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제4장. 르베이나 (26)
“데자르 사막이 확실한가?”
르베나는 텔레포트를 통해 도착한 지역에 발이 닿기가 무섭게 말을 달렸다. 동시에 자신의 오른쪽에서 함께 말을 달리는 다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네. 데자르 사막 절벽에 있는 동굴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떠나기 전 아를이 말한 목적지를 기억한 다한의 답변에 르베나가 제 왼쪽에서 말을 달리는 칸과 루안을 향해 물었다.
“데자르 사막에 특이점이 있을까요?”
불안함 때문인지 말을 달리는 중에도 피로 물든 르베나의 입술을 안타깝게 바라본 칸이 말했다.
“아마 르베나 네가 아는 것 정도가 다일 거다. 하지만 내 인장까지 흉내 내 아를 경과 아벨디온 일부를 불러낸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함정이 있을 게 분명해. 그게 걱정되는구나.”
칸의 말에 르베나가 말을 더욱 재촉하며 빠르게 내달렸다. 데자르 사막의 지형부터는 마법 간섭이 심해 함부로 텔레포트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 바로 말이었기 때문이다.
“헬리오가 정말 ‘보토니에’와 연관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은 침통하게 전해진 다한의 말에 르베나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났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르베나가 헬리오를 디오니스로 데려온 것. 그 아이에게 ‘다니아’를 쉽게 노출했던 것. 이 모두가 사실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다니아’를 노린다고 알려진 그들이라면. 그리고 정말 헬리오가 그들과 관련되어 있다면.
분명 그들은 노출된 ‘다니아’를 찾기위해 헬리오를 이용할 테고 디오니스는 이를 역추적하면 그들을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을 테니.
순간 칸이 억눌린 화를 참듯 조금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그들이 ‘다니아’에 달아놓은 추적 장치가 내 마력으로만 감지된다는 것까지 파악했다는 사실이다.”
칸의 뒷말을 듣고 싸늘한 자안을 빛낸 루안이 이어 말했다.
“그건 얼마 전 저희가 보낸 서신이 한꺼번에 없어진 것과 관련 있을 테고요. 다르게 말하면 저희 아네벨에 쥐새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루안의 말을 들은 칸이 초조해하는 르베나를 보고 말고삐를 더 세게 잡았다.
“달걀 찾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따위 서신을 누가 가로챌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다니아’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쓴 것이건만 이 서신이 중간에서 빼돌려질 줄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의 다른 서신들도 모두 함께 사라졌지만.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 다만 그 서신을 빼돌린 자로 인해 아를이나… 아벨디온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자는 아마도 그날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죽게 되겠죠.”
조금 전 디오니스에서 자신을 사칭한 서신의 존재를 파악한 칸은 가장 먼저 상회 본부로 연락을 했었다.
“의심되는 모든 이들을 가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범인을 색출해라.”
르베나가 들었다면 지나치게 놀랄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칸이었지만 그는 이 얘기를 그녀에게 전하지 않았다. 이미 아를과 아벨디온의 걱정으로 초조해진 르베나에게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칸을 한번 흘깃 본 루안이 그를 대신해 르베나에게 말을 전했다.
“아를 경과 아벨디온은 강합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왕녀님.”
루안의 위안에 르베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동시에 이미 터져 피가 나는 입술을 한 번 더 세게 깨물었다. 그들의 본거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날을 위해 르베나는 꼬박 2년이나 아를과 대척하면서까지 헬리오의 도둑질을 눈감고 그 아이를 보살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국, 헬리오가 의도적으로 르베나에게 접근했음을 이제 그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젠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첫 만남 또한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 중 하나였던 것까지. 아네벨에 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까지도 말이다.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더 이상 그 모든 건 르베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 전 르베나의 말에 상처받고 씁쓸하게 웃던 아를의 얼굴만이 지금 르베나의 모든 가치였고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들려온 르베나의 혼잣말에 다한의 차분한 눈에도 날카로운 예기가 어렸다.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조금은 굳어있는 얼굴. 르베나는 더 세게 말을 몰며 시선의 끝에 보이는 데자르 사막을 향해 나아갔다.
* * *
디오니스와 자칸, 그 사이에 존재하는 척박한 땅. 데자르 사막.
데자르의 땅은 엄연히 사막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은 그곳을 사막이라 불렀다.
어느 생명도 자라지 않고 누구도 정착할 수 없는 땅.
그곳이 바로 데자르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곳은 어느 때는 자칸으로 향하는 이들의 메마른 휴식처가 되었고 어떤 때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무리들의 무덤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를과 아벨디온이 함정에 빠진 채 그곳에 있다.
그 때,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데자르 사막의 척박한 땅과 그 끝에 위치한 가파른 절벽이 드디어 르베나의 시야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먼저 갑니다.”
절벽이 눈에 들어온 순간 르베나가 말을 버리고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시전해 사라져 버렸다.
이에 그 모습을 본 다한이 놀라 소리쳤다.
“왕녀님, 이곳은 마법 간섭이……!”
하지만 이미 르베나는 그곳에 없었다. 허전한 빈자리와 자신을 몰던 르베나가 사라져 당황한 말을 달래며 다한은 미처 맺지 못한 말을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얼른 말에서 내렸다.
“데자르 사막은 마법의 간섭이 심한… 곳인 걸 아시잖습니까!”
다한의 억눌린 음성이 조금은 따뜻한 정오의 햇살을 타고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말에서 내려 그의 곁으로 다가온 칸이 다한을 이내 자신의 마력으로 감싸며 말했다.
“이 정도 거리는 괜찮겠지 뭐. 그래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나.”
곧 칸의 마력과 함께 그들마저 사라지자 주인 없는 말 세 마리만이 히잉-! 황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메마른 바닥을 걷어찰 뿐이었다.
낮이 되어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의 뜨거움에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룬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동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웅-우웅--.
동굴 속에 밖으로 통하는 구멍이라도 있는 건지 계속해서 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작지 않게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을 여실히 뽐내는 중이었다.
“아… 이건 좀… 그런데.”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자르 사막의 황량한 바닥이 끝나는 지점. 그 지점은 절벽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절벽에는 수많은 동굴들이 존재했다.
아를과 함께 ‘다니아’를 추적하러 온 열 명의 아벨디온은 하나하나 검기를 빛내며 조심스레 그중 한 동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위에서 세 번째 동굴로 들어가면 됩니다.]
칸의 마력 탐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확한가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서신에는 자세한 위치가 지목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를은 그에 대한 믿음이 깊었던 만큼 조금의 의심마저 지운 채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룬의 옆에서 랄프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룬 경… 저, 정말 여기를 저희가 들어가야 한단 말씀… 입니까?”
덜덜 떠는 목소리에 힘조차 주지 못하며 랄프가 겨우 말하자 룬이 약간의 짜증을 담아 말했다.
“맞다고 벌써 몇 번을 얘기해!! 그것보다 이것 좀 놔. 너 때문에 검이 자꾸 흔들리잖아!!”
계속해서 제 팔을 잡아당기는 랄프 때문에 짜증이 난 룬의 말에 랄프가 곧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무서운데 어떡합니까! 제가 다 괜찮은데 이런 좁은 곳에 들어가면 너무 무섭단 말입… 끄아아악!!”
조금씩 동굴 안으로 발을 딛으며 계속해서 룬에게 자신이 얼마나 이곳을 두려워하는지 설명하려던 랄프가 순간 그가 든 검의 검기가 온통 흔들릴 정도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에 짜증을 내며 그를 구박할 룬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도 랄프와 마찬가지로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기 때문이다.
“…족히 50명은 되어 보이는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겨우 내뱉는 룬의 말. 그 옆의 랄프도 어느새 동굴에 대한 공포마저 잊은 채 굳어 있었다. 아직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시신이 무수히 널린 눈앞의 광경에서 차마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젠장… 젠장!!”
그리고 시신의 모습을 자세히 본 룬의 입에서 곧 격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를을 위시한 다른 기사들도 그 광경을 보며 차가운 분노를 제 눈에 새기기 시작했다.
동굴의 끝에 도달해 그들이 발견한 것은 어린아이들과 노인의 시신 수십 구였기 때문이다.
* * *
“연락은?”
아를의 물음에 룬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통신구가 안 됩니다. 아네벨 상회 통신구가 막힐 정도면 생각보다 마법 간섭 정도가 심한 거 같습니다.”
룬의 말에 아를이 잠시 고민에 잠긴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고통스러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시신들에선 이상할 정도로 악취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를은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도 같았다.
“‘보토니에’가 먹은 이들인 것 같군.”
아를의 말에 기사들 또한 같은 생각이라는 듯 미간을 구기며 몇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묻을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다니아’를 찾는데 몰두했다. 급하게 오느라 베이라를 데리고 오지 않아 직접 수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동굴 안이 생각보다 좁고 단순해 찾기는 쉬워 보였다.
“얼른 찾아 나가도록 하지.”
아를의 말에 기사들이 서둘러 ‘다니아’를 찾으러 동굴 안을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기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여기 이상한 게 있습니다. 한 번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아를이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를 향해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동굴 위로 점점이 퍼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