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94화 (94/104)

94. 당신은 나의 해피엔딩이었다

2018.03.23.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우드레일 본가 응접실, 서 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싸늘히 흘러나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경호실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현재 벌어진 상황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설명했다.

“선우차준 이사의 사직서는 서면으로 온 터라 붙잡고 설득해 볼 틈도 없었습니다.”

“…….”

“아무래도 선우차준 이사님은 아무래도 우드레일에서 손을 떼시려는 듯합니다.”

거의 사실에 가까운 경호실장의 의견에 서 회장의 눈동자가 사납게 번뜩였다. 안 그래도 요즘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싶더니, 기어이 녀석은 일을 친 모양이다.

제 형도 이렇게까지 막나가진 않았었건만 어째서 이리도 나약한 선택을 한 건지.

차준은 서 회장이 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후계자였다. 그가 우드레일을 떠나 버린다면 이 회사가 연고 없는 친척이나 생판 남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선우차준 그놈 어디 있어.”

서 회장은 싸늘한 한기를 띤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경호실장은 더욱 난처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게…….”

“어디 있냐고! 빨리 대답해!”

“며칠째 행방이 묘연합니다! 확인해 본 결과 도곡동 자택에도 계시지 않았고요!”

“잠적이라는 얘기인가?”

“네, 네…… 지금으로썬 그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하아…….”

서 회장의 입에서 한탄 섞인 숨이 새어 나왔다.

대책이 안 설 정도로 답답한 상황에 아직 완치 되지 않은 심장병이 다시금 도지는 기분이다.

“선우차준 이 새끼가…….”

격한 분노를 표출할 힘도 없었던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

“안 좋은 뉴스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경호실장이 또 다른 비보를 꺼낼 준비를 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서 회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얘기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경호실장은 마른침을 삼켜 넘겼고, 차준의 사퇴 소식을 전할 때보다도 더 움츠러든 목소리를 내뱉었다.

“선우차준 도련님이…… 요양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으셨습니다.”

“뭐?”

“그날 면회 기록에 ‘단태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만,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면회실에 찾아간 사람은 선우차준 이사님이셨습니다.”

“…….”

“아마 단태오 팀장을 추궁하면 이사님과 도련님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 말하는 경호실장은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미 벌어진 일의 뒷수습을 잘한다면 선우차준을 보다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했던 과오를 모면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를 악 물고 분을 삭이던 서 회장이 꺼내 놓은 것은 의외로 포기가 담긴 말이었다.

“관둬. 선우차준 그 새끼는 제 어미보다도 더 고집이 세서 붙잡아 놓는다고 될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서미란 대표가 알아서 하겠지. 그동안 계속 선우차준의 빈자리만 노려 왔었잖아.”

그건 이 회사의 수장이 서 회장에서 서 대표로 넘어가리라는 걸 뜻했다.

이제 서 회장의 최측근으로 구성된 우드레일 이사진은 서 대표의 뜻을 따르는 인물들로 물갈이 될 테고, 심약한 서 회장의 자리도 서미란 대표에게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고 없는 타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뜻에 전부 반대되더라도 친딸에게 주는 편이 나았다.

그러니 늙은 욕망은 이쯤에서 잠시 멈춰 둬야 할 때.

“아들을 뒀어야 했어. 날 빼닮은 아들을…….”

서 회장은 늘상 내뱉던 한탄을 읊조리듯 흘려보냈다.

그러나 참담한 심정은 그것으로도 누그러들지 않아서.

“모든 경영권이 서 대표한테 넘어가기 전에 처리할 게 있어.”

“말씀만 주십시오, 회장님.”

“단태오, 그 새끼.”

“…….”

“어느 회사에도 발 못 붙이게 제대로 잘라 내.”

그는 마지막 칼날을 빼어 들기로 했다.

어차피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짖어 대는 개새끼는 내버리는 게 답이었다.

제 잘난 맛으로는 절대 버티지 못할 차가운 세상 속으로.

* * *

한봄 도어락 사무실.

“어때요……?”

나봄이 발표문을 보고 있는 한 사장에게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드레일 ‘Lily’라인 런칭 날 외주 업체들의 대표로 서게 된 그녀는 큰 행사를 위해 요 며칠간 밤을 새워 기념사를 준비했던 터였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마지막 문장까지 전부 읽어 내려간 한 사장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아주 좋은데! 적당히 겸손하면서도 우리 한봄 도어락의 자부심이 은근슬쩍 들어가 있는 것도 좋다!”

“그, 그래요?”

“우리 한 팀장이 가만 보면 글을 참 잘 써. 이 기념사는 프린트해서 회사 게시판에도 붙여 놔야겠어.”

“그건 너무 부끄럽고요!”

한 사장이 너스레를 떤다는 건 결과물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였다.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된 나봄은 긴장했던 어깨를 늘어트렸다. 한 사장은 그런 나봄의 등을 토닥이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만든다고 엄청 고생했지?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단 서방이랑 데이트라도 해.”

“일주일 뒤에 행사라서 발표 연습해야 해요.”

“하루쯤 쉰다고 안 망해. 게다가 너는 실전에 강한 스타일이잖아!”

“정 그렇게 말하신다면…… 딱 하루만 쉬어 볼까요?”

마침 나봄도 휴식이 너무나도 고팠던 터였다.

제주도에서 2박 3일 동안 잘 쉬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무리했다고 피로는 예전보다 더 많이 쌓여 버렸다.

한 사장의 말대로 오늘 하루는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 나봄은 발표문을 받아 들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퇴근해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를 돌아선 그때.

“한나봄 팀장님,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사무실의 경리가 나봄에게 말했다. 나봄은 혹시나 그 손님이 태오일까 싶어 동그란 눈으로 문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랜만이네요, 한나봄 팀장님.”

“차준 오빠……?”

오랜만에 차준을 본 나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나 싶더니, 이내 그의 손끝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정성스럽게 포장된 붉은 장미꽃 다발.

그 의미를 차마 넘겨짚지 못한 나봄의 눈빛이 옅게 떨려 왔다.

* * *

따듯한 커피가 어느새 미지근해졌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1분은 하루처럼 느리게 흘러갔고, 눈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존재는 더욱 서먹해졌다.

침묵을 견디기 버거웠던 나봄은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으나 아무런 얘깃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장미꽃 다발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아, 이거 오다가 예뻐서 샀어.”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차준이 겨우 입술을 열었다. 그러고는 나봄 쪽으로 꽃다발을 밀어 두었다.

나봄은 그걸 받아 드는 대신 굳은 표정으로 차준의 눈을 마주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 ‘불편함’이었다. 그걸 알아챈 차준은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본론을 시작했다.

“다음 주에 ‘Lily’ 런칭 행사하잖아. 그때 전해 줄 꽃다발 미리 주는 거야.”

“아…….”

“나는 아무래도 참석 못 할 것 같거든.”

꽃다발의 의미를 들은 나봄은 그제야 움츠러들어 있던 어깨를 풀었다. 경계 어린 눈빛도 한결 느슨해지는 듯했다.

그걸 확인한 차준은 입가에 더욱 짙은 미소를 띠웠다.

“오해했구나. 하필 장미라서.”

“아, 아니에요.”

“괜찮아. 내가 괜히 뜸을 들이는 바람에 분위기만 이상해졌네.”

차준의 말에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던 나봄은 말을 돌리기로 했다.

“큰 행사인데, 왜 참석을 못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밝혔던 런칭 행사 불참에 대해 묻자, 차준은 담백한 목소리로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회사 그만뒀어.”

“……네?”

“이제 우드레일이랑 관련 없어, 나. 아무래도 빡빡한 대기업은 내 성격에 안 맞는 것 같아.”

그는 이직을 얘기하듯 가볍게 말했지만 나봄은 우드레일이 그에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던 그는 그저 성격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리 없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그의 결정이 의아했던 나봄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차준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웃음기 어린 입술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오랫동안 생각해 보고 결정한 일이야.”

“…….”

“어차피 나는 그렇게 커다란 세계를 감당해 낼 위인도 못 되는데, 뭘.”

자신은 큰 세계를 감당해 내지 못한다는 말.

그 자신 없는 태도는 이전의 차준이라면 보이지 않았을 모습이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온 나봄은 보다 절절한 목소리를 꺼내 놓았다.

“요즘 안팎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거 알아요. 깊이 들여다보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도 알구요.”

“…….”

“혹시 그런 우울한 감정들이 버거운 거라면 나한테라도 털어놔요.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차준을 설득하는 그녀는 지금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를 걱정하고 있다.

그녀를 떠났던 9년 전 그날처럼 또 한 번 갑자기 이 세상을 영영 떠나 버릴까 봐서.

하지만 차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특유의 눈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뒤 흘려보내는 음성은 오히려 평소보다도 평온했다.

“나 지금 인생 포기하려는 거 아니야. 제대로 시작해 보려는 거야.”

“시작…… 이요?”

“응, 시작.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차준의 대답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던 나봄은 조용히 입술을 닫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차준은 이내 나봄의 앞에서 처음으로 꾸미지 않은 진심을 털어놓았다.

“나…… 너를 떠나고 나서 하루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독한 불행이었고, 매번 내일이 찾아오는 게 저주처럼 느껴졌어.”

“…….”

“아마 바로 옆에 죽음마저 실패한 사람이 없었더라면 진작 죽어 버렸을지도 몰라. 사실 그 생각은 되게 많이 했거든.”

차준은 미소를 띠우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엔 쓰라림이 배어 나왔다.

그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차준은 뒷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그때 니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는데…… 와, 이게 운명이구나 싶더라.”

“…….”

“우리 행복했었잖아. 서로 마음껏 사랑했을 때.”

“…….”

“너는 내 옆에서 웃고, 나는 니 옆에서 웃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가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는 동안 나봄은 제 손끝으로 시선을 끌어 내렸다.

빛나던 우리의 시간들은 이미 바랠 대로 바래 버렸다는 걸,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차준 역시도 그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지, 마저 덧붙이는 말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다시 만난 너를 데리고 아무리 그 시절로 돌아가려고 해 봐도…… 도무지 행복해지질 않더라. 너도, 그리고 나도.”

“…….”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진심으로 웃고 있질 않았어. 우리가 그때의 감정을 잊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

“그러던 어느 날 니가 나한테 이런 얘길 했지.”

“…….”

“그때의 난 니가 있어서 행복했던 게 아니라, 내가 행복했던 시절을 너와 함께 보냈던 것뿐이라고.”

그 말을 하며 차준은 냉담했던 그녀를 떠올렸다.

‘정말 내가 없어서 힘들어요?’

‘차준 오빠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절은 마음껏 태준 씨를 동경했던 그 시절이었어요.’

‘나는 그 순간을 함께 나눴던 사람에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절절히 매달리는 나를 냉정하게 밀어내던 너.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미련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해 고집만 부렸지만.

“그 당시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어렴풋이 의미를 알 것 같아.”

“…….”

“중요한 건 행복했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나였던 거야.”

지금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아집에서 벗어나, 새어 나오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차준은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인생에는 행복과 불행 둘 중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어느 것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사실도.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따로 있었는데, 그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걸 외면해 가면서 행복의 책임이 너한테 있는 것처럼 매달렸어.”

“…….”

“미안해. 그동안 내 감정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건 진심으로 사과할게.”

차준의 사과를 들은 나봄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에게 닿은 차준의 눈빛은 먹먹하게 젖어 들고 있었으나 용케 미련은 비쳐 나오지 않았다.

그걸 보니 당신이 이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나봄은 문득 지친 그의 어깨를 안아 주고 싶어졌다.

우린 이제 서로에게 그런 호의조차 베풀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지만.

“차준 오빠.”

“…….”

“나한테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요.”

당신에게 따스한 품 대신 건네줄 수 있는 건 다정한 위로뿐.

나봄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감히 바랄 수 없었던 대답을 들은 차준의 눈동자 옅게 일렁였다.

나봄은 그런 그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띠웠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진심을 꺼내 놓았다.

“그 시절의 나는 오빠 곁에 머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내 삶에서 오빠는 소중한 첫사랑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나봄아…….”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까 서로 미안해하지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로 해요.”

“…….”

“한때 나의 주인공이었던 만큼, 또 한 번 해피엔딩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그녀가 그리 말하는 순간.

바스락―

고집스레 붙잡고 있던 첫사랑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다가온 우리의 끝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으나, 마무리를 지은 것치고는 그리 후련하지도 않았다.

그저 너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두 번 다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는 게, 울고 싶을 만큼 서러울 뿐.

차준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떨구었고, 자꾸만 메는 목을 마른침을 삼켜 넘기며 정리했다.

“……사랑했어.”

그런 뒤 마지막으로 내보이는 마음은 유통기한이 지난 과거형이었다. 현재를 사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할.

그래도 괜찮으니, 나는 이미 끝난 우리의 이야기에 한 문장을 더 적어 본다.

“정말 사랑했어.”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서 한 문장만 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 나봄아…….”

마침내 펜을 내려놓는 건, 이미 완벽한 해피엔딩을 맺은 우리의 이야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너의 말대로 우린 한때 서로의 주인공이었으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응원해 주는 걸로.

“……나 진짜 행복해질게.”

차준은 그리 말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첫 장을 펼쳤다.

“응, 그럴 거라고 믿어요.”

두 번째 문장은 나봄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축복이었다.

나쁘지 않은 시작.

나는 벌써 또 다른 해피엔딩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가 보다.

이번 이야기는 가벼운 시련도 없는, 지루할 만큼 행복하기만 한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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