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236화 (236/276)

236화

제4장. 르베이나 (56)

하늘에서 파벤더의 흑마법과 루드바하, 루시드의 신력이 충돌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곳으로부터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과 폭발이 일어났다. 펑..!

르베나는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텔레포트를 통해 루를 지키고 선 아벨디온을 향해 이동하며 외쳤다.

“아벨디온 방어!!!”

두 마법의 충돌, 그 여파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곳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르베나가 아벨디온을 향해 소리침과 동시에 아벨디온을 보호하기 위한 실드를 발동했다. 그녀의 몸에서 검붉은 마력이 피어올라 주변의 모두를 빠짐없이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피어 내린 수많은 연기가 사위를 자욱하게 감싼 것은 순식간이었다.

“콜록. 콜록!!”

“이게 뭐야!!”

허공에서의 마법 폭발로 인한 연기가 디오니스와 ‘보토니에’의 진영을 순식간에 가리자 다들 당황해하며 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가장 많은 타격을 입었어야 할 곳은 르베나의 마력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실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뿌옇게 피어난 연기로 시야가 흐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괜찮은 걸까요?”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룬의 말에 르베나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답했다.

“괜찮아. 루드바하와 루시드 님께서 이제야 망설임이 없어지신 듯하니. 그것보다 파벤더가 굳이 이 위에서 이런 난리를 일으킬 리 없어. 아마도 루 때문에……!”

그 순간이었다. 무심코 돌아본 그곳. 막사 안에 묶어놨음에도 굳이 파벤더를 보여주지 않으면 혀라도 깨물겠다는 루를 밖으로 데려와 묶어놓은 그곳에. 루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르베나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모두 주위를 경계해라! 루가 사라졌다!”

르베나가 곧장 마력으로 확장된 목소리로 주위에 경고했다. 이에 모든 아벨디온과 베이라들이 긴장한 채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전 르베나의 마력이 급히 물리적인 실드만 구현해 냈기 때문에 연기로 뿌얘진 사위 속에서 누군가를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루의 존재로 모두의 신경이 한층 더 날카로워 작은 부딪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르베나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곧바로 룬을 바라보자 룬과 루나타, 마룬 등의 아벨디온이 르베나의 곁을 감싸왔다. 이와 동시에 르베나가 눈을 감고 루의 기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린 생명력. 아주 작은 몸집. 언제나 방을 드나드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느낄 수 없었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행동. 르베나가 신경을 집중하며 루의 모습을 쫓았다.

수십만이 섞인 이곳에서, 연기로 시야가 좁아진 이곳에서. 루가 또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르베나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내야만 했다.

“……!”

순간 르베나가 번쩍 눈을 뜨며 외쳤다.

“모두 피해!”

그리고 르베나가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퍼져나온 가벼운 마력이 그녀의 주위를 보호하던 아벨디온을 멀리 날려 버렸다.

“흣……!”

그리고 르베나의 시선은 놀라 크게 떠진 채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르베나의 피를 머금은 채로 뾰족이 튀어나온 검은 칼날을 향해.

* * *

루드바하와 루시드 협공의 여파로 뒤로 밀려난 파벤더가 그들을 서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다. 나의 루가 첩자인 걸 알았다고 해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여유로운 파벤더 모습에 루드바하가 짐짓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아까 부상으로 인해 휴전했다고 하기엔 당신의 상태가 꽤 좋은 것 같군.”

루드바하의 말을 듣고 씩 웃어 보인 파벤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참 아까운 인재야. 조금만 생각을 달리했어도 나와 같은 길을 갈 수 있었는데 말이야.”

돌아온 파벤더의 말에 루드바하의 시선이 싸늘하게 굳자 그가 재미있다는 듯 히죽이며 말했다.

“그럼 그 좋은 머리로 좀 더 생각해 봐라. 나는 오늘은 위해 반백 년에 가까운 시간 공을 들였다. 더불어 내 연인에게 힘을 줬지. 나약한 몸으로도 저 디오니스의 진영은 언제든지 쉽게 빠져나올 힘을 말이야. 그런데 왜 굳이 루는 아직까지 적진인 디오니스에 남는 걸 선택했을까?”

파벤더의 말에 루드바하가 무심코 미간을 구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어차피 그녀에게 줬다는 힘이라 봤자 그녀가 죽으면 다른 몸으로 옮겨갈 수 있는 흑마법 정도겠지. 신력이 넘치는 너와는 달리 그렇게 살아왔을테니. 아까 그녀의 손가락이 검처럼 날카로웠던 건 옆에 있던 세츠의 힘이고. 너의 실드는 이미 깨졌으니 무용지물. 그러니 저기서 궁지에라도 몰리면……!”

순간 루드바하의 시선이 갑자기 깨달은 진실에 길을 잃고 흔들리자 파벤더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진짜 총명한 유파시드로군. 맞아, 맞아!! 루는 시기를 보고 있는 거다.”

파벤더의 말에 루드바하의 크게 떠진 눈이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제발 그에게서 나올 말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길 바라며. 하지만 그의 기대는 파벤더가 입을 벌림과 동시에 공기 중의 희뿌연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르베나 왕녀의 몸에 들어갈 순간을 말이지.”

그 순간 루시드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루드! 루라는 여인의 몸에서……!”

그의 외침에 루드바하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아래를 향했다. 조금 전 충돌로 연기가 자욱한 아래는 사실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오니스의 진영 한가운데에서 또렷한 ‘보토니에’의 힘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늘에서도 보일만큼 강하고 뚜렷한 힘. 이에 루드바하가 곧장 그리로 향하려 하자 파벤더의 마법이 가볍게 그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지금이 그녀가 저걸 쓸 시기라면 내가 짐 하나는 덜어 줘야겠지.”

곧 파벤더의 몸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크기의 마법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아주 옅고 아주 빠르게 루드바하와 루시드의 몸을 감쌌고, 그보다 강하게 그들의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건 풀기 어려울 거다. 나도 너희 곁에서 떨어지지 못할 만큼 강한 흑마법이니. 그러니 나의 연인이 ‘보토니에’의 힘으로 르베나 왕녀를 죽이고 내게 올 때까지… 그때까지만 참거라.”

파벤더의 말에 몸을 구속하고 신력의 방출까지 막은 그의 흑마법을 확인한 루드바하가 차분함을 가장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초조함은 쉽게 가려지지가 안았다.

“루는 지금 일반 인간의 몸을 빌린 것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흑마법의 힘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 몸은 허물어질텐데?”

루가 르베나를 죽일 것이라 말했음에도, 현재 흑마법을 쓰고 있다 하여도, 루드바하가 가까스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 마지막 희망을 품고 물어오는 루드바하의 모습에 파벤더가 조소하며 말했다.

“맞다, 그 힘을 쓰면 루의 몸은 부서지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가 곧바로 르베나 왕녀의 몸에 들어가면 되니. 지금 그녀가 사용하는 것은 그것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거든, 큭.”

파벤더의 말에 루드바하의 몸이 움찔 떨리고 그의 눈에 새파란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 눈을 보고 한번 웃어 보인 파벤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너에게는 좀 미안하게 되었구나. 나는 당연히 내 연인, 루를 안고 사랑하는 거겠지만.”

순간 루드바하의 몸에서 거센 신력이 나오려 함과 동시에 그를 결박한 파벤더의 힘과 부딪혔다. 하지만 그 신력들은 흑마법의 힘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반발하며 루드바하에게 고통만을 주었다.

“루드!”

그 모습을 보고 외친 루시드의 괴로운 얼굴을 보며 여유롭게 웃은 파벤더가 붉은 입술을 핥으며 마저 말했다.

“너에겐 내가 르베나 왕녀를 안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아, 이제 시작이군.”

곧 루드바하 전신의 신력들이 한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파벤더를 따라 시선을 내린 대지. 어느새 조금 안개가 걷힌 그 아래. 루의 칼날에 꿰뚫린 그녀, 르베나가 보였기 때문이다.

* * *

“왕녀님!!!”

루의 칼을 맞은 르베나를 본 룬이 놀라 외침과 동시에 그의 몸이 재빨리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캉!!! 하지만 그도 잠시. 강한 검기를 담아 내리친 그의 검은 여린 루의 몸에 채 닿지도 못한 채 튕겨 나올 뿐이었다.

“..어떻게!!”

놀란 룬이 얼얼한 손과 땅에 처박힌 검, 그리고 르베나에게 검을 꽂은 루와 그 검에 맞은 르베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차분히 시선을 들어 올린 르베나가 룬의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한 아벨디온을 보며 말했다.

“지금 루는 흑마법의 힘으로 전신을 강하게 보호받고 있다. 그러니 모두 나서지 말고 물러서도록.”

“하지만 왕녀님!!!”

“안 됩니다! 피가……!”

르베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 명의 아벨디온이 모두 형형한 기세로 검기를 치켜들며 반발했다. 루의 검은 작았지만 르베나의 배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양은 절대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령이다.”

르베나의 단 한 마디에 모든 인원은 일제히 검을 내렸다. 그리고 어느새 자욱했던 안개가 세츠와 베이라들의 힘으로 완전히 걷히자 르베나를 확인한 사람들이 놀라 몰려들기 시작했다.

“젠장, 르베나!!”

멀리서 빠르게 달려오는 아를이 그랬고,

“르베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순식간에 이동한 칸이 그랬다.

그 외에도 바흐란과 유안, 라웅과 후벤 등 많은 이들이 놀라 르베나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루가 히죽 웃으며 좀 더 깊이 칼을 밀어 넣었다.

“하… 읏!”

참으려 했지만 생각보다 강렬한 통증이 짧은 신음으로 퍼지자 루가 르베나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거 알아요, 왕녀님? 세상에는 핑초잎이라는 약재가 있어요.”

굳어진 르베나의 얼굴을 확인한 루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흑마법이 빚어낸 끔찍한 통증에 힘들어하는 르베나가 혹시라도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까 봐.

“꾸준히 한 사람에게 먹이면, 내 영혼에 각인된 흑마법으로.”

잠시 말을 끊은 루의 입가가 길게 늘여졌다.

“그 사람의 몸에 내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마법의 식물이 말이에요.”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을 뚫고 들려온 루의 말에 르베나의 몸이 흠칫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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