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남친이 내게 반했다-30화 (30/104)

30. 넌 무슨 생각을 했어?

2017.08.11.

“단태오 팀장님…… 에게?”

하필 좋던 마음도 예민해지게 만드는 이름에, 그녀의 눈빛이 일순 차가워졌다.

당황한 나봄은 황급히 편지 내용을 가렸다. 그리고서 꺼내 놓는 이야기는 유리의 기분을 더욱 망쳐 놓았다.

“단 팀장님한테 편지를 쓰고 있었어요.”

“걔한테 왜?”

“유리 씨 말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제가 너무 그 앨 신경 쓰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전해 보려구요.”

‘그 애’라는 호칭은 얼핏 듣기에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순간 유리는 참을 수 없는 질투에 휩싸였지만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제 보니 단태오에게 은근히 여우 짓을 하려는 모양인데, 자칫 성질 나쁘게 굴었다간 어떤 식으로 일러바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유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고, 인위적으로 밝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머, 요즘 누가 그런 걸 써. 태오 그렇게 유치한 거 싫어해.”

“예? 하지만 태오가 써 달라고 했는데…….”

“뭐, 뭐?”

“오늘 꼭 전해 주기로 했어요.”

순진한 얼굴로 감히 말대꾸를 내뱉다니. 마음 같아선 확 머리끄덩이를 잡아채 버리고 싶네.

유리는 폭발하려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옛말에 참을 인이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했다.

그런 그녀의 속을 알 리 없는 나봄은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조언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조언?”

“유리 씨가 태오 입장을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내가 뭘 오해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지금 비꼬는 건가, 싶었지만 동그란 두 눈을 들여다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기엔 유리의 의도와 나봄이 해석한 바가 너무도 달랐다.

결국 유리는 나봄의 감사에 대해선 어떤 대답도 내뱉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아참, 지금 막 태오 회의 들어갔는데.”

“아, 그래요?”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중요한 안건이 다 몰려 있어서.”

“그럼 편지는 다음에 전해 줘야겠네요.”

유리의 말은 백 퍼센트 거짓말이었다.

방금 전 확인하고 온 바로, 태오는 제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하지만 나봄이 또 다시 태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길 원치 않았던 유리는 어떻게든 그녀의 편지를 막고 싶었다.

유리는 교묘한 수를 쓰기 전, 사람 좋게 웃어 보였고 그녀에게 친절한 손길을 내밀었다.

“이리 줘요. 회의 끝나는 대로 내가 전해 줄게요.”

“아니에요! 다음 기회에…….”

“에이, 오늘 주기로 약속했던 거면 오늘 주는 게 낫지. 태오도 기다릴 텐데.”

“괜찮아요, 하하.”

“왜요? 내가 못 미더워요?”

“아니요! 그런 의미는 아니고!”

“그런 의미 아니면 이리 줘. 오늘 안에 태오한테 제대로 배달할게.”

반강제적으로 느껴지는 유리의 호의는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나봄은 잠시 쓰다 만 편지를 내려다보았고, 아직 쓰지 못한 제 이름을 가장 밑에 적어 냈다.

그러고는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을 접어 유리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응, 걱정하지 말라니까.”

“부끄러우니까 내용은 읽지 마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유리는 나봄의 부질없는 부탁에 영혼 없이 대답하며 비웃음을 감췄다.

저렇게 맹하게 굴어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지.

여러모로 모자란 부분이 많은 여자라 도저히 태오를 넘겨줄 수가 없다. 의외로 챙겨 줄 게 많은 단태오에게는 한나봄보다 책임감 있고 강한 여자가 필요하다.

바로 나처럼.

유리는 나봄에게서 받은 편지를 손에 쥔 채 흡연실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선 들고 온 담배를 입에 물며 나봄에게 물었다.

“나 이제 한 대 필 건데, 나가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네?”

“담배 냄새 배잖아.”

“아…… 네.”

이제 더 이상 나봄에게 볼일이 없는 유리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그 온도 차는 나봄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폭이 컸다.

그래서 어쩐지 불안해지지만 이미 내어 준 편지를 다시 되가져 올 수도 없는 노릇.

“꼭 좀 잘 전해 주세요.”

나봄은 꾸벅 허리까지 숙여 인사하며, 한 번 더 신신당부를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유리는 고개를 까딱 끄덕이는 걸로 화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눈가엔 평소의 눈웃음이 맺혀 있었지만.

“후우.”

가방을 챙긴 나봄이 흡연실 너머로 사라지자, 곧바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사실은 이때껏 억지로 밝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느라 힘들던 찰나였다.

유리는 나봄이 제법 멀어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흥미 없는 눈길로 그녀의 편지를 펼쳐 보았다.

[단태오 팀장님에게]

글씨체도 유아틱한 게 딱 어리버리한 한나봄스러웠다. 어째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안녕,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는데 편지를 써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그동안 내가 너에 대한 오해를 너무 많이 하고 있었어…….”

유리는 나봄이 진심을 담아 눌러쓴 한 구절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단태오를 동요시키고도 충분히 남을 내용들은 그녀의 미간을 좁혀지게 만들었다.

역시 중간에서 가로채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유리는 마지막 줄까지 정독을 마쳤다.

“가만 보면 넌 참 착한 구석이 있어? 하, 꼴 같지도 않은 게…….”

그 끝에 따라오는 건 하찮아 죽겠다는 듯한 헛웃음이었다.

유리는 나봄이 소중히 건넨 편지를 미련 없이 죽죽 찢었고, 담뱃재까지 툭툭 털었다.

그러고는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흡연실 한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안으로 휙 던져 넣었다. 요즘 단태오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담배도 끊어 버렸으니, 이곳에 들어올 일은 없을 터였다.

편지를 성공적으로 처리한 유리는 후련한 걸음으로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져.

이건 운명처럼 단태오를 만난 뒤 생겨난 삶의 좌우명 같은 것이었다.

그가 계속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머물러 있는 한, 앞으로도 바뀌는 일은 없었다.

* * *

“단 팀장님, 집에 안 가세요?”

우드레일 퍼니쳐팩토리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할 시간.

직원 한 명이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태오의 사무실로 찾아와 물었다.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태오는 느리게 고개를 들었고, 먼저 가라는 손짓과 함께 대답했다.

“먼저 가세요. 오늘 해야 할 업무를 하나도 못 해서요.”

“에이, 오늘 점심 저녁도 굶고 계속 사무실에 계셨으면서. 워커홀릭도 좋지만 몸 생각해 가면서 하세요!”

직원은 태오의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였지만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건 정말 사실이었다. 나봄이 돌아간 뒤로는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으니까.

오늘 아침.

본사에 회의가 있다는 말에, 혹시 내가 잊고 있었던 다른 회의가 있는 걸까 싶어 확인 전화를 해 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프로젝트에 관해서 아무런 일정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본사에서 걸려 온 전화는 뭐지, 라고 의아해할 때쯤 차준의 얼굴이 떠올랐고, 뒤따라 나봄의 얼굴도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지금 두 사람은 같이 있는 걸까.

의심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오는 억지로 고개를 저으며 외면했다.

나에게로 오는 길에 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는 건 차마 인정하기 힘든 진실이었다.

그래서 고집쟁이 아이처럼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생각을 멈춘 채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끼익―

회사 정문 앞에 선 하얀 벤츠는 니가 바라보는 그 남자의 차였고, 열린 조수석 문으로 보이는 건 슬프게도 너였다.

그 순간, 왜 난 주제도 모르고 화가 나던지.

‘하아, 집중 좀 해.’

‘본사 간다는 거짓말로 회의 미룬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도 않잖아.’

오늘 그녀에게 내뱉은 목소리는 하나같이 딱딱했고, 사무적이었다.

자격도 없는 분노를 감추고 싶었지만 표정은 말을 듣지 않았고, 업무 회의만큼은 감정 없이 진행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예민해졌다.

‘아, 그게…….’

‘미안…….’

결국 이번에도 잔뜩 겁을 먹어 버린 너의 눈빛.

이래서 나는 안 되나 봐, 라고 태오는 생각했다.

내가 상처 입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 입힐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닌데, 왜 자꾸만 어른스럽게 굴지 못하는지.

겨우 가까워지나 싶었던 거리는 이로써 다시 멀어져 버렸다. 이 와중에도 그녀는 탓하고 싶지 않아서 분을 삭이지 못한 자신만 책망하고 있던 그때.

‘담배 냄새 싫어한단다. 금연하자!’

컴퓨터 모니터 맨 밑, 책상에 앉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을 위치에 붙은 작은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이제 담배는 거의 생각나지도 않게 되었는데 다 부질없는 노력이 되어 버렸다.

쓰디쓴 실패감에 젖은 태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힘없이 손을 뻗어 포스트잇을 떼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 우리의 관계.

더 이상 노력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그동안 혼자 기대하고 혼자 무너지길 너무도 많이 반복했다.

태오는 의미를 잃어버린 포스트잇을 아무렇게나 구겨 놓고, 책상 서랍 맨 마지막 칸을 열었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넣어 두는 그곳 가장 아래쪽에 파묻혀 있는 건, 금연을 결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줄기차게 피워 대던 담배였다.

태오는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또 한 번 다지기 위해 담배를 다시 피우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박스로 주문한 금연 껌도 반품 시키든가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까 금연 첫날 김 대리한테 주었던 지포라이터도 받아 와야겠네.

나 정말 바보 같은 짓 많이 했구나.

몰려오는 한심스러움에 헛웃음을 치며, 태오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모두가 퇴근하고 없는 우드레일 퍼니쳐팩토리엔 쓸쓸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태오의 발소리였다.

터덜터덜―

기운이라곤 하나 없는 그의 걸음은 패잔병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그녀 하나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번번이 참패하고 있으니 패잔병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지.

정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태오의 피부를 스쳤다.

직원들의 차가 모두 빠져나가 공허한 주차장. 남아 있는 차는 오직 태오의 까만 세단뿐이었다.

“참나, 쟤도 주인 닮아서 혼자네…….”

태오는 씁쓸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흡연실로 발길을 옮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들끓어 오르던 오기 섞인 분노는 그래도 많이 가라앉아, 현재는 잔잔해진 상태였다.

그래, 이 여세를 몰아 담배 한 대만 딱 피우고 모든 걸 잊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다른 회사 사람들과 별반 다를 거 없이 한나봄을 대하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태오는 비장한 표정으로 흡연실 안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냄새는 그의 각오를 더욱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곧바로 담뱃갑 안에서 장초 한 개비를 꺼낸 태오는 입술 사이에 물었고, 그 안에 들어 있을 라이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김 대리한테 넘긴 지포라이터가 그 안에 들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아까 김 대리한테 라이터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해 놓고, 왜 다른 라이터를 챙겨 오지 않았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구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 태오는 잔뜩 미간을 구겼다.

“아, 어째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냐!”

그는 있는 대로 성질을 내 보았지만 들어 줄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답답해지기만 하는 가슴.

“하아…….”

긴 한숨을 내쉰 태오는 누가 흡연실에 놓고 갔을지 모를 싸구려 라이터라도 찾아보기 위해 바닥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아스팔트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들뿐, 라이터는커녕 성냥개비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쯤에서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반드시 담배를 피워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쓰레기통 안이라도 살펴보기로 했다.

매우 구질구질한 짓이지만, 깔끔 떠는 성격인 태오로서는 그만큼 필사적으로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허나 라이터를 기대하며 들여다본 쓰레기봉투.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찢어진 종이 쪼가리.

거기에 또박또박한 글씨로 적혀 있는 뜻밖의 이름 하나는.

[나봄이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을 발견해 버린 태오의 눈동자가 엷게 떨려 왔다.

그는 반쯤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고, 담뱃재가 묻은 종이 쪼가리를 집어 들었다. A4용지의 아랫부분 모서리로 보이는 그 조각은 언뜻 생각하기에 그녀가 써 놓은 편지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봄이가’ 라는 말을 맨 아래 적어 둘 리가 없잖아.

태오는 그 첫 번째 조각을 소중히 바닥에 내려 두고, 다시 쓰레기통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먹다 남긴 샌드위치, 납작해진 우유팩, 너덜너덜해진 전단지들 사이엔 비슷한 종이 쪼가리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끄집어내던 태오는 속이 답답해졌는지, 결국 커다란 쓰레기통을 들어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와르르 쏟아 버렸다.

넓게 펼쳐진 쓰레기 더미에서 속속들이 발견되는 찢겨진 편지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A4용지의 위쪽 모서리였을 조각이었다. 태오는 한동안 그 위에 적힌 글씨를 가만히 내려 보다가 이내 흐린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읊었다.

“단태오…… 팀장님에게…….”

역시 이거 내 편지 맞구나. 이번에는 내 기대가 틀리지 않았어.

태오는 지난번 꼭 편지를 다시 써 주겠다고 약속했던 나봄을 떠올렸다.

오늘 일로 그때 우리가 보냈던 저녁 시간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니가 이렇게 예쁜 글씨로 나를 위한 편지를 다시 써 준 걸 보면 다행히 너에게도 그 시간이 소중했었나 봐.

태오는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흩어진 편지 조각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잘게 찢긴 건 아니라서 퍼즐을 다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다 맞춰 놓고 난 후의 편지는 조각나 있을 때보다 험한 꼴이었다.

잔뜩 구겨지고 너덜너덜해진 데다가, 더러운 담뱃재까지 번져 버린 A4용지.

이게 바로 니가 나에게 처음으로 써 준 소중한 편지…….

그 앞에 쪼그려 앉은 태오는 한동안 물끄러미 편지를 바라보았다.

서러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에 읽히는 내용엔 그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솔직하게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이 고맙게 느껴지면 고맙게 느껴질수록 가슴은 저리듯 아파 왔다.

이걸 쓰면서 너는 내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오늘 이걸 갈기갈기 찢으면서도…… 너는 내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5년 전, 그녀는 사귄 지 2주 만에 그에게 난데없는 이별을 고해 왔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었던 그는 그 당시 작은 실수 하나 저지르지 않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잘못이 없다는 건 용서 받을 게 없다는 뜻이었고, 그건 끊어진 인연을 도로 이어 볼 여지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떠나는 너를 붙잡지도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

나는 비록 너에게 작은 실수 하나 하지 않았어도, 나만 엉망진창이 되도록 상처 받았어도.

그냥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너에게 달려갈래.

난 그냥 지금…….

“니가 너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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