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71화 (71/104)

71. 사랑한 지 너무 오래됐어

2018.01.01.

대체 무슨 정신으로 맞섰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쩔 작정으로 냅다 물을 뿌려 버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봄은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전력을 다해 싸웠다.

관자놀이가 뻐근해질 만큼 화가 차올랐지만 폭발시키는 대신 오히려 가슴을 차갑게 식혔던 건, 준비한 말을 전부 꺼내 놓지 못할까 봐서였다.

예전부터 애매모호한 차준과 나봄의 관계를 빌미로 태오에 대한 진심을 깎아내렸었던 유리.

나봄은 오늘 그런 그녀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었다.

자신이 차준과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든, 태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든.

‘그걸 유리 씨가 비난하고 훼방 놓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말 그대로 태오와 저 사이의 일이잖아요.’

그래, 그 말은 확실히 전했지.

“하아…….”

나봄은 그래도 그 한 마디는 똑바로 전했던 것 같아서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유리와의 싸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나,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했다.

지금은 첫 싸움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보다, 생각하기도 두려운 후사보다, 멀쩡한 모습으로 나가서 쫄딱 젖은 채 돌아온 이 모습을 태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큰일이네. 태오가 또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괜히 미안해하면 안 되는데.”

나봄은 축축이 젖은 블라우스를 털어 말리며 주변 화장실을 찾았다. 핸드 드라이기로 대충 수습하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은 주택가 상가 거리엔 꺼진 간판 불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근심 걱정만 커져 가고 있던 그때.

“……한나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미처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를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어김없이 태오였다.

“태, 태오야. 나오지 말라니까 뭐하러…….”

나봄은 당황한 와중에도 어색한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그러나 태오의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갑기만 했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나봄의 젖은 머리카락과 블라우스였다.

“누가 그랬어.”

태오는 낮디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봄은 그 쉬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런 거 아니야. 세수 좀 하고 왔어.”

그러고는 서툰 거짓말을 꺼내 놓으니 태오의 숨소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화장 다 번져 있는데 그게 세수라고?”

“아…… 그래? 깔끔하게 못 지웠나 보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대체 무슨 짓을 당하고 온 거야.”

그리 말하는 태오는 금방이라도 유리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하지만 나봄은 태오가 괜한 감정싸움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다. 불같은 단태오 성격이라면 옛정이고 직장 동료고 상관없이, 유리와 대판 벌일 게 뻔했다.

“나 정말 괜찮아, 태오야.”

나봄은 정말 별일 아닌 것처럼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태오의 두 눈은 그 말에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너 지금 전혀 안 괜찮아.”

“어?”

“허유리 아직 거기 있지. 여기서 기다려. 다시는 너한테 그딴 짓 못 하게 해 줄게.”

태오는 살벌한 한 마디를 끝으로 나봄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나봄과 큰 싸움이 벌어졌던 바로 그 조개 구이집이었다.

“태오야, 진정해! 정말 신경 쓸 거 없다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봄은 필사적으로 태오를 붙잡았다.

그러자 태오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고, 사납게 언성을 높였다.

“그 꼴을 하고 왔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태오야…….”

“그러니까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잖아! 내가 옆에 있었으면 적어도 이렇게 될 때까지 당하고 있진 않았을 거 아냐!”

태오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나봄에게는 그 모습이 다른 표정, 다른 목소리로 들려왔다.

‘나 때문이야. 또 나 때문이야…….’

잔뜩 일그러진 눈빛으로 절망하며 그는 또다시 버릇처럼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정말 죄책감에 마음이 미어지는 사람은 나봄이었다.

불안에 떠는 태오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떠나오던 날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또 후회스럽다.

이럴 때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건 너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말.

그러나 뒤늦은 사과가 태오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약해질수록 오히려 더 마음을 단단히 다잡기로 한 나봄은 동요하던 눈빛을 지워 내고 올곧은 시선으로 태오를 마주 보았다.

“단태오.”

나봄이 단호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태오는 보다 사정없이 눈빛을 일렁였다.

그건 꼭 그녀가 이어 낼 뒷말을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나봄은 그 가슴 아픈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고, 두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그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나 바보같이 당하고 있지 않았어.”

“…….”

“나도 같이 싸웠어. 이긴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고 오진 않았어.”

그런 뒤 이어 내는 말은 태오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승전보였다.

태오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나 듣고 있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짐승처럼 거칠던 숨이 차차 잦아드는 걸 보면.

나봄은 품 안의 그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그 느린 템포에 맞춰 마저 흘려보내는 말은 보다 다정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나 정말 잘 해결하고 돌아왔어.”

“하아…….”

순간 태오의 입술 새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숨결은 모든 불안을 새어 보내는 것처럼 차분하고 고요했다.

지금 당하지 않았다는 말보다, 지고 오진 않았다는 말보다, 그의 가슴에 안정제처럼 스며들어 간 건 그녀의 돌아왔다는 한 마디.

평범한 인사와 다름없는 그 한 마디는 태오가 가장 기다려 왔던 말이었다.

그녀가 떠났던 순간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는 그녀가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를 간절히 바라 왔다.

하지만 품고 있는 와중에도 이뤄질 리가 없다고, 모두 부질없는 미련이라고 스스로를 체념해 왔었는데…….

“……한나봄.”

“응.”

“나봄아…….”

“응, 태오야.”

너는 정말 내 품으로 돌아왔구나. 오늘 하루가 엉망이 되었어도 우리의 인연이 잘못된 거라 탓하지 않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뿌옇던 태오의 눈앞은 거짓말처럼 선명해졌다.

이제야 똑바로 바라보게 된 우리의 앞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탄탄하고 평온했다. 작은 돌부리에도 겁먹었던 순간들이 우습게 여겨질 만큼.

“하아…….”

드디어 꽉 막혔던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된 태오는 두 팔을 들어 나봄의 몸을 마주 안았다.

“……나봄아, 사랑해.”

“응?”

그리고 오늘 나봄이 준비해 두었던 고백을 먼저 꺼내 놓았다. 나봄은 가슴 설레는 와중에도 먼저 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장난스럽게 툴툴거렸다.

“그 말 내가 하려고 이벤트까지 준비했는데.”

“싫어. 내가 더 오랫동안 참고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말할 거야.”

“하하.”

“나봄아, 사랑해.”

“…….”

“정말 사랑해. 죽을 만큼 사랑해…….”

계속 해서 쏟아지는 태오의 고백은 참고 있었던 시간만큼 절절하고 달콤했다.

나봄은 그의 벅찬 사랑을 오롯이 느끼며 그의 가슴팍에 더욱 얼굴을 파묻었다.

“나도…….”

그러고는 그와 전혀 다르지 않은 제 마음도 꺼내 보여 주려던 그때.

“안 돼. 넌 지금 하지 마.”

태오는 나직한 음성으로 그녀의 고백을 가로막았다.

이내 나봄의 몸을 좀 더 제 품 안으로 끌어당긴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에서…….”

“…….”

“나만 들리게 말해 주라.”

이내 귓가에 흘려보내는 그 말은 뜨거운 숨결과 섞여 더욱 자극적으로 들려왔다.

나봄은 심장보다 본능이 더욱 달아올라 버려서 온몸에 번진 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아마 이 은밀한 욕심은 너도 나와 같은가 봐. 날 품고 있는 너의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걸 보면.

.

.

.

은은한 스탠드만이 불을 밝히고 있던 태오의 집.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남녀는 신발을 벗자마자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기가 무섭게 깊숙이 파고드는 숨결은 연인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짐작케 했다.

오늘 밤, 그녀를 향한 욕망을 아낌없이 풀어 놓기로 마음먹은 태오는 평소보다 거칠게 키스를 리드했다.

나봄은 그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대답대신 두 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허리는 오늘도 단단하고 아름다워서, 나봄도 점점 달아오르는 본능을 억제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봄은 지금 자신을 탐하고 있는 그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하아, 나봄아…… 사랑해.”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입술이 떨어진 순간 흘러나오는 고백은 아까보다 더 절실했다.

나봄은 그 말에 기꺼이 화답해 주려 했으나, 목소리를 꺼내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집요하게 빨아들였다.

더욱 야릇해진 혀끝의 움직임에, 나봄의 몸은 넘치는 희열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아……!”

결국 폭발하는 감각을 참아 내지 못하고 내뱉어 버린 신음.

그 음성을 들은 태오는 다시 입술을 떼어 내고 그녀의 시선을 깊이 마주했다.

똑바로 맞닿은 그의 시선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초처럼 일렁이며 타오르는 중이었다.

“한 번 더 말해도 돼? 사랑한다고…….”

“태오야…….”

“나 이제 너한테 원하는 만큼 사랑한다고 해도 돼?”

태오는 그리 물으며 나봄의 이마, 그리고 코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나봄은 적극적인 그의 입술을 느끼며 붉게 물든 얼굴로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숨도 못 쉴 만큼 꽉 그녀를 껴안는 태오는 열병이라도 걸린 듯 뜨거운 목소리로 재차 고백한다.

“사랑해.”

“…….”

“사랑한 지 너무 오래됐어…….”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무도 몰라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제는 나봄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더 몸을 맡긴 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사랑해, 태오야.”

드디어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나봄의 고백은 태오의 마음을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빛으로 물들였다.

사랑한다는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버텨 왔는지.

여기까지 달려오는 9년간의 시간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지만 이 순간의 행복이 그 모든 아픔을 달래주는 듯했다.

“그 말…… 더 해 줘.”

“…….”

“침대에서 밤새도록.”

태오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붙이며 속삭였다. 그런 뒤 귓불을 머금는 혀끝은 전신이 떨릴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 촉촉한 감촉에 몇 번이나 힘이 빠질 뻔한 나봄은 그를 꼭 붙잡았다.

“그럼 이제 데려가, 바보야…….”

수줍어하면서도 물러나지는 않는 그녀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태오는 그런 그녀를 단단한 두 팔로 가뿐히 안아 들었고, 오직 나봄에게만 허락된 방으로 부드럽게 이끌었다.

문은 일부러 닫지 않았다.

은은하게 비치는 스탠드 조명 빛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는 너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일 테니까.

* * *

아무도 모르게 잠적한 지 얼마나 지났더라.

차준은 요즘 들어 발코니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딱히 드넓은 서울 야경을 보는 건 아니었다. 그의 발코니는 짙은 암막커튼으로 하루 종일 뒤덮여 있었으니까.

가정 관리사가 몇 번 방문하긴 했으나 차준은 현관문 잠금장치 배터리를 빼 둔 채 절대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고 며칠을 더 있었더니 생사를 확인하겠답시고 관리인이 찾아왔고, 그땐 겨우 기척을 내어 목숨이 붙어 있음을 알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그의 펜트하우스를 방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끼익―’

가끔은 복도에서 들리는 쇳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는 했다.

그때가 차준이 유일하게 고개까지 돌려 반응하던 순간이었으나, 뒤이어 ‘쿵!’ 소리까지 이어지면 그제야 문소리였구나 하고 서러운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다.

꼭 발소리 대신 쇳소리를 내는 누군가의 기척이 아니라서 실망한 사람처럼.

차준은 그런 자신이 끔찍이도 싫었다.

자꾸만 약해지는 독기도, 그가 딱 한 번 보여 준 매정한 모습에 상처받은 마음도 전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양심이 있으면 죽은 사람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살아! 멀쩡한 사람 너 때문에 불쌍하고 비참해 보이게 만들지 말고!’

‘그 꼴을 하고서 누구 형 노릇을 하려고 들어!’

‘나는…… 진심으로 니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난 더 심한 말도 많이 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속이 편해?! 전부 내 탓으로 돌리고 나면 니 인생이 나아질 것 같아?!’

‘착각하지 마! 아무리 날 원망하고 증오해도 애초부터 망가져 있던 게 멀쩡해지지는 않아!’

그런 말쯤은 들어도 싸잖아.

계속 스스로를 다그치며 감정들을 죽이던 차준은 드디어 가슴속이 공허해졌음을 깨닫고 오랜만에 휴대폰을 들었다.

아예 사라지겠다고 작정한 순간부터 꺼 두었던 휴대폰.

전원을 켜자마자 쏟아지는 메일과 부재중 전화 알림이 몰아닥쳤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차준은 일일이 스트레스 받을 기운조차 없었다.

그 덕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를 찾는 메시지들을 훑어 나가고 있는데.

[서재균 회장님]

좀처럼 직접 연락하는 일이 없는 그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 있는 만큼 내용은 충분히 짐작되었다.

그 메시지만큼은 다른 것들처럼 무시하지 못한 차준은 옅은 눈동자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가 너에게 이 이상으로 실망하기 전에, 얼굴을 비치는 게 좋을 게다.]

그가 전한 말은 짧고 간결했다. 그리고 그만큼 숨이 막혔다.

그가 쏜 화살촉들이 내게로 꽂혀 들어오는 게 훤히 보이는 것 같아.

전화든 메시지든 뭐라도 답신을 줘야 했으나 얼어붙은 손가락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준은 그대로 휴대폰 전원을 꺼 버렸다.

무시해 버린 수많은 연락들과 함께 휴대폰 액정이 새까매지자, 어둠은 다시금 그를 집어삼켰다.

“하아…….”

차준은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한숨으로 겨우 제가 아직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것은 결국 그의 체스 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아파하는 일도 멈추고 순순히 그의 뜻대로 움직여 줘야 할 터.

차준은 힘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손으로 제 얼굴을 매만졌다.

늘 반들반들했던 얼굴이 많이 거칠어진 걸 보니 꼴이 엉망인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하고, 멀쩡하지 않아도 멀쩡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이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볼품없는 불량품인지 알아채 버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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