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데려가 줘. 니가 원하는 곳으로
2018.03.16.
영롱한 플로어 조명 길을 따라 도착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핀 조명이 태오의 위로 내리쬐었다.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셨던 그는 한 손으로 황급히 시야를 가렸다.
그러자 머지않아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분명 여자의 구두 소리였다.
“한나봄?”
그는 자신을 이곳으로 초대한 그녀부터 찾았다.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낯선 목소리로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단태오 님.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들어가도 됩니까.”
“당연하죠. 오늘 밤 이 크루즈에 초대받은 유일한 손님이신걸요.”
웨이트리스의 말대로 오늘 밤, 이 커다란 디너 크루즈에 초대받은 특별 손님 단태오.
하지만 그는 이 꿈같은 상황을 아직 현실로 자각하지 못했다. 입구에서 들려왔던 이름은 분명 그의 것이 확실했으나, 자꾸만 여기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 이쪽으로.”
“네? 아, 네.”
그래서인지 웨이트리스를 따르는 그의 발걸음은 잔뜩 경직되어 있기만 했다.
어제만 해도 꽉 차 있던 테이블이 텅텅 비어 있는 광경도, 네다섯쯤 되는 웨이터들이 눈만 마주치면 예의 차린 인사를 건네는 상황도, 전부 어리둥절하기만 한 지금.
머리는 더 이상 상황을 파악하기를 포기했다. 이건 뭐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보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다.
“여기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앉으시죠.”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웨이트리스는 그저 친절한 미소를 띤 채 태오를 정 중앙 테이블에 앉혔다.
“가, 감사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뒤, 그녀가 빼 주는 의자에 조심히 걸터앉았고 혼란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단태오♡한나봄’ 이라 적힌 저 플래카드는 어제도 봤던 것 같은데.
이 핀 조명은 계속 나만 따라다니는 건가?
잠깐, 이제 보니까 VCR에 나오는 얼굴은 나였잖아? 대체 누가 어디서 찍고 있는 거야.
모든 것이 눈에 걸리는 와중에도 나봄의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그녀라도 있으면 마음이 좀 안정될 것 같은데, 어디 숨었는지 좀처럼 나오지를 않는다.
“한나봄!”
태오는 괜히 소리 높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대답 소리가 아닌 달콤한 사랑 노래였다.
볼륨이 말소리도 잘 안 들릴 만큼 커진 걸 보니, 이건 무언가 시작하기 전 틀어 주는 전주곡인 모양이었다.
“뭐야, 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태오는 또 한 번 주위를 살폈다.
그때, 그의 얼굴을 비추던 VCR이 블랙아웃 되고.
―단태오 씨! 단태오 씨! 여기 보세요!
―뭐하는 거야.
―사진 찍어. 나도 남자 친구 사진 하나만 남겨 놓자.
―나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한 번만!
곧이어 자신의 얼굴이 커다랗게 등장했다. 예상치 못했던 동영상에 당황한 태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채 굳어 버렸다.
“지난주 데이트 때…… 아닌가?”
용케 촬영 일자를 알아본 태오는 별다를 거 없었던 그날의 데이트를 회상했다.
어쩐지 그날따라 호시탐탐 카메라를 들이대더니만, 이걸 준비하는 중이었구만.
태오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재생된 영상을 지켜보았다.
동영상 속의 그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본인조차도 자각해 본 역사가 없다.
“하하, 나 참.”
그걸 보자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와 버린 태오는 어리둥절한 상황도 잠시 잊고 화면에 집중했다.
그런 태오를 엿 먹이듯 영상 속 단태오가 날리는 대사 한 마디는.
―그러다가 내 잘생긴 얼굴 보고 영원히 못 헤어 나가면 어쩌려고 그러냐.
“아, 돌았나 봐.”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일주일 전 단태오의 닭살 멘트에, 이 순간을 살고 있는 태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보통 나봄에게 낯 뜨거운 대사를 칠 때는 분위기에 취해서 이성을 살짝 놓은 상태였는데, 또렷한 맨정신으로 보려니까 항마력이 딸려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주일 전의 단태오는 계속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너 나한테 너무 푹 빠지지 마라.
―왜?
―내 매력에서 헤어 나가질 못하니까.
―푸핫, 이미 빠져 버렸으면?
―그럼 게임 끝이지, 뭐.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해야겠네.
아…….
부끄러워 죽어 버릴 것 같아.
“저, 저기…… 나봄이는 어디…….”
더 이상 오글거림을 버텨 낼 자신이 없었던 태오는 괜히 나봄을 찾았다.
하지만 웨이트리스는 빙긋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길로 걸음을 옮겨 어딘가로 훌쩍 떠나 버린다.
수치스러운 상황에 홀로 남겨진 게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 태오는 마지못해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또 다시 페이드아웃 되는 VCR 영상.
[태오야, 저때 기억 나?]
이윽고 까만 화면 위로 편지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태오의 일렁이는 눈동자가 가만히 글씨 위로 머물렀다.
[니가 그랬잖아. 너한테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으면 결혼하자고. 그래서 청혼을 하려고 해. 이미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사랑하는 너에게.]
머지않아 꺼내진 ‘청혼’이란 단어는 그의 숨을 멎게 하는 주문과 비슷했다.
이런 건 감히 꿈으로도 꾸지 못했던 일이라, 심장이 날뛰다 못해 터져 버리기 직전이다.
그런 태오의 눈앞에 이어지는 나봄의 진심은 꾸미는 것 없이 진솔했다.
[나는 널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그땐 니가 얼마나 좋은 남자인지 알지 못했고, 오래도록 보아 왔지만 너의 사랑스러운 점은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어. 그 시간 동안 널 아프게 해서 너무 미안해.]
나봄의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오는 줄곧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사랑했고, 잊지 못할 인연이었으니까 잊지 못했을 뿐.
내가 선택한 나의 마음에 너의 잘못은 조금도 없다.
그러니 괜찮다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대답하기 위해 미리 목소리를 가다듬어 놓고 있는데.
[그리고 고마워.]
생각지도 못한 감사의 인사가 전해졌다.
[아픈 시간 동안에도 나를 사랑해 줘서. 내 곁에 계속 있어 주고 내 마음을 기다려 줘서 정말 눈물 날 만큼 고마워.]
그 말을 듣자, 곧바로 목이 메여 오기 시작했다.
너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던 지난날의 짝사랑.
나 혼자 시작해 버려서 죄가 되었고, 나 혼자 깊어져서 잘못이었던 그 마음은 이제야 너에게 제대로 닿았나 보다.
나 혼자 아팠던 시간들이 이 순간 전부 위로받는 것 같아.
“하…….”
벅차오르는 감정을 삼켜 내지 못한 태오의 숨이 축축이 젖어 들었다. 이내 뜨거워지고 마는 눈시울은 쪽팔린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모습 또한 어딘가에서 찍고 있다는 걸 자각한 태오는 서둘러 뿌옇게 흐려진 눈가를 닦았다.
바로 그때.
“오늘의 메인 디너 나왔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웨이트리스가 푸드 트레이를 끌며 다가왔다.
테이블에 올려놓는 예쁜 접시 위엔 음식 대신 보석을 담을 법한 작은 상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태오는 아직 울음기가 정리되지 않은 와중에도 상자를 들어 올렸고, 떨리는 손으로 안을 조심스레 확인했다.
그러자 눈앞에 반짝이며 드러난 건.
“이거…….”
차 보지 않아도 그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손목시계와.
‘나랑 결혼해 줄래? yes면 일어서서 뒤를 돌아 봐.’
귀여운 글씨체로 적힌 작은 쪽지.
프러포즈에 대한 대답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내용을 읽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선 태오는 망설임 없이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지금 벅차다 못해 넘쳐흐르는 이 마음을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해 주고만 싶다.
그 순간.
와락―!
태오의 품에 안겨 드는 따스한 체온은 모든 생각을 멈춰 버리기에 충분했다.
심장이 본능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사랑스러운 그녀가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났나 보다.
“한나봄…….”
태오는 그녀의 작은 몸을 소중한 만큼 꼬옥 끌어안았다. 나봄은 고갤 들어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나랑 결혼해 주는 거야?”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당연하잖아, 바보야.”
태오는 그런 나봄을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그렁그렁했던 눈에선 이미 맑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예전엔 거칠 게 없는 사나운 맹수가 따로 없었는데, 어쩌다 이리도 여리고 순해졌는지.
나봄은 그녀 앞에서만 순애보가 되어 버리는 태오를 달래 주듯이 토닥였다.
그러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니가 행복해져서 다행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태오는 제 안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감정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나는 아무래도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하는 중인가 보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 해도 좋을 만큼, 내 안의 모든 기쁨들이 우리 곁을 돌며 춤을 추고 있잖아.
태오는 그녀를 안은 두 팔에 힘을 더했고,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이 말을 너한테 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이렇게 계속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해, 나봄아.”
“나도 사랑해.”
“아니, 내가 더 사랑해. 진심이야.”
반복되는 고백은 나봄의 귀가 아닌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나봄은 그런 그의 마음을 오롯이 느끼며, 이토록 과분하게 받고 있는 사랑을 일생 동안 부지런히 갚아 나가겠다고.
아니, 그보다 몇 배로 더 얹어서 사랑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사랑하는 단태오라는 남자는 행복에 겨워 미소 지을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는 존재니까.
* * *
“아, 나 너무 울었냐.”
호텔 방으로 돌아온 태오가 새빨개진 눈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 그가 귀여웠던 나봄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프러포즈가 그렇게 감동적이었어?”
놀리기 위해 꺼낸 질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부인은 할 수 없었던 태오는 괜히 삐딱해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 사실 진짜 눈물 없는 편이야. 민증받고나서부턴 울었던 적 몇 번 안 돼.”
“에이, 내가 본 게 몇 번인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 몇 번이 전부 너 때문에 운 거라서 미치겠다고.”
그건 변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취하면 이별 노래 듣고 엉엉 우는 술버릇도 사실은 그녀에게 제대로 차인 뒤부터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저 오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나봄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보면 내가 니 눈물샘인 줄 알겠다. 맨날 눈물만 나게 하니까.”
“너 내 말 안 믿지.”
“못 믿겠어. 내가 아는 너는 눈물이 정말 많거든.”
그리 말하며 나봄은 태오의 콧잔등을 손끝으로 톡, 하고 건드렸다.
이미 그녀는 태오를 울보로 보고 있나 보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태오는 살짝 미간을 구겼다.
“진짜라니까. 나 정말…….”
그때, 그의 뒷목을 부드럽게 잡아당기는 손길과 함께.
쪽―!
태오의 입술로 촉촉한 감촉이 와 닿았다. 도발적으로 건네진 그녀의 입맞춤엔 그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귀여워서 보기 좋아.”
“……뭐?”
“나 은근히 눈물 많은 남자가 취향인가 봐.”
이어지는 나봄의 거침없는 고백.
순간, 불만 가득했던 태오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별로 자극적인 말도 아니었는데. 귀엽다는 소리도, 눈물 많단 소리도 그다지 듣기 좋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가슴에 뜨거운 불이 이는 듯하다.
“한나봄…….”
태오는 일렁이는 눈빛을 띤 채 달뜬 음성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봄은 그런 태오를 똑바로 마주 보았고, 해맑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왜?”
이건 태오가 격하게 좋아하는 나봄의 사랑스러운 표정들 중 하나였다.
덕분에 이젠 억지로 가라앉힐 수도 없을 만큼 폭주하는 본능.
“지금 이거 책임질 수 있겠냐?”
“응?”
“책임질 수 있어서 이렇게 꼬시는 거지?”
사실 끓어넘치는 애정은 어젯밤부터 많이 참았다.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니 이제는 가만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인 너를 미치도록 탐하는 일뿐.
“……한나봄.”
태오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부르며 작은 어깨를 힘주어 붙잡았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의 온도에 나봄의 눈동자도 동요하듯 옅게 떨려 왔다.
태오는 그 눈을 지그시 마주하며 천천히 검붉은 입술을 끌어 내렸다.
“나랑 같이 침대로 갈래?”
야릇한 질문은 물으나마나였다. 나 또한 니가 욕심나서 안달내고 있으니.
나봄은 대답을 하기 전, 그의 입술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숨소리처럼 보드라운 목소리로 살며시 속삭였다.
“데려가 줘. 니가 원하는 곳으로.”
그러자마자 거칠게 맞부딪히는 그의 숨결.
엉켜드는 그의 혀끝은 오늘 밤 그녀를 녹여 버릴 듯이 농밀했다. 그녀를 침대를 이끄는 손길도 달아오른 본능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러다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이 한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을 때.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태오는 그녀의 목덜미로 입술을 옮겼다.
“하아…….”
자극적인 감촉을 이겨 내지 못한 나봄이 달뜬 숨을 내뱉었다.
그건 나봄의 온도가 끓는점에 다다랐음을 알려 주는 신호탄이었다.
그걸 알아챈 태오는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에 감기는 짜릿한 느낌에, 태오의 등을 부여잡은 나봄의 손에 힘이 더해졌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나는 니가 더 달아오른 모습을 보고 싶어.
그녀의 본능을 조금 더 부추기기로 결심한 태오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나봄의 입술을 스치듯 지나쳐, 그녀의 도톰한 귓불을 한껏 머금었다.
그의 뜨거운 온도와 짙은 숨결, 그리고 혀끝이 움직이는 자극적인 소리에 사로잡힌 나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나봄은 예민해진 감각을 견뎌 내지 못하고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간지러워…….”
그러자 돌아오는 태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참아.”
“응?”
“참을 수 있잖아.”
태오의 입술이 다시금 그녀의 귓불을 탐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자극은 단순히 머금고 있던 처음보다 훨씬 더 본능을 부추기는 듯했다.
이대로 그의 혀끝에 온 신경을 빼앗기나 싶었던 그 순간.
“……다 풀었다.”
갑작스레 떨어진 태오의 입술이 웃음기 어린 말을 흘려보냈다.
이제 보니 부지런히 움직이던 태오의 다른 손은 그녀의 셔츠를 완전히 열어젖혀 놓은 후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몹시도 부끄러워진 나봄은 가슴께를 이불 끄트머리로 가리려 했다.
하지만 태오는 그 이불을 다시 거둬 버렸고.
“벌써부터 부끄러워하긴 이르지 않나.”
“…….”
“이제 겨우 도입부인데.”
야릇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술을 점차 밑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귓불에서 시작해, 목덜미를 거쳐 쇄골을 지나.
“아…….”
신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그녀의 하얀 장골까지.
순간 기분 좋은 소름이 끼쳤다.
허리를 매만지는 태오의 손끝도, 이따금 마주치는 저돌적인 눈빛도, 부끄러움 뒤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감각을 일일이 깨어나게 만든다.
아무래도 너로 인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밤.
“나봄아…….”
“…….”
“더 가도 돼……?”
마지막 고삐를 풀기 전, 태오가 물었다.
그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자극적이었으나, 마른침을 삼켜 넘긴 나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나를 탐하는 너의 입술.
이래서 사람들은 버거울 걸 알면서도 더 강렬한 걸 찾나 봐.
니가 닿는 곳마다 달아오르다 못해 녹아 버릴 것 같아서, 정말 미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