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276화 (외전 완결) (276/276)

외전 Ep 2. 하슈의 일기

(11) 새로운 변화

그 빛을 보고 안심이 되었기 때문일까? 은빛의 신력을 본 순간 내 머리마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슈와 로즈 누나가 투오란을 두고 곧바로 달려온 것도 그때였다.

“하슈!”

“오빠!! 으앙… 오빠!!”

하지만 난 일어날 수 없었다. 내 코와 귀에서 흐르는 뜨거운 건 점점 더 많이 흘러내렸고 몸은 더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목소리가 터진 것과 동시에 국경을 가득 메운 은빛 신력에 타르타로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뒷걸음질을 쳤고 이제 모두가 안전해졌으니까.

그리고 내가 눈을 한번 깜빡이기도 전에 콰과광……! 성난 파도가 모래사장을 전부 뒤엎듯 은빛의 신력은 타르타로의 몸을 강하게 구속했다. 이에 타르타로가 분노한 듯 무섭게 소리를 내 질렀다.

“아빠!!!”

그때 이슈가 모습을 드러낸 아빠를 불렀다. 타르타로를 구속한 아빠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멀리 떨어진 투오란을 한번, 울고 있는 로즈 누나를 한번. 그리고 이슈, 이어서 나.

왜일까? 날 본 순간 아빠의 시선이 아한 삼촌이 줬던 탱탱한 공처럼 빠르게 흔들린 건.

“유안, 아이들을 보호해라.”

그리고 아빠가 말하자 곧바로 유안 선생님이 나타나 우리 앞에 커다란 실드를 둘러 주었다.

“아빠!”

로즈 누나가 선생님을 발견하고 뛰어나가려 했지만, 선생님은 그보다 더 빠르게 소리쳤다.

“거기 있어라, 로즈!!”

내가 봐도 무서운 선생님의 고함에 로즈 누나가 우뚝 서서는 또다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루드.”

아빠의 언령이 들려온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그 목소리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이슈를 밀었을 때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가 나는 가장 차갑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언령을 뱉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저걸 분노라고 하는 걸까? 화아—! 순간 선생님의 실드 앞에 따뜻하고 강한 기운이 휘몰아치며 아빠의 넓은 등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나를 본 아빠의 눈은 파란 불꽃 같았다. 아니 번쩍이는 번개 같기도 하고, 성난 파도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는 파란 불꽃. 그것이 유독 나에게 오래 머무른 건 또 내 착각일까?

“루드!”

아빠가 곧바로 두 번째 언령을 외친 순간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을 제외한 국경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사라지기 시작한 건. 그 무섭고 커다란 타르타로의 몸도 예외는 아니었다.

“커허허아아아!”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오른 타르타로의 몸이 사정없이 이리저리 부딪히기 시작했다. 올려다보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타르타로도 아빠 앞에선 한 장의 낙엽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쪽을 바라본 순간. 아빠의 신력이 하늘 높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타르타로의 온몸을 덮쳤다. 쩌저적……!! 어디선가 세상이 두 조각이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내가 놀라 눈을 정확히 두 번 깜짝이자 쉬이이- 세상은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물론 쑥대밭이 된 주변과 아주 간단하게 죽은 타르타로를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그 순간 아빠가 뒤로 돌아섰다.

“아빠!”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슈가 아빠를 불렀다. 난 많이 아프고 무서웠다. 저벅저벅. 땅에 쓰러진 상태로 보니 더 긴 다리로 걸어오는 아빠를 보니 더 그랬다.

하지만 난 예전처럼 아빠가 내게 먼저 와 주길 바라지 않았다. 난 오빠였고 이슈는 동생이니까. 무서웠을 상황에 아빠가 동생을 먼저 달래 주는 건 당연… 응?

“하슈!”

한데 왜 아빠가 나한테 먼저 오는 걸까? 그리고.

“아빠! 오빠가 많이 다쳤어. 엉엉. 나 보호해 준다… 고… 엉엉… 오빠 죽으면 안 돼……!”

이슈는 왜 먼저 달려가지 않는 걸까. 그리고.

“로즈!”

모든 일이 끝난 후 주춤하던 로즈 누나를 발견한 유안 선생님도 곧바로 달려가 누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 순간 누나와 나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우리의 눈 맞춤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맙소사, 하슈!”

날 조심스레 들어 올린 아빠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태어나 아빠가 우는 건 처음 보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힘들지만, 말을 했다.

“죄송, 해요… 죄송…….”

와락. 하지만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빠가 날 꽉 안아 주셨기 때문이다.

아빠의 품에 안기자 이상하게 고통이 사라졌다. 이러다 몸이 녹아버리지 않을까 싶었던 열이 가라앉았고 시원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빠의 흐느낌과 함께 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늦어서… 그리고 고맙다. 우리 하슈. 이렇게… 살아 있어 주어서……. 신력의 반동을… 어린 몸으로… 버텨 주어서…….”

나는 아빠가 날 혼낼 줄 알았다. 왜 동생을 막지 않았느냐고. 동생을 위험하게 하면 어떡하냐고. 하지만 아빠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날 품에 안고 우셨고 언제나 우리를 번쩍 안아 올려 주던 단단한 두 팔을 떨고 계셨다.

\“그는 역대 가장 강하고 지혜로웠던 유파시드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무서… 웠어요……. 흑, 하지만… 으흑……. 동생을… 지키고 싶었는데……. 으앙!!!”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너무 무섭고 힘들고 아팠던 것들이 모두 눈물에 섞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날 안아 주는 아빠의 품 안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빠 내가 미안해!! 으앙. 오빠가… 흑… 신력이 불안정해서 검 못 배운다고 하길래… 흑……. 그럼 오빠 아플까 봐… 내가 누나 돼서 지켜주려고 한 건데… 으앙!!!”

이슈도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우느라 바빴지만, 그리고 몹시 지쳤지만, 이슈의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언제나 착하고 천사 같던 내 동생이 왜 갑자기 날 오빠라고 하지 않았던 건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결코 무시가 아니었다.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력의 불안정으로 인해 내가 아플까 봐. 그런 나를 지켜주고 싶어서 누나가 되기로 한 거였다.

그 순간 아프게 터져나갔던 구름들이 모두 몽실몽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구름들이 자꾸만 내 눈물을 먹고 자라났다.

그리고 아빠와 나와 이슈는 그날 서로를 안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함께 울었다. 꽤 시간이 지난 후 벌게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크게 웃었을 때까지 말이다.

아, 로즈 누나를 안은 유안 선생님이 운 건 비밀이다.

그리고 우리가 울고 있을 때 랠리 누나를 뒤늦게 데리고 온 아를 경이 투오란을 아주 소중하게 안아 들었는데, 누나가 그때 아를 경에게 다시 또 반한 것도 비밀. 헤헤.

온 디오니스를 뒤집어놓은 타르타로 탈출 사건은 그렇게 모두의 눈물과 작은 설렘으로 비로소 끝을 맞이했다.

모두가 잊지 못할 타르타로 일이 있고 나서 어느새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에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타르타로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다. 시내에서 엄마가 생포한 타르타로를 조사하던 중 아한 삼촌이 타르타로의 냄새로 뭘 만들어서 그들의 서식지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뒤는 뭐 다 알겠지? 분노한 디오니스의 모든 어른이 아, 젠에 사는 우리 외할아버지 가문인 헤리테온즈와 로즈의 외가인 룩센 공작가도 함께! 가서 수백 여 마리의 타르타로를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그것도 단 일주일 만에. 아, 물론 전 대륙이 놀라워했다. 헤헤.

그 후 엄마 아빠는 이제 우리에게 위험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위험이 없다 해도 엄마, 아빠처럼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연습하고 오는 길이고.

“하슈, 오늘도 오러 연습하고 온 거니? 멋지다, 우리 아들.”

아를 경과 오러 연습을 마치고 꼬마궁전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한 아빠가 곧바로 번쩍 들어 안아 주셨다. 그러고는 내 뺨에 아빠의 뺨을 마구 비볐다. 헤헤. 좋다.

아, 두 번째 변화는 바로 이거다. 나는 그 이후 신력이 안정적으로 변해 오러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관뒀다. 그리고 아빠와도 더욱더 매우 친해졌다. 헤헤.

이제 우린 자주 이렇게 부비부비도 하고 많은 이야기도 나눈다. 신력에 관해서도, 아빠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도!

하지만 아쉽게도 나랑 인사를 나누던 아빠는 머지않아 아한 삼촌에게 끌려갔다. 마법학원 첫 입학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슬프지 않다.

“하슈, 저녁에 올게. 꼭 같이 먹자!”

“나도 같이 올게!”

아한 삼촌한테 끌려가면서도 저녁 식사를 약속하는 아빠와 함께 온다는 아한 삼촌이 있으니까!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히히. 나는 그 기분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정원에 잠시 앉았다. 빨리 가서 씻어야 하지만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꽃 예쁘다, 이슈.”

이 목소리는 분명 투오란이었다. 휙-휙- 고개를 둘러보니 저—어기 정원 끝 꽃밭에 투오란이 작은 꽃을 꺾어 이슈의 머리에 꽂아 주고 있었다. 투오란이 꽃을 주니 이슈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투오란. 그날 널 두고 오빠한테 달려가서.”

이슈가 고개를 숙이고 말하니 투오란이 오늘따라 더욱 예쁘게 빛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돼, 넌. 이슈니까.”

투오란의 말에 이슈가 고개를 들고 투오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투오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갑자기 쪽!

…쪽? 쪽이라고? 나는 순간 너무 놀라 내 입을 손으로 막아 버렸다. 하지만 눈은 계속 내 동생과 친구를 지켜보았다. 이슈가 투오란의 볼에 쪽!을 한 다음에…….

“이젠 안 그럴 거야. 오빠는 강해질 테니까. 난… 투오란 옆에 있을래.”

이렇게 말하는 것도 봐 버렸다.

맙소사. 그러자 투오란이, 내 소중한 친구인 투오란의 눈이 순간 검게 변했다 다시 돌아왔다.

뭐야? 각인이 또 될 수 있는 거야? 한 사람에게? 나는 몰래 지켜보는 동생의 첫 연애에 심장이 너무 떨려 자리에서 벌떡!은 아니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리고 투오란과 이슈가 모르게 아주 조용조용 발을 옮겼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진짜로.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움직여 정원을 겨우 벗어났을 때.

“그날 고마웠어, 아를. 인사가 늦었지?”

왜 랠리 누나가 우리 꼬마궁전 앞에서 아를 경에게 저런 걸 주는 거지? 냉정하고 잘생기고 언제나 멋지지만 웃는 건 더 예쁜 우리 아를 경에게 색색의 꽃다발이라니.

곧 꽃을 건네받은 아를 경은 랠리 누나가 주는 꽃다발을 받더니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웃었어? 아를 경이?

“언제일지는 장담하지는 못해. 될 거라고도. 하지만… 나도 노력은… 해 볼게. 꽃이 예쁘니까.”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랠리 누나가… 맙소사,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여자는 절대 울리면 안 되는 거라고 했는데! 아, 물론 엄마도 남자는 절대 울리는 게 아니라고 이슈에 말했다. 아무튼, 아를 경이 누나를 울리다니……!

저렇게 착하고 예쁜 요정을 울리다니 정말 충격이다. 나는 다음 수업 때 아를 경에게 꼭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 주어야지 생각하면서 다시 조심히 뒷걸음질을 쳤다.

로즈가 랠리 누나와 아를 경이 함께 있는 걸 보면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최근 계속 둘이 같이 있으면 몰래 피하는 게 습관이 되기도 했다.

“뭐지, 오늘 너무 힘들어!”

나는 겨우 궁 안으로 들어온 다음에야 마음 편히 계단을 올라갔다.

내 방! 여기에 우리가 맞이한 세 번째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팅!”

“치이잉-!”

바로 저거다. 내 방에서 정답게 날갯짓하는 나팅 둘. 바로 팅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어른들이 타르타로의 서식지를 정리하며 잡혀 왔다가 기절해 있던 나팅을 발견해 데리고 왔는데, 알고 보니 그 나팅은 여자였고 곧바로 팅에게 반해 버렸다. 팅도 싫지는 않은지 부쩍 티격태격하며 잘 놀아 둘 다 내 방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 팅은 그날 이후 일주일이나 엄마의 마력 충전을 받은 후에야 깨어났고 그동안 나랑 이슈는 팅을 걱정하며 아주 많이 울었었다.

“치칭!!”

아, 팅의 여자친구 이름은 치칭. 치칭은 아직 어려서 진화가 안 됐는데 아빠의 신력을 엄청나게 좋아해 아빠가 진화시켜 주기로 했다. 아무튼, 알콩달콩 노는 팅과 치칭을 보며 나는 아주 많이 웃음이 새어 나오곤 한다.

나는 몽글몽글한 마음속 구름을 가득 담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내 땀을 잠시 식혀 주었다. 동시에 내 뒤에서 재미있게 노는 팅과 치칭의 소리, 창문 아래로 보이는 투오란과 이슈, 그리고 우는 랠리 누나와 당황한 얼굴로 달래주는 아를 경의 모습이 내 마음속 구름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때! 저 멀리서 우리 엄마도 보였다. 엄마는 저렇게 멀리서도 내가 보이는지 언제나처럼 예쁘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도 얼른 크게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나 이모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막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네 번째 변화 때문인데… 바로 내가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이슈와 내 동생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이슈는 여동생을, 나는 남동생을 원하고 있는데 그건 조금 더 지나 봐야 안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동생을 많이 사랑해 주기로 약속했다. 헤헤.

사실 얼마 전 타르타로와의 일을 떠올리면 난 여전히 무섭다. 가끔 꿈을 꿀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무서운 일이 지나고 생겨나는 변화들은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즐겁다.

그걸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이 마음을 꼭 잊지 말라고 했다. 언제나 힘든 일 뒤에는 기쁜 일도 같이 오는 거라고. 그래서 기쁜 일이 더 기쁘게 느껴지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엄마의 말을 생각하며 잠시 창문에 엎드렸다.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바람이 너무 좋았다. 똑똑.

그때 누군가 내 평화로운 시간에 노크를 했다. 누구지? 올 만한 사람들은 다 저기 아래에 있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들어와요.”

내 말과 동시에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쁜 보라색 드레스에 흰색 레이스 장갑을 낀 로즈 누나가 평소보다 더 새초롬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렇게 보니 누나는 진짜 아기 고양이를 닮았다.

“무슨 일이야, 누나?”

나는 방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누나에게 물었다. 그 순간 누나가 나를 바라보았는데 아픈 것인지 얼굴이 정말 빨개져 있었다. 그러고는 신발이 불편한지 자꾸 바닥을 콩콩, 발끝으로 두드려 댔다.

“하슈, 너한테 줄 게 있어. 할 말도 있고.”

누나가 평소보다 더 어른 같은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오며 말하더니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분홍색의 하트 모양 상자를.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왜인지 누나가 곧 울 것 같아 많이 아픈지 걱정이 되었다.

“널 좋아해, 하슈로트 드 디오니스.”

누나가 정말 많이 아픈……?

어? 뭐라고?

맙소사. 나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지만 누나가 아픈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라는 걸 알고 나니, 그리고 자꾸만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로 돌리는 누나를 보니 왜인지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었다. 아마 나에게도 다섯 번째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변화가 싫지 않다고 말이다. 지금 방 안으로 들어와 열이 나는 것 같은 로즈 누나를 식혀 주는 이 바람의 상쾌함이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검을 든 왕녀, 르베나 외전 完>

By.[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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