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59화 (59/104)

59. 내가 형을 너무 좋아했었어

2017.11.20.

똑딱똑딱―

조용한 거실엔 시계 초침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일곱 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봄은 벌써 한 시간째 소파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한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

“저, 아빠. 텔레비전이라도 보면서 기다리시는 게…….”

“흠흠!”

나봄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 제안했지만 한 사장은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소엔 입지도 않는 와이셔츠까지 차려입은 한 사장은 지금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뿐인 딸의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 찾아온다는 그 녀석은 이때껏 반항 한 번 해 본 적 없던 나봄을 무단 외박하게 만든 놈이니, 한 사장은 평소보다 엄한 태도를 유지할 생각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시간 약속 정말 안 지키네.”

한 사장은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휴대폰 시간을 확인한 나봄은 한숨 섞인 대답을 내뱉었다.

“아직 10분 전이에요. 손목시계는 아직도 안 고치셨어요?”

“이렇게 중요한 자리엔 10분 정도 먼저 도착하는 게 예의지.”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괜히 삐딱선을 타는 한 사장은 나봄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은근히 소심한 단태오는 한 사장의 날 선 태도에 잔뜩 긴장해 버리고 말 텐데, 그러다 실수라도 해서 사이가 다 뒤틀려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봄은 그런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모가 난 한 사장의 마음을 달래 보기로 했다.

“그 사람, 정말 순진하고 괜찮은 사람이에요.”

“순진한 놈이 딸을 안 들여보내?”

“아, 그건 제가 멋대로…….”

“됐어. 그 녀석 살랑살랑 웃으며 살갑게 굴 땐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실망이야. 오늘 단단히 일러 둬야겠어.”

살랑살랑 웃으며 살갑게 굴 때……?

나봄은 순식간에 지나간 한 사장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태오와 한 사장은 한봄 도어락 현장 답사 나왔을 때 딱 한 번 사무적으로 마주친 사이인데, 그땐 두 사람이 대화도 잘 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단태오가 살랑살랑 웃으며 살갑게 굴었다니. 낯선 사람 앞에서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아, 혹시 차준 오빠로 오해하고 계신가?’

찰나에 스친 생각은 나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혹시 한 사장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차준이라면 태오가 오기 전에 그 오해는 풀어 둬야 했다. 선우차준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태오는 언제나처럼 예민해지고 말 테니.

“아빠! 저, 설마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지금 제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나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필사적으로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띵동―!

본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터져 나온 초인종 소리가 온 집 안을 시끄럽게 울렸다. 인터폰을 확인해 보니 대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심히 초조해 보이는 표정의 태오였다.

“버, 벌써?”

당황한 나봄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얼어 버렸다.

그러나 딸의 남자 친구가 오기를 벼르고 있던 한 사장은 인터폰 속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왔네. 날 보자마자 어제 일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면 백 점은 감점시켜 버릴 줄 알아.”

성큼성큼 현관문을 벗어나는 한 사장은 그녀가 막아설 틈도 주지 않았다.

나봄은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며 어떻게든 태오에 대해 조금이라도 얘기해 보려 했다.

“저기 제 남자 친구 이름은 단태오구요! 나이는……!”

“그래, 아주 불태워 버려야지.”

“아니요, 태우는 게 아니고 태오요. 이름이 태오라구요, 태오.”

“감히 말도 없이 외박을 감행하다니.”

하지만 귀를 닫은 사람처럼 그녀 말을 듣지 않는 한 사장은 흥분한 손놀림으로 대문 걸쇠를 열었다.

“선우차준! 네 이놈!”

그러더니 기어이 그 사람의 이름을 꺼내 버리고 말았다. 결국 터져 버린 최악의 사태에 나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빠! 그 사람 아니라니까!”

나봄은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질렀다. 한 사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잔뜩 노한 표정이었으나.

“아…….”

대문 앞에 얼어붙어 있는 낯선 남자를 확인하고는 나봄만큼이나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껏 딸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 전에도 우리 집에 들렀었고, 파티에 참석하는 나봄을 위해서 드레스까지 선물해 준 선우차준 본부장인 줄 알았건만.

“…….”

갑자기 나타난 이 커다랗고 새까만 녀석은 도대체 누구신지…….

“나, 나는 선우차준 본부장 그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한 사장이 한 번 더 차준의 존재를 언급했다.

거듭된 실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봄은 이마까지 짚은 채 태오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태오는 뜻밖의 오해에 그 어떤 대꾸도 못 하고 속눈썹만 가늘게 떨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 그 사람 이름 좀 그만……”

나봄은 상황을 난처하게 만든 한 사장에게 탄식 섞인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바로 그 순간.

“하아…….”

서늘한 공기 중으로 태오의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심상찮은 그의 분위기를 느낀 두 부녀의 시선이 동시에 태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마자 시야에 곧바로 들어온 태오의 인상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까딱하면 대문이고 뭐고 다 뜯어 던질 기세로.

* * *

“그럼 죽이든가, 지금.”

항상 쏟아지는 고통을 감내하기만 하던 태준이 말했다.

“……뭐?”

얼핏 날을 세운 것처럼 들리는 그 말에, 차준의 눈동자 속에는 다시금 적대감이 맺혔다.

하지만 태준은 여기서 관두지 않고 계속해서 서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항상 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했잖아. 넌 계속 나 때문에 불행해했잖아.”

“…….”

“내가 이렇게 되기 전부터 니 인생을 망친 건 나라고 믿고 있었잖아!”

그 말을 할 때쯤 태준은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준이 그런 적 없다는 건 그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음과 달리 점점 높아지는 언성은 멈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차준만큼이나 이성을 잃은 태준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말들 중 그를 제일 아프게 만들 수 있는 말만 골라서 내뱉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속이 편해?! 전부 내 탓으로 돌리고 나면 니 인생이 나아질 것 같아?!”

“…….”

“착각하지 마! 아무리 날 원망하고 증오해도 애초부터 망가져 있던 게 멀쩡해지지는 않아!”

마지막 한 마디는 그에게 내리는 저주와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솟구치는 분노를 거세게 태우고 있던 차준의 눈빛은 그 순간부터 차츰 힘을 잃기 시작한다.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경호실장은 한 번 더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두 분 다 고정하십쇼! 너무 흥분해계신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가 막아서지 않았더라도 태준은 여기서 더 폭언을 이어 나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차준의 눈동자를 더 이상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아…….”

뜨겁고 흐린 숨이 태준의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그 뒤엔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덧붙이고 싶었으나 차마 염치가 없어서 꺼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차준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정말 숨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더니.

“알아…….”

한참이 지나서야 서러운 듯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내 인생은 애초부터 망가졌고, 어떻게 발버둥을 쳐 봐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

“내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을 무렵부터…….”

곧바로 이어지는 말들엔 어느새 감출 수 없는 울음기가 섞여 들고 있었다.

하지만 차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 번 다시는 드러내지 못할 진심을 태준의 앞에 고스란히 꺼내 놓았다.

“그래도 형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형이라는 호칭을…… 대체 얼마 만에 들어 보는 거더라.

“지긋지긋하게 고통스러워도 형 덕분에 버틸 만했었으니까.”

“…….”

“모든 걸 형 탓으로 돌리기에는…… 내가 너무 형을 좋아했었어.”

니가 그 시절의 나를 회상하는 건, 또 얼마나 오랜만에 일이더라.

태준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차준의 고백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방금 전 그에게 주었던 상처가 전부 되돌아오는 느낌이었으니.

“그런데 형한테는 내가 어깨를 짓누르는 짐일 뿐이었잖아.”

“…….”

“내 존재가 부담스러워서…… 어떻게든 나를 감춰 놓고 싶어서…….”

“…….”

“항상 악착같이 노력해 왔던 거잖아. 내가 형 그늘에 가려져 있는 걸 확인할 때마다 안심을 하고, 그게 티가 나지 않도록 동정을 하고…….”

더 이상 차준의 얘기를 들어 주기가 힘들었던 태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차준은 그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런 마음이었으니까 내가 형 자리에 대신 올라가는 날, 굳이 꺼내 놓지 않아도 될 진실을 알려 줬겠지.”

“차준아…….”

“오로지 형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고 죽도록 달렸는데, 그날 꼭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걸 박살 내야 했어?”

“…….”

“그 순간까지도 날 견제했던 게 아니라면 그러지 않아도 됐었잖아…….”

정말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언제나 널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나는 절대 그런 마음을 가졌을 리가 없는데…….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꼭 자신도 모르고 있던 진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것처럼.

“난 니가 가식 떠는 모습이 싫어.”

“…….”

“그런 널 누구보다 동경했던 내가 끔찍하게 혐오스러워.”

다시 곤두서 버린 차준의 날은 태준의 심장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 놓았다.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던 우리의 혈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시간이 갈수록 도통 모르겠다.

흐린 숨을 내쉬던 차준은 이내 힘없이 등을 돌렸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눈가를 매만지는 모습은 태준의 가슴에 칼날처럼 깊이 박혀 들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다.

이 순간, 너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엾었는지.

* * *

“하아…….”

서늘한 공기 중으로 태오의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심상찮은 그의 분위기를 느낀 두 부녀의 시선이 동시에 태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마자 시야에 곧바로 들어온 태오의 인상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까딱하면 대문이고 뭐고 다 뜯어 던질 기세로.

나봄은 다혈질인 그의 성질머리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시켜 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안녕하십니까, 단태오라고 합니다.”

태오의 허리가 90도로 꾸벅 굽혀졌다. 다시 허리를 들어 올린 그는 여전히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으나, 이어지는 멘트들은 하나같이 공손했다.

“나이는 스물아홉, 따님이랑 동갑이고요. 현재 목동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은 전주에 계시고요. 형제는 따로 없습니다.”

“으, 응?”

“지금은 우드레일 현장팀에 근무 중이고, 4개월 전에 ‘Lily’ 프로젝트 팀장직을 맡았습니다. 우리 회사 본부장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년 때까지는 어떻게든 성실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생각입니다.”

“…….”

“눈썹에 있는 흉터는 싸움박질 이런 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어릴 때 철봉에서 떨어져서 찢어졌습니다. 이목구비는 어머니를 닮아서 사납게 생긴 편이지만, 생긴 것보다는 성격이 순한 편이라고들 합니다.”

구구절절한 그의 자기소개가 끝날 쯤이 돼서야 나봄은 떠올렸다.

단태오는 긴장할 때마다 미간을 사납게 좁히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금 본인이 말했던 대로 첫인상 때문에 오해를 많이 사지만, 그의 성품은 사나운 겉모습과 달리 정말 순한 사람이었다. 조금 까칠한 것까지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그래요. 반갑군요.”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한 사장은 경직된 목소리를 풀지 못하고 대답했다.

태오는 그런 그를 한동안 초조한 기색으로 지켜보다가, 이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홱 등을 돌려 제 차로 향했다.

한 사장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움찔했으나 이내 차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태오를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서…….”

“…….”

“고민만 하다가 이것저것 준비해 봤는데 이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태오는 대문 앞에 무언가를 하나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처음 두 개까지는 예의를 차린다고 신경 썼구나, 싶었지만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 선물이 대문 앞을 가득 채우자 한 사장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고급 명품 한우세트, 홍삼 선물세트, 수제 약과, 발 마사지기, 흑마늘 진액, 남성 화장품세트, 명품 소가죽 벨트…….

전부 다 해서 저게 얼마야, 대체!

놀란 나봄은 태오에게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 그만 꺼내!”

“아직 한참 남았는데.”

“파산하려고 작정했어?! 한 달치 월급 다 쏟아부었겠네.”

나봄의 예상에 동조라도 하듯 태오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워진 나봄은 그가 꺼내 놓았던 선물들을 다시 차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영수증 있지? 환불하러 가자.”

“그래도 선물이니까…….”

“첫 인사엔 선물 하나만 들고 와도 괜찮아! 이건 거의 평생 치다! 평생 치야!”

그 하나를 고르지 못해 이 사달을 벌인 것이었지만, 나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처음 인사드리는 사이에 이 정도의 선물 공세는 호감이 아니라 부담을 줄지도 몰랐다.

결국 자신이 사 온 선물들을 훑어보며 고민하던 태오는 제일 값이 비쌌던 최고급 한우 세트를 꼬옥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한 사장에게 다가가, 여전히 긴장한 만큼 오만상을 쓴 채.

“받아…… 받아 주십쇼, 선생님.”

수줍은 증정식을 거행했다. 이 와중에도 너스레를 떨지 못해서 차마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쓰지 못했다.

그와 같이 덩달아 긴장해 버린 한 사장은 얼떨결에 그의 선물을 받아 들었다.

그런 뒤 다시 한 번 태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자, 그는 잔뜩 경직된 와중에도 흘끔흘끔 한 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라 내색하지는 않지만 표정을 보니까 뭔가 기다리는 말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아, 맞다. 저녁 같이 먹자고 불렀었지.’

그제야 태오를 부른 목적을 생각해 낸 한 사장은 꿀꺽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이, 이거 같이 구워 먹겠나.”

그러고는 용기 낸 한 마디와 함께 슬쩍 대문을 열어 주자, 태오의 눈빛이 돌연 반짝 빛났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 어. 그래. 뭐…….”

“……감사합니다.”

흐리게 흘러나온 태오의 목소리에는 감동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맨 처음 한 사장이 날카롭게 내질렀던 고함 때문에 몹시도 겁먹었었던 그는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된 참이었다.

쾅―!

때마침 태오가 꺼내 놓은 선물들을 전부 도로 넣은 나봄이 뒷좌석 문을 닫았다. 그러고선 탈탈 손바닥을 털며 뒤를 돌자.

“휴, 겨우 다 넣었네. 영수증 꼭…… 응?”

그녀의 눈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담겨 왔다. 어느새 현관문까지 다다른 그들은 혼신의 힘을 쥐어짜 내 소소한 대화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자네, 저 많은 짐 들고 오면서 힘들진 않았나?”

“차에 싣고 와서 괜찮았습니다.”

“그럼 자네 차가 힘들었겠군.”

“아, 예.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멀쩡한 질문과 대답도 못 할 만큼 긴장해 있는 걸 보니, 오늘 저녁 식사를 시작하기도 한 사장의 과민대장증후군이 도지게 생겼다.

단태오도 그런 그를 편안하게 만들 만큼 여유로운 성격은 못 되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 못지않게 낯을 가리는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다. 해결하기 힘든 과업을 얻은 기분에, 벌써부터 기가 쪽쪽 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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