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2017.06.16.
우드레일 본사.
정기 회의를 위해 이곳을 찾은 나봄의 걸음이 정문 앞에서 별안간 우뚝 멈춰 섰다.
회의 시간을 5분 남짓 앞두고 있는 그녀는 지금 당장 빠르게 달려가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도 모자랐으나, 아직 차준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서두르지를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토요일, 나봄에게 예상치 못한 절망을 선사한 차준은 그날 밤만 해도 다섯 통이 넘는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어떤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서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더니, 일요일엔 전화 대신 메시지 한 통을 남겨 놓았다.
[나봄아, 월요일 날 정기 회의 끝나고 한 시간만 내줘. 이렇게 다시 멀어지고 싶지 않아.]
그리고 오늘이 바로 정기 회의가 있는 그 월요일이었다.
나봄은 오늘 회의 시간에 어떤 표정으로 차준을 바라봐야 할지도, 회의가 끝나면 다가올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한봄 도어락의 기적과 같은 외주 협약에 차질을 빚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일을 하러 온 거야. 휘둘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돼.’
나봄은 한숨을 멈추고 애써 심기를 다졌다.
그런다고 해서 불안하게 뛰는 심장이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내비치는 모습만큼은 멀쩡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멈춰 두었던 걸음을 비장하게 떼어 내고는 우드레일 본사의 거대한 회전문으로 들어섰다.
허나 낑낑거리며 로비에 입성하자마자.
“오늘 회의 안건 중에서 본부장님이 반드시 우선적으로 결정해 주셔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통 관련해서 말인가요?”
“네, 기존에 협약되어 있던 업체가 몇 가지 문제를 일으켜서……”
“길어질 내용이라면 회의 마지막에 얘기해 보도록 하죠.”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 하나가 나봄의 귀에 꽂혀 들어왔다.
비록 그녀가 듣던 것보다 딱딱하고 사무적이긴 하지만 부드러움만큼은 여전한 차준의 목소리였다.
당황한 나봄은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구석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부터 서류를 보며 걸어오던 직원은 작은 그녀를 미처 보지 못했고.
“어이쿠!”
“엄마야!”
그대로 쾅 몸을 부딪혀 버리고 말았다. 조용히 사라져도 모자랄 판에 벌어진 요란스러운 충돌 사고였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풀나풀 떨어져 내리는 A4 용지들을 따라 그녀에게 쏟아졌다.
당황한 나봄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흐트러진 직원의 서류를 주워 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어디 다친 데는…….”
“저기, 제 서류 하나 밟고 계신데요.”
“어머! 죄송해요! 여기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손을 움직이고 싶은데 얇은 종이는 왜 이렇게 잡히질 않는 건지.
나봄은 제 뒤통수에 닿는 눈길들을 느끼며 바짝바짝 말라 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설상가상으로 파르르 떨리는 손끝은 제 마음대로 컨트롤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혼자만 피 말리고 있던 그때.
“……나봄아.”
기어이, 그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나봄의 손이 얼어붙은 듯 공중에 멈추었다.
“아…….”
나봄의 입술 새로 흐린 신음이 흘렀다. 그녀가 드러내는 당황감은 같이 있던 직원까지도 의아하게 여길 만큼 짙었다.
하지만 차준은 그런 나봄의 모습을 알면서도 느린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고,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도 따듯했다. 아무리 마음을 모질게 먹어도 외면할 수가 없을 만큼.
덕분에 더욱 표정 관리가 힘들어진 나봄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결이 부드러운 맑은 피부, 세상의 온기를 모두 품은 듯한 따듯한 시선, 늦봄의 향기가 날 것만 같은 마른 장밋빛 입술, 그리고 표정을 따라 움직이는 매력적인 눈물점까지…….
서운한 마음도 빛바래게 만드는 내가 좋아했던 당신의 얼굴.
나봄은 순식간에 새하얘져 버린 머릿속에서 겨우 한 마디를 찾아 꺼냈다.
“……안녕하세요.”
이게 웬 상황에 맞지 않는 인사람?
잠시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쥐고 흔드는 그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렸다.
“아, 아……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이 어색한 상황에서 가장 난처해진 건 나봄과 몸을 부딪쳤던 직원이었다.
그는 나봄이 정리하도록 놔두었던 서류를 재빨리 쓸어 모았고, 그녀가 꼭 쥐고 있던 한 장까지 조심스레 가져왔다.
“안녕하십니까! 선우차준 이사님! 저 이번에 홍보팀에 입사한 신입 사원 김동우라고 합니다!”
그런 뒤 씩씩한 목소리로 그가 인사를 건네자, 나봄에게 향해 있던 차준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 붙었다.
“아…… 신입이구나. 반가워요.”
“만나 뵐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동안 이사님 말씀은 줄곧……!”
“본부장.”
“예, 예?”
“저는 지금 기획팀 본부장입니다. 이사보다 그쪽이 더 듣기 편해요.”
오고 가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봄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묘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여유롭다 했더니, 이사님이었구나. 우리 회사의 걸걸한 본부장님과는 차원이 다른 직책이었어.
“네! 본부장님! 주의하겠습니다!”
직원은 벌떡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차준은 그런 그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입가에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부턴 앞 똑바로 보고 다니고.”
은근한 날이 서 있는 그 한 마디는 나봄을 위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 차준은 그를 보낸 뒤 나봄에게로 눈길을 둘 것이고 다정한 그 목소리로 물어볼 것이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너의 마음은 다 풀렸느냐고.
나봄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가만히 지금의 감정을 곱씹었다.
데이트 날 아무 설명 없이 맞선을 보러 간 차준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가 도움의 손길을 건넨 순간 가슴에 품고 있던 가시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그러니 이대로라면 죄책감 가득한 그의 눈을 마주한 채 괜찮다고 대답해 줄 수도 있겠지만…….
나봄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꺼내 놓은 괜찮다는 대답이 훗날 전부 나의 흉터가 되어 버린다는 건, 10년 전에 이미 깨달은 사실이었다.
“나봄아.”
아니나 다를까.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멀어지는 직원에게 가볍게 손짓을 한 차준은 곧바로 나봄의 이름을 불렀다.
나봄은 쭈그리고 있던 무릎을 천천히 펴고 일어서 차준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가 죄책감 가득한 눈빛으로 뻔한 멘트를 꺼내기 전에, 먼저 딱딱한 목소리를 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따 회의에서 뵙겠습니다.”
“…….”
“선우차준…… 본부장님.”
평소보다 굳어 있는 그녀가 그어 둔 선은 차준에게도 확실히 보였다.
차준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꺼내려 했으나, 나봄은 기다려 주지 않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치 그녀의 인사는 지금은 이러고 싶지 않다는 거절의 표현과 같았다.
그걸 알아들은 차준은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을 묻어 둔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때 어렴풋이 느낀 쓰라린 진실 하나.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만난 12년 전도, 이별하던 10년 전도, 그리고 어렵게 다시 연이 닿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 나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이따금 눈을 맞춰 줄 뿐이었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그 시간들마저도.
* * *
“안녕하십니까!”
커다란 회의실에 나봄의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미 30분 전부터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태오의 시선이 곧바로 문 쪽으로 옮겨 붙었다.
오다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오늘따라 살짝 붉어진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서는 나봄은 평소보다 더욱 굳어 있는 상태였다.
태오는 다소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봄을 지켜보다가 그녀가 제 쪽으로 몸을 틀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피할 이유는 없다는 건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허나 9년간의 짝사랑은 그에게 범죄자나 가지고 있을 법한 습관 몇 개를 남겨 두었다.
“크흠!”
점차 다가오는 그녀에게 인사 대신 괜한 헛기침을 하는 것도 그런 습관들 중 하나였다.
덕분에 반쯤 넋이 나가 있던 나봄은 뒤늦게 회의실 맨 뒤쪽 자리에 앉아 있는 태오를 발견했고, 이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단태오 팀장님.”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격식 있게 부른 이름.
태오는 떨리는 심장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 그래.”
하지만 그리 말하고 나니 혼자만 반말을 쓰는 건 꼭 하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태오는 곧바로 어색한 뒷말을 이어 붙였다.
“……요. 한나봄 씨. 아니, 팀장님.”
결국엔 살짝 횡설수설하는 꼴이 되어 버렸으나, 나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태오보다 세 칸 앞에 있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을 뿐.
태오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가방을 챙겨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앉고 싶지만, 그렇게 서슴없이 다가갔다가는 겁 많은 그녀가 놀랄 게 분명했다.
아무리 지난 주말에 편히 인사를 나눴다 하더라도 바로 옆자리까지 진출하는 건 진도가 너무 빠르지.
태오는 솟구치는 욕심을 애써 눌러두고 괜히 제 책상 위를 정리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한 직원이 명랑한 인사를 건네며 불청객의 등장을 알렸다.
뚜벅뚜벅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오늘따라 핏 좋은 정장을 잘 차려입은 선우차준이었다.
태오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대뜸 미간부터 좁혔다.
오늘의 차준에게는 평소 짓고 있던 재수 없는 눈웃음이 없는 상태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꼴 보기 싫고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싶은 사람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준은 회의실 강단 앞을 유유히 지나 태오 쪽으로 걸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오에게 다가오는 건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건 태오보다 세 칸 앞에 앉은 나봄의 곁일 테지.
그걸 깨닫자마자, 태오의 가슴 속엔 거침없는 열이 후욱 번져 올랐다.
내가 이 회사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짤리는 한이 있어도, 니가 한나봄 옆에 앉는 꼴은 절대 못 본다.
결심이 선 태오는 차준이 나봄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한 회의실에 터진 갑작스러운 의자 소리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요란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씩씩하게 걸음을 옮긴 태오는 든 게 별로 없는 가방을 나봄의 옆으로 홱 던져 버렸다.
타악!
“엄마야!”
난데없이 날아온 가방에 놀란 나봄의 시선이 차준이 다가오는 앞쪽이 아닌, 태오가 서 있는 뒤쪽으로 옮겨 붙었다.
당황한 그녀의 눈빛은 결코 곱지 않았으나 태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낮은 목소리를 힘주어 내뱉었다.
“한나…….”
하지만 첫 마디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잠시 멈추었다.
지금 그가 툭 내뱉으려던 말은.
‘한나봄, 정기 회의 전에 상의할 안건이 있는데 지금 니 옆으로 가도 되냐?’
또 무례한 반말이었고, 구질구질한 거짓말이었고,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한 질문형이었다.
또다시 비호감을 사기 전에 가까스로 입술을 멈춰 둔 태오는 찰나의 시간 동안 보다 신중한 멘트를 찾아 헤맸다.
“한나봄 팀장님.”
우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공식적인 호칭을 부르고, 그 뒤에 따라붙을 내용은 너무 구구절절하니까 생략하고.
“저 지금 그쪽으로 갑니다.”
던진다. 내 용건을.
“같은 팀이니까 같이 앉아야지.”
구차한 기색 없이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네?”
차준이 등장한 순간부터 그에게 쏠려 있던 나봄의 신경이 한순간에 태오를 향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그녀의 눈동자는 토끼처럼 동그래진 상태였다.
아직 허락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애초부터 동의를 구한 건 아니었으니, 태오는 긴 다리를 앞으로 뻗어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그런 그에게 고정되어 있는 또 다른 시선은 유달리 온도가 낮은 선우차준의 것.
태오는 그 안에 서린 날까지도 똑똑히 느끼고 있으면서 보란 듯이 나봄의 옆자리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직 근처로 오지 못한 차준을 또렷하게 직시하며 당당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
“본부장님도 오셨으니까 이제 드디어 회의 시작하겠군요.”
평범한 이 상황이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튀는 신경전이라는 건 나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조한 눈빛으로 차준의 눈치를 살피니, 그는 오히려 굳어 있던 입꼬리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죠.”
차준의 가벼운 목소리는 겉보기엔 조금도 위화감이 없어 보였다.
나봄은 그제야 심상치 않던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믿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를 오랜 시간 지켜봐 왔던 태오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웃을 때 공격력이 맥시멈으로 상승하는 선우차준은 지금 최대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 * *
우드레일 본사에서 치열하게 이뤄진 회의가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나봄이 회의 자료를 추스르며 마무리 멘트를 흘려보냈다. 딱히 누군가를 향해 건넨 인사는 아니었지만 태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선 나봄에게로 물끄러미 시선을 두었다.
다음 스케줄까지는 약 한 시간가량이 남았으니 괜찮으면 커피라도 한잔하지 않겠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막 입술을 떼어 내려 하자마자.
뚜벅 뚜벅 뚜벅―
여유롭고 규칙적인 걸음걸이가 태오의 신경을 거슬렀다. 그와 동시에 코끝을 자극하는 세련된 향기는 정체를 충분히 짐작 가게 만들었다.
진작 그 기척을 알아챈 나봄은 발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점차 가까워지는 선우차준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떡해! 회의 끝나고 얘기 좀 하자더니, 지금 여기서 할 건가 봐!’
긴장한 나봄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두 눈동자만 불안하게 떨었다.
허나 기어이 그녀가 앉은 책상 앞까지 다가와 멈춰선 차준은 나봄을 내려다보았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은 왠지 마음이 녹아들 만큼 달콤할 듯해서, 나봄은 벌써부터 눈빛을 일렁이고 말았다.
“단 팀장님.”
하지만 이윽고 벌어진 부드러운 입술로 호명된 건 차준이 마주하고 있는 나봄이 아닌 시종일관 인상 짓고 있던 태오였다.
태오는 아니꼬운 시선을 그대로 차준에게 고정시켰고.
“나랑 담배 피우러 갈래요?”
머지않아 흘러나온 차준의 물음에 피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저 담배 안 피웁니다.”
“거짓말. 며칠 전에도 봤는데, 뭐.”
“하…… 그냥 할 얘기가 있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그러긴 부끄러워서.”
한 마디를 지지 않는 차준의 태도는 태오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를 노려보는 눈빛에 더욱 날을 세우니, 차준은 눈꼬리를 더욱 둥글게 휘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옥상정원에서 봐요.”
살랑살랑.
그의 손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건 누가 봐도 도발과 다름이 없어서, 나봄조차 태오의 심기를 살필 정도였다.
두 남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있다가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될 것 같아서 마음만 조마조마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