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제3장. 아벨디온 下, 켄느 편 (47)
털썩.
“루드바하 님!!”
르베나에게 페어링을 통해 대부분의 힘을 전한 루드바하가 땅에 털썩 주저앉자 놀란 칸이 그에게 다가가 얼른 부축하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다시 소리쳤다.
“아니, 지금 상황에 페어링이 말이 됩니까. 페어링이!!
폐하도 폐하지만, 르베나 님이 세츠의 힘을 어떻게……!! 하아…….”
칸의 꾸지람에 페어링 때문에 어느새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루드바하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를 걱정하시는 건지, 르베나를 걱정하시는 건지… 정확히 해 주시면 덜 서러울 듯 한데…….”
루드바하의 말에 휙, 고개를 돌린 칸의 눈에 멀리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달려오는 보토니에 마법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휙 고개를 내려 루드바하를 바라보자,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한 그가 말했다.
“저는 이제 힘이 없으니 칸 님께서 지켜 주셔야 겠는데요…….”
정말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이는 제국의 황제이며 모든 세츠들의 중심인 루드바하를 보며 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순간, 다급해 보이는 루안이 다가와 칸에게 말했다.
“저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루안의 물음에 주위를 둘러본 칸의 눈이 어느새 아네벨 상회와 다이아 용병들에게 깨끗하게 정리된 주위로 향했다.
하지만 어느새 1명이었던 보토니에 마법사가 루드바하의 존재를 느낀 것인지 3명으로 늘어난 채 모두 보토니에의 알약을 복용하고 다가오고 있었고 그들에게 다이아 용병의 베이라가 세츠들과 함께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보토니에의 알약을 먹은 마법사들.
그것도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달려드는 흑마법사 3명이었다. 이들을 상대하기에 다이아 용병의 베이라는 아직 어리고 젠의 세츠들은 상대적으로 공격마법에 약했다.
“다이아, 이리로.”
크지 않은 소리로 말했음에도 순식간의 모든 다이아 용병들이 칸의 앞으로 와 부복을 했다.
거기엔 보토니에 마법사를 향해 가던 베이라도 함께였다.
그 모습을 본 칸이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 아군과 루드바하님의 보호에 총력을 기울여라.
다이리아는 젠의 세츠들과 함께 다가올 마법적 충돌에 대비해 실드에 집중해라.”
칸의 말에 다이아 용병들이 서둘러 흩어지고 다이아 용병에 속한 베이라 마법사는 서둘러 보토니에 마법사들에게 향하는 젠의 세츠들 곁으로 다가갔다.
다이아에 속한 세츠는 치유 전문이기에 크게 다친 아네벨 상회의 용병들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젠의 세츠들은 다가오는 보토니에의 마법사들을 보면서 불안한 듯 칸의 명령에 주춤했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드바하의 고개짓 한번에 칸의 말을 따라 실드를 치기 시작했다. 이를 둘러본 루안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칸 님!! 그러면 저놈들은 누가……!! 혹시……?”
루안의 말에 루안과 다이아 용병들, 그리고 아네벨 상회의 용병들과 젠의 세츠들, 마지막으로 루드바하를 한번씩 바라본 칸이 다가오는 보토니에 마법사들을 향해 걸어가며 작게 말했다.
“지금부터 볼 모든 것을 부디 그대들의 기억에 담지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남긴 칸이 뒤돌아 걸음을 옮김과 동시에 평범했던 칸의 머리칼은 익숙하지만 생소한 듯 한 칠흑같은 검은 색으로, 그의 평범한 갈색 눈은 누군가와 똑같은 매혹적인 붉은 색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뭐, 뭐야 저 마력은……!”
놀라 중얼거리는 어느 세츠의 중얼거림과 함께 칸의 손에서 검붉은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누군가는 떨리는 음성을 차마 제대로 내뱉지도 못했다.
“…칸… 님……!”
그, 루드바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앞을 향해 걷던 칸이 잠시 뒤로 돌아 그를 마주보며 오랜 기억속의 언젠가처럼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에, 평생을 찾아 헤맸던 그 미소에 루드바하의 벽안에 맑고 투명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음에도, 짐작했음에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 기대보다 더 멋지고 광활한 그의 마력 탓이리라,
20년 전.
어린 그에게 가진 거의 모든 마력을 주어 신마전쟁을 끝냈던 숨겨진 세상의 영웅.
날뛰는 신력을 감당할 방법을 찾지 못해 죽음을 앞둔 어린 루드바하의 목숨을 살려주었던 생명의 은인.
그리고 나서 꼬박 20년을 찾아 헤맨 끝에 만난 그녀, 르베나의 아버지.
루드바하는 그를 찾으면서도, 찾고 나서도 그가 죽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거의 모든 마력을 루드바하에게 주고 20년 간 모습을 감추었던 칸에게 남은 마력은 생명을 유지하는 딱 그 정도가 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했고, 그래서 더 죄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든 미안한 마음을 독차지한 칸의 진짜 모습은 지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난 괜찮다고 그러니 미안해 하지도, 죄스러워 하지도 말라고.
아직도, 난 이렇게 건재하다고. 칸의 모습을 본 루드바하의 놀란 얼굴에서 그대로 후두둑 투명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루아나.”
적들에게로 다가간 칸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어째서인지 조금은 물기어린 목소리와 함께 떨려오는 그 단어에 순간 주변의 공기가 공명할 정도의 힘이 칸의 손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와 똑 닮은 검붉은 마력.
그녀보다 더 부드럽고, 그녀보다 더 안정적인 컨트롤의 마법.
곧 그 마법이 어두운 힘으로 마법을 구동 시키는 보토니에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루아나……!”
그리고 다시 한번 내뱉은 칸의 강한 언령에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운 그의 마력이 폭사하듯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더없이 검고 붉은, 이 순간 남쪽에 있을 누군가와 아주 많이 닮은, 칸의 마력이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 *
“으윽…….”
점점 거세게 밀려드는 치치의 마법에 아벨디온의 기사들이 하나 둘 피투성이로 변해갔다.
여기저기에 입은 상처는 당연했고 버티지 못할 마법의 힘에 각혈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치켜든 검을 내리는 이도,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포기하는 이도, 또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발걸음에 힘을 빼는 이도, 없었다.
아벨디온의 뒤로 아사드와 루시드가 각각 보토니에 마법사랑 벌이는 힘의 격돌로 인해 수많은 파편들이 튀어오르고 있었고, 더 뒤에서는 젠의 세츠들이 실드와 공격마법을 섞어 또 다른 보토니에의 마법사와 격돌 중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르베나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움직여줘… ’
하지만 르베나의 애원이 들리지 않는 듯 제 주인과는 다르게 르베나의 말을 무시하는 신력들은 여전히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다… 다 죽여버리겠어!! 더 이상 치치의 용서는 없어.
저게 뭐라고… 저거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치치 옆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었는데에!!!!!!!”
아벨디온이 끈질지게 버티자 그 모습을 보던 치치가 제 남은 모든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아닌 아벨디온이 보기에도 너무 불길한 힘의 응어리에 기사들의 몸이 하나 둘 흠칫, 떨리기 시작했다.
치치의 힘이 점점 모여들자 지금 막고 있는 마법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마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곧 치치의 힘과 뒤에 있는 르베나를 번갈아본 아를이 다한에게 작게 말했다.
“아직이야…. 무조건, 무조건… 우리가 버텨야 해…….”
아를의 말에 다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장님은 꼭 성공하신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버티기… 그게 우리의 전공 아닌가.”
다한의 말에 아를이 씨익 웃으며 이미 만신창이인 몸에 힘을 주었다.
다한 역시 제 몸에 잔뜩 힘을 주며 외쳤다.
“마지막 공격이 온다. 모두 버텨라!!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뒤에는… 단장님이 계시고 그 뒤엔 디오니스가 있다. 지켜라, 아벨디온의 진정한 정의를!!!”
다한의 외침과 동시에 아벨디온이 모두 그를 따라 재창했다.
“지킬 겁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의를!!”
“단장님은 저희가 지킵니다!!”
아벨디온의 외침에 놀란 르베나가 앞을 보는 그 순간, 어느새 어두워진 사위가 완벽한 암흑에 잠겨버릴 정도의 힘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다… 죽어버려.”
이제까지와는 다른 낮고 조용한 치치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한 암흑에 뒤덮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힘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으… 악!!!”
아벨디온의 한 기사가 거센 마법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여기저기서 심하게 뒤로 밀리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으윽!!! 부단!!!”
룬 역시 엄청난 힘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에 아를을 불렀지만 아를 역시 이를 악물고 터져나가는 제 몸에 힘을 줄 뿐이었다.
“견뎌!! 견뎌라!!
우리의 피와… 살… 이!!”
아를의 말에 룬이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외쳤다.
“디오… 니… 스를 지킨다!!!!!!”
룬의 외침에 아벨디온 기사들이 모두 여기저기 터져나가고 찢겨나가는 고통을 견디며 곧 다가올지도 모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버틴다. 그래서 지켜낸다.
그것이 앞을 뚫지 못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땅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아벨디온은 이 말을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그들의 피와 살로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벨디온을 보는 르베나의 눈에서는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켜야 하는데.
저들을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해야하는데. 이번에는.
그런데 난, 나는…
“흐… 읍.”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계속 제 안에 들어찬 루드의 신력들을 컨트롤하려는 르베나는 회귀 이후 처음으로 짙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마치 그때처럼, 손놓고 모두를 잃었던 그때처럼 또 잃으면 어떡하지, 또 지켜낼 수 없으면, 어떻게 얻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지킨 사람들인데, 제발… 제발!!!
흐르는 눈물에, 넘쳐나는 두려움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르베나는 계속 애원했다.
루드의 신력들에게 한번만, 한 번만 힘을 빌려달라고.
나에게 더 소중해진 저들을 단 한명도 다시는 잃지 않게 해달라고.
“으… 아악!!”
그때 들려오는 랄프의 비명소리에 놀란 르베나가 앞을 바라보았다.
순간 르베나의 눈이 하염없이 떨리다가는 고통과 죄책감으로 어둡게 얼룩지기 시작했다.
아벨디온의 흰 제복에서는 이제 흰색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모두가 피에 젖어, 떨리는 손과 발을 버티며 그녀와 그들의 왕국, 디오니스를 살과 피로 지켜내고 있었다.
처절하리만치 아픈 모습에,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그들의 모습에 르베나의 목에선 자꾸만 뜨거운 덩어리들이 넘어오고 있었다.
“으… 으… 흑… 안… 돼… 제발… 흑 지켜야… 해… 이번엔… 하윽… 제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온몸이 두려움과 무력감, 그리고 끝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런 르베나에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것은 그때였다.
“르베나 왕녀님.”
몸에 닿은 따뜻한 온기에, 그리고 너무도 익숙한 눈빛에 르베나가 흐르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한 채 다가온 이에게 말했다.
“지키고 싶습니다. 지켜야 합니다!
제게는 전부인 이들이라, 제 목숨보다 소중한 이들이라.
제발… 흑… 제… 발… 지키… 게… 해주세요… 흐윽…….”
이제껏 어느 상황에도 담담하기만 했던 그녀가, 나이와는 맞지 않는 무표정함이 내내 맘에 걸리던 그녀가, 웃음이 잘 어울릴 나이에도 조금은 차가움이 담긴 눈이 걸리던 그녀가, 제 기사들의 희생 앞에서 이렇게나 처절하게 무너질 줄이야.
제 아들 녀석이 정말 제대로 멋진 여자한테 빠졌구나. 그 놈의 시린 마음에 넓은 꽃밭을 이룰만한 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르베나 앞의 그, 루시드가 조심스레 르베나의 어깨를 부드러운 손길로 짚고는 눈을 맞추며 말했다.
“르베나 왕녀님,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세츠들의 신력은 정의와 사명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잊지 마세요.
그리고 아벨디온은 이제부터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왕녀님은…….”
때에 맞지 않게 따뜻하게 짓는 미소가 언제나 힘든 르베나를 품어주던 루드바하의 미소같아 순간 르베나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르베나의 얼굴에 더 따뜻하고 깊은 미소를 지어보인 루시드가 말했다.
“저희를 지켜주세요.
저 정도의 마법은 저희의 실드로 막을 수는 있지만 완벽한 파훼는 더 강한 공격마법만이 가능하니까요.”
르베나와 눈을 맞추며 말을 끝낸 루시드가 그의 곁으로 조금은 슬픈 얼굴로 다가오는 아사드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아벨디온을 향해 망설임없이 환한 신력을 쏘아냈다.
그리고 루시드의 뒤를 따르던 아사드 역시 르베나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말했다.
“르베나 단장님, 이걸 기억하십시오.
누군가는 그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저버려 약해지지만… 누군가는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아사드와 저, 젠의 세츠 모두가 이 순간 당신의 편입니다.”
르베나의 눈물을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마저 닦아준 아사드가 루시드를 따라 가며 아벨디온의 앞에 한 겹 더 환하고 넓은 실드를 둘렀다.
그리고 마지막 보토니에 마법사를 해치운 젠의 세츠들이 급히 루시드와 아사드를 따라 앞으로 뛰어가며 르베나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응원합니다, 르베나 왕녀님!”
“팬입니다!!”
“왕녀님 마음 상하지 않게 아벨디온 잘 지킬께요!!”
“베이라가 쓰는 세츠의 페어링, 꼭 보여주세요!”
“유파시드님께서 기다리실 겁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저마다 지치고 힘들 텐데도 웃는 얼굴로 르베나를 격려한 세츠들이 하나 둘 힘을 보내어 아벨디온의 앞에 환하고 밝은 실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눈에 담은 르베나의 머릿속에 좀 전에 루시드가 던지고 간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저것보다 더 강한 공격마법만이 저 마법을 파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루시드의 말을 되새긴 르베나가 가쁜 호흡을 달래며 순간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하… 아.”
그를 믿는다.
제게 무턱대고 자신의 힘을 넘겨버린 세츠들의 중심인 그를, 언제나 그녀에게 다가오고 싶어 안달이 난 신력의 자락을 채 숨기지 못했던 그를, 언제나 그녀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그를, 르베나는 저에게 자신의 힘을 넘겨준 그와, 그의 판단력을 믿는다.
이 순간 루시드와 아사드, 그리고 젠의 세츠들이 만들어낸 실드로 치치의 마법이 더는 다가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수그러 들지 않았다.
다만, 아벨디온은 모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쁜 호흡을 내뱉으면서도 르베나가 걱정할까 싶어 르베나를 보고는 한번 씩 웃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바보같은 놈들…….”
툭.
아를과 다한, 룬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세츠들의 실드에 그들의 검기를 더해 버티고 버티었다.
“멍청한… 놈들…….”
투둑.
루시드가 잡은 어깨가, 아사드가 닦아준 얼굴이, 세츠들이 던지고 간 말이 너무도 따뜻하고 뜨거웠다.
“속도 없는… 사람들…….”
후드드득.
르베나의 얼굴에서 세지못할 만큼의 눈물들이 주체없이 흘러내렸다.
이 순간 그녀의 앞에서 어둠에 맞서는 수많은 이들의 등이 너무, 너무… 뜨거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저를 지키고 선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르베나의 안을 어지럽히던 그, 루드의 신력들이 처음으로 광폭함의 세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모두의 주위를 감싸던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