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172화 (172/276)

172화

제3장. 아벨디온 下, 켄느 편 (44)

율엔 가문 소속의 마법사, 케탄.

비록 신력이 강한 세츠는 아니었지만 그는 어떤 세츠보다도 정의롭고 바른길을 지향하는 마법사였다.

그래서 신마전쟁 당시, 베이라들과 전쟁을 하면서도 아사드, 루시드와 함께 끊임없이 신마전쟁의 끝을 바라며 베이라들과 함께 등을 맞댈 날을 꿈꾸던 선량한 청년 세츠였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선량한 미소가 더 잘 어울렸던, 전쟁에서 죽어간 동료들을 하나하나 제 손으로 묻어주며 흘리는 눈물을 결코 아까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자랑스러운 동료.

그가 어느날 부터 의문의 단체에 쫓긴다는 사실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케탄은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춰 버렸다. 세상을 도탄에 빠트렸던 수백 년 간의 신마전쟁이 종식되고 난 후, 아사드와 루시드는 당시 갑자기 사라진 케탄을 부단히도 찾아 나섰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함께 싸우던 동료들을 찾던 수많은 세츠와 베이라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쟁의 특성상, 어디선가 전사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그들을 찾던 세츠들도 합동 장례를 통해 하나둘 시신 없는 동료들을 잊어가게 되었고, 전쟁의 패배로 수가 월등히 적어진 베이라들은 설 곳 없는 세상에 맞추어가듯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케탄…….”

수십 년의 그리움이, 또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득 찬 깊은 슬픔이 아사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사드의 물기 어린 하늘색 눈은 수십 년의 이야기를 담고 눈앞에 선 케탄을 바라보았다.

“…자네…….”

하지만 이내 아사드의 입에서는 물기 어린 한탄만이 자그맣게 흘러나왔다.

20년 전 그때와 완전히 같은 나이 때의 외모. 하지만 아사드와 동료들이 사랑했던 선량했던 미소와 눈빛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그.

케탄을 보던 아사드가 참담한 얼굴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어째서… 손대선 안 될… 마법에… 손을 댔나… 이 미련한 친구야.”

하고 싶은 수백 마디의 말을 제쳐두고 가장 힘든 한 마디를 꺼낸 아사드의 말에도 케탄은 그저 씨익 제 입가를 길게 찢어 웃으며 말했다.

“손대선 안 될 마법… 그건 누가 정한 거지? 난 그걸 통해 이렇게 젊은 외모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고, 또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었는데 말이야. 아사드 자넨 여전히 웃기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군.”

생각지도 못한 케탄의 말에 아사드의 눈이 잘게 떨려왔다.

단 한 번도 정직한 길을 벗어난 적 없던 오랜 동료였기에, 순박한 미소가 잘 어울려 언제나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친우였기에, 가문의 종속을 떠나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친우였기에.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찾아다니던 아사드에게 케탄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사드와 다르게 루시드는 싸늘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당시 사라진 세츠와 베이라들을 찾기 위해 대규모 병력이 몇 년이나 동원되었다는 걸… 알긴 하나? 그런데 뭐……? 영원한 젊음과 강인함……? 도대체 신마전쟁이 끝난 지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게 십 수년간 끊임없이 자네를 찾아 헤맨 아사드에게 지껄일 소린가!!”

루시드의 강한 꾸짖음에 케탄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더니 그들에게 소리쳤다.

케탄의 말과 억양이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이 마치 십수 년의 울분을 토해 내듯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너희가 뭘 알아! 태어날 때부터 좋은 가문과 엄청난 재능, 게다가… 그런 외모까지… 모두 갖춘 너희가! 가문도 없고 힘도 없고… 외모마저도 덜떨어진 사람의 마음을 알기나 해!! 아니, 헤아려보려 노력이나 해본 적 있었을까?”

그의 눈동자 안에서 깊은 어둠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너희 곁에 있으며 난 항상 비참했어! 너희 가문의 끄나풀 흉내나 내는 내가… 또 율엔 가문의 종으로 충성을 다하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내내 부끄럽기만 했단 말이다! 게다가 언제나 전쟁에서 죽을 위기는 나에게만 수십 번이 넘도록 찾아왔지만, 너희는 언제나 여유로운 얼굴로 말 같지도 않은 미래나 그리며 여유가 흘러넘쳤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주선 두 사람의 얼굴도 점점 일그러졌다.

“누군가에겐 매일매일 죽기살기로 임해야 하는 전쟁이 너희에겐 여유롭게 방어하고 여유롭게 공격하는 놀이의 연장선 같았단 걸 내가 모를까? 게다가 너희는 내가 마음을 둘 곳조차……!”

파악! 팡, 팡!

순간 케탄의 손에서 굉장히 빠른 마법이 발동되어 나갔다.

동시에 루시드와 아사드가 몸을 움찔할 정도로 불쾌한 힘이 케탄의 손을 떠나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착! 촤악……!!!

빠르게 발도한 다한과 아를의 검기가 각각 루시드와 아사드의 앞으로 날아와 케탄의 마법을 가볍게 튕겨냈다. 아사드와 루시드의 실력을 믿지만 그들의 지인이기에 대응이 느려질지 모르는 염려에서 다한과 아를이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케탄의 공격을 막은 다한이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20년을 받쳤다고 하기엔…….”

다한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아를이 이어 말했다.

“…너무 약한데?”

오랜 동료의 마음을 무시하고 혼자만의 자격지심에 미쳐 손대선 안 될 마법에까지 손을 댄 자의 하찮은 변명.

그 우습고도 비루한 모습이 빚어낸 초라한 결과에 다한과 아를은 그들도 모르게 싸한 말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한이 그들의 말에 분노와 모욕을 느끼며 부들부들 떠는 케탄을 보며 진지한 어조로 이어 말했다.

“우리의 이 말에 너에겐 모욕적인가? 그렇다면 너의 그 말이 세츠의 정의를 가지고 전장에 섰을 이분들에게도 모욕적이란 사실을 깨달아라. 어떤 이도 장난 같은 마음으로 전장에 서는 이는 없다. 내 동료가 죽고 내 가족이 죽을지 모르는 게 바로 전장이다!!”

다한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그런데 장난?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실력이 출중하면 책임질 이가 많기에 힘들고 실력이 부족하면 부족하기에 두려운 것이 전장이다. 네 마음속의 분노와 애먼 자격자심을 돌볼 동안 단 한 번이라도 함께 전장에 임하는 동료들의 표정을 들여다봤다면 오늘 같은 일은 결코 생기지 않았겠지. 그러니 네가 지금 느낀 그 모욕과 치욕은 고스란히 너만의 것이란 걸 잊지 말아라…….”

다한의 말에 으득 이를 간 케탄이 더이상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옆에 있던 두 명의 마법사에게 신호를 보내자 셋 모두 한순간에 르베나 일행에게서 훌쩍 멀어졌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르베나와 일행은 모두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며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세 명의 보토니에 마법사들에게서 갖가지 위력과 종류의 공격마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루시드와 아사드의 실드가 여유롭게 아벨디온의 모두를 지켜냈고 아벨디온의 검에서 빠르게 튀어나간 제 각기의 검기들이 보토니에 일당을 향해 날카롭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냥 온 건 아닌지 빠른 발동으로 능숙하게 실드를 그려내며 아벨디온의 검기를 여유롭게 튕겨냈다.

그리고 그때,

휘익--!!

갑자기 먼 거리에서 날아와 점점 크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릴 찰나, 르베나가 빠르게 위로 날아올라 제 검을 중심으로 크고 단단한 검붉은 색의 마력 실드를 팽팽하게 펼쳐냈다.

콰과과광……!

르베나의 실드에 부딪힌 공격 마법이 제법 무서운 기세로 반발하며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온 공격 마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또다시 얼음 화살의 모양을 한 수백 개의 마법이 일행 모두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르베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가볍게 땅에 착지해 제 손 가득 뭉쳐진 검붉은 마력을 날아오는 얼음화살들을 향해 큰 반경으로 쏘아냈다.

슈우- 슈우웅---!!!

그들을 향해 날카롭게 내리꽂던 얼음 화살들이 뜨거운 르베나의 화력 마법과 닿자 모두 스르륵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툭, 투둑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둑, 후두두두둑---!!

수백 개 얼음 화살의 잔재가 마치 비처럼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루시드는 뛰어난 르베나의 마법과 콘트롤 실력에 또다시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쯤 되면 아들 녀석이 르베나의 마법 실력에 반한 게 아닌가 정당한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동시에 루시드는 르베나의 검붉은 마력을 한동안 좀 더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 순간 르베나가 일행에게 빠르게 말했다.

“젠의 세츠들은 지금부터 국경에서 손을 떼고 모두 아벨디온을 보호한다!! 아벨디온은 지금부터 가운데 있는 놈을 끌어내 싸운다!! 세츠들에게 가까운 국경으로 유인!!”

르베나의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순식간에 아벨디온의 모든 검기가 가운데에 선 보토니에 마법사를 향하자 그가 실드를 칠 새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이탈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발이 빠른 랄프와 룬이 그의 뒤로 뛰어가 그를 국경 쪽으로 몰아가며 검기를 발사하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 뜻과는 다르게 자꾸 국경 쪽으로 발을 딛게 된 보토니에 마법사의 주위로 세츠들의 단단한 실드를 받고 있는 아벨디온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르베나의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지만 누구 하나 주저 없이 그녀의 명에 따랐다.

그것엔 일말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루시드는 르베나가 제 기사들에게 어떤 단장이고 왕녀인지 충분히 알만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아벨디온의 모습을 확인한 르베나가 이번엔 루시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드 님, 케탄이란 자를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르베나의 말에 루시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케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사사사삭!!

아사드의 손에서 수십 줄의 신력으로 만든 밧줄이 튀어나가 케탄의 실드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리고 반발하는 케탄의 실드를 하나둘 깨트렸고 어느새 케탄의 마지막 실드가 깨지자 고개를 돌려 르베나와 루시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자는 율엔 가문 휘하의 세츠였던 만큼 가주인 내게 처분을 맡겨 주게!”

아사드의 말에 르베나는 루시드를 보며 눈으로 의견을 물었다.

케탄의 등장만으로도 많이 흔들린 아사드가 과연 그를 잘 상대할 수 있겠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이에 루시드는 르베나를 향해 루드바하와 꼭 같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마지막으로 남은 보토니에의 마법사에게 다가가며 날카로운 신력의 올가미를 쏘아냈다.

그가 쏘아낸 신력의 올가미는 아사드의 것과 마찬가지로 형태만 있지 물질적인 구성이 없는데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보토니에 마법사의 몸을 간단하게 휘감아버렸다.

그렇게 아벨디온과 아사드, 루시드가 각각 세 명의 보토니에 마법사들과 상대할 동안 르베나는 그새 제법 크게 모인 마력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멀리 있는 어느 지점을 향해 정확하게 화염마법을 날렸다.

큰 구의 모양을 띄며 점점 강한 기세를 타고 날아간 마법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폭발하듯 마법이 팽창하며 주위를 그을리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그 곳에서 날쌔고 까만 그림자가 휙, 튀어 나왔다.

르베나는 그를 놓칠세라 재빨리 날카롭고 빠른 검기를 날려 튀어나온 그림자의 다리를 그어냈다.

“…악!!!”

뜻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에 르베나가 아주 조금 놀란 것도 잠시, 곧 방향을 틀어 국경 쪽으로 다가온 이의 모습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그림자는 수많은 다른 그림자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아!! 진짜 아파 죽는 줄 알았잖아!!”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다가온 새로운 보토니에의 적들을 보며 르베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벌써 약을 복용했나.”

그러자 르베나의 말을 들은 반인 반몬스터의 모습을 한 작은 여자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아, 맞아!! 나는 머저리 놈들과는 다르게 복용 유지 시간이 아~~~주 길거든. 아 맞다!! 내 이름은 치치야!! 그리고 저기는 조금 모자란 용병놈들!!”

치치란 마법사가 본인을 소개함과 동시에 수백의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르베나와 모두가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봐 어딘가에서 대규모 텔레포트를 시전했다고 생각되었다. 동시에 보토니에에게 그만큼의 저력이 있음을 르베나는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치치는 본인이 데려온 용병들로 인해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든 말든 웃으며 르베나에게 이어 말했다.

“치치가 자기소개를 멋지게 한 의미로 아주 아주 멋있는 거 보여줄까?”

얼핏 봐도 10대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의 모습을 한 반쪽은 제법 어린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치치라는 마법사는 제 두 손에 보토니에 특유의 검은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감각하게 본인을 바라보는 르베나를 보며 늑대과 몬스터의 모습을 한 나머지 반쪽의 입을 길게 찢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바로 널 죽일 수 있는 마법!”

콰과과쾅!!

귀여운 인간의 모습과는 다르게 르베나가 흠칫 놀랄 정도의 엄청난 힘이 치치의 전신으로부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조심해!!!”

르베나가 크게 외치며 재빨리 실드를 두르자마자 순식간에 치치의 몸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검은 힘이 르베나와 일행 그리고 남쪽의 국경을 넘을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읏!”

이미 상당한 힘을 소진한 르베나가 팅이 저장해놓은 마력까지 꺼내며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광범위 실드를 쳤지만 계속해서 강한 밀도로 압박하며 크기를 불리는 치치의 힘을 감당하기엔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다른 쪽에선 아벨디온과 루시드, 아사드 모두 자신들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고 특히 치치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수백의 용병들로 인해 아벨디온의 실드를 담당하던 일부 세츠들까지 공격에 가담해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모두 르베나가 막는 힘이 거대하다는 것을 알아도, 르베나가 부쩍 힘에 겨워한다는 것을 알아도 차마 힘을 분산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흣.”

르베나가 내뿜는 마력이 조금씩 밀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치치의 힘은 대단했다.

그리고 치치의 힘에 조금씩 밀려나는 르베나의 얼굴은 그만큼 창백하게 질려갔다.

이미 켄느와 자칸, 그리고 바모린을 상대하며 르베나가 쓸 수 있는 많은 양의 마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게다가 방금의 광범위 실드로 치치의 밀도 높은 공격을 막아내느라 팅에게 저장되어 있던 마력도 상당 부분을 가져다 썼다.

팅 역시 이렇게 많은 마력을 내어준 게 처음이라 힘든지 곧 잠에 빠져들 듯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은 창백해진 르베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던 치치가 천진하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쳤다.

“캬하하!! 너무너무 재밌어!! 진짜 재밌어!! 치치의 힘은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치치의 힘은 너무너무 멋있어!! 그러니까 너는 죽자, 죽자, 죽자!! 응??? 치치말고 예쁜 마법사는 필요 없단 말이야!!!!”

치치가 크게 소리치며 웃어대자 치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더 거세어졌다.

‘이게… 보토니에의 힘이라고… 이 정도가?’

항상 여유롭게 제압하던 보토니에의 힘과는 달랐다.

마법을 이루는 힘의 크기가, 그 힘의 근원이 이건 아주 많이 다르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과 칸이 건넨 마력포션으로 조금이나마 충전한 마력의 대부분이 소진될 정도였다. (@갑자기 르베나가 밀리면 독자들이 아까까지는 멀쩡했다고 생각할까봐 추가했어요!)

같은 시간, 점점 뒤로 밀려가는 르베나를 보며 초조한 아를이 다한과 눈빛을 교환한 후 앞에 있던 용병을 베어내며 빠르게 르베나의 곁으로 달려갔다.

“…르베나!!”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밀리는 르베나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저렇게까지 창백해진 르베나를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분명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 힘을 주며 달려 나가는 허벅지의 통증에도 아를은 한순간도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처럼 빠르게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아를의 심장이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곧이라도 터져나갈 듯 박동했다.

그때, 르베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를을 보고는 치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싫어, 싫어!! 잘생긴 오빠가 구하러 오는 거 싫단 말야!! 그러니까 너도 죽자!!!”

순간 치치의 손에서 또 다른 마법이 터져나가 빠른 속도로 아를에게 향했다.

“…아를!!”

르베나가 이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남아있는 마지막 팅의 힘을 끌어내 아를을 조준하며 그에게 실드를 둘렀다. 순간 팅이 기력을 다한 듯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콰광!!!

아를에게 날아간 치치의 마법이 달려오던 아를과 정통으로 부딪힌 듯 그의 모습이 뿌연 안개에 휩싸여 버렸다.

“…아를!!!!!”

창백해진 얼굴로 아를을 부르는 르베나를 보며 치치가 재밌다는 듯 깔깔 웃으며 소리쳤다.

“아이 뭐야!! 어떻게 여기에서 저기까지 실드를 날려? 오오오오 대단해!! 하지만 틀렸어!! 잘생긴 오빠 기척이 없어!! 죽었어, 죽었어 캬핫! 그러니까 너도 좀 죽자!! 응??”

치치가 말을 함과 동시에 르베나를 향하던 검은 힘의 마법이 조금 더 거세고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쿨럭 르베나의 입에서 그녀의 마력만큼이나 진한 검붉은 선혈이 흘러나오며 르베나가 순간 몸을 휘청였다.

‘안돼!’

르베나가 휘청이면 지탱하던 광범위 실드 역시 흔들릴 것임이 분명하기에 르베나는 휘청이는 몸에 힘을 짜내 버텨보려 했다.

촥!!!

하지만 그 순간, 뿌연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엄청난 위압감의 검기가 르베나의 앞에 서 있는 치치의 한쪽 팔을 깨끗하게 잘라내며 크고 단단한 팔을 뻗어 휘청이는 르베나의 전신을 단단히 제 품에 가두었다.

“…끄악!!!”

잘린 팔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치치의 숨결에 검은 힘의 마법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휘청거리던 르베나를 제 품에 단단히 안아 지탱한 아를이 떨리는 손을 들어 르베나의 입가에 묻은 선혈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르베나의 입가를 닦아내면서도 주체 없이 흔들리는 아를의 떨림이 고스란히 르베나에게 전달되어 왔다.

“…르베나, 르베나!!”

아를의 울음기 섞인 부름에 르베나가 옅게 미소 지으며 조금은 힘없이 말했다.

“괜찮아 아를. 조금 어지러웠어. 그뿐이야.”

괜찮다는 소리는 이제 지겹다고.

수없이 들어 더는 듣기 싫다고 목 끝까지 나온 말을 겨우내 삼킨 아를이 차마 르베나에겐 큰 소리를 칠 수 없어 간신히 마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한 팔로 안은 르베나의 몸이 너무 가벼워서.

이틀 동안 르베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가 제 팔에 실린 그녀의 무게로 고스란히 느껴져 아를이 속절없이 아파 오는 심장의 고통에 제 입안의 살을 짓씹으며 르베나를 제게 온전히 기대게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며 다시 자라나는 팔을 확인한 치치가 아를과 르베나를 보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분노에 차 외쳤다.

“이제 봐주는 거 없어!! 치치 화났어! 다 죽어 버려!!!”

치치의 분노와 함께 검은 힘의 마법이 무서운 기세로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르베나가 급히 아를을 지탱하고 서자 다시 한번 선혈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저를 단단히 지탱한 아를의 한 팔에 힘을 주어 기댄 선 채 이내 제 마지막 모든 마력까지 끌어내 실드를 둘렀다.

막지 못하면 르베나 뿐만 아니라 곁에 선 아를이,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수많은 다른 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르베나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 바닥까지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내 실드를 둘렀음에도.

‘… 늦었다……!’

늦어버렸다.

이미 대부분의 힘을 소진해 탈진한 르베나보다 빠른 치치의 거대한 마법이 르베나와 아를의 위로 크고 짙은 그림자를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단장님!!!”

“부단!!”

“르베나!!”

“아를!!!”

전투에 임하던 모두가 놀라 르베나와 아를을 부르짖은 것과 동시에 아를이 제 품 안으로 르베나를 깊숙이 끌어안으며 치치에게로 등을 돌려 섰다.

‘제발… 제발… 르베나만은 제발……!!’

아무리 세게 안아도 제 품 안의 공간이 남을 정도로 가느다란 르베나가 너무 아파서, 아를은 르베나를 안은 제 팔에, 제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서 순백색의 빛이 내려와 그들에게 닿아 왔다.

강하고 환한 빛.

너무 환해서 그 흰색의 빛에 금빛이 얼핏 보일 정도로 폭사하는 강대한 빛.

웃으며 그들을 지켜보던 치치마저 놀라 뒷걸음질 칠 정도로 순도 높은 신력.

새츠들의 왕이자 중심인 루드바하의 신력이 빠른 속도로 르베나와 아를을 단단히 감싼 다음 치치의 마법을 거세게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파시드 님의……!!!”

“아니 어떻게 저런 크기의 힘을…….”

“원거리에서 저 정도 힘의 전달이 가능한 것인가……!”

“혹시… 페어링……?”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큰 힘의 전달에 놀란 젠의 세츠들이 돌아가면서 넋 놓고 내는 소리에 그들보다 더 놀란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루시드였다.

루시드 또한 소리를 보태었다. 안 그래도 치치의 마법에 르베나가 밀린다고 생각한 순간, 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르베나와 아를을 향해 강한 신력의 실드를 쏘아낸 루시드였다.

그러나 그런 그 마저도 르베나와 아를을 단단히 감싼 채 치치의 힘과 동시에 제 힘마저 무섭게 밀어내는 그의 아들, 루드바하의 신력을 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니 저 자식이…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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