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273화 (273/276)

외전 Ep 2. 하슈의 일기

(8) 불길한 예감이 들 때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유안은 꼬마 궁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처음 있었던 하슈의 방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로즈에 이어 하슈까지 뛰쳐나가고 난 후 아이들을 찾으러 후원에 갔지만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아이들이 작아서인지 유안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이슈 공주님과 투오란마저 보이지 않다니. 어떻게 된 거지?”

유안은 울고 나간 로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조금 초조해졌다. 젠으로 가는 텔레포트는 반드시 어른과 사용해야 하는데 혼자 아네벨 상회의 카드로 가버린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똑똑.

유안은 결국 잠시의 망설임 끝에 하슈의 방문을 노크했다. 어딜 찾아도 없다면 하슈의 방으로 돌아와 함께 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간식시간도 한참 전에 지났으니. 하지만 방 안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하슈로트 왕자님?”

유안이 소리 내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이 유안의 온몸을 기분 나쁘게 스쳐 갔다.

“왕자님 문을 열겠습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안이 하슈의 방문을 열 찰나였다.

“맙소사! 빨리 연락해!”

“루드바하님께선 어디 계시지?”

세츠로서 예민한 그의 신력에 소란스러움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가 나타난 건.

“여기 있었나, 유안!”

뭔가 평소보다 조금 급해 보이는 칸의 모습에 유안이 무슨 일이냐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물음이 더 빨랐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지? 빨리 대피시켜야 하는데.”

위이잉--- 칸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수도 전역에 대피 신호가 퍼지기 시작했다. 놀란 유안이 침착함을 가장하며 물었다.

“혹시 전쟁이라도 난 겁니까? 도대체 누가 디오니스를…….”

“아니, 타르타로가 탈출했다.”

곧이어 들려온 칸의 대답에 유안은 그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아니, 마법학원에 결계까지 쳐 가둬놓은 타르타로가 도대체 어떻게 말입니까?”

그 순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급해 보이는 얼굴의 룬 경이 다가와 디오니스의 공작인 칸에게 보고하기 시작한 건.

“현재 타르타로가 상공에서 방향을 바꿔 국경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수도 대피 신호는 지속하되 병력은 조금 여유 있게 꾸려나가도 될 듯합니다. 어차피 인명 피해가 없다면 생포가 목적이니까요.”

룬 경의 보고에 칸이 한시름 놓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도록 하지. 일단 지금 아를 경과 다한 경이 모두 없으니 아벨디온은 룬 경이 차출해 주도록. 그리고 내가 함께 가도록 하지. 우선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나서 말이네.”

칸의 말에 룬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최근 마법학원으로 근무지가 바뀌어 못 본 하슈 왕자님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루드바하를 닮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왕자님은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갑자기 유안이 허락도 없이 왕자님의 방에 들어가는 어이없는 장면을 봤다면 모를까.

“유안 님?”

그 모습에 룬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유안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이끌리듯 하슈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종이를 들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그 여유는 취소해야 할 것 같네요.”

룬과 칸이 영문 모를 표정으로 유안을 바라보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얼굴의 유안이 작은 종이를 든 손을 눈에 띄게 떨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 타르타로의 탈출에 아이들이 관련된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 칸이 재빨리 다가가 작은 종이를 낚아챘다. 언제나처럼 바르고 정갈한 세상 둘도 없이 소중한 손자, 하슈의 글씨로 쓰인 메모를.

* * *

“떨어진다, 모두 꽉 잡아!”

순식간에 바닥으로 향하는 타르타로의 등 위에서 나는 소리쳤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다. 정말 빠른 속도로, 아니 눈을 몇 번 깜짝하는 새 타르타로의 몸이 이미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 로즈 누나!”

나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땅을 보고 이슈와 로즈 누나를 불렀다. 물론 마음속으로 투오란도 불렀지만, 입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란 걸 꼭 말하고 싶다.

“이슈!”

투오란 역시 이슈를 불렀고 이슈와 로즈 누나는 서로를 꼭 안으며 눈을 감았다. 아니, 이 위험한 상황에 눈을 감으면 어떡하라는 거지! 나는 곧바로 투오란을 보며 소리쳤다.

“투오란, 부탁해!”

내 간단한 말에도 투오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요정의 말들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을 때였다. 주변에서 몰려든 바람들이 마치 푹신한 쿠션처럼 나와 이슈 그리고 로즈 누나를 감싼 건.

그 덕분에 우리는 착지한 타르타로보다 훨씬 앞에 무사히 내려졌다. 하지만.

“투오란!!”

우리를 보호하느라 정령술을 급하게 사용한 투오란의 몸은 큰 충격을 받으며 튕겨 나가고 말았다. 난 급히 투오란에게 달려갔다.

“투오란, 정신 차려!!!”

난 열심히 투오란을 불렀지만, 투오란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하슈! 저게 깨어나고 있어!!”

땅에 무식하게 착지한 타르타로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보고 이슈가 소리쳤다. 나는 얼른 투오란을 업었다.

아니, 솔직히 업지는 못했다. 진짜 너무 무거웠다. 이슬만 먹고 살았다더니 다 거짓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투오란을 질질 끌고 이슈와 로즈 누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투오란 좀 같이 옮기자! 빨리 저기로!”

내 말에 이슈와 로즈 누나가 투오란의 다리를 하나씩 잡았고 난 어깨를 든 채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음… 사실 빨리 뛰기는 힘들었고 빨리 걸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내가 가리킨 큰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래로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하슈보 나무야! 물을 저장하기 위해 뿌리로 큰 구멍을 뚫어놓는! 비가 온 지 꽤 됐으니까 안이 비어 있을 거야. 얼른 들어가 숨자!”

내 말에 이슈와 로즈 누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친 투오란부터 밀어 넣었다. 아주 깊지는 않은지 금방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 로즈 누나와 이슈가 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타르타로를 만나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야 한다. 타르타로는 시력이 좋지 않거든.”

무엇이든 알아야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자주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는 외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나도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이슈를 따라 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이슈가 갑자기 고개를 쑥 내밀고는 말했다.

“하슈, 어떡해… 자리가 없어.”

이슈의 울먹이는 소리에 나는 멈칫, 하고야 말았다.

하슈보 나무가 물을 저장하기 위해 뚫어놓는 구멍의 크기는 기껏해야 어른 하나가 들어가는 크기라도 했다. 그리고 거기에 벌써 세 명이나 들어갔다.

왜 자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을까? 그 순간 나와 이슈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쿵……! 그리고 그때 어느새 정신을 차린 타르타로가 우리를 찾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 * *

르베나와 아를은 젠의 지하 감옥을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 호안의 응접실에서 타르타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르베나, 늦어서 미안해요.”

그때 루드바하가 붉은색 융단에 싸인 작은 검을 들고 들어섰다. 검이 소중한 무엇이라도 되는지 꼭 껴안은 그의 훌쩍 큰 몸이 작은 검에 무척이나 대비되어 보였다.

“아니에요, 안 그래도 이제 가면 되겠다 했어요. 검은 잘 나왔어요?”

르베나의 미소 섞인 물음에 루드바하가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

“네. 하슈가 받으면 좋아할 것…!”

그 순간이었다. 르베나의 허리춤, 자신만의 공간에 잠들어 마력 충전을 하던 팅이 갑자기 깨어난 건.

“팅!!!”

이에 르베나가 놀라 팅을 보며 물었다.

“뭔가 불편하니, 팅? 하지만 마력 충전은 잘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저번처럼 또 쓰러질 거야.”

저번에도 마력 충전을 하다말고 하슈, 이슈와 놀다 기절한 팅을 붙들고 아이들은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르베나도 처음 본 팅의 모습에 놀라긴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충전을 많이 하니 괜찮아지긴 했지만, 팅은 르베나에게도 소중한 존재라 그런 모습은 또 보고 싶지 않았다.

“팅이 왜 그러죠, 르베나?”

갑작스러운 팅의 모습에 루드바하까지 서둘러 물었지만, 르베나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팅이 진화한 후 마력 충전을 며칠에 나눠서 하긴 하지만, 르베나의 마력을 먹는 동안은 항상 잠들어 있던 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주 깊게 잠든다면 모를까.

그 순간이었다.

“팅------------!”

소름이 주뼛 돋을 만한 비명을 지른 팅이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본 르베나와 루드바하, 그리고 아를의 전신에 불길한 소름이 돋기 시작한 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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