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Ep 2. 하슈의 일기
(7) 타르타로 비행의 비밀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나는 태어나 처음이라고 할 만큼 아주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도 이슈와 로즈 누나, 투오란의 머리카락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 투오란이 바람을 쓴 건 아닐까 점점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난 오빠였고 이슈가 위험한 곳에 가지 않게 보호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 빨리, 더 초조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에 궁을 떠났는데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누군가 내 메모를 발견하고 디오니스 마법학원으로 가고 있겠지? 잠시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속 구름들을 어지럽히던 불안도 작아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새로운 마법학원은 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경에 지어졌기 때문에 나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국경. 그곳에 엄청난 규모로 홀로 지어진 마법학원 앞 수풀 더미에서 난 드디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를 가르치는 이슈를 말이다.
“이슈!”
나는 이슈를 발견하자마자 있는 힘껏 부르고는 뛰어갔다. 아직 내 동생과 투오란, 로즈 누나가 무사하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 최근 이슈가 나를 오빠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버지가 이슈만 이뻐하는 것도 모두 상관이 없어질 만큼 말이다.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놀랐는지 이슈가 조금 움찔하기는 했지만 곧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달려가는 아주 잠깐 사이에도 아직 모두가 타르타로를 만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수백 번은 생각했다. 이슈가 다가서는 나를 보고 곧장 투오란과 로즈에게 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내 동생, 내 친구, 그리고 로즈 누나가 무사하니까.
하지만 난 그때도 방심하면 안 됐다. 왜냐하면, 내가 부지런히 뛰어 이슈와 투오란, 로즈 누나의 곁에 드디어 가까이 다가갔을 때.
“투오란, 지금이야!”
이슈가 아버지를 똑 닮은 눈을 빛내며 소리쳤고 그 순간 주변의 바람이 불어오더니 투오란과 이슈 그리고 로즈 누나와 나를 실은 바람은 곧바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흔적도 없이.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는 표현이 맞긴 한 걸까?
얼굴은 모두 바람에 휘날려 없어지는 기분이었고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던 우리 몸이 갑자기 휙-!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휘익-! 아래로 내려간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내 몸은 드디어 땅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 어둡고 축축하고 추운 느낌에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게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바람을 타고 움직였던 탓에 놀란 마음으로 소리쳤지만 내 말에 대답해야 할 세 명은 조용했다. 그게 이상해 쳐다보니 모두 넋을 잃은 채 위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위에 뭐가 있어?”
모두의 시선을 따라 나도 무심코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가만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눈을 발견했다.
“타르타로에 관한 건 아직 기밀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두 눈이 용암처럼 타오르고 몸이 성채만 한 크기라는 것, 그리고 신력과 마력, 오러 정도가 아니라면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것 정도입니다.”
어째서 내 눈앞에 유안 선생님이 말해주신 게 있는 걸까? 우리를 바라보는 두 눈은 어두운 곳에서도 용광로처럼 타올라 금방이라도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가 한참을 위로 올려다봐야 눈이 있는 거로 봐서는 몸도 성채만 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
“투오란 왜 저게 우리 바로 앞에 있어? 사이에 창살 같은 것도 없는데?”
이슈의 말에 나는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맞다, 그러니까 타르타로가 조금 멀리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 바로 코앞에 있는 걸까?
“미안, 아직 정령술이 익숙하지 않아서 굴뚝으로 들어온다고 온 건데 바로 이거 앞일 줄은 몰랐네.”
너무나 정직하고 태평한 투오란의 말에 나는 빠르게 말했다.
“투오란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빨리……!”
하지만 나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내가 말을 하는 순간 거대한 타르타로의 날개가 그보다 더 크고 넓게 펴지기 시작한 것이다.
* * *
“드래곤이랑 비슷하게 생겼네요?”
아를은 눈앞의 타르타로를 보며 물었다. 실제로 본 타르타로의 모습은 드래곤을 더 작게, 하지만 흉측하게 만들어 놓은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물음에 유파시드가 된 호안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처음엔 새끼 드래곤인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맹목적으로 사람을 해치며 내는 힘을 보고는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 번째로 등장한 타르타로. 르베나는 아를과 호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기만 해도 불길한 이것이 하슈와 이슈, 로즈와 투오란 같은 아이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라면 일찌감치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 아한과 가스트를 보내 놓긴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근데 왜 저희를 부르신 거죠? 타르타로라면 디오니스에도 있는데.”
얼마 전 루드바하가 데려온 타르타로를 떠올리며 르베나가 묻자 호안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물들었다.
“새로운 특징을 알았는데… 그게 서신으로 전하기엔 아직 기밀이라서요.”
호안의 말을 듣자 르베나와 아를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신으로 전하지도 못할 만큼의 비밀은 무엇일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순간 호안이 입을 열었다.
“타르타로가 인간에 대한 분노가 강한 건 알고 계시죠. 그런데… 이번 타르타로를 잡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인간들을 죽이는 방식에 관한 겁니다.”
호안의 말에 손가락 끝이 움찔 떨린 르베나가 되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세요.”
르베나의 말에 호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들은 보통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학살을 하는데 마력이나 신력 등으로 인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다른 방식을 취하더군요.”
“다른 방식이라뇨?”
옆에 있는 창살보다 차갑게 벼려진 아를의 금안을 보며 호안이 답했다.
“죽일 인간을 등에 태워 자신이 힘을 쓸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죽입니다. 그곳에 있는 인간들과 함께요.”
쿵쿵쿵……! 이상했다. 호안의 말은 분명 끔찍했다. 없는 분노가 샘솟을 정도로.
하지만 왜, 어째서 호안의 말을 듣는 순간 르베나 온몸의 마력들이 끔찍하고 불쾌한 비명을 질러대는 것만 같은지, 그때의 르베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 * *
“이, 이게 뭐야!!!”
로즈 누나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비명처럼 소리쳤지만,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조금 전, 감옥에서 타르타로는 갑자기 날개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본 투오란이 급히 바람을 불러오려 했지만 드래곤의 날갯짓에 정령의 힘이 깃든 바람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타르타로는 자신의 날개 끝으로 우리를 등에 태웠다. 그리고 곧바로 커다랗고 높은 굴뚝을 날아 마법학원의 천장을 부수고 날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마법학원과 디오니스의 궁이 개미만 하게 보일 정도로 우린 높이 날고 있었다.
“혹시 얘가 우리 편인 건 아닐까?”
이슈의 말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갑고 딱딱한 타르타로의 가죽을 붙잡으며 외쳤다.
“잊었어? 타르타로는 인간만 보면 죽이려 드는 신종 몬스터야. 얘기 왜 우리 편이야!”
내 말에 이슈가 대답했다. 신기한 건 이슈는 우리 중 가장 침착해 보였다는 거다.
“아니, 우릴 죽일 수도 있었는데 등에 태워 나가는 거 보면 같이 놀자는 거 아닐까 해서.”
나는 두렵고 두려운 순간에마저 내 말문을 막은 이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동생이지만 이슈는 정말… 정말 특이하다. 난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투오란에게 물었다.
“투오란, 여기서 바람으로 우리를 궁으로 데려갈 순 없어?”
내 말을 들은 투오란이 계속 감고 있던 눈을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계속하고 있는데 이상해. 불려오는 바람마다 타르타로의 날갯짓에 모두 날아가.”
투오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여기서 내려가지는 못한다는 소리구나.”
뭔가 결심을 내린 날 알아본 것인지 이슈가 우는 로즈 누나를 달래며 물었다.
“뭘 어떻게 하게?”
난 이슈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타르타로가 향하는 곳.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를 태운 타르타로가 어느새 디오니스 궁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길 지나면.
“이슈 목검 좀 줘.”
갑작스러운 내 말에 이슈가 고개를 갸웃해 나는 우는 로즈 누나와 투오란을 한 번씩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순 없어. 우리 잘못으로는 더더욱. 그러니까 빨리 줘.”
이슈는 내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일이 생각난 것인지 제법 빨리 목검을 건네주었다. 난 곧바로 내 로브 자락에서 꺼낸 제법 날카로운 목검과 이슈의 목검을 타르타로의 가죽에 박아 넣었다. 순간 고통을 느낀 것인지 타르타로의 몸이 아주 잠시 휘청였다.
그 탓에 바람이 반대로 불며 우리 몸이 날아가려 했다.
“나를 잡아!!”
나는 두 개의 목검을 온 힘을 다해 잡으며 소리쳤고, 이슈가 그런 내 몸을, 투오란이 이슈의 몸을, 그리고 아직도 울고 있는 로즈 누나가 투오란을 잡았다.
“너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내 행동에 방향을 바꾼 타르타로 때문에 죽을뻔한 이슈가 소리쳤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동생과 로즈 누나, 투오란을 바라본 후 외쳤다.
“꽉 잡아!”
그리고 타르타로 가죽에 꽂힌 목검을 남은 힘을 다 쥐어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치 말의 고삐를 잡을 때처럼, 타르타로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몬스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하슈, 너 지금 방향을 바꾸는 거야?”
바뀌는 바람의 방향을 느꼈는지 투오란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가능하다면 국경 밖으로 데려갈 거야. 이대로면 궁을 넘어 시내로 가게 돼. 그러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을 거야.”
말을 하면서도, 목검을 고삐처럼 조정하면서도 난 두려웠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딴곳으로 무서운 몬스터를 데려가는 건. 하지만 그보다 난 나의 의무를 더 생각했다. 그건 내 피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기에.
“우린 디오니스의 왕족이야.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둘 순 없어.”
내 말과 동시에 타르타로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이슈는 처음 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럼 우리는 누가 구해 주는데~~ 엉엉. 아빠!!”
로즈 누나는 계속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