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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협상-56화 (56/68)

56화.

아침이 밝았다. 그때까지 심부름센터에서 온 연락은 한 통도 없었다.

아침 식사로 백반을 주문해 먹었고, 해주는 억지로 밥 다섯 숟가락을 먹고서 다시 밥공기 뚜껑을 닫아야 했다.

언제 출발하게 될지 몰라 세수를 했고, 소지품을 꼼꼼하게 챙겨 두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부름센터에선 아직 정보를 찾는 중이라고 했고, 진섭의 핸드폰은 여전히 연결음은 가지만 받지 않았으며, 보혜에게도 연락이 오는 건 없었다.

시간은 흘러, 오후 1시 30분에 가까워진 시간,

지한이 회사 일로 윤과 통화하기 위해 잠시 복도로 나간 사이, 해주는 초조함에 창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은 채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녀는 점심 식사는 거르기로 했다.

아빠를 찾지 못할까 봐 극도로 불안해진 상태라, 밥 한 숟가락이라도 입에 넣는다면 이번엔 정말 체할 것 같았으니까.

해주가 누구에게라도 전화가 오길 바라며 핸드폰을 껐다 켜기를 반복할 때였다.

껐다가, 다시 켠 순간.

Rrrrr. Rrrrrr.

조용한 모텔방 안에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해주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화면을 번쩍이고 있었다.

낯선 번호. 왠지 엄마일 것 같다는 생각에 해주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뭘 어디야.

다그치는 해주의 목소리에 짜증스럽게 답변한 이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일 수 없었다. 남자 목소리였으니까.

“누구세요?”

-보혜 딸내미지?

“……누구신데요?”

-안보혜 너 찾아갔지?

“안 찾아왔고요. 누구시냐고요. 누구신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어요?”

-나 안보혜 서방.

“아, 박진오…….”

해주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남자의 이름을 뱉었다.

-그래. 너 나랑 몇 번 봤었지? 고딩 때. 그럼 내 성격 화끈한 거 알지? 거짓말하면 혼나. 안보혜 진짜 안 갔어?

해주는 머리를 굴렸다. 숨어 지내는 동안 엄마와 같이 살았던 남자. 이 남자라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엄마의 행방을 알아낼 단서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왜 절 만나러 와요?”

-너 재벌 집에 시집갔다며. 돈 뜯으러 갔겠지.

“안 왔어요. 전화도 안 왔고요.”

-썅. 그럼 어디로 토낀 거야? 안보혜가 마지막으로 만난 새끼가 너 부잣집에 시집갔다고 해서 당연히 너 찾아간 줄 알았지. 오늘처럼 토낄까 봐 전화번호 싹 복사해 놨는데 쓸모가 없네.

박진오는 여전했다. 필터 없이 생각하는 대로 뱉는 1차원적인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해주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런 사람은 살살 굴리면 엄마가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말해 줄 테니까.

“계속 같이 사셨으면 엄마 갈 만한 데 아실 거 아니에요.”

-멍청하네. 갈 만한 데는 진작 다 뒤져 봤지.

“엄마 고향도요?”

-고향?

“엄마 태어난 섬이라는 곳이요.”

-아. 거기? 거기로 갔나?

박진오도 거기까진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해주는 다시금 서둘러 말했다.

“엄마 태어난 섬 어딘 줄…….”

하지만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너무도 허무하게, 박진오가 전화를 그냥 끊어 버렸으니까.

해주는 당황하며 재빨리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그새 박진오는 통화 중이었다.

그때 때마침 문이 열렸고, 지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그의 걸음이 멈칫했다.

해주의 표정이 울먹이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에요?”

“엄마 남자 친구한테 전화 왔었어요. 엄마 고향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던 것 같은데 대답 못 듣고 끊겼어요. 근데 다시 걸어 봐도 받지를 않아요.”

불안하고 초조해도 여태 참아 왔던 해주는 박진오가 전화를 끊는 동시에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섬 이름 하나 알려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왜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건지.

엄마는 왜 나를 낳고는 버렸고, 박진오는 멋대로 전화했다가 끊고, 아빠는 내가 괜찮다는데 왜 매번 그렇게 고집스럽게 등을 돌린 건지.

2년 동안 얼굴 한 번 안 보여 줘서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운 기분 느끼게 했으면서, 왜 이제는 또 멋대로 사라져서 불안함까지 느끼게 하는 건지.

지한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해주를 품에 안았다.

“더 서두르라고 할게요. 내가 찾아 줄게요.”

해주는 그에게 안긴 채 진정해 보기 위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답답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속 시원히 울고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Rrrrr. Rrrrr.

그때였다. 또다시 핸드폰이 울린 것이.

이번엔 해주의 것이 아니었다. 지한의 핸드폰이 불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액정 화면에 뜬 이름에 지한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장 실장님.”

그녀는 지한을 쳐다보며 긴장했다.

찾았을까? 찾았기를.

간절히 원하던 그때, 지한이 말했다.

“방축도요. 알겠습니다. ……CCTV에 찍혔다고요. ……지금 출발할 테니 업데이트되는 정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지한이 전화를 끊자 해주는 보채듯 말했다.

“섬 이름 찾았대요? CCTV는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 고향, 방축도라는 섬이라네요. 어제 낮에 군산 톨게이트 지난 거 확인했고, 방축도로 가는 배 하루 2번 뜨는데 만약 섬에 들어간 거라면 오늘 낮에 들어갔을 거라네요. 오늘 마지막 배 2시에 있고요.”

“아, 방축도!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요.”

해주가 재빨리 핸드폰을 켜 지도를 보았다.

지금 시간은 1시 35분. 방축도까지는 15분 거리였다.

2시라니. 너무 촉박하긴 하지만, 나갈 준비를 다 마친 상태니 바로 출발하면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5분 걸린대요.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 보고 싶어요.”

“가 봐야죠. 군산 톨게이트 지났으니 맞을 확률이 커요. 시간 얼마 없으니 서둘러 출발하죠.”

***

지한과 해주는 빠르게 모텔을 빠져나와 방축도로 향하는 배가 있는 장자도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하지만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행사가 있는지 길목 한군데가 막혀 한참 서행했다.

해주가 시트에 기대앉지도 못한 채 애타는 마음으로 창밖을 보았다.

Rrrrr. Rrrrr.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까와 비슷한 번호이기에 박진오일까 싶어 해주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엄마?”

-너 아빠 찾지? 그 사람 나랑 있어.

태연한 엄마의 목소리에 해주는 울컥 화를 냈다.

“엄마 미쳤어? 아빠는. 무사한 거지?”

-내가 왜 미치니? 누구보다 멀쩡해. 진섭 씨도 무사하거든? 누굴 범죄자 취급이야?

“어디야. 엄마 지금…… 어디에 있어?”

해주는 순간 지금 방축도에 있냐고 물으려다가 말을 돌렸다.

혹여나 맞는다면, 제가 엄마의 행방을 눈치챘다는 걸 엄마가 안다면.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지니까.

-어디 있는지는 알 거 없고. 내가 지금 계좌 번호 하나 보낼 거야. 돈 입금해. 그럼 네 아빠 다시 그 낡아 빠진 병원에 돌려놓을 테니까.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데? 아빠 핸드폰 연락 안 되는데, 엄마가 가지고 있어? 지금 엄마 한 짓, 납치인 거 알지?”

-납치는 무슨. 네 아빠가 직접 목발 짚고 두 발로 내 차까지 걸어왔고, 차에 탔고, 난 그냥 운전한 게 단데.

보혜가 뻔뻔스럽게 대꾸한 뒤 말을 이었다.

-빨리 보내는 게 좋을 거야. 네 아빠가 무슨 고집인지 밥을 안 먹어. 입에 욱여넣어 줘도 다 밀어서 뱉어 내. 덕분에 차 더러워졌으니까 세차 비용까지 4억 보내.

“아빠한테 무슨 일 있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거야.”

해주의 으름장에 보혜는 코웃음을 쳤다.

-돈 앞에선 다 그래. 안 그런 것들이 바보지. 네 아빤 걱정 마. 네가 돈만 빨리 보내면 아무 일도 안 생길 테니까.

“아빠 병원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엄마 지금 어딘지 말해. 내가 찾아갈 거야.”

-돈부터. 입금 확인되면 말해 줄게.

“그럼 아빠 얼굴 보게 영상 통화라도 해. 안심하게.”

-싫다? 영상 통화까지 하면 내가 꼭 납치범이라도 되는 것 같잖아.

보혜가 짜증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자꾸 질질 끌지 말고 돈 보내. 엄마 노후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아까워하지 말고. 거기서 한 푼도 빼지 마. 그럼 네 아빠 밥을 먹든 안 먹든 위치 안 알려 줄 거니까.

할 말을 마친 보혜가 전화를 뚝 끊었다.

“여보세요? 엄마? 엄마!”

해주는 의미 없이 전화 끊긴 핸드폰에 소리치다가, 떨리는 손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을 걸어 보아도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 메시지만 반복될 뿐이었다.

“아, 진짜. 전화 좀 받아. 제발.”

해주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울먹이며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이번엔 지한이 그녀를 달래듯 손을 잡아 주었다.

“해주 씨, 진정해요. 이럴 때일수록 이성 찾아야 돼요. 전화 받을 리 없어요. 우리 방축도에 들어가 볼 거고, 시간 없으니까 괜한 일에 힘 빼지 말아요.”

해주는 그의 말에도 쉽게 진정하지 못하며 걱정했다.

“어떡해요. 아빠가 어제부터 밥 한 끼도 안 먹나 봐요. 계속 거부한대요.”

“최대한 빨리 찾아요. 위치 파악할 만한 소리, 다른 건 못 들었어요? 뱃소리라든지.”

“조금도요. 엄마 목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하, 아빠가 옆에 있다면 무슨 소리라도 냈을 텐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같이 있는 건 맞겠죠? 아빠 나쁜 선택 한 거 아니겠죠?”

“불순한 의도라도 어머니가 옆에 계시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해주 씨 아버지 몸 불편하셔서, 해주 씨가 우려하는 일은 쉽게 못 하실 테니 걱정 말아요.”

지한의 말에 그제야 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는 다리를 절었고, 민첩하고 정확하게 움직이지 못하기에.

그때, 차가 장자도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후 1시 59분. 간당간당한 시간에 차를 주차하기도 전에 해주가 먼저 차에서 내렸고, 그대로 매표소로 달려갔다.

“방축도로 가는 2시 배 타려고 하는데요.”

해주가 카드를 내밀자, 매표소 직원은 해주의 표정이 급박해 보였는지 아주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죠? 오늘 마감됐어요. 마지막 배라 오늘은 못 가시는데.”

[결혼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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