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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친이 내게 반했다-103화 (103/104)

103.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

2018.04.23.

흔히들 사랑을 열병과 비교한다.

피할 틈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와서 온몸을 강렬한 열기에 휩싸이도록 만드는 감정이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태오에게 사랑은 너무나 지독한 병이었다.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온 그 감정은 그를 멋대로 달아오르게 만들고, 정신 못 차릴 만큼 가슴 아프게 만들고.

결국 그 고통스러운 열기에 중독되어 잊어버리지도 못하게 했다. 자그마치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땐 날 바라봐 주지도 않을 거면서 마음에서 떠나지도 않았던 니가 얼마나 미웠는지.

그러나 미워하는 것도 결국엔 그녀를 생각하는 일이더라.

그래서 너에 대한 원망이 들 때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만 새삼 깨닫게 되더라.

그렇게 9년을 함께했다.

언젠가는 내 안의 너와 제발 이별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나는 너를 사랑하는 시간 동안 너에게서 벗어나려 애썼다. 이제 와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백이지만.

“태오야…….”

그런 그에게 찾아온 지독한 짝사랑의 엔딩.

그토록 멈추고 싶었던 사랑은 소원하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고, 이젠 그녀와 가장 가까운 인연이 된 태오는 한 번 더 열병에 취해 보기로 했다.

뜨거운 품에 안겨 있는 그녀는 내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탐스러웠다.

덕분에 애써 자제하고 있던 본능이 깨어난 태오는 나봄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붙인 채 속삭였다.

“나봄아, 고개 틀어 줘.”

그러자 순순히 원하는 방향으로 틀어지는 나봄의 얼굴.

그녀는 태오의 입술이 어딜 머금으려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날카로운 쾌감은 그녀도 내심 깨어나길 바라 왔던 감각이다.

“한나봄…….”

태오는 달뜬 음성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목덜미를 한껏 파고들었다.

부드럽게 다가와 거칠게 그녀를 탐하는 혀끝은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달콤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매만지는 손은 남자로서의 폭발적인 욕망을 가득 담고 있었다.

“하아…….”

그 와중에 귓가를 맴도는 숨소리는 또 어찌나 자극적이던지.

이 모든 것이 순전히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 벅차는 순간이다.

그의 사랑은 평소에도 충분히 받고 있지만, 그에게 몸을 내맡긴 이때만큼은 나를 얼마나 갈구하는지까지도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뜨거워진다.

“태오야, 조금 더…….”

나봄은 태오의 목덜미를 힘주어 껴안았다. 그러고는 태오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조금 더 나를 욕심내 줘.”

“…….”

“니가 원하는 만큼 날 가져도 좋아.”

그 말이 끝나기가 나봄의 호흡을 집어삼키는 입술.

처음엔 노크하듯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 새를 훑어 가던 입술은 온도가 달아오르면 달아오를수록 거칠어졌다.

목이 타는 갈증 끝에 물을 마시듯. 절체절명의 순간에 떨어진 동아줄을 움켜쥐듯.

간절하다 못해 절박하고, 거세다 못해 강렬한 키스는 그녀를 집어 삼킬 듯하다.

“아…….”

척추를 따라가 기분 좋은 소름이 끼쳐 오른 나봄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더욱 노골적으로 그녀를 탐하는 태오의 손끝.

나봄은 이따금 내뱉는 신음 소리 같은 숨결이 너무 좋다. 기분 좋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그의 혀끝도 자꾸만 야릇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때였다면 부끄럽다는 이유로, 태오가 리드해 주길 원해서, 이대로 그냥 그의 품에 안겨 있고 싶어서 억눌렀을 본능이지만 그녀도 오늘만큼은 풀어 놓고 싶어졌다.

이제야 니가 완벽히 내 사람이 되었으니 조금 더 노골적으로, 너도 깜짝 놀랄 만큼 야릇하게 널 한껏 탐하고 싶다.

“태오야, 잠깐만…….”

결심이 선 나봄은 태오의 얼굴을 살짝 떼어 냈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를 지그시 옆으로 밀어냈다.

처음엔 의아한 눈빛으로 나봄을 바라보기만 하던 태오도 별 저항 없이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 대로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태오의 등이 푹신한 침대에 닿은 순간.

바로 이 타이밍이 니가 가장 잘 여물었을 때라는 걸 너는 알까. 아마 지금의 니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실토하기 전까진 절대 모르겠지.

“이젠 못 참겠어.”

늘 태오가 했던 말을 뱉어 낸 그녀는 과감하게 그의 위로 덮쳐 올라갔다. 그리고는 단단한 그의 장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모은 채 태오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거침없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 태오는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그런 그녀만 응시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기엔 일렀다. 나봄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를 원해 왔으니.

“눈 감아.”

나봄은 미소 띤 얼굴로 부드럽게 명령했고, 태오의 뺨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러자 스르륵 내리감기는 그의 긴 속눈썹은 참 길고 예뻤다.

적당히 붉어진 홍조도, 마른침을 삼킬 때마다 움직이는 굵은 목젖도, 나봄의 이성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어진 나봄은 허리를 숙여 태오의 검붉은 입술을 능숙하게 머금었다.

태오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태오보다 훨씬 깊숙이 들어오는 그녀의 숨결.

저도 모르게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린 태오는 애꿎은 이불만 꽉 쥐었다.

그럴수록 더욱 더 농염하게 움직이는 달콤한 혀끝은 오늘 그의 마음에 불을 지르려 작정한 모양이다.

“아…….”

태오는 잠깐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나른한 신음을 흘려보냈다.

그 섹시한 목소리를 신호탄 삼아 그의 턱선에서 좀 더 아래로, 그의 가슴에서 조금 더 아래로, 초콜릿색 복근에서도 가장 패인 선을 따라 보다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나봄의 손.

나봄은 태오의 허리께를 은근한 힘으로 누르며 속삭였다.

“오늘 넌 이렇게 가만히 있어.”

“…….”

“내가 저 높은 곳으로 단숨에 데려가 줄게.”

너와 함께라면 내 기분은 언제나 짜릿하리만큼 높이 치솟아 버리지만, 오늘의 넌 그보다 더 내 몸을 끌어 올려 줄 것만 같다.

“빨리…… 빨리 데려다줘.”

참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태오는 그녀만큼이나 달아오른 목소리로 화답했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벌써부터 시작된 우리의 첫날밤.

달은 아직 멀었으나 그래도 달빛 대신 햇빛이 당신을 비추고 있어 다행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이 오른 그대를 적나라하게 눈에 담을 수 있으니.

* * *

쏴아아아―

가만히 눈을 감은 나봄의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풀빌라 발코니에 기대선 나봄은 한동안 바다의 기척을 감상했다.

그러자 문득 그녀가 유독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새삼 떠올랐다.

끝을 가능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푸른 바다.

나봄은 그 아득한 수평선을 볼 때마다 복잡하게 엉킨 고민들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바로 코앞에서 몰아치는 파도는 비록 거칠고 험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잔잔한 수평선처럼 평온해질 거란 희망이 들었다.

그런 이유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점점 너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사람 면전 앞에서 ‘망했다’라니…… 여전히 말이 심하네.’

‘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인연의 시작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보다도 더 거칠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도 고요한 수평선처럼 잔잔해졌다.

‘한나봄…… 나 좋아해?’

‘응, 좋아.’

‘이젠 미워하지 않아?’

‘응, 절대로 미워하지 않아.’

‘고마워…….’

‘…….’

‘정말 고마워, 나봄아.’

서로에 대한 오해들로 날을 세웠던 우리가 사랑을 말하고, 함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고 있다.

벌써 여러 번 확신했지만 이건 모두 너의 수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가 있어 줄게.’

‘응?’

‘니가 불안해지고, 작아질 때마다 내가 니 곁에 서 있을게.’

‘…….’

‘지금처럼 이렇게.’

너를 외면하는 내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내가 외로워하는 순간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줬던 너.

나는 그 다정한 손길을 사랑했고, 서툰 위로에 가슴 설레 했다.

누군가는 너의 어린애 같은 사랑이 유치하고 우습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난 적어도 그런 사랑이었기에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러니 넌 내게 그 누구보다 대단하고 고마운 사람. 평생을 사랑만 해 줘도 모자랄 나의 소중한 연인.

“나봄이, 뭐해.”

새삼 행복해하고 있던 나봄에게 태오가 다가왔다. 노을 진 저녁 바람은 제법 쌀쌀했지만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태오는 상체를 훤히 드러낸 상태였다.

“옷 입고 나와야지. 누가 보면 어떡해.”

나봄은 그런 태오의 몸을 가리며 말했지만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우리 마누라, 내 허리 실컷 구경하라고 일부러 드러내는 거다.”

“민망하게!”

“뭘 갑자기 민망해하고 그래. 아까 나 덮칠 땐 그렇게나 화끈했으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쉿! 조용히 해!”

과하게 들뜬 태오는 부끄러운 얘기를 잘도 꺼냈다. 덕분에 귀까지 빨개진 나봄은 그의 팔뚝을 찰싹 내리쳤다.

꽤 매운 그녀의 손이 스친 자리는 금세 빨간 자국이 생겼지만 태오는 아프지도 않은지 그저 생글거릴 뿐이었다.

“엄청 신났네. 내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기분 좋아 보여.”

그 모습에 헛웃음이 터진 나봄은 웃음기 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태오는 당연한 얘길 한다는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당연하지. 첫사랑이 이뤄진 순간인데 이만큼은 즐겨도 되잖아.”

“처음으로 해 본 사랑이 마지막이 됐는데 아쉽진 않겠어?”

“아쉬우면 어쩌겠어. 이미 구청에 혼인신고서까지 제출한 마당에.”

“뭐?”

나봄은 잘나가다가 삐끗하는 태오를 새초롬하게 째려보았다.

이 맛에 그녀를 놀리는 태오는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어 당기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우리 나봄이. 짜증 내는 얼굴까지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야.”

혼자 감상에 젖어 있던 시간도 방해한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놔. 아쉽게 만든 사람한테 왜 이러실까.”

나봄은 다가온 그의 손을 슬쩍 치워 내려 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오는 나봄의 손을 포근히 붙잡아 버렸다.

은근한 힘이 실린 그의 손길은 마치 영원히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태오는 그 손을 가만히 붙잡고 나봄을 마주 보았고,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점점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가벼운 입맞춤을 쪽―!

“화 풀어 주는 거야?”

나봄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지만 태오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내 사랑에 한껏 젖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사랑해 주는 거야.”

분명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는 성인 남자인데, 하는 행동이 어쩜 이리도 귀여운 건지.

이 남자와 살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가슴속 설렘은 점점 더 커다래진다.

“그럼 나도 사랑해 줄래.”

나봄은 벅차도록 두근거리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와이키키 해변의 파도 소리와 캐러멜빛 노을이 이미 달콤한 분위기를 더욱 달게 만드는 이 순간.

“사랑해, 한나봄.”

두 팔로 그녀를 꼬옥 감싸 안은 태오에게서 달콤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순간 미소가 번져 나올 만큼 애틋한 감정은 그녀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나봄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다신 놓치고 싶지 않은. 아니, 절대 놓칠 일 없을 그를 보다 힘주어 끌어안았다.

이로써 다시 구남친의 신분으로 돌아간 나의 남편, 나의 동반자.

지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태오야, 고마워.”

“뭐가?”

모진 외면의 시간 동안에도 지치지 않고 날 바라봐 준 것도, 행복에 겨울 만큼 사랑해 주는 것도 고맙지만.

“나한테 반해 준 거. 그게 제일 고마워.”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에 태오의 입술 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숨결 같은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레서, 그녀는 버겁도록 사랑해 주고 싶어졌다.

내게 반한 사랑스러운 구남친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_본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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