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60화 (60/104)

60. 장인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2017.11.24.

나봄이 구워온 최고급 한우가 식탁에 놓여졌다.

육즙이 잘 배어 나온 한우는 충분히 먹음직스러웠지만 그걸 보고 있는 두 남자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자, 우리 식사부터 하고 얘기할까요? 태오야, 잘 먹을게.”

나봄은 그런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는 낯으로 식탁에 앉았다.

태오는 나봄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고는 한 사장에게 손짓을 했다.

“먼저 드세요, 선생님.”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 한 사장에게 살가운 호칭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은 서글서글하게 다가오던 누군가와 비교되긴 했다.

하지만 한 사장은 이렇게 낯을 가리면서도 점수를 따 보겠다고 애쓰는 태오가 비호감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선 태오의 긴장감부터 풀어 줘야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다고 판단을 내린 한 사장은 윗사람답게 먼저 다가가 보기로 했다.

“자, 자네도 먹게나.”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고기 한 점을 태오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자.

“아…….”

잠깐 멈칫하던 태오가 두 손으로 공손히 다른 고기 한 점을 집었다. 그러고는 한 사장과 똑같이 그의 밥그릇에 살포시 올려놓아 주었다.

“선생님도 드세요.”

“아, 고맙네.”

그렇게 사이좋게 서로를 챙겨 준 뒤에야 겨우 첫술을 뜨게 된 두 남자는 동시에 생각했다.

‘이게 아닌가.’

확실히 아니었다. 그건 옆에서 두 사람의 어색한 광경을 보고 있는 나봄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하아…….”

나봄은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하는 두 남자를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만남을 주선하지 말걸 그랬다.

그렇게 부질없는 후회를 반복하고 있던 그때.

“어?”

그녀의 눈동자에 이 상황을 타파할 만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냉장고 위에 대충 올려져 있는 긴 박스는 이번 설에 아버지가 받아 온 양주가 분명했다.

나봄은 술 석 잔이면 바로 만취가 되어 버리는 체질이었으나, 그녀의 아버지 한 사장은 여태껏 만취 상태가 되어 본 적이 없었다.

태오는 정확히 얼마나 마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리와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는 걸 보니 결코 못 마시는 건 아닐 터.

‘좋아, 그렇다면 지금은 알코올을 꺼낼 때야!’

짧은 고민을 끝마친 나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니, 나봄아.”

“한나봄?”

오로지 나봄에게만 의지하고 있던 두 남자는 돌연 초조해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냉장고 앞에 다가간 나봄은 까치발을 든 채 손을 뻗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사장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으나.

“우리 이거 열까요?”

나봄이 도수가 센 양주를 꺼내자, 두 눈을 반짝였다.

그래, 안 그래도 어려운 자리에 무언가가 부족하다 했더니 그건 바로 알코올이었다.

“자네, 술은 좀 마시나.”

한 사장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태오에게 물었다.

평소 자신의 술버릇 때문에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태오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첫 만남에 노래방에 가서 슬픈 노래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는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네, 적당히 할 줄 압니다. 선생님.”

그때, 그리 말하는 그를 어떻게든 뜯어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한 건.

“그럼 잘됐네요! 술잔 새로 꺼낼게요!”

나봄이 신이 난 얼굴로 양주를 가져온 뒤부터 약 1시간 반쯤 뒤의 일이었다.

.

.

.

“짠!”

벌써 다섯 번째 건배가 이루어졌다.

한 잔 한 잔 들어갈 때마다 조금씩 긴장감을 풀던 태오와 한 사장의 분위기는 다섯 잔째가 되어서야 겨우 편안한 미소를 되찾았다.

이제야 태오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진 한 사장은 막 따른 양주를 입 안에 털어 넣기 전 물었다.

“그래, 외아들이라고 했었나?”

“네, 외아들입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시겠구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짧게 되돌아오는 태오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한 사장은 들고 있던 잔을 다시 비우고는 이번엔 좀 더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 딸이 지난밤에 자네 때문에 무단 외박까지 감행했는데 말이야…….”

“…….”

“나봄이랑 결혼을 생각하고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거겠지?”

“쿨럭쿨럭!”

그가 꺼낸 파격적인 단어에 놀란 태오가 양주를 삼키려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한나봄이랑 사귄 것도 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태오는 결혼까지는 욕심조차 내지 않고 있던 터였다.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대답해도 될까. 듣고 있던 한나봄이 가당찮은 소리라 생각하진 않을까.

‘그래도 나한테 물어본 질문이니까 내 마음대로 털어놔도 되겠지.’

짧은 고민 끝에 다짐한 태오는 포부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입술을 떼어 내기도 전에.

“아빠도 참, 우리 만난 지 정말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나봄이 헛웃음과 함께 먼저 대답을 가로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각오가 단단했던 태오의 눈동자가 당황한 빛을 띤 채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한 말이 틀린 소린 아니지만, 그래도 딱 잘라 얘기하니까 뭔가 섭섭하잖아.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애가 벌써 외박이나 하고!”

“앗! 그, 그게 아니라…….”

한 사장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찰싹 때리며 타박했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을 돌연 태오에게로 꽂은 채 엄중하게 물었다.

“자네, 자네도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어젯밤 나봄이를 안 들여보냈던 건 아니겠지?”

아직 서운한 마음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있던 태오는 자연스럽게 나봄의 눈치를 보았다.

맞은 어깨를 매만지는 나봄의 눈동자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딱히 인상을 쓰진 않고 있는 걸 보니 이런 질문이 영 싫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물러나지 않겠다.

비록 너한테는 우리가 사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자그마치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너만 보며 살아왔다.

태오는 마른침을 삼켜 넘기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한 사장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꺼내 놓는 목소리는 면접관 앞 엘리트 신입 사원처럼 몹시 패기 넘쳤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

“선생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라는 말이 쩌렁쩌렁하게 터져 나오려다가 혀끝에서 멈추었다. 휘둥그레진 나봄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기 때문이었다.

순간 낯이 뜨거워진 태오는 자꾸만 흐려지는 말꼬리를 억지로 붙잡고, 당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선생님을 장인어른으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나, 날?”

“장인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한 사장을 향한 구애 작전.

그건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이 많은 탓에 도저히 낯 뜨거운 말은 못 하겠지만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는 않아 내린 선택이었다.

그런 신박한 대답에 잠시 당황하는가 싶던 한 사장은 이내 입꼬리를 실룩이다가.

“푸핫…… 푸하하하하!”

곧 목젖이 보일 만큼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태오의 눈빛이 당당함을 잃고 금세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혼 얘길 이런 식으로 꺼내는 건 또 처음 봤구만! 처음엔 아주 뻣뻣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유머러스하네!”

의도치 않게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한결 좋아진 분위기에 안도한 태오는 작게 한숨을 돌렸다.

평소 실수만 연발하게 하는 소심한 성격도 가끔은 도움이 될 때가 있는가 보다.

겨우 위기를 넘긴 태오는 나봄에게로 당찬 시선을 두고 눈짓으로 말했다.

‘이제 넌 빼도 박도 못 하게 내 꺼야.’

그걸 알아들었는지, 나봄의 얼굴이 어느새 빨갛게 물들었다. 역시 너는 내 사랑을 받는 일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좋아, 기분이다! 나봄아, 고기만 먹기 심심하니까 요 바로 앞 횟집에서 모둠회 좀 떠 와라!”

한껏 신이 난 한 사장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이런 분위기가 부끄러웠던 나봄은 곧바로 대답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네네!”

“나도 같이 가 줄까.”

그 모습을 본 태오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녀에게 따라붙으려 했다.

사실 여기 도착해서부터 쭉 나봄과 단둘이 있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그였다.

그러나 그때.

“아아, 술자리가 끊어져서야 쓰나. 단 서방 한 잔 더 하게!”

단 서방.

한 사장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살가운 호칭이 태오의 정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인상이 더럽고 싹싹하지 못해서 어른들한테 늘 점수를 따지 못했던 터라, 나봄의 가족에게 인정받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루 만에 사위 자격으로 인정받을 줄은 몰랐다.

또 한 번 감동이 북받쳐 오른 태오는 순순히 잔을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단 서방도 한 번 따라 봐!”

“아…… 예.”

완벽하게 편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보기 흐뭇한 두 남자의 관계.

식탁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봄은 그걸 보고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첫인사가 잘못되진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건만 분위기는 의외로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하긴, 아빠는 예전부터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너스레에 서툰 태오가 의외로 한 사장 취향이라는 걸 떠올린 나봄은 그제야 미련 없는 발걸음을 떼어 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봄에게만 의지하고 있던 두 남자는 그녀가 신발장이 다다를 때까지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좋아, 단 서방! 그거 아는가!”

“아니요, 모릅니다.”

“내가 이래 봬도 전국 노래 자랑 예선 합격 출신이라네! 내가 한 곡조 뽑아 볼 테니까 귀 기울여 잘 들어봐!”

사실 아빠가 저렇게 신나 하실 줄은 몰랐지만.

“아, 네. 그런데 선생님. 슬픈 노래는 되도록……”

“어허! 선생님이라니! 이젠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태오가 우리 아빠를 저렇게나 따를 줄도 몰랐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저리도 잘 어울리는 건 정말 잘된 일이었다.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려서 꼭 돌부리 하나 없이 매끄러운 고속도로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 * *

그 남자의 까만 차.

그걸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렸다.

불 켜진 집 안,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웃음소리.

그 안에 너와 그 남자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나는 너와 재회한 후로 열심히 내 자리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지금은 끼어들어 갈 수 있는 일말의 틈조차 보이질 않는 건지.

화가 나다가, 억울하다가, 이내 하염없이 서러워졌다. 세상의 불행은 전부 다 나에게만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날. 도저히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찾아온 나봄의 집.

차준은 나봄의 집 대문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 위로를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나봄에게 몇 번이나 거절을 당한 적 있던 그는 이곳을 쉼터 삼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은.

아무리 나를 밀어내도, 아무리 나를 싫어해도.

‘그나마 니가 나한테는 가장 따듯한 사람이잖아. 내 세상에는 정말 너밖에 없잖아.’

그런 일방적인 이유들은 차준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 건 매번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요즘 들어, 아니. 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남자가 만들어 낸 그늘 아래 가려져만 간다.

그 어느 날처럼 또 다시 어두운 골목만 지키고 서 있게 된 차준은 가슴 깊이 밀려오는 아릿한 감정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하아…….”

이대로는 절망에 짓눌릴 것만 같아, 차준은 뜨거운 숨을 억지로 토해 냈다.

그리고 나봄의 집 파란 대문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애원했다.

‘상황이 어찌 되어도 좋으니, 제발 내가 있는 곳으로 나와 줘. 울고 있는 나를 알아봐 줘.’

어느덧 사랑이 아닌 동정에 매달리고 있는 그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참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끼이이익―

녹슨 쇳소리와 함께 기적처럼 파란 대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그가 그토록 바라던 나봄이었다.

순간 차준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얹혔다.

니가 내 기도를 듣고 나와 준 건 아닐 테지만, 아직까지 하늘은 내게 널 잡으라고 기회를 주고 있는 듯하다.

차준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봄은 차준이 있는 쪽을 등진 채 빠르게 제 갈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건 변함이 없지만 차준은 조금만 더 다가가면 그녀를 붙잡아 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굳이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그가 입 밖으로 그녀의 이름 한 번만 불러 준다면 기꺼이 뒤를 돌아봐 줄 거라 확신했다.

“나봄……”

하지만 막 흐린 목소리를 꺼낸 순간.

“아휴, 아빠 또 신나서 심수봉 노래 부르시네. 못 말린다니까, 하하.”

해맑게 웃는 너의 얼굴이 왜 내 걸음을 가로막는 건지.

그 미소를 본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내 옆에 있는 동안 그녀가 저렇게 편히 웃은 적이 있었나?’

있었다. 자그마치 10년 전에.

하지만 다시 재회한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편히 마음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대로 내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면, 저 미소를 빼앗아 올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평소보다 깊이, 그리고 간절하게 고민했으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 안 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맑은 빛을 띠는 그 남자와 달리, 나는 들여다볼수록 탁하고 더럽기만 하니까.

‘그래서 나는 안 돼.’

아무래도 나는 안 되겠어. 어떻게든 멀쩡해지려 노력해도 자꾸만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아.

이번에도 나설 용기가 없어 그녀를 붙잡지 못한 차준은 태오의 차 뒤편에 멈춰선 채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귓가에 이명처럼 태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속이 편해?! 전부 내 탓으로 돌리고 나면 니 인생이 나아질 것 같아?!’

‘착각하지 마! 아무리 날 원망하고 증오해도 애초부터 망가져 있던 게 멀쩡해지지는 않아!’

원래는 그 말에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더 악착같이 앞서 나아간 차준이었으나,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맞아, 나는 처음부터 망가져 있었어. 죽을 만큼 발버둥 쳐도 나아지는 게 없어.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아. 그래, 이제 다 놓아 버리는 게 맞아.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죽음 앞에 선 사람의 새까만 절망을 띤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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