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당신이 필요해
2018.04.09.
“태오야! 이런 데는 어때?”
나른한 주말, 태오의 집.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봄이 태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소파에 길게 누워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던 태오는 착잡함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눈동자를 모니터 쪽으로 옮겼다.
그런 그를 반기는 건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와이키키 해변의 사진이었다.
“하와이네.”
“응,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 있는 호텔인데 괜찮아 보이지 않아?”
“어, 괜찮아.”
“신혼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까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하와이가 최고라는 얘기가 많더라구. 휴양하기도 좋고 관광하기도 좋고 쇼핑하기도 좋대.”
“아아…… 그 동네 좋은 건 알지.”
“응! 그리고 또…….”
신혼여행 준비에 신이 난 나봄은 꼭 가고 싶은 하와이의 다른 관광지의 사진도 보여 주려 했다.
하지만 흘깃 돌아본 태오의 얼굴은 혼자만 들떠 있는 게 미안할 정도로 착잡해 보여서, 나봄은 쉽사리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저기…… 태오야.”
“어?”
“이번에도 잘 안 된 거야?”
요 몇 달간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나봄은 넌지시 물었다.
태오는 잠시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솔직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고난이든 숨기지 않고 털어놓겠다는 건 그녀와 본격적인 결혼준비를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약속이었다.
“어차피 이쪽은 떨어질 줄 알았어. 우드레일이랑 협업했었거든. 페이는 여기가 제일 괜찮은데 그건 좀 아쉽네.”
태오는 속상한 심정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봄의 눈엔 그런 그가 더욱 안쓰럽게 비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드레일에서 나온 이후부터 태오는 끊임없이 재취업을 시도해 왔지만 어떤 회사든 서류 심사에서부터 줄기차게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실력도, 경력도, 스펙도 평균 이상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에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 규모나 크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떨어지는 건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누구에게서 비롯됐는지 너무나도 분명한 문제가.
“페이를 많이 주면 뭐해. 인재 하나 못 알아보는 회사인데.”
나봄은 태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는 태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반강제적으로 고정된 그의 눈동자는 요 사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부쩍 수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씩씩하게, 나봄은 태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로 했다.
“괜찮아. 너무 마음 쓰지 마. 우리 단태오 팀장님을 놓친 회사가 아쉽지 니가 아쉬워?”
“마음 쓰진 않는데…… 그냥 결혼 전에 뭐라도 결정 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난 느긋하게 결정 나는 것도 좋아. 그래야 하와이에서 회사 일 걱정 안 하고 마음껏 놀지!”
아이 같은 나봄의 미소는 흐렸던 태오의 마음도 맑아지게 만들었다.
그제야 겨우 우울감을 떨쳐 낸 태오는 고운 눈웃음을 띤 채 그녀와 이마를 맞대었다.
“우리 나봄이는 입술이 예뻐서 말도 예쁘게 하나 봐.”
“이제 속상한 것 좀 풀렸어?”
“응, 뽀뽀 한 번만 해 주면 완전히 풀릴 것 같아.”
언제 풀이 죽어 있었냐는 듯 금세 능글능글해진 눈빛.
그런 그가 마냥 사랑스러웠던 나봄은 다가오는 입술을 굳이 막지 않았다. 그렇게 웃음기를 머금은 서로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띵동―
느닷없는 초인종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태오와 나봄의 시선이 동시에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뭐지? 택배 왔나?”
“나 택배 시킨 거 없는데. 눈치도 없이 누구야, 대체.”
애정 행각을 방해받은 태오는 짜증이 밴 불평을 내뱉었다.
겨우 되살아난 그의 기분을 다시 가라앉히고 싶진 않았던 나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그러고선 현관 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기며 묻자.
“안녕하세요, 여기 단태오 씨 계시나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하지만 태오의 집 앞에서만큼은 들려와선 안 될 목소리가 현관문 너머에서부터 스며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본 나봄은 두 걸음을 우뚝 멈추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준 오빠?”
“뭐? 누구 오빠? 그 새끼가 여길 왔어?”
귀가 밝은 태오는 혼잣말처럼 흘려보낸 나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단번에 확 열어젖혔다.
거칠게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깥공기엔 오랜만에 맡아 보는 차준의 향기가 뒤섞여 있었다.
“차준 오빠, 여긴 어쩐 일로…….”
나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준에게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질문을 다 꺼내 놓기도 전에 튀어나온 태오의 말은 더욱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말귀 못 알아듣냐.”
차준 오빠가 여기 찾아온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어?
“내가 밀어낸다고 해서 밀려날 것 같아요? 나 이래 봬도 집착 심한 스타일인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자, 잠깐! 두 사람 뭐예요?”
혼란스러워진 나봄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자 태오의 미간은 더욱 더 찌푸려졌지만 차준은 아랑곳 않고 보다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고서 내뱉는 말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나봄이는 몰랐구나. 나 요즘 한창 태오 씨 꼬시는 중이야.”
“……네?”
“아! 미쳤나 봐! 한나봄, 휴대폰 가져와! 112에 당장 전화해! 이거!”
* * *
흥분해서 날뛰는 태오를 가까스로 달래서, 함께 마주 앉은 부엌 식탁.
“나봄이 여기서 지내는구나.”
차준이 집 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나봄의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나봄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같이 사는 건 아니고…… 여기가 신혼집이 될 예정이라 조금씩 짐을 옮겨 놓는 중이에요!”
“결혼 준비는 잘되어 가? 청첩장은 언제 나와?”
“주문은 해 놨어요! 나오면 바로 드릴게요!”
“나 축의금 많이 낼 거야. 그러니까 청첩장 줄 때 맛있는 거 사 줘야 해.”
차준은 천진난만한 눈웃음과 함께 진심 섞인 농담을 던졌다.
나봄은 그런 그를 따라 하하 웃었지만 곁에 있는 태오의 표정은 결코 좋지 못했다.
차준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난 몇 번이나 알아듣게 거절했으니까 나가 줬으면 좋겠네.”
태오는 뻔한 본론이 꺼내지기도 전에 매정한 목소리를 꺼내 놓았다.
나봄은 그런 그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으나 차준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오늘 면접 떨어졌다면서요. 그쪽에 아는 사람 있어서 다 들었어요.”
“너 내 뒷조사도 하고 다니냐?”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어서 연락해 본 겁니다. 어떻게든 서 회장 그 노친네 입김 좀 막아 주려고.”
“…….”
“그런데 딱히 좋은 회사는 아니더군요. 라인 잘 타야지 승진이 가능한 구조던데, 단태오 씨는 귀염성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딱히 별말 안 했습니다. 난 우리 귀한 단 팀장님을 그런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아요.”
태오를 도와주고 싶었다던 차준의 말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서 회장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라면 그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었으니.
그러나 태오는 그 호의 속에 숨어 있는 속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는 척 한 뒤에 따라올 말은 너무나도 뻔했다.
“역시 그쪽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나 봐요.”
“알아보긴 개뿔.”
“그냥 같이 일하지 그래요? 원하는 조건 다 맞춰 준다니까.”
일?
난데없는 동업 제안에 가장 놀란 건 나봄이었다.
두 남자가 그런 얘기를 하는 줄도 몰랐던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준에게 물었다.
“차준 오빠, 태오랑 같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그러자 차준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도 본론을 꺼내 놓았다.
“아, 단태오 씨가 별말 안 해줬어? 나 지금 거의 한 달째 이 사람한테 매달리는 중이야. 같이 회사 하나 차리자고.”
“회사라면 무슨…….”
“하우징 전문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볼 예정이거든. 형이 경영을 맡고, 난 사업부를 맡고, 우드레일 서미란 대표님이 고맙게도 자금을 대 줄 거야.”
“예?”
“그런데 현장을 총괄해 줄 인재가 없네. 실내 인테리어 시공이 가능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가구도 완벽하게 만들 줄 알고 말이야. 응?”
차준은 나봄에게 설명하는 척하며 태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매번 부담스러웠던 태오는 손끝으로 시선을 떨군 채 까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사업은 질색이야. 신혼 초부터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겠답시고 와이프 마음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불안정하게 사는 것도 싫어.”
이건 늘 보이는 일관된 반응이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페이든 근로 환경이든 원하는 대로 다 맞춰 준다고 해도, 그는 사업이 불안정해서 싫다는 이유로 언제나 차준의 손을 뿌리쳐 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있었던 차준은 들고 온 가죽 가방에서 서류 파일 하나를 꺼냈다.
“이거 보면 더 이상 불안정하다는 얘기 못 할걸요.”
“그게 뭔데.”
“당장 내년까지 잡혀 있는 스케줄. 협업 업체 선정은 거의 끝났고, 몇 달 뒤에 열릴 하우징페어에서 브랜드 홍보 제대로 들어갈 겁니다. 대표님 지원사격을 받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논의 중인 계약도 몇 건 있어요.”
“…….”
“그런데 사업을 이렇게 따와도 믿고 맡길 현장팀장이 없어서 더 이상 진행이 안 되네요. 아예 새로운 사람을 들이자니 검증하고 호흡 맞추느라 시간만 버릴 거 같고.”
“…….”
“그러니까 매달리는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밖에 적임자가 없어.”
그리 말하는 차준에게선 이전의 장난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업적으로 내세워 매달리는 건 처음이었던지라, 태오도 무작정 그를 외면하기에는 곤란해졌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들어 마주한 시선.
차준은 그런 그를 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마주 보았고, 한 번 더 간절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원하는 대로 다 맞춰 주겠다는 말 진심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아요.”
“…….”
“그러니까 내 부하 직원이 아니라 공동대표로서 힘을 보태 주세요. 그럼 난 단태오 씨가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을 만들어 줄게요.”
“…….”
“우리 아무한테나 이렇게 매달리는 거 아닙니다. 단태오 팀장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다른 회사에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안달 내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본 게 얼마 만이더라.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는 차준의 말은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태오의 열정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이런 말에 쉽게 넘어가고 싶진 않은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업은 절대 손대지 않기로 박 여사와 굳게 약속했는데.
냉정하게 외면하기엔 그동안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약삭빠른 놈. 하필 그 부분을 파고들 줄이야…….
“같이 가시죠. 장담컨대 우리 ‘Made by Forest’에는 서재균 회장의 입김이 절대 닿지 못할 겁니다.”
망설이는 태오의 눈빛을 읽어 낸 차준은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우린 서로 믿고 의지할 관계가 아니건만, 가장 힘든 순간 내밀어진 차준의 손은 어쩐지 다른 때보다도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런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태오는 살짝 미간을 좁혔고, 눈앞에 건네진 그의 손을 치워 냈다.
그건 명백한 거절의 표시였으나.
“아무리 그래도…… 오늘 결정 내리진 못합니다.”
뜻밖에도 이어지는 대답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를 사무적으로 대할 때처럼 다시 존댓말을 붙여 주었으니.
“주신 자료는 잘 읽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 제대로 얘기 나눠 보는 걸로 하죠.”
태오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차준이 올려 둔 서류 파일을 챙겨 들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기 그지없었지만 차준은 잘 읽어 보겠다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그제야 겨우 안심한 차준은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되찾았고, 나봄에게 진담 섞인 농담을 던졌다.
“나봄이는 이제 부자 되겠네.”
“네, 네?”
“이제부터 단태오 대표님 엄청 잘나갈 거니까.”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열린 태오의 마음만큼이나 한결 편안해진 두 사람의 분위기.
“나 아직 같이 일하겠다고 말 안 했습니다. 할 말 끝났으면 가세요, 이제.”
아무리 동업할 마음이 생겼다고 해도 이 둘이 가까워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았던 태오는 다시 심통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런 불만 가득한 얼굴이 아까 전의 축 처져 있던 얼굴보다 보기 좋아서.
나봄은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걱정들을 비워 낼 수 있었다.
아까 보았던 하와이의 푸른빛 바다처럼 한없이 깨끗하게.
* * *
“미안.”
차준이 돌아간 뒤, 찻잔을 정리하며 태오가 사과했다.
“응? 뭐가?”
식탁을 닦던 나봄은 동그랗게 뜬 두 눈을 그에게 고정시켰다.
그러자 태오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를 꺼내 놓았다.
“무슨 일이 있든 다 말하기로 했는데 동업 얘기는 꺼내지도 않아서.”
“…….”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어서 굳이 말 안 했어. 선우차준이랑 같이 일하는 것도 니가 불편해할 것 같고, 결혼 앞두고 일 벌이고 싶지도 않아서.”
그리 말하는 태오는 나봄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무턱대고 쏟아 내고 싶은 열정도, 새 신부가 될 나봄을 위해 꾹꾹 억눌러 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결혼 전에 이직이 결정 났으면 했던 거구나. 안정적인 걸 추구했던 것도 크게 보면 나 때문이고.
“흐음…….”
나봄은 분주히 식탁을 닦던 손을 멈추고 태오를 바라보았다.
사나운 외모와 달리 순수하고 겁도 많은 사람.
하지만 그 약한 모습까지도 어루만져 주고 싶다. 결혼해서 하나가 된다는 건 그런 의미니까.
“단태오.”
나봄은 태오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고, 그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그의 허리를 꼬옥 감싸 안았다. 이내 예쁜 입술을 움직여 흘려보내는 말은 하염없이 다정했다.
“난 니가 나랑 결혼하고 나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내 눈치 보지 말고, 니가 원하는 일을 해도 돼. 넌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때가 가장 멋있어.”
나봄의 위로는 태오가 마음 깊숙이 감춰 놓았던 고민까지도 다정히 어루만져 주었다.
드러내지 않은 고민도 어쩌면 이렇게 잘 달래 주는지.
태오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하염없이 고마울 뿐이다.
“고마워. 내 옆에 있어 줘서.”
늘 해 왔던 감사였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더 진심이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해 받은 그녀는 태오의 가슴에 더욱 얼굴을 파묻었고, 따듯하게 스며드는 그의 온기를 한껏 느꼈다.
그는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봄은 그의 곁에 있게 해 줘서 고마운 순간.
“태오야, 내가 많이 사랑해.”
나봄은 질리도록 주고받았던 고백을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해.”
이어지는 태오의 대답은 한결 같았지만, 나봄은 요즘 들어 더더욱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사랑은 하루가 다르게, 아니. 1분 1초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걸.
그러니까 이젠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할지도 몰라. 지금 맞닿아있는 가슴에서 더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도 내 심장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