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Ep 2. 하슈의 일기
(9) 난 오빠니까
“폐하!!”
유안이 건넨 쪽지를 받아 읽고 칸이 곧바로 텔레포트를 하려는 순간, 룬이 갑자기 나타난 르베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평소라면 룬이 이곳에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그의 보고부터 들었을 르베나가 곧바로 칸에게 다가섰다.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짧은 질문, 그 순간조차 진심으로 두려움에 질린 르베나의 표정은 결단코 그곳의 누구도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 유안이 곧바로 하슈의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아마 하슈로트 왕자님께서 쪽지를 남기신 것 같은데 바람에 날린 탓인지 떨어져 있어 조금 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유안이 없어진 아이들을 생각하며 빠르게 이어 말했다.
“현재 디오니스 마법학원에 갇혀있던 타르타로 하나가 탈출했습니다. 아마도 왕자님과 공주님 그리고…….”
유안은 뒷말을 잇기 유독 힘든지 잠시 뜸을 들이다 내뱉었다.
“로즈와 투오란이 관련되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유안의 말을 듣자마자 루드바하가 곧장 자신의 신력을 광범위하게 펼쳤다. 그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퍼져나가는 그의 신력은 두려울 만큼 강했다.
“룬 경, 혹시 아이들을 발견했나요?”
이어 소름이 끼칠 만큼 가라앉은 루드바하의 목소리에 룬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타르타로가 갑자기 지하 감옥의 굴뚝을 뚫고 날아올랐습니다. 검기나 오러가 닿지 않을 만큼 빠르고 갑작스럽게 고도를 높여 놓치고 말았고요. 그래서 왕자님이나 공주님 외 어떠한 이도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룬의 말에 루드바하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원인은? 분명 내가 굴뚝에 결계를 쳐 놓았을 텐데요.”
이어진 루드바하의 질문에 룬이 참담한 얼굴로 답했다.
“다른 아벨디온이 급히 올라가 살펴보았는데 결계가… 깨져 있었습니다.”
룬의 말을 들은 르베나가 빠르게 말했다.
“투오란이에요. 투오란이 정령술로 바람을 이용했다면 결계의 상성이 잠시 흐트러질 수 있어요.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르베나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자 유안 역시 참담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투오란의 바람을 통해 아이들이 타르타로를 보러 갔겠군요.”
“자신이 힘을 쓸 수 없을 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죽입니다. 죽일 인간을 등에 태워 힘을 쓸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죽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요.”
그 순간 르베나와 아를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마 동시에 호안의 말을 떠올린 것 같았다. 이제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아를이 먼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방금 유파시드께 타르타로의 새로운 습성에 대해 듣고 왔습니다. 주변에 신력이나 마력이 가득하면 죽일 인간을 등에 태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죽인다고요.”
아를의 말을 듣는 순간 루드바하와 칸, 유안의 신력과 마력이 급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에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르베나가 곧장 사람들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루드바하, 룬과 함께 아벨디온을 데리고 마법학원 주변을 수색해 줘요. 당장이요!”
르베나의 말에 루드바하가 베일 듯 날카로워진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곧장 후벤 경과 함께 다니아를 이끌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국경 안 수비를 맡아주세요.”
르베나가 칸과 눈을 한번 맞춘 후, 이어 아를에게 말했다.
“아를, 우린 곧바로 타르타로가 사라졌다는 국경부터 찾아보도록 하자.”
그렇게 명령을 받은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려 할 때였다. 유안의 말이 모두를 붙잡은 건.
“그런데… 디오니스 마법학원에 붙잡힌 타르타로는 두 마리 아닙니까?”
들려온 그의 말에 모두의 빠른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타르타로가 마법학원을 탈출해 현재 시내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비명 섞인 외침이 그들이 서 있는 곳의 공기를 불안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 *
나는 큰 몸과 그만큼 큰 키로 여기저기를 살피며 우리를 찾는 타르타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느새 눈이 촉촉해진 이슈를 보며 말했다.
“이슈, 잘 들어. 타르타로는 시력이 안 좋아. 그러니까 여기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어른들이 올 때까지 숨어 있으면 안전할 거야.”
내 말에 이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여기 자리 없는데? 그럼 우리 중 한 사람은 어떡해?”
이슈의 말에 내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슈보 나무가 있다는 건 주위에 또 다른 하슈보 나무가 있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나는 다른 하슈보 나무 아래 숨을게. 그러니까 어른들 올 때까지 절대 나오면 안 돼. 알았지?”
내 말에 이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내가 검으로 물리칠게!’라고 말할 법한 이슈도 타르타로를 실제로 보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런 말이 쏙 사라지고 몸을 떠는 걸 보니.
나 또한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 말에 딴지 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슈가 예전 내 동생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뻤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얼른 들어가, 이슈.”
난 이슈에게 서둘러 말하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아주 큰 바위를 조금 시간을 들여 겨우겨우 끌고 왔다. 그리고 이슈의 머리 위 조금 남은 공간을 그 바위로 덮었다.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와 잎사귀들도 잔뜩 긁어모았다. 바위 위를 그것들로 덮기 위해.
자꾸만 여기저기를 파헤치며 다가오는 타르타로 때문에 손이 떨렸지만, 내 두려움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슈는 눈치가 빠른 아이니까.
그렇게 난 덩치가 큰 타르타로가 제법 유심히 주변을 헤치며 다가오는 동안 동생의 머리카락 하나조차 보이지 않게 구멍을 덮었다.
“하슈, 얼른 가서 숨어! 빨리!!”
아직도 내가 그곳에 있는 게 걸렸는지 이슈가 작은 틈을 통해 날 재촉했다. 나는 이슈가 불안하지 않게 곧바로 대답했다.
“응. 그리고 이슈.”
점점 타르타로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데 내가 가지 않고 말을 하자 이슈가 목소리를 줄이고 다그쳤다.
“뭐 하는 거야!! 빨리 가! 타르타로가 오잖아. 아니면 내가 갈까? 차라리 내가 갈게, 하슈가 여기 들어가. 이것 좀 열어줘, 하슈?”
나를 위해 본인이 다른 하슈보 나무로 가겠다는 이슈의 말에 내가 울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오빠로서 마지막 부탁인데 절대 나오면 안 돼. 알았지? 되도록 소리도 내지 말고.”
내 말에 순간 이슈의 말이 멎었다.
맞다. 아무리 싸우고 서로가 오빠니, 동생이니 아웅다웅해도 우린 쌍둥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서로의 눈빛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하슈, 혹시… 없는 거야?”
잔뜩 떨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말했다.
“있어, 조금 떨어진 곳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원래 하슈보 나무는 욕심쟁이라 혼자만 살아.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툭. 그 순간 내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슈. 어떤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 그래도 난 오빠니까… 네가 오빠라 아니라고 해도 오빠니까. 검을 못 배웠어도 오빠니까. 널 지킬게. 이슈는 언제까지고 내 동생이니까.”
난 그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가장 친한 친구인 투오란과 소중한 로즈 누나와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동생 이슈를 위험하지 않게 하려고.
“하슈!! 오빠!!!”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까지 뛰어왔을 때, 이슈가 나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내 발걸음이 우뚝 멈추고야 말았다. 타르타로가 이슈의 목소리를 듣고 하슈보 나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야! 이 멍청이 같은 타르타로야!!”
그래서 난 그보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의젓한 왕자로서 일곱 살이 된 후 단 한 번도 지른 적 없던 큰 소리를 모두 모아서.
그와 동시에 타르타로의 용광로 같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온몸의 신경이 주뼛 선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순간 나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슈를 지켜야 했다. 왜냐하면.
“내 동생 건드리지 말고 나한테 와, 이 멍청이야!”
이슈가 나를 오빠라고 다시 불러줬으니까.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무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 뒤로 쿵쿵 울리는 타르타로의 발걸음 소리가 천지를 울리는 것만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하슈보 나무랑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내 머릿속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도 난 멀리 가지 못한 채 타르타로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쾅……!
“으악!!”
순간 내가 달려가던 길의 바로 앞에 타르타로의 큰 발이 땅을 내리찍은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가 서 있는 땅이 엄청나게 흔들렸고 나는 뛰어가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고야 말았다.
“헉헉……!”
달려서인지 두려워서인지, 나는 넘어진 상태 그대로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흡!”
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내 입을 두 손으로 막아 버리고 말았다. 타르타로가 정확히 그 작고 붉은, 하지만 우리 엄마나 엄마가 내게 물려주신 아름다운 눈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얘졌고 입을 막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너무 두려웠다. 어떻게 해서든 아까 하슈보 나무에 숨을 걸 그랬다.
아니, 아니다. 그랬다가는 툭 튀어나온 내 머리에 우리가 모두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취소.
“오빠-!! 흑……. 하슈!!”
그 순간 멀리서 나를 부르는 이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큰 바위로 잘 막아놨는지 이슈는 그걸 쉽게 들어 올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울면서 날 찾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하슈 돌아와!! 어서!!”
겁쟁이 로즈 누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니 조금 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오는 소리를 찾듯 주변을 둘러보는 타르타로를 보며 나는 조금 용기가 생겼다.
“타르타로는 소리를 들어!! 그러니까 제발 조용히 해!! 나는 무사하다고!”
내가 소리치자 이슈와 로즈 누나의 소리가 바로 멈췄다. 잘 들렸나 보다. 하지만 타르타로의 커다란 얼굴은 어느새 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것이 내뿜는 숨은 불보다 뜨거워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것의 입에서는 이상한 비린내가 났다.
그 순간이었다.
휙---!! 저 높은 곳에서 타르타로의 앞발 하나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날 향해 떨어진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