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268화 (268/276)

외전 Ep 2. 하슈의 일기

(3) 나는 왜 안아 주지 않아요?

[루드바하 라 비바시드. 그는 역대 가장 강하고 현명한 유파시드였으며 유일하게 생존한 전대 유파시드로 ‘비바시드’라는 칭호를 얻었다. 디오니스의 왕, 르베나 드 디오니스와 혼인하여 대륙 역사상 가장 큰 마법 실전 학원인…….]

툭. 나는 보던 책을 내렸다. 젠에 관해 공부하는 요즘, 찾아보는 책에는 전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나도 안다. 우리 아버지가 엄마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그런데 왜 나에겐 이런 불안정한 신력을 준 걸까.

“휴…….”

나는 못난 생각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외할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똑 닮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오히려 한숨 쉬는 게 더 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난 엄마를 닮았으니. 헤헤.

오늘은 왜인지 책에 읽히지 않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있는 동안은 편히 지내라는 건지 사서도 자리를 비워 주었다. 넓고 천장이 아주 높은 도서관에 혼자 있는 기분이 언제나 자유롭고 편안해 좋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조금 외로웠다.

팅이 없어서일까? 결국, 나는 천천히 도서관을 벗어났다. 그러자 하늘 위에 높이 뜬 햇님의 따스함이 내 마음속 구름을 조금 달래주었다.

꼬르륵-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배에서도 소리가 났다. 마침 오늘은 사나가 온다고 했으니 더 즐거운 일이 기다릴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렇게 궁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나는 아까 이슈와 아를 경이 훈련하던 연무장 앞에 도착했다. 왜인지 발걸음이 거기서 멈추었다. 이슈가 다치는 걸 막기 위해 깔린 초록의 잔디와 여기저기 놓인 목검들이 왜인지 예뻐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새 내 발은 그 안으로 날 이끌었다. 그리고 내 발밑에 떨어져 있는 목검 중 하나를 난 들어 올렸다. 이슈의 손이 온통 물집투성이였는데 인제 보니 목검도 상처투성이였다. 이슈와 내가 쌍둥이라 그런지 목검은 내 손에도 잘 맞았다.

오랜만에 쥐어 보는 검의 감촉은 단단했지만 왜인지 그것만으로 내가 강해진 느낌이었다.

사실 검을 배우게 될 기대감에 한동안 목검을 가지고 다니고 안고 잔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한번 휘둘러 볼까?”

나는 서둘러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검을 휘둘러보았다. 몇 번 곁눈질로 이슈가 휘두르는 걸 떠올리며.

근데 이거…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아무도 없는 연무장의 공기가 내가 휘두른 검을 뒤따르며 작은 소리를 내 나를 응원했다. 그 기분이 도서관에 있을 때나 팅과 놀 때와는 조금 달랐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그때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나는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목검이 내 발등으로 꽝! 떨어졌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이슈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슈.”

내가 놀라 이슈를 부르자 이슈가 떨어진 목검과 내 손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사람들은 이슈가 가끔 차가워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슈는 사실.

“내가 묻는 거 안 들려?”

항상 차갑다. 엄청나게. 나는 순간 허락도 받지 않고 이슈의 물건을 만진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슈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도 없길래 만졌어. 미안. 대신 오빠가 이거……!”

“너 내 오빠 아니라고 했지? 네가 왜 내 오빠야? 너랑 나랑 같은 날 태어났는데?”

하지만 이어진 이슈의 말에 내 미안함은 검은 구름 뒤로 모두 숨어버렸다. 그리고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라고? 잊었어? 내가 너보다 더 빨리 태어났잖아! 그러니까 내가 오빠지! 그리고 너 항상 나를 오빠라고 불렀잖아! 검을 배운 후부터 왜 그러는 거야!”

내 말에 이슈가 푸른 눈을 무섭게 빛내며 외쳤다.

“아한 삼촌이 더 먼저 만들어진 아이가 늦게 태어나는 거랬어. 그러니까 내가 누나지!!”

이슈의 말에 나는 조금 더 화가 났다. 왜 내가 오빠이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기분이 들지?

“그럴 수도 있다고 했지, 삼촌이 꼭 맞는 건 아니랬잖아! 그리고 어찌 됐든 내가 먼저 태어났고 엄마도, 아버지도 내가 오빠라고 했는데 너는 왜 아니라고 해!”

가슴이 들썩거렸다. 왜인지 이슈와 싸우는 지금 이슈가 더욱더 미웠다. 하지만 이슈는 나를 더 미워하나 보다. 아픈 말을 하는 걸 보면.

“몰라! 너 검도 못 쓰잖아. 나보다 약한 게 왜 오빠야? 오빠면 날 지켜줘야 하는데 네가 날 어떻게 지켜? 그러니까 넌… 악!”

이슈의 말에 나도 모르게 동생을 밀어 버렸다. 화가 났다. 검을 못 쓴다고 오빠가 아니라니. 지키지 못한다니. 나는, 난……!

“난 널 지킬 거야! 내가 오빠니까 검을 못 써도 널 지켜줄 거라……!”

“하슈!!”

그 순간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 건. 나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만 온몸이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슈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날 일러바쳤다.

“아빠! 하슈가 날 밀었어! 때리는 건 나쁜 거야!!!”

울먹이며 소리치는 이슈의 말에 나도 얼른 일렀다.

“하지만 이슈가 저보고 먼저 검도 못 쓰는……!”

“하슈, 누군가를 때리는 건 나쁜 거야. 동생을 때리는 건 더욱!”

하지만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가와 이슈를 안고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내 마음속 구름들이 점점 더 커진 건.

“제 말은 왜 안 들어 주세요?”

내 말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이슈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 구름이 아주아주 커지다가는 곧 모두 터져 버린 게 너무 아파서.

“왜 내 말은 들어주지 않아요? 왜 나는… 나는 이슈처럼 안아 주지 않아요?”

그 순간 구름이 터져 없어져 버린 자리에 비가 와서인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후원에서 나는 안아 주지 않았잖아요! 난 그때… 흑… 빙빙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흑… 오늘도, 오늘도 아버지는 왜 이슈만 안아 주는 거예요?”

나는 터져 나오는 마음속 비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소리가 커서인지 어느새 아를 경과 랠리 누나도 나왔지만 나는 계속 소리쳤다.

“왜 맨날 아버지는… 흐엉… 이슈만 안아줘요……! 흐엉, 나도… 나도 안기고 싶은데!!! 엉엉!”

나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연무장을 뛰쳐나가 버렸다. 뛰면서도 엉엉 우는 내 소리에 지나가는 시종, 시녀들이 걸음을 멈추고 놀라 말을 걸었지만 나는 너무 슬퍼 그들과 얘기할 수 없었다. 이슈가 밉다. 검을 배우고 나서부터 내가 오빠가 아니라고 하는 이슈가. 그래서 멀어져만 가는 이슈가 밉다. 아버지도 밉다. 모두가 현명하고 멋지다고 하지만 나만 미워하고 이슈만 이뻐하는 아버지가 너무 밉다.

“흐엉~~~!!”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동생과 아버지를 미워하는 내가 너무 나빠서 나는 마음속 비를 오랫동안 그치게 하지 못했다.

* * *

한바탕 하슈가 소리치고 울며 떠난 연무장. 루드바하는 난생처음 소리치며 우는 아들의 모습에 놀라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굳어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이슈에게 물었다.

“이슈, 혹시 오빠랑 무슨 일이 있었니? 사람을 때리는 건 어느 상황에서도 나쁘지만, 오빠가 왜 그랬을까?”

어느새 이슈를 내려놓고 시선을 맞추며 묻는 루드바하의 모습은 진지했다. 그래서 이슈는 작은 머리통을 아래로 숙이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루드바하가 부드러운 눈으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말해 주면 안 될까? 그래야 아빠가 오빠 마음 아픈 걸 달래줄 수 있을 것 같거든,”

루드바하의 말에 이슈가 작은 발을 꼼지락거리다가는 말했다.

“오빠가 내 검을 허락도 없이 만져서 내가 소리쳤어.”

뜻밖의 일에 루드바하가 조금 놀랐다. 하슈가 검을 만지다니.

“음… 다른 일은 없었니?”

루드바하의 다음 질문에 이슈가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아니라고 했어. 검을 안 배우면 약하니까. 오빠는 동생을 지켜 주는 건데 하슈는 검을 안 배우니까 약해서… 날 지켜 줄 수 없다고 했어.”

이슈의 말에 루드바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두 아이가 함께 검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이슈와는 달리 하슈의 신력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루드바하는 르베나와의 상의 끝에 하슈가 검을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어렵게 전했다.

검을 배우기로 한 이후 늘 목검을 안고 자던 하슈가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행히 아이는 선뜻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로 공부에만 매진하며 검에 대해 일체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였다. 이슈가 하슈를 오빠라고 인정하지 않은 건. 루드바하는 르베나와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이들이 서로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하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 버린 것 같았다.

“공주님, 저와 함께 점심 먹으러 갈까요?”

그때 랠리가 조심스레 이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슈가 눈치를 보듯 루드바하를 바라보자 루드바하가 다소 엄격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는 이슈가 넘어져 있어 아빠가 널 먼저 챙겼지만, 하슈는 이슈의 오빠가 맞아. 그러니까 다시는 오빠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빠를 만나면 꼭 사과했으면 좋겠고. 이제 랠리와 함께 가서 점심 먹으렴.”

루드바하의 말에 이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랠리가 이슈를 안아 들고는 사라졌다.

아이들이 모두 가고 나자 루드바하는 영혼이 나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완벽한 아빠는 아니지만 제법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사랑하는 아빠라 생각했는데. 하슈의 말이 대못처럼 가슴에 박혀왔기 때문이다.

“괜찮으십니까?”

그때 옆에서 말을 거는 아를이 아니었다면 루드바하는 언제까지고 그곳에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 루드바하 님.”

그리고 이어진 아를의 진지한 눈빛에 루드바하는 그와 함께 연무장을 떠났다. 하지만 연무장에서 멀어질수록 왜 안아 주지 않았냐고 울며 소리치던 하슈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덩달아 태어난 이후 가장 무거워진 그의 마음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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