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동정하는 순간조차 사랑이었다
2018.01.19.
“불쌍해…….”
동생이 태어나던 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신생아실 앞에서.
태준은 간호사의 품에 안긴 동생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때의 태준은 자신의 마음이 동정심인 줄도 모를 만큼 어렸지만,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는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어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어머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곧 도착한다던 새아버지도 결국엔 오지 못했다.
오직 태준만이 그들을 대신해서 차준에게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서 환히 웃는 얼굴로.
“안녕, 내 동생.”
하고.
처음엔 정말 동정심에 잘해 주었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린 동생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 주었던 이유는 전부 그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해서 가만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잘못된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차준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질문하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형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쌍한 거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텔레비전에서 봤어. 어떤 애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사랑받지 못하고 큰 불쌍한 아이라고 했어.”
“…….”
“우리 엄마는 집에 있긴 해도 날 사랑해 주지는 않으니까…… 나는 불쌍한 거야?”
그리 묻는 차준은 태준의 정곡을 찌르는 중이었으나 태준은 차마 고개를 끄덕여 주지 못했다.
마주한 아이의 눈동자는 원하는 대답을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어서, 태준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억지로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니.”
“…….”
“차준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꺼내 놓자 움츠러들어 있던 그 아이의 눈동자가 어찌나 곱게 휘어지던지.
“맞아. 나는 형아가 사랑해 주니까 안 불쌍해.”
차준은 형이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고, 태준은 그런 그 아이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애를 향한 감정이 동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건 딱 그날까지만 하기로 했다.
불쌍해지고 싶지 않아 하는 동생을 위해, 그날부터 태준은 제 머릿속에 입력된 ‘동정’이라는 단어를 ‘사랑’으로 바꾸었다.
그래야 그 애는 누군가에게라도 사랑받는 사람이 될 테니까.
차준이 지옥과도 같은 저택을 떠나가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짐은…… 빠짐없이 잘 챙겼지?”
“응, 다 챙겼어.”
“필요한 건 그때그때 말하고, 혹시라도 카드 끊기거든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 그리고 또…….”
“형, 혹시 지금 내 걱정하는 거야? 난 밖에 나가서 더 잘 지내는 거 알잖아.”
가족들 몰래 힘겹게 마련한 은신처로 차준을 보내며, 태준은 동정심에 몸살이 날 듯 했으나 끝내 그 심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새벽바람에 꽁꽁 언 그 아이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아니. 걱정 안 해.”
“…….”
“너한테는 형이 있잖아.”
가여워하는 대신 사랑해 주는 척을 했다.
“형 입으로 형, 형 그러지 마. 너무 느끼하다.”
겁에 질려 있던 그 아이의 눈동자가 그제야 편안해졌다.
나의 어쭙잖은 위로에 모든 불안을 내려놓은 듯이.
잘 감추고 있던 동정심이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때는 모두의 기대를 뿌리치지 못한 태준이 차준을 홀로 두고 유학길에 오르던 날이었다.
“아아, 형은 좋겠다. 미국 홈 파티가 그렇게나 재밌다던데.”
출국 3시간 전.
학교 수업까지 과감히 빼먹고 고집스럽게 형을 배웅 나온 차준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실없는 농담만 내뱉었지만, 태준은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을 발견했다.
입꼬리에 맺힌 미소도 그걸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태준은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아, 맞아. 너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선물? 그런 건 배웅하는 사람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됐어, 고등학생한테 뭘 뜯어먹겠어. 자, 여기.”
“오, 상자 크네. 꽤 무거운데?”
“바로 열어 봐.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교환해 달라고 전화해야 하니까.”
차준은 형에게 받는 선물이 너무나도 좋았다.
선물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전해 주는 순간까지 내 생각을 해 줬을 테니까.
그래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박스를 열고, 그 안에 담긴 예쁜 구두를 반짝이는 눈동자로 들여다보며.
“구두잖아? 와아, 나 이런 거 처음 받아 봐.”
차준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태준은 밝아진 그 아이의 표정을 보자 비로소 겨우 행복해졌다.
“졸업 선물이야. 너 졸업식 때 친구들이랑 정장 입고 갈 거라며. 그때 신고 가. 원래는 정장을 한 벌 맞춰 줄까 했는데 키가 더 자랄까 봐.”
“졸업 아직 일 년 반이나 남았는데?”
“그때 맞춰서 귀국하기 힘들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 이르지 않나.”
“아, 필요 없으면 다시 돌려주든가.”
“누가 필요 없대?! 그냥 그렇다는 거지.”
태준은 그제야 두려움이 한결 잦아든 녀석에게 괜한 장난을 걸었다.
그러고는 늘 해 왔던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다. 그래야 차준을 향한 태준의 걱정과 동정심이 위로받을 테니까.
“차준아.”
“어.”
“그거 알지?”
“뭘?”
“너한테는…….”
하지만.
“……형?”
“너한테는…….”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라는 쉬운 한 마디가 그날따라 어찌나 힘겹게 느껴지던지.
태준의 목소리는 숨통에 콱 걸려 좀처럼 꺼내지질 않았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의 입술은 아무래도 이미 알아차려 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언제까지나 그 애 곁에서 함께해 줄 수는 없다는 걸.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리고 니가 점점 더 자라날수록. 우리는 서로 다른 지옥을 향해 멀어질 거라는 걸.
“널 어떡하면 좋지…….”
결국 태준이 흘려보낸 건 괜찮다는 말 대신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한 마디였다.
“형…… 갑자기 왜 그래. 응?”
그런 태준을 바라보는 차준의 눈빛이 다시 옅게 흔들렸으나, 태준은 제 마음을 쉽사리 추스르지 못했다.
“잘 있을 수 있지?”
“…….”
“내가 없어도…….”
부서지지 않고, 동정하기도 미안할 만큼 불쌍해지지 않고.
“차준아, 잘 버틸 수 있지?”
너…… 정말 괜찮을 수 있지?
답이 정해진 것만 같은 태준의 질문에 차준은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항상 강하고 단단하던 형의 손끝은 많이 떨리고 있어서, 차준의 마음도 함께 불안해지고 말았다.
이 순간 차준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은.
‘그러게. 나 잘 버틸 수 있을까.’
형이 떠나 버리면 난 정말 혼자가 될 텐데. 아무도 나를 지켜 주지 못할 텐데…… 정말 난 형 없이 괜찮을 수 있나?
‘아니. 절대.’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곧바로 나온 대답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이 솔직한 마음을 알아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하는 태준의 발걸음은 더더욱 무거워질 게 뻔했다.
짧은 고민 끝에 본심을 숨기기로 한 차준은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태준에게 받은 구두를 다시 박스에 집어넣고, 고개 숙인 그의 품에 억지로 안겨 주었다.
선물을 되돌려 받은 태준의 시선이 옅게 일렁이며 차준을 향했다.
“형, 그거 알아? 신발을 선물하면 이별이 찾아온다는 거.”
“…….”
“그러니까 이거 안 받을래. 이 구두는 형이 다신 안 볼 사람한테나 줘.”
그리 말하는 차준은 마치 고집을 부리는 듯했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이별을 밀어낸다고 해서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닌데, 서로 다른 두 갈래의 길을 애써 외면해 보려는 동생의 모습은 몹시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차준은 그런 형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는 형이 있어 줄 거잖아.”
이어지는 건 언제나 태준의 몫이었던 위로였다.
차준을 위해 건네는 척 해 왔지만 사실은 전부 태준 스스로를 세뇌시키기 위함이었던.
“그래…… 걱정 안 할게.”
이번에도 효과가 좋은 그 주문은 태준의 불안감을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게 만들었다. 목을 조르던 걱정과 죄책감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뻔뻔한 인간이었다. 나란 새끼는.
“푸핫, 평소엔 걱정도 안 하더니만 출국한다고 분위기 잡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차준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하염없이 밝아도 그저 슬펐다.
그땐 그게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지만…….
지금의 태준은 그날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이 차준이 들려주었던 마지막 웃음소리였으니.
태준의 머릿속에 있는 차준과의 행복했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실은 태준의 모든 기억이 그곳에서 끝이 났다.
홀로 남은 차준은 걱정하고 있을 형을 위해서라도 멀쩡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으나, 홀로 떠난 태준은 오히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티는 일뿐이었고, 그마저도 끝이 보이지 않아 끔찍하기만 했다.
그렇게 삶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삶을 살던 어느 날 새벽, 새까만 하늘에 몸을 던지면서.
결국 태준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렇지 못하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야 할 단 하나의 이유, 나 없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워질 내 동생까지도.
그래서였을까.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걸 한 번에 잃어버린 건.
정말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끈질기게 남아 있던 하나가 하필이면 가치 없어진 목숨이었던 게.
‘형…… 형, 괜찮아?’
‘차준아…….’
다 부서진 몸을 차준에게 처음으로 보여 주던 날.
오랜만에 만난 차준은 형의 곁에서 눈물을 보였고, 태준은 푹 젖어 버린 동생의 눈을 닦아 주지도 못했다.
사실 진통제에 취한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도 못해서 흐려질 대로 흐려진 목소리로.
‘도와줘…….’
‘형…….’
‘제발…… 도와줘, 차준아.’
무작정 애원했다. 그건 멀쩡한 태준의 의지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차준은 형이 처음으로 부탁이 너무 애절하고 슬퍼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뒷일을 생각하기엔 눈앞에서 죽어 가는 그가 몹시도 절실해서.
‘……응, 그럴게. 형. 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 줄게.’
‘…….’
‘그러니까 살아만 있어 줘, 형…….’
‘…….’
‘난 형 없이 안 되는 거 알잖아…….’
스스로에게 맹세해 버렸다.
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해 주겠다고. 지옥 불에 몸을 던지는 일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하겠노라고.
그리고 태준이 겨우 정신을 되찾았을 때, 차준은 이미 지옥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구해 주기엔 너무 늦었었고, 고장 난 그의 몸으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일평생 태준의 어깨를 떠나지 않았던 막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은 전부 차준에게로 옮겨 갔으나, 그는 용케 태준의 앞에서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에 등짝이 너덜너덜해져도. 어머니의 소름 끼치는 냉기에 온몸이 얼어붙어도.
차준은 한숨조차 내쉬지 않았다.
그러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지면 신음을 흘려보내는 대신.
‘형, 나 잘하고 있지?’
태준에게 확인받고는 했다.
태준은 절대 바란 적 없었던, 잠꼬대처럼 쓸데없는 혼잣말을 위해 바친 인생을 후회하지 않으려는 듯이.
‘나…… 형 잘 도와주고 있는 거 맞지?’
니가 날 위해 살지 않길 바란다고 몇 번이나 고백하려 했었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 아이가 붙잡고 있는 유일한 삶의 이유를 차마 무색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나처럼 잘못된 선택을 할까 싶어,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응, 항상 너무 고마워.’
그래서 무책임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차준은 그의 서툰 거짓말을 쉽게 믿었고, 그렇게 진실 따위 없는 시간은 7년이나 흘렀다.
그사이 차준은 모두의 기대 그 이상으로 성장했으나 태준은 차마 그 모습을 기뻐하지 못했다.
예전의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아이의 두 눈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짓이겨지듯이 아파서, 스스로를 증오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차준은 자신이 일궈 낸 모든 것을 태준에게 돌리기를 원했다.
‘형, 내일 취임식에 오면 객석 말고 단상 옆에 있어.’
‘왜?’
‘그야 나한테는 형의 취임식이나 다름없으니까. 형이랑 같이 서고 싶어.’
순간 태준의 거짓말에 한계치가 찾아왔다. 아무리 뻔뻔한 낯짝을 가지고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를 속일 수 없었다.
‘저…… 차준아.’
‘어.’
‘내일이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그래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는 대신 가라앉은 목소리로 운을 떼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에 나를 향한 동경만이 가득한 그 아이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채.
‘사실…… 스스로 떨어진 거야.’
‘스스로 떨어지다니? 뭐가?’
‘7년 전 그날…… 사고가 아니라 전부 끝내 버리고 싶어서 떨어진 거였다고. 죽을 생각으로.’
드디어 숨겨 왔던 진실을 고했다.
‘그럼……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
‘미안해.’
그 아이가 믿고 있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혼란이 증오가 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시들어 가던 그들의 인연은 머지않아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푸릇하던 추억마저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더러운 악몽으로 전락했다.
진실을 바로잡고 나니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린 우리의 관계.
그건 두 사람 모두 죽음보다 두려워하던 일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이렇게 된 결과에 불만을 품진 않았다.
거짓이 사라진 모습이 이런 꼴이라면 이것이 우리 인연의 본질이라고.
그러니까 한 사람은 증오하고, 한 사람은 외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없이 합의했을 뿐이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끝을 예견했던 사이였다.
나의 곁엔 니가, 너의 곁엔 내가 영원히 함께하기를 소원했지만 갈가리 찢겨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감히 행복하려 했던 죄로 우리가 얻은 건.
애초부터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감당할 필요도 없었던 아픈 추억들. 행복했었기에 더욱 서러운 기억들.
‘이미 끝났어. 이젠 그 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태준은 고통만이 남은 인연을 먼저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미움 받더라도 조금 더 곁에 있고 싶고, 어떤 모진 말을 퍼붓는다 해도 녀석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그건 제 욕심일 뿐 차준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사라지기로 결심한 지금.
10년 만에 서 회장의 응접실을 찾은 태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회장님…….”
그의 음성은 고요한 공간을 또렷하게 메웠으나 서 회장은 창밖으로 향한 시선을 좀처럼 건네주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당연해진 태준은 담담히 본론을 흘려보냈다.
“원하시는 대로…… 사라지겠습니다.”
“…….”
“아무도 찾을 수 없게.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제야 서 회장의 고개가 그를 향해 틀어졌다.
그 눈동자에 어린 서슬 퍼런 날이 가차 없이 태준을 관통하는 순간, 미련스럽게도 오랜 시간 착각하고 있던 감정이 발버둥을 쳤다.
‘형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불쌍한 거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텔레비전에서 봤어. 어떤 애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사랑받지 못하고 큰 불쌍한 아이라고 했어.’
‘…….’
‘우리 엄마는 집에 있긴 해도 날 사랑해 주지는 않으니까…… 나는 불쌍한 거야?’
그 애에게 건네는 위로조차 동정이라 믿었던 나날들.
하지만 다 늦어 버린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동정하던 순간조차 사랑이었다.
나는 불쌍한 내 동생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여운 그를.
정말 온 마음 바쳐 사랑했었다.
‘아니, 차준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내가 그 아이에게 고백했던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