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Ep 2. 하슈의 일기
(10) 도와줘, 날 지켜 줘!
그 순간 아빠와 대화하지 못하고 토라진 상태로 헤어진 것, 엄마와 어젯밤 나누었던 굿나잇 키스, 칸 할아버지와 루시드 할아버지, 그리고 아드리안 할머니의 따뜻한 품, 언제나 나를 보면 번쩍 들어 안아 크게 웃으시는 제노스 선왕 할아버지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아마도 이런 게 죽는 건가 보다. 난 아마 이렇게 죽는 건가 보……!
“팅---!”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팅의 전신에서 엄마의 붉은 마력이 번개처럼 번쩍! 하고 퍼져나간 건. 이와 동시에 그 힘에 맞은 타르타로의 몸이 휘청이며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도 말이다.
“…흑. 팅!!”
나는 너무 놀라고 안심이 되어 크게 팅을 불렀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내게로 와 자신의 작은 몸을 볼에 비벼주던 팅은, 더 멋진 마법을 자랑하듯 작은 날개를 펼치며 팅팅, 하고 웃던 팅은 오지 않았다. 다만, 타르타로의 발과 부딪힌 그 순간, 마법으로 날 지켜준 작고 소중한 내 친구의 몸은 그대로 툭, 땅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팅!! 안 돼, 죽지 마. 팅!!!”
나는 그대로 팅을 안아 들고 크게 울어버렸다. 마음이 찢어지고 내 마음속 구름이 모두 터져나가 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까먹고 있었다. 아직 마력 충전이 끝나지 않은 팅은 마법을 쓰면 안 된다. 큰 마법일수록 몸에 무리를 줘 팅이 영원히 눈을 감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걸 떠올리자 정신을 잃은 팅을 끌어안은 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캬학!!”
어느새 몸을 일으킨 타르타로가 무서운 눈을 빛내며 우리를 향해 다시 커다란 앞발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 * *
“르베나.”
갑작스러운 보고에 놀란 루드바하가 르베나를 불렀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멍해 있던 르베나가 정신을 차린 듯 입술을 짓씹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들이 위험하다. 그러니 엄마로서의 르베나는 지금 당장 아이들을 찾으러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왕으로서의 르베나는, 디오니스를 책임지는 그녀는 그러면 안 된다. 이 순간 아이들보다 더 많은 디오니스의 시민들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그게 르베나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상황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폐하, 곧바로 루드바하 님과 국경으로 가세요. 시내는 칸님과 저, 그리고 아벨디온이 책임지고 맡겠습니다.”
아를이 말을 하는 순간, 왕으로서의 르베나가 아닌 엄마로서의 르베나가 해야 할 일을 해 달라 말하는 순간 르베나의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플 정도로 입술을 세게 물고 있던 르베나가 곧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에 맺힌 피가 지금 하려는 말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루드바하, 유안과 함께 국경으로 가세요. 아이들을 부탁해요.”
르베나의 첫 말에 아를과 칸, 심지어 유안마저 놀란 눈으로 르베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르베나는 바로 명령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벨모린 공작과 아를 경은 곧바로 아벨디온에 소식을 알리고 함께 시내로 가 주세요. 저는.”
그 순간 르베나가 루드바하와 아를, 칸과 유안 그리고 룬과 한 번씩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붉은 눈에 익숙한 결심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결심 말이다.
“가장 먼저 시내로 가서 백성들을 지키겠습니다.”
“르베나!”
르베나의 결정에 놀란 아를이 폐하라는 명칭도 잊은 채 곧바로 반대하려 하자 그녀가 곧장 이어 말했다.
“이건 디오니스 왕으로서의 명령입니다. 그러니 벨모린 공작과 아를, 그리고 룬 경은 곧장 아벨디온을 소집하러 가세요!”
여느 때보다 단호하게 명령을 내린 르베나는 곧장 루드바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를 마주 본 순간 애써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루드바하가 먼저 르베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히 넘겨 주며 입을 열었다.
“좋은 결정이에요, 르베나. 그리고 혹시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게 구해 올게요. 나 믿죠?”
아마도 이 순간. 아버지로서의 그는 르베나의 결정이 서운할 만도 했다. 그들의 아이들이 위험한데도 시내를 먼저 가겠다는 그녀의 결정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먼저 말을 해 준다. 이해한다고. 좋은 결정이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 순간마저 모두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루드바하가 고마워 르베나는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가만히 내리눌렀다.
그래서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할 수 있었다.
“믿어요. 믿기에 내 일을 할 수 있고요. 다니아는 보내도 타르타로 앞에 큰 소용이 없을 테니 아벨디온 일부를 곧장 국경으로 추가 투입할게요. 그리고… 다치지 말아요, 루드.”
르베나의 당부를 끝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풀려난 두 마리의 타르타로. 그것들로 분주했던 하슈의 방 앞은 잠시 후 그 누구의 인기척도 없이 적막만이 흘러갔다.
* * *
“흑… 흑…….”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조금 차가운 팅의 작은 몸이 내 두 손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내 주위가 온통 어두워지도록 큰 발을 들어 올린 타르타로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그 순간 뒤죽박죽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죽는 건가 보다. 진짜 이렇게. 하지만 이렇게 죽을 거라면 팅은 오지 말지. 팅은 그냥 엄마한테 있지. 이슈는 괜찮을까? 내가 죽은 후에도 소리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들이 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슈! 로즈 누나! 난 괜찮아. 그러니까 어른들이 올 때까지 우리 절대 소리 내지 말자. 흑… 지금부터야!!!”
내가 소리를 지른 그 순간 타르타로의 발이 그대로 나를 향해 내려왔다.
“하슈, 너의 힘을 믿으렴. 아빠가 물려준 너의 신력을 믿으렴. 언제고 네가 필요할 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첫 번째, 너의 신력들에 부탁하렴. 그 힘만은 절대 너를 외면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왜일까? 엄마가 언젠가 해 준 말이 생각나는 건.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되는 건.
‘도와줘! 아빠가 준 신력이잖아! 도와줘!! 살고 싶어! 팅이랑 날 지켜 줘!!!’
나는 온 힘을 다해 마음속에 소리쳤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슈가 들을까 봐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건. 내 몸의 모든 곳이 뜨거운 물처럼 끓기 시작한 건 말이다.
“억……!”
나는 그 느낌이 이상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썼다. 생전 처음 내 목에서 이상한 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느낌은 점점 강해져 내 손과 발, 곧 모든 곳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
그때였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나를 향해 내려오던 타르타로의 발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내 머리 바로 위에 내려와 있어 피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속도가 꽤 느려졌다. 그리고 내 몸에서 그런 타르타로의 발을 향해 환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팠다. 내 몸이 더없이 뜨거워지는 느낌. 언젠가 이슈와 늦게까지 눈싸움을 하다 앓아누웠을 때보다도 몸이 더 뜨거운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 견뎌내야, 지지 않아야 내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팅과 이슈, 투오란과 로즈 누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아주 작게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날 지켜줘.”
맞다, 난 이게 내 몸속에 있는 신력이라 확신했다. 불안정해서 절대 쓰면 안 된다고 했던 그것. 이슈가 검을 쓸 때 내뿜는 마력처럼 내 몸 안에 있는 그것. 잘못 쓰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던 신력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화악---! 갑자기 내 몸에서 더욱 환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나와 팅을 감싸며 내 머리 위로 천천히 떨어지는 타르타로의 발을 막아섰다.
휙-! 그리고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던 이상한 느낌도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다.
“윽!!”
나는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타르타로 발의 무게가 아파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난 죽지 않았다. 내 몸에서 나온 빛이, 내 눈동자와는 다른 아주 흰색의 빛이 타르타로의 발이 나를 향해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준 것이다.
“됐다!”
나는 그 순간 너무 좋아 뒤로 사사삭- 물러났다. 땅에 철퍼덕 앉은 채로 뒤로 물러서는 날 봤다면 이슈가 평생 놀렸겠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내 신력들이 나와 팅을 지켜 주었고 타르타로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콰과광……!
내가 뒤로 물러서자 곧바로 신력도 함께 없어지며 타르타로의 발이 맨땅에 꽂혀 버렸다. 신력이 엄청 세긴 했는지 그대로 땅에 꽂힌 자신의 발을 타르타로는 빼지도 못했다.
“멍청이!”
나는 얼른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다리가 조금 떨리긴 했지만, 신력이 날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타르타로의 발이 땅에 붙잡혀 있을 때 얼른 도망가야 했다. 그래서 겨우 일어나 서둘러 앞을 보고 뛰었을 때!
쾅!!!
“말도 안 돼!”
타르타로의 반대쪽 앞발이 내 몸의 바로 옆을 찍었고 내가 눈을 한번 깜빡거렸을 때 곧바로 두 번째 공격이 향해졌다.
“신력들아!”
난 급히 두 손을 치켜들고 내 신력들을 불렀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뜨거움이 한 번 더 지난 후 내 몸에서 다시 한번 신력이 터져 나와 타르타로의 발을 막아섰다. 하지만 나는 왜 내 신력이, 이렇게도 강한 신력이 불안정하다는 건지 그때 바로 알아 버렸다.
휘청. 두 번째 신력을 쓴 순간 내 코와 귀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내 몸이 땅으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력들은 버티기 힘들다는 듯 타르타로의 공격에 점점 밀리고 있었다. 눈이 감겼다. 몸이 너무 뜨겁고 아팠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너무 힘들었다. 더는 저 신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하슈!!”
그때였다 이슈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그 바위를 옮기고 나왔는지 모를 로즈 누나와 함께 기절한 투오란을 질질 끌고 엉망인 모습의 이슈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크하!!”
그 순간 내 신력은 와장창-! 깨져 버렸고 타르타로는 다시 한번 날 향해 달려들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번엔 발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이빨로 말이다. 자고 싶었다. 몸이 너무 아파서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 흑… 안 돼!!”
“하슈!!!”
울면서 뛰어오는 동생과 로즈 누나, 그리고 여전히 정신을 잃은 투오란을 보며 난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만약 너희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두 번째 방법을 알려줄게. 잘 들으렴. 그때엔, 정말 신력과 마력마저 쓸 수 없을 그때엔… 부르렴. 너희의 모든 힘을 다해서, 모든 염원을 담아서, 있는 힘껏 부르렴. 엄마와 아빠를.”
엄마가 해준 두 번째 방법이 번뜩 떠올라 나는 남은 모든 힘을 모아 소리쳤다.
“르베나 드 디오니스, 루드바하 라 비바시드!!! 도와주세요! 흑……!”
그 순간이었다. 내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은빛의 신력이 국경 전체를 뒤덮어 버린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