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내 남자를 위한 이벤트
2017.12.22.
“자, 다 됐다.”
하얀 생크림 위에 데커레이션을 마친 나봄이 기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꼿꼿이 피며 완성된 홈메이드 생크림 케이크를 내려다보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물론 빵을 살짝 태우긴 했지만 까마득한 옛날, 원데이 클래스로 몇 번 배웠던 베이킹 실력으로 만들어 낸 것치고는 잘한 셈이었다.
“이제 포장만 예쁘게 하면 되는데 말이야.”
나봄은 미리 사 둔 케이크 박스에 완성된 케이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늘 업무도 제쳐 놓은 채 필사적으로 연습했던 예쁜 리본을 묶어 박스를 장식했다. 만들어진 리본은 연습 때보다도 잘 나와서 그녀의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그녀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케이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 친구, 단태오였다.
가슴에 받은 상처가 많아 연애를 시작한 후로 더 무서운 게 많아진 그는 요즘 나봄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흉터뿐인 그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가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서 행복해할까.
며칠 밤낮을 두고 고민하던 나봄은 무조건 그에게 잘해 줘야겠다고 결심했고, 그의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사랑을 드러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보려고, 나봄은 마음을 다잡은 그날 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오야! 안녕! 저녁은 잘 먹었니?’
―
아, 어. 어쩐 일이야?
‘우리 사이에 무슨 용건이 필요 있겠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
하하, 뭐야.
시작은 굉장히 좋았었다.
그녀를 반기는 태오에게 한층 더 용기를 얻은 그녀는 조금 더 샘솟는 사랑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있잖아! 오늘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
나도 보고 싶었어. 지금도 그렇고.
‘응! 나도 지금까지 보고 싶어!’
―
하하, 오늘따라 엄청 신나 보이네. 좋은 일 있어?
‘아니, 그냥 너랑 통화하고 있으니까 좋지! 진짜 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
아…… 있잖아, 나봄아.
하지만 잘 나가다가 어쩐지 다시 불안해진다 싶던 태오의 목소리는.
―
미안해서 어쩌지. 나 지금 우리 팀 전체가 야근이라서 너 보러 못 갈 것 같은데.
‘어, 어?’
―
새벽 두 시는 무조건 넘길 거야. 그런데 내일 너 출근도 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게 하기는…….
‘아니야! 아니야! 나 보러 오라는 뜻은 아니었어! 미안해하지 말고 일에 집중해!’
결국 태오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그날은 어차피 나봄도 회식이 있어서 그를 만나지 못하는 날이었는데. 그냥 넘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한 건데.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던 그 순간, 나봄은 깨달았다.
지금까지 연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주고받는 그 낯 뜨거운 말을 태오에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드러내는 게 힘든가. 사실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할 텐데 말이야.
망설이는 시간도 이젠 아쉬웠던 나봄은 그 말을 자신이 먼저 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건 안부처럼 간단히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녀는 작은 이벤트까지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케이크 포장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몇 시쯤 됐나.”
나봄은 고갤 돌려 부엌 창가에 놓인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이벤트 때문에 한 시간이나 더 일찍 퇴근해서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시간은 벌써 밤 열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태오네 집 도착하면 열 시 반은 넘겠네. 일단 화장만 고치고 가야겠다.”
나봄은 바쁜 발걸음을 떼어 내 2층 제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이벤트 때문에 긴장한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설렘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준비해 놓은 그 한 마디는 무리 없이 꺼내 놓을 수 있겠다.
그 동안의 불안을 잊고 내 고백에 안도할 그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하염없이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 * *
늦은 밤, 서 대표의 집무실.
똑똑―
차분한 노크 소리와 함께 김 실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서 대표는 업무 시에만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두고 건조한 시선을 건넸다.
김 실장은 그녀를 마주하자마자 고갤 숙여 인사했고, 집무실 책상 가까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가 부탁했던 안건에 대한 보고를 이어 나갔다.
“한나봄에 대한 신상 정보와 선우차준 이사님의 관계에 대해 모든 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빠르네.”
“조사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무방비한 일반인이니까요.”
그리 대답한 김 실장은 가장 먼저 들고 온 검은 파일부터 건넸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그 파일엔 그녀에 대한 정보가 가득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한나봄이랑 선우차준, 그리고 우리 태준이까지. 대체 어떤 사이야?”
제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도 아쉬웠던 서 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김 실장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사과부터 건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사실 한나봄 씨와 도련님의 관계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김 실장이 어떻게?”
“도련님께서 저에게 한나봄 팀장님과 접선해 달라 부탁하셨으니까요.”
“태준이가?”
대답을 들은 서 대표의 눈빛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태준은, 적어도 사고가 난 이후의 태준은 세상 사람과의 인연을 모두 끊어 낸 채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가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직접 만나러 가기까지 했었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변화가 대견하기보다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서 대표는 김 실장에게 추궁하듯 질문했다.
“그럼 한나봄하고 만난 적이 있다는 거야? 만나서 무슨 얘길 했어? 태준이는 그날 괜찮았고?”
“저는 한나봄 씨의 회사 건물 앞까지만 그분을 모셔다드렸습니다.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말라는 대기명령을 내리셔서, 대화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만?”
“짐작하기에 선우차준 이사님에 대한 얘기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창립 기념회 행사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요.”
태준이 무엇을 걱정했는지는 창립 기념회 행사장을 덮쳤던 서 대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회사 대표직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거부당했던 그녀는 서재균 회장을 도발하기 위해 차준을 덮쳤었다.
태준은 예전부터 제 동생이 해코지 당하는 걸 싫어했었으니까. 그 위기로부터 차준을 구해 달라, 한나봄에게 애원했던 걸 테지.
다 너를 지키기 위해 그러는 줄도 모르고…….
“한나봄이랑 선우차준의 관계에 대해선 알아냈어?”
서 대표는 차가워진 목소리로 다음 질문을 꺼냈다. 김 실장은 서 대표를 내려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대표님도 알고 계시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잠깐 만났던 사이?”
“네, 하지만 도련님의 사고 이후에 선우차준 이사님의 미국 유학행이 결정되면서 인연도 끊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재회한 건 한나봄 팀장님이 우드레일과 협약을 맺었던 그 시점이고요.”
“협약을 맺었던 시점이라면 얼마 되진 않았네.”
“그렇습니다. 알아본 결과, 지금 두 사람은 사업상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합니다.”
김 실장의 정보력은 믿을 만했으나 서 대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업적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니라면, 감히 외주 업체 신분으로 이 썩어 빠진 집안의 문제에 끼어들지 않았을 테니까.
“잘 알아본 거 맞아? 선우차준이 한나봄을 약혼녀로 소개했다는 얘기도 들려오던데.”
서 대표는 미간을 좁히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김 실장은 그녀에게 제출했던 검은 파일을 정중히 가리키며 대답했다.
“요 며칠 지켜본 결과, 한나봄 씨에게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진 자료를 참고해 주십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 대표는 파일을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맨 앞장에서 그녀를 반기는 사진은 비 오는 날, 나봄이 어떤 남자와 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서 대표는 확실히 차준보다 깊은 사이처럼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워낙 어두운 밤에 찍힌 거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남자의 정체는 익숙한 얼굴이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남자…… 현장팀 단태오 대리 아니던가.”
서 대표는 ‘Lily’프로젝트 총회에서 현장팀 팀장으로 선정되었던 그를 떠올리며 말했다.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네, 단태오 대리가 맞습니다. 연인이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으나, 같은 대학 동기인 것으로 봤을 때 알고 지낸 지는 꽤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게 차준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증명은 되지 못했다.
적어도 서 대표가 알고 있는 차준은 비즈니스적인 관계에선 절대로 제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연회장에서 그녀가 제법 맹랑한 소리를 하던 때, 그녀 곁의 선우차준은 확실히 마음 놓고 무너지는 중이었으니.
‘비즈니스 그 이상이야. 그날 내가 본 바로는 그래. 하지만 단태오 대리와 이미 연인 사이라면 선우차준은…….’
애매한 관계에 정답을 내려 줄 수 있는 건 당사자뿐이었다.
검은 파일을 도로 덮어 둔 서 대표는 책상 위에 놓인 스케줄러를 확인하고는 김 실장에게 명령 하나를 내렸다.
“다음 주 월요일 저녁, 한봄 도어락 한나봄 팀장하고 저녁 미팅 잡아 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김 실장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봄과 서 대표의 만남을 자신이 주선했다는 걸 알게 되면 차준이 가만 있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김 실장은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려는 서 대표에게 최대한 돌려 말했다.
그러자 서 대표는 강압적인 태도로 명령을 강행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잖아. 한봄 도어락 한나봄 팀장 본분으로서 공식적인 저녁 미팅 잡아 놓으라고.”
“…….”
“만나기 전까지만 내가 가는지 모르게 하면 돼. 당일 만나서 입단속만 잘 시키면 선우차준 귀에 거슬리는 얘기 들어갈 일은 없어.”
김 실장은 그녀를 만나려는 서 대표가 무엇을 물어보려는지, 무엇을 알고 싶은 건지 알고 있었다.
차준이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나봄의 존재가 은근히 신경 쓰이고 불편한 것이겠지.
차준이 왜 그녀에게 의지하는지에 대해선 곁에서 그를 더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김 실장이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미팅 잡을 때 내 얘기는 빼 놔. 그냥 사업팀과의 미팅 정도로 해 두는 게 좋겠어.”
하지만 혹시나 차준이 알아챌까, 자신의 존재조차 숨겨 두려는 그녀는 아마도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네, 알겠습니다.”
김 실장은 뻔히 보이는 관심을 묻어 두기로 했다.
그래도 그녀가 아예 그를 내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흥미를 느끼며.
* * *
―아! 좀 나오라고! 안 나오면 너희 집에 쳐들어간다!
휴대폰 너머로 징징거리는 유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삼십 분 전에 집으로 돌아와 지금 막 옷을 갈아입은 참이었던 태오는 단칼에 그녀를 내쳤다.
“싫어. 술 안 마셔.”
―누가 나랑 둘이 마시자고 했냐? 회식이잖아! 자꾸 빠지는 게 어디 있어!
“여직원 회식이라며. 거기에 내가 왜 껴.”
―특별 초청 해 줬더니 이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지금 나오면 용서해 준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유리는 좀처럼 물러날 줄을 몰랐다.
이런 그녀의 성격에 누구보다 많이 시달려 본 태오는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끊는다.”
그래서 매정하게 통화를 끝마치려던 그때.
―어어! 지금 끊으면 우리 2차로 너희 집 찾아갈 거야! 두고 봐!
유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띵동―!
초인종 소리가 태오의 집을 울렸다.
“손님 왔다. 나 진짜 끊는다.”
정말 끊어야 할 이유가 생긴 태오는 버럭버럭 소리치는 유리를 무시하고 망설임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렸다.
“누구세요.”
태오는 현관문을 향해 소리치며 인터폰에 등장한 얼굴을 확인했다.
“아, 나야! 태오야!”
그러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해맑은 얼굴.
놀랍게도 나봄이었다. 오늘 어쩐 일에서인지 메시지가 뜸해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한나…… 한나봄? 거기 진짜 한나봄이냐!”
태오는 아까 유리를 상대하던 얼굴과는 상반된 기쁜 미소를 띤 채 현관문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반가운 만큼 후닥닥 현관문 잠금장치를 풀어내니.
“응! 당연히 나지. 누가 내 탈이라도 쓰고 찾아왔을까 봐?”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진짜 나봄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오의 입가에 어렸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갑자기 와서 놀랐잖아. 일도 힘들었을 텐데 집에서 쉬지, 여기까진 뭐하러 왔어.”
“어제부터 말했잖아! 보고 싶다고!”
“아, 어젠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은 그만하라니까.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시간도 없는 너를 보고 싶어 했던 나한테 있지.”
나봄은 또다시 습관처럼 튀어나오려는 태오의 사과를 가로막아 두고 집 안으로 몸을 들였다.
태오는 나봄이 신발을 벗는 동안 신발장 거울을 보며 재빨리 머리를 정돈했고,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근하고 바로 온 거야? 밥은 먹었고?”
누가 보면 친정 엄마인 줄 알겠다. 볼 때마다 행여나 굶어 죽진 않을까 밥 타령만 하니.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서 굶고 온 나봄이지만 딱히 허기가 느껴지진 않아서 나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그나저나 나 여기 너 선물 주려고 온 건데!”
그러고는 손에 들고 온 케이크 박스를 드디어 태오 앞에 내밀었다. 그녀가 와 준 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거나 다름없었던 태오는 화색이 된 얼굴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게 뭔데? 케이크야?”
“응! 내가 직접 만들었어!”
“진짜?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았…… 이 아니라, 고맙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같이 먹자.”
그녀에게서 케이크를 넘겨받은 태오는 식탁 위에 박스를 가져다 놓았다.
그가 리본을 풀 때쯤 나봄은 신이 난 목소리로 귀띔해 주었다.
“참고로 이 리본 내가 묶었어.”
“예쁘게 잘 묶었네. 나봄이 포장 장사해도 되겠다.”
“하하, 그게 뭐야.”
“뭐긴 뭐야. 칭찬이지.”
그리 말하며 태오는 나봄을 한 팔로 끌어안고는 관자놀이 쪽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그러고는 다른 한 손으로 상자를 열어 그녀가 손수 만들어 왔다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는데.
“아…….”
기뻐할 줄 알았던 태오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던 나봄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러자 태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 나봄이 직접 그린 하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엉덩이……?”
“아니야.”
“어금니.”
“바보야! 반대로 뺐잖아! 하트야!”
“아, 미안. 그렇구나.”
로맨틱한 순간에 산통을 깬 태오가 당황하며 사과했다.
나봄은 심술이 난 와중에도 그가 미안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서, 그의 얼굴을 붙잡고 선전포고를 했다.
“나 오늘 너한테 중요한 말 전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너무 좋아 죽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닿을 듯 가까워진 그녀의 얼굴에, 태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지금도 충분히 좋아 죽겠는데, 여기서 더 좋아지면 도대체 어떻게 참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정 안 되겠으면 한 번 더 장인어른을 화나게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