나아가는 모양새는 우스워졌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한층 더 달달해졌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고 해도, 풋풋함만큼은 여전히 변치 않은 연인의 모습이었다.

때론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때론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친구처럼. 때론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가족처럼. 언제까지고 서로의 곁에서 함께할 두 사람.

“오늘 밤엔 둘째 만들까.”

그녀의 사랑이 떠나갈까 초조해하던 그는 어느새 사랑한다는 말 대신 야릇한 농담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고.

“미쳤어. 미쳤어. 남의 집 복도에서 진짜!”

그의 사랑에 괜히 겁을 먹던 여자는 너스레를 떠는 그를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평온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 가면 쌓여 갈수록 크고 작은 변화들과 마주하지만, 그런 변화들이 모여서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이대로 너와 같이 나이를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봄아.”

새삼 감격에 젖은 태오는 나봄의 이름을 불렀다.

나봄은 늘 그렇듯 대답 대신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고, 그녀의 예쁜 속눈썹을 내려다보던 태오는 언제나처럼 가벼운 키스를 건넸다.

입술과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는 이 순간.

달콤하게 스며드는 당신의 온기에 문득 마음이 뭉클해져 버렸다.

‘저기요.’

‘아, 뭐.’

‘저, 저기요?’

‘왜 자꾸 귀찮게 사람을…….’

우연처럼 너를 처음 만나.

‘가방 문 열렸는데…….’

‘…….’

‘닫아드려도 될까요?’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졌었던, 15년 전의 그 예쁜 봄날처럼.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 Epilogue_(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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