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271화 (271/276)

외전 Ep 2. 하슈의 일기

(6) 우리, 타르타로 보러 갈래?

처음에는 슬퍼서 하늘을 보기 시작한 하슈는 오랫동안 고개를 다시 돌릴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자신을 너무 빤히 바라보는 로즈의 시선이 아주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슈, 주황색 장미의 꽃말이 뭔지 알아?”

하지만 다행히도 로즈가 말을 걸어 하슈는 웃으며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그러고 있었으면 목이 몹시 아플 뻔했다. 고개를 내리니 팅은 어느새 왼쪽 어깨로 올라가 잠들어 있었다.

“주황색 장미? 음…. 글쎄. 꽃말은 나보다 이슈가 더 잘 아는데.”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답을 주지 못해 하슈는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로즈는 뭐가 좋은지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하슈! 로즈!”

투오란이 그들을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온 건. 하슈는 며칠 만에 보는 투오란이 굉장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 전 그들 앞에서 엉엉 운 기억 때문에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오란은 사려가 깊은 요정다웠다.

“수업은 벌써 끝난 거야?”

하슈가 민망하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내 준 걸 보면 말이다. 하슈는 그게 고마워 웃어 보였다. 대답은 로즈가 대신했고.

“내가 허락 없이 하슈 방문 열고 들어갔다가 아빠한테 혼나고 나왔거든. 하슈가 그런 날 달래주려고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고 나온 거고.”

로즈의 눈가가 아직도 붉게 물들어 있는 걸 본 투오란이 눈꼬리를 축 내리며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괜찮아? 마음이 많이 아팠겠구나.”

이슬만 먹고 50년을 산 요정답게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따뜻한 투오란의 모습에 이슈가 살며시 눈을 흘겼다. 투오란이 그 시선에 살짝 몸을 떨었지만,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슈는 그제야 슬쩍 시선을 돌려 몰래 하슈를 바라보았다.

“팅!”

그때 잠에서 깨어난 팅이 이슈를 발견하고 날아올랐다. 이에 이슈가 하슈랑 눈이 마주칠까 싶어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는 다가온 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팅. 그러고 보니 엄마가 널 찾았어. 마력 충전 아직 안 끝났다며. 얼른 가봐. 헤, 귀여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슈는 팅이 귀여워 쉽사리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슈만큼이나 이슈 역시 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팅은 이슈의 말을 듣고 이슈에게 한 번, 하슈에게 한 번 다정한 입맞춤을 해 준 후 높이 날아갔다. 아마 르베나를 찾아 남은 마력 충전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팅이 멀리 날아간 걸 확인한 이슈의 눈빛이 빛난 건 그때였다.

“있지, 그거 알아?”

뭔가 음모를 꾸밀 때 이슈가 자주 짖는 표정임을 알기에 하슈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투오란과 로즈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기심을 빛낼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로즈만 그랬고 투오란은 이슬처럼 미소 지었다.

어쨌든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이슈가 잔뜩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디오니스 마법학원에 타르타로가 있대!”

생각지도 못한 이슈의 말에 로즈가 크게 놀라며 되물었다.

“타르타로? 그건 젠에 있는 거 아니야? 얼마 전에 호안 유파시드께서 두 마리 잡았다고 들었는데?”

로즈의 말에 이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전히 말을 하는 이슈의 모습은 아주 비밀스러웠다.

“근데 그게 좀 이상해서 아버지가 데려왔대. 얼마 전에 엄마랑 하는 대화 들었어!”

그리고 이어진 이슈의 말에 하슈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제법 엄하게 말했다.

“이슈. 어른들 대화 엿듣는 건 안 좋은 거야. 내가 여러 번 얘기했잖아.”

하지만 예상한 듯 곧바로 들려온 하슈의 잔소리에 이슈는 베- 혀를 내밀고는 투오란과 로즈에게 이어 말했다.

“아무튼, 난 지금 보러 갈 거야. 같이 갈 사람?”

엄마와 아버지가 들으셨다면 크게 혼날 이슈의 말에 하슈가 대신 크게 놀라 소리쳤다.

“미쳤어? 타르타로는 사람을 해쳐. 그걸 즐기는 신종 몬스터라고! 게다가 지능도 있어. 보러 갔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하슈의 말에 이슈가 작은 목검을 꺼내 들고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검도 챙겨 왔어. 무엇보다 밖에서 보기만 할 건데 뭐가 문제야? 그래서 갈 거야, 안 갈 거야?”

이슈의 물음에 하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보기만 한다 해도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도 조심하시는 타르타로를 보러 간다니……!

하지만 로즈와 투오란은 하슈와 의견이 달랐다.

“이슈가 가면 나는 가.”

“나도 가 볼래! 궁금해!”

하슈는 믿을 수 없는 다수의 의견에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 *

이슈, 투오란, 로즈 누나가 타르타로를 보겠다고 떠난 후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그곳은 현재 비어 있었고, 아벨디온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타르타로를 보러 갈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소리였다.

“가서 룬 경이나 랄프 경한테 걸려서 잡혀 오겠지, 뭐!”

나는 혼잣말을 하며 어느새 보이는 내 방문 손잡이를 서둘러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아주 끔찍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투오란은 아주 순수한 요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투오란의 각인 상대인 이슈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고.

“만약 이슈가 투오란한테 부탁하면 정령술로 데려다주는 거 아냐?”

나는 최근 랠리 누나한테 정령술을 배우기 시작한 투오란이 바람을 타고 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분명 내 앞에 있던 투오란이 눈을 한번 깜빡인 사이 저- 멀리 가 있었던 걸 말이다.

동시에 이상한 불안감이 내 발등을 뱀처럼 타고 오르는 것도 느껴졌다. 벌컥……! 나는 곧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급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오늘 젠에 볼일이 있어 이곳에 안 계셨고 증조할아버지인 제노스 전 폐하 역시 자칸으로 놀러 가신 상황이라 어른을 찾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오란이 바람을 타고 갔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 아이들을 말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곧 우리의 간식 시간이다. 그러니 누군가 들어와 이걸 보고 부모님께 알려주길 나는 간절히 바랐다. 조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이슈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찾아내는 거였고.

서둘러 메모를 쓴 후 나는 곧바로 옷장에서 내 맞춤 로브와 구석에 숨겨 놓은 것을 들고 방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그때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내가 방문을 닫으며 생긴 바람에 내 메모가 휘날려 땅에 떨어진 것을 그때, 확인했어야만 했다.

* * *

“타르타로가 날 수 있다는 말이야?”

아를의 물음에 르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젠의 국경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신종 몬스터 타르타로. 지능을 가지고 인간에 대한 원초적 증오를 가진 이 신종 몬스터에 대해 젠과 각 왕국은 합심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근 타르타로의 비행 능력을 알게 된 루드바하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그것을 사람이 없는 디오니스 마법학원으로 옮겨와 가두게 되었고 말이다.

아를 역시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라 르베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침착하던 르베나의 표정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아. 분명 이라곤이 미래 아이들 세대에 어떤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했어. 그게 이 타르타로와 관련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아를 역시 이라곤이 르베나에게 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르베나와 루드바하의 호위를 자청해 젠에 따라서 온 거기도 했고.

“그런데 루드바하 님은 도착하자마자 어딜 가신 거야?”

루드바하는 결혼 후 한시라도 르베나 곁에서 떨어지면 죽는 사람처럼 굴었다. 아를은 그런 그가 웃기기도 하고 그보다 많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젠에 오자마자 아를에게 르베나를 부탁하고는 사라진 것이다.

아를의 질문을 들은 르베나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젠의 한 대장간에 루드의 신력으로 만든 검을 주문해 놨나 봐. 그걸 쓰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하슈를 보호할 수 있대. 그거 찾으러 갔어.”

하슈가 검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려 바쁘게 움직이는 루드바하의 모습에 르베나가 행복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를은 아주 잠시 그런 르베나의 미소에 빠져 있다가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자 감쪽같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하슈 왕자님이 엄청나게 좋아하시겠네.”

아를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르베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화해의 선물로 주고 싶은가 봐. 그거 주면서 부자간의 대화도 나눈다고 하더라고.”

말을 마친 르베나는 상상만으로도 귀엽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르베나를 바라보던 아를의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피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아를은 누가 볼까 싶어 서둘러 표정을 바꾸고는 앞쪽으로 서늘한 눈빛을 돌렸다.

이미 정리된 감정이어야 한다. 적어도 그를 제외한 모두는 그렇게 알아야만 했다. 그러니 르베나를 두고 동요하는 일도, 그걸 내비치는 일도 더는 아를에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르베나는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아를, 랠리는 정말 좋은 요정이야.”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적어도 아를이 르베나에게만은 듣고 싶지 않은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를의 시선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흔들렸지만, 그는 서둘러 눈을 감아 동요를 감추었다. 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말했다.

“알아. 하지만 마음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르베나.”

아를의 음성이 제법 평이하게 전해진 탓일까? 르베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그냥 좋은 요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말을 마친 르베나가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갔다. 그런 르베나의 말에 아를은 나란히 걷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반 발자국 뒤에서 그녀를 뒤따랐다.

딱 이 정도의 거리. 언제나 그녀와의 거리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니 조금 전처럼 그녀와 나란히 걷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아를이 르베나와의 거리를 재고 있을 때였다.

“이제 곧 젠의 지하 감옥이야, 아를.”

르베나가 오늘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일깨워 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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