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81화 (81/104)

81. 개 꼬리 함부로 밟지 마시죠

2018.02.05.

고풍스러운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는 별채.

안으로 들어선 태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그렇게나 다짐했는데, 막상 눈앞에서 서 회장과 마주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는 듯했다.

“아, 자네가 단태오 대리인가.”

하지만 서 회장은 그저 여유로운 목소리로 태오를 맞이했다.

“네.”

태오는 목소리가 떨려 올까 싶어 최대한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서 회장은 자신의 건너편 자리를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일단 앉게나.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어서 반갑군.”

태오는 순순히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상을 가득 채운 고급 한정식은 이 자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자리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서 회장은 긴장한 태오를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며 뜻밖의 칭찬을 건넸다.

“자네의 업무 성과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네. ‘Lily’ 프로젝트의 성공도 따 놓은 당상이라지.”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본격적으로 오픈하고 경과를 두고 봐야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단순히 예약 판매율이 좋게 나왔다고 이러는 건 아니야.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대주주들의 평가도 아주 좋아. 조금은 자신감을 보여도 좋을 것 같네만.”

“아, 좋게 봐 주시는 건 감사드립니다.”

태오는 더 이상 제 성과를 부인하지 않고 감사를 표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현장팀장’으로 임명된 만큼 사활을 걸고 달려들어 죽을 만큼 열심히 참여했다.

그 때문에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성과가 좋았던 건 태오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정말 날 인정하기 위해 부른 건가, 싶어질 때쯤. 서 회장의 입이 한 번 더 열렸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우드레일에선 곧 독일지사를 오픈할 생각이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했어.”

“…….”

“하지만 자네라면 현장 경험도 풍부하고 팀원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충분하니까, 독일지사 본부장 감으로 제격이라고 보는데…… 이 기회에 그 자리를 맡아 보는 건 어떤가?”

서 회장의 질문은 태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우드레일의 독일지사에 관해서라면 뉴스로 접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이 그와 직접적으로 관련될 줄은 몰랐다.

“독일지사 설립은 두 달 남짓 남지 않았습니까.”

태오는 지나치게 짧은 준비 기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자 서 회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더하며 말했다.

“두 달이면 해외 발령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보는데.”

“그래도…….”

“평생을 나가 있으라는 뜻도 아니잖아. 독일지사가 자리 잡을 때까지 5년 정도면 될 거야.”

그는 쉽게 말했으나 태오에게 5년은 충분히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새로 생긴 지사라면 모든 걸 자신이 총괄하여 기틀을 다져 나가야 할 텐데, 그건 태오의 정신력과 시간을 전부 앗아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물론 태오는 기진맥진할 때까지 일에 몰두하는 걸 좋아하는 워커홀릭이긴 했지만.

‘앞으로는 내가 있어 줄게.’

‘……응?’

‘니가 불안해지고, 작아질 때마다 내가 니 곁에 서 있을게. 지금처럼 이렇게.’

‘…….’

‘그러니까 앞으로는 혼자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기대.’

문제는 나봄과의 약속이었다.

태오는 항상 곁을 지켜 주겠다고 맹세했던 그녀를 5년이라는 시간이나 떠나 있을 수 없다.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을 마친 태오는 정돈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순간 서 회장의 서글서글한 눈동자에 매서운 날이 섰다.

하지만 그는 한기를 미소로 감춘 뒤,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되물었다.

“이 기회가 그렇게 단번에 거절할 수 있을 만큼 하찮게 보이는 건가?”

그러자 태오의 입술 새로 또렷하게 흘러나오는 대답은 서 회장이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조만간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대사가 잡힌 만큼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은 곤란합니다.”

“…….”

“우드레일엔 더 좋은 인재들이 많을 테니 그분들에게 이 기회를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확실한 거절을 표한 태오는 양해를 부탁한다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서 회장은 그 거절을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애초부터 그는 태오의 의견을 묻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라면 한나봄 팀장을 말하는 건가?”

그렇기에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고 꺼내 놓은 이름.

“그걸 어떻게…….”

태오의 눈빛이 옅게 흔들렸다.

서 회장은 동요하는 그를 똑바로 직시한 채 비웃음 어린 목소리를 내보냈다.

“만난다는 얘기는 들었네. 그래도 여자 때문에 이런 중요한 자리를 놓치면 쓰나.”

“…….”

“지금 자네 연차에 본부장까지 승진시켜 주겠다는 조건이 흔치는 않을 텐데,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강압적인 서 회장의 말은 해외지사 발령 건이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럴수록 제 의사를 명확히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태오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기회가 일뿐만은 아니니까요.”

그리 말하는 태오에게선 굳은 심지가 느껴졌다. 이 정도의 대꾸는 예상했었던 서 회장의 비소가 더욱 더 짙어졌다.

“그래, 그건 사실이지. 이게 기회였다면 자네의 결정을 존중했을 거야.”

“…….”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하는 것을 넘겨받기 위한 조건이라서 말이야. 내가 원하는 건 정확히 딜이지.”

딜……?

수상쩍은 그 단어는 태오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서 회장은 더 이상 악의를 숨길 생각도 없는지, 기어이 듣기 싫은 이름 하나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 차준이를 우드레일 대표로 내세울 생각이네. 그렇게 되면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비즈니스 파트너사에서 정혼을 요청하겠지.”

“…….”

“하지만 차준이에겐 비즈니스 파트너보단 정신적인 지주가 필요해. 그 애는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나지만 쓸데없는 감정에 곧잘 휩쓸리거든.”

딱 거기까지만 들었을 뿐인데도 뒤따라올 용건은 충분히 예상 가능해졌다.

태오의 눈빛엔 그때부터 분노가 어리기 시작했으나, 서 회장은 그의 가시를 똑똑히 보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그녀의 존재를 입에 담았다.

“그래서 난 그 애의 정신적 지주로 한나봄 팀장을 선택할까 하네.”

“…….”

“차준이는 그 애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렇게나 매달렸던 사람도 내쳐 버릴 만큼 간절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자네도 이해하겠지?”

그렇게나 매달렸던 사람.

서 회장은 그의 이름도 입에 담지 않았는데, 태오에게는 어째서 얼굴까지 선명히 떠오르게 되는 건지.

‘전부 나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요.’

‘제발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태준을 벼랑 끝으로 내몬 위기는 이제 보니 차준으로부터 비롯된 모양이었다. 그 안에 나봄까지 엮여 있는 이상, 그건 태오의 위기이기도 했다.

쉽사리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봄의 곁을 맴돌 때부터 거슬린다 싶었는데, 기어이 이런 개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보다. 상대하기 더럽게.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난 태오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침없는 태오의 돌발 행동에 서 회장의 날 선 시선이 그대로 그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담담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건가?”

“제가 하는 현장 일은 원래부터 복잡했습니다. 전 그런 쪽 처리하는 게 전문이고요.”

태오의 대답은 느긋하지만 적대감이 가득했다. 그건 서 회장이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도발이었다.

“뒷감당이 될 일만 저지르는 게 어떻겠나?”

서 회장은 날 선 눈빛으로 띤 채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서 이어내는 말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이대로 나간다고 해서 이 대화가 없던 일이 되진 못할 거야.”

“…….”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자네에게 백 퍼센트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집스럽게 무시하는 게 자네 앞길까지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장담할 수 있네.”

태오의 목을 겨누고 있는 그의 서늘한 엄포는 충분한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그의 20대 청춘과 열정을 다 바쳤던 현장은 서 회장의 난입 한 번에 휴지 조각처럼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열이 오른 태오는 서 회장을 노골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들을 기만당하는 기분.

그건 충분히 분하고 더러웠다. 상황이 이쯤 되니 태오의 얕은 인내심은 뒷일 생각하지 않고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아아…… 헛소리도 정도껏 하셔야지.”

“뭐?”

“전 예전부터 개 같은 구석이 있어서 열 받으면 상대 안 가리고 물어뜯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선 알아서 몸 사리십쇼. 개 꼬리 함부로 밟았다가 다리 잘리지 말고.”

태오에게서 느껴지는 전의는 서 회장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서 회장은 그런 그를 한기 서린 시선으로 노려보았으나, 태오는 그대로 등을 돌려 별채를 빠져나갔다.

쾅―!

“지금 뭐하는 짓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온 힘을 다해 성질대로 닫아 버린 문에 경호실장의 표정이 아연실색이 되며 소리쳤다. 하지만 태오는 자신을 다그치는 경호실장에게 사납게 대꾸했다.

“입 다물어. 안 그래도 겨우 참고 있는 거 건드리지 말고.”

그러고는 다시 정면으로 서슬 퍼런 시선을 고정시켜놓은 그때.

“……단태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던 사람이 태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사람 인생 망치려 드는 주제 태연하기만 한 낯짝은 태오로서는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었다.

“선우차준…….”

그의 이름을 직함 없이 부른 태오는 저벅저벅 걸어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야, 이건.”

별채 안에서의 일을 알 리 없는 차준은 갑작스러운 태오의 공격을 당황스러워했으나, 태오에겐 그런 태도조차 뻔뻔하게 비칠 뿐이었다.

“따라와, 이 개새끼야.”

그래서 더 이상 끓어 넘치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뱉어 버린 욕설.

그런 태오를 직시하고 있는 차준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벌써부터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보니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폭풍이 자비 없이 휘몰아칠 모양이었다.

.

.

.

고요한 한정식 레스토랑의 야외 주차장.

거칠게 차준을 내려놓은 태오가 그의 앞에 공격적으로 다가섰다. 차준은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며 태오를 차갑게 응시했다.

“단태오 씨…… 정신 나갔습니까?”

가라앉은 목소리는 차준의 분노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태오는 거칠게 그를 몰아세웠다.

“정신 나갔냐고? 그 말을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

“패악질도 정도껏 부려야지! 이미 떠난 사람 붙잡아 보겠다고 이따위 개수작을 쳐?!”

흥분한 태오의 눈빛은 차준을 물어뜯을 듯 사나웠다. 그러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차준에겐 이 모든 것이 시비일 뿐이었다.

이미 떠난 사람이라면 나봄을 뜻하는 것일 텐데.

자신의 한계를 절절하게 깨달은 차준은 나봄을 향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태오가 따져 묻는 것들은 들으나마나 전부 오해일 게 뻔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난 그쪽한테 원한 살 짓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미친놈처럼 굴지 말고 예의 지키세요.”

차준은 가시 돋친 말투로 태오에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강제로 끌려온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자.

“가족까지 팔아 처먹어 놓고 원한 살 짓 안 했다고 하면 다야?”

‘가족’이라는 단어가 차준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렸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에게만큼은 그 얘길 듣고 싶지 않았던 차준의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지금 뭐라고 했어.”

차준은 태오에게서 어긋났던 눈동자를 다시 가져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태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차준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람으로서 할 짓이 있고, 하면 안 될 짓이 있어! 끝난 인연 정리 못 하는 건 니 사정이라고 쳐도, 그거 붙잡아 보겠다고 주변 인생 망치고 다니지는 말아야지!”

“…….”

“같잖은 미련 때문에 니 형 버리고, 노망난 늙은이 힘 빌려서 내 인생 협박하고!”

“…….”

“그렇게 주변 사람들 죄다 망가트려 놓고 한나봄 데려가서 뭘 어쩔 생각인데! 기어이 걔 인생까지 부서트려야 속이 시원하겠냐!”

태오가 알고 있는 형의 존재와 그의 부재, 서 회장의 협박, 나봄을 향한 불안감까지.

그중 어느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차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오늘 그는 서 회장을 만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을 뿐인데, 태오는 차준이 이미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고 말한다.

“그게 대체 무슨…….”

차준은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고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태오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차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옆 좌석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런 뒤 온 힘을 다해 차준에게 집어 던졌다.

낡은 박스에서 쏟아져 나와 차준의 발아래 나뒹구는 건 다름 아닌 구두 한 켤레였다.

“이건…….”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차준은 본능적으로 그 구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걸 선물 받던 날은 물론 전해 주던 사람의 표정까지도, 그는 10년 동안 단 하루도 잊고 산 적이 없었다.

“이걸…… 니가 어떻게…….”

이걸 니가 어떻게 갖고 있냐고. 그를 언제 만났냐고. 결코 받고 싶지 않았던 이 선물만 남겨 두고 그는 어디로 떠난 거냐고.

묻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푹 잠겨 버린 목은 어떤 질문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흐려지는 시야는 금세 비참한 감정을 떨어트릴 게 분명했다.

태오의 앞에서 만큼은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차준은 서둘러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 모습이 괜한 오기처럼 보였던 태오는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고, 이윽고 날카로운 말을 차준의 가슴에 내리꽂았다.

“니가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산다고 해서 나까지 같은 취급하지 마.”

“…….”

“난 너랑 달리 어떤 상황에도 내 사람 버려두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차준은 그제야 자신의 현실을 파악했다.

버렸구나. 그래, 나는 모두를 버린 거구나.

나를 사랑해 준 그 시절의 나봄이도.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형도.

‘……내가 먼저 놓았던 거였어.’

후회하기에도 늦어 버린 진실은 가슴에서부터 북받쳐 올라와 차준의 숨통을 막아 버렸다.

태오는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차준에게서 매정히 등을 돌렸고,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제 차로 향했다.

그건 차준의 주변 온도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으나, 차라리 결과적으로는 다행인 일이었다.

겨우 버티고 있던 차준은 태오의 시선이 자신을 떠나자마자 형의 마지막 선물 앞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으니.

“형…….”

사라진 그를 부르며 구두를 매만지자 불안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잘 있을 수 있지?’

‘내가 없어도…….’

‘차준아, 잘 버틸 수 있지?’

혹시나 나를 잃을까, 두려워하던 형의 목소리.

난 그걸 듣고 뭐라고 대답했더라.

‘형, 그거 알아? 신발을 선물하면 이별이 찾아온다는 거.’

‘그러니까 이거 안 받을래. 이 구두는 형이 다신 안 볼 사람한테나 줘.’

언제나 함께 있을 것처럼 굴었다. 항상 지켜 주겠다는 그의 말을 온전히 믿어 줄 듯이.

‘내 걱정은 하지 마.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는 형이 있어 줄 거잖아.’

정말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또 매달렸었던 것 같다.

그땐 내가 먼저 그 손을 놓치게 될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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