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39화 (39/104)

39. 너의 입술은 참 달고 달았다.

2017.09.11.

“……키스해도 되냐.”

유독 낮게 가라앉은 태오의 목소리가 고요히 흘러나왔다. 그녀에게 향한 시선은 마음이 먹먹해질 만큼 가엾고 안쓰러웠다.

나봄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온 태오의 진심과 지금의 이 순간은 그녀로서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던 것이라, 어떤 반응을 보여 줘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태오는 또 한 번 눈물을 떨구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은 나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래서 잠시 태오와 마주하고 있던 눈동자를 아래쪽으로 끌어 내리자.

“나봄아.”

태오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나 좀 봐 주라…….”

간절한 고백과 함께 눈물 묻은 손을 뻗어 나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잠시 그녀의 입술을 먹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제발…….”

한 번 더 간절히 고백하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의 손길에 이끌려 순순히 입술을 내어 준 나봄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 와중에도 또렷하게 느껴지는 태오의 입술.

그건 무척이나 뜨겁고 부드러웠다. 그간 숨겨 두고 있었던 진심이 모두 여기 담겨 있었구나, 하고 느껴버릴 만큼.

한참을 가만히 입술만 포개고 있던 태오는 조심스럽게 나봄의 윗입술을 들어 올렸다.

그는 지금, 달뜨는 본능을 풀어 놓기 전에 은밀히 물어보는 중이었다.

나 너에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나봄은 대답 대신 태오의 가슴 쪽으로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그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화답이었다.

그러자 태오는 그녀를 더욱 한껏 끌어안는가 싶더니, 드디어.

오랜 시간 원해 왔던 만큼 깊숙하게,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애타는 혀끝을 밀어 넣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그녀의 첫맛은 이대로 녹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하염없이 달콤했다.

그래서 더욱 은밀한 공간까지 숨결을 불어넣자 나봄은 늘어져 있던 두 손을 조심히 옮겨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잠시 입술을 떨어트릴 때마다 새어 나오는 그녀의 신음. 그리고 다시 뒤얽힐 때마다 들려오는 자극적인 마찰음.

금세 한계치를 찍어 버린 태오의 이성은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맥없이 풀려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더욱 격해지는 그의 키스는 나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다.

태오는 끊임없이 그녀의 윗입술을 괴롭혔고, 나봄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다 싶으면 부드러운 혀끝으로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이라도 입술을 떼어 내려 하면 다시 짐승처럼 그녀를 탐내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극적인 그의 키스에 나봄은 차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태오의 존재감만을 한껏 느끼고 있을 뿐.

“하아…… 나봄아.”

숨을 몰아쉬려 잠시 입술을 뗀 그가 신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니가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이내 젖은 그의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건 또 한 번의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마주 보게 된 그의 눈빛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애절했다.

나봄은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태오야, 난…….”

그때.

“……그러니까 조금만 더.”

태오는 찰나의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나봄의 하얀 목덜미로 달려들었다. 집요하게 밀착된 입술 사이로 느껴지는 혀끝은 농염한 움직임이 무색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함께 맞부딪힐 땐 몰랐는데, 오롯이 느끼는 입장이 되어 버리자 온몸이 예민해진다.

그가 머금고 있는 목덜미는 물론,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입술, 그가 끌어안고 있는 등허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와 맞닿아 있는 가슴까지.

녹아내릴 듯 뜨거워지고 숨 가쁘리만큼 벅차오른다.

“아…….”

그래서 본능적으로 끌어안으며 흐린 신음을 흘려보내니, 태오는 그녀의 목선을 따라 입술을 끌어 올려 다시 한 번 더 그녀에게 깊은 키스를 건넸다.

거칠게 타오르는 그의 본능에 비해 조심스레 파고드는 혀끝은 그녀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농밀하게 호흡을 나누었을까.

쿵쿵쿵쿵―

격하게 뛰는 나봄의 심장박동을 느낀 태오가 그녀의 갈비뼈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전신을 휘어 감고 올라오는 기분 좋은 희열은 나봄으로서는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태, 태오야…….”

순간 당황해 버린 나봄은 서둘러 입술을 떼어 내고 그를 밀어냈다.

덕분에 바짝 정신을 차린 태오는 겨우 손을 멈추었다.

고요한 룸 안에 들어찬 두 사람의 숨소리는 무척이나 달뜬 상태였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태오는 서서히 돌아오는 이성으로 지금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겨우 본능을 멈춘 태오가 가장 먼저 의식한 건 붉어질 대로 붉어진 그녀의 입술.

그리고 빨갛게 부어올라 버린 그녀의 하얀 목덜미.

어찌나 세게 물었던 건지 아무래도 멍이 들 것만 같은 모양새다. 감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짓을 저지른 태오는 이내 커다란 혼란에 빠져든다.

“아아…….”

이성이 돌아오기 5초 전, 태오는 나른 신음을 흘려보냈고.

“저…….”

이성이 돌아오기 3초 전, 태오는 무슨 말을 하려다 관두었으며.

이성이 돌아오기 딱 1초 전에는 동공을 파르르 떨고 있다가, 드디어 완전히 이성을 되찾고 나서는 황급히 나봄의 몸을 놓아주었다.

그리고선 언제 그녀를 마음껏 탐했었냐는 듯 당황스러운 기색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안해.”

“…….”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그 말을 내뱉으며 태오는 생각했다.

‘단태오 이 미친 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에게 뒤늦은 욕설을 뱉어 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태오는 술기운과 본능에 이끌려 저질러 버린 짓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하다.

그 무엇보다 그녀에게 멋대로 남겨 둔 키스마크가 제일 미안했던 태오는 빨간 자국을 향해 조심스러운 손길을 뻗었다.

그러자 나봄은 몸을 뒤로 빼며 움츠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괘, 괜찮아.”

그 모습은 누가 봐도 태오에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여서 태오는 더욱 큰 죄책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오늘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그녀에게 못 볼 꼴은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우는 것도 모자라 애원하듯 사랑을 고백하고 멋대로 키스까지 해 버리다니.

이성은 집어치우고 본능대로 행동하는 꼴이 대체 짐승 새끼랑 다를 게 뭐야.

“아…….”

태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고 흐린 탄식을 내뱉었다.

나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목덜미를 매만졌고.

“저기…… 나는 이만 가 볼게!”

곧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황급히 일어서서 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누가 봐도 도망치는 사람 같았다.

“한나…….”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은 안 되는 것 같아 끝내 부르지 못한 그녀의 이름.

쾅―!

머지않아 큰 소리와 함께 닫혀 버리는 문을 보며 태오는 생각했다.

아마 두 번 다시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할 거라고. 감히 그녀에게 결코 해선 안 될 실수를 저질러 버렸으니.

“다…… 망했다.”

태오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절망스러운 한탄을 뱉어 냈다.

그래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아서 그는 제 머리채를 쥐어뜯을 듯 붙잡았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촉감만큼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난 정말 짐승 새끼인가 보다.

오늘 처음으로 느껴 본 그녀의 맛은 이대로 녹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달고 또 달았다.

.

.

.

“아가씨! 아직 40분이나 남았는데 더 안 부르고 가?”

“…….”

노래방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나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노래방 유리문을 열었고, 반쯤 넉 놓은 표정으로 밖을 나섰다. 좁은 노래방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삐걱삐걱 고장 난 로봇 같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생각지도 못한 짓을 저질러 버린 지금.

나봄의 머릿속을 메우는 건 수많은 질문들이었다.

내가 뭘 한 거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걔는 나한테 갑자기 왜 그런 거지?

나는 그걸 또 왜 뿌리지치 못한 거지?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시원하게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방금 전 그녀의 입술 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단태오의 혀끝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열이 달아올라서, 그녀는 도무지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침착하게 정리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와중에 똑바로 기억하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애달픈 눈빛으로 절박하게 꺼내 놓았던 그의 목소리.

‘왜…… 날 그렇게 버렸어?’

‘왜 나한테는 사랑받을 기회도 안 줬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데…… 니가 아직도 좋아.’

세상에서 가장 서러움 가득했던 고백.

그 순간을 회상하자 나봄의 숨통이 바짝 조여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벅차는 것이 누군가 심장을 꽉 쥐고 흔드는 것 같다.

노래방 건물에서 빠져나온 나봄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자 혼미하기만 했던 정신이 바짝 곤두섰다.

물론 그래도 방금 전의 키스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이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그는 오늘 나봄에게 뜨거운 진심을 보여 주었고, 많은 의미를 담은 키스를 건넸다는 것.

비록 입술이 떨어진 직후에는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치듯 벗어날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하는 동안엔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만큼 빠져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순간의 감정은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차준과의 첫 키스 느낌과 비슷했다. 10년도 넘어 버린 지금까지도 그때만큼은 분명한 사랑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단번에 풀리지 못할 고민을 시작해 버린 나봄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걸음을 옮겼다. 집과는 정 반대의 방향이었으나, 그것도 모를 만큼 그녀는 혼이 쏙 빠진 상태였다.

남보다 더 멀었던 관계에 찾아온 커다란 변화.

덕분에 인생이 한층 더 복잡해져 버린 나봄은 긴 한숨만 내쉬었다.

“후우…….”

내뱉는 그녀의 숨결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그 안에 혼란이나 긴장감보다 설렘이 더 많이 묻어 있다는 건, 그녀가 아직 자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 * *

대한 병원 VVIP 병실.

쓰리피스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차준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메마른 표정으로 비서실장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이내 몸을 돌려 침대에 앉아 있는 서 회장을 시선에 담았다.

“왔구나.”

짧은 한 마디로 인사를 건넨 서 회장은 누워 있던 지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위압감 넘쳤다.

그런 그의 앞에서 차준은 간결하게 정돈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역할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서 회장의 대답에 차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적의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 건, 척박한 집안에서 오롯한 제 편 하나 없이 살며 터득한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그런 차준에게 서 회장은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놓았다.

차준은 의식적으로 어깨를 곧게 펴고 차분히 대답했다.

“계획한 대로 런칭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안 작업 마무리 단계까지 진척되었어요.”

“그래, 대략적인 내용은 최태영 부장이 보내온 보고서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

“오랜 시간 협업해 온 케이 도어락 대신 영세한 업체를 고집한 이유가 뭐지?”

그리 묻는 서 회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외주 업체 선정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최태영 부장이 한봄 도어락에 대한 의문점을 서 회장에게까지 어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차준은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했다.

“문제 삼으신 한봄 도어락과 협약을 맺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혼자만의 판단이지 않나.”

“혼자만의 판단을 모두의 수긍으로 만드는 것이 이제부터 제가 해내야 할 역할 아니겠습니까.”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건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차준을 바라보는 서 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지만 차준은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응대했다.

아마 내가 숨기려 하는 건 절대 그의 눈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연기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흠…….”

말없이 차준을 바라보던 서 회장은 옅은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건 얼핏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외면은 아니었다.

“좋아, 나까지 수긍시킬 수 있나 기대해 보도록 하지.”

오히려 서 회장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해 보이는 차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려 한다.

“내 몸의 회복 상태와 상관없이 창립 기념회는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Lily’ 프로젝트 런칭 발표 역시 그 자리에서 이뤄질 거야.”

“…….”

“그때, 날 실망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서 회장은 협박과 다름없는 말을 건조하게 흘려보냈다.

차준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

“불청객은 입구에서부터 철저히 막아서도록.”

순간 차준의 머릿속에선 익숙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떠올리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두 사람 중, 불쌍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그를 떠올리자 가슴엔 아릿한 고통이 일었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준은 억지스레 호의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내 인생의 쓰레기 같은 존재다.

인간 취급도 해 줄 필요 없는 더러운 개새끼다.

죄책감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고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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