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든 왕녀, 르베나-161화 (161/276)

161화

제3장. 아벨디온 下, 켄느 편 (33)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어 쉰 스릴이 어느새 제 몸 가득 차오른 르베나의 마력을 느끼며 제 실드를 더 크고 견고하게 유지했다.

어느새 아이를 안고 있던 여성도 스릴의 큰 실드로 옮겨졌다.

자칸에 살아남은 많은 백성들이 조금은 여유롭게 무너진 성 근처의 실드로 몰려들고 있었고 르베나와 루드바하로부터 힘을 받은 마법학원 학생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찾아 때로는 업고 또 때로는 부축하며 그들의 실드로 데려왔다.

아직 남은 몇 마리의 몬스터들과 자칸의 기사들이 싸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흰 빛과 검붉은 빛에 의해 몬스터들의 고약한 소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사위를 살핀 스릴은 단단하게 유지되는 제 실드를 보며 조금 더 멀리 걸음을 옮겨보았다.

‘체력이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얼른 한 명이라도 더 데려와야 해.’

이 공간에, 같은 자칸의 하늘 아래, 그녀, 르베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스릴은 실드가 모여 있는 곳을 벗어나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반경을 넓혀 가며 부상으로 차마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실드까지 다시 데려다 놓기를 몇 번쯤 반복했을까.

어느새 궁에서 좀 떨어진 귀족들의 집터를 돌아다니며 부상자를 찾고 있을 때였다.

훌쩍훌쩍. 어디선가 들려오는 억눌린 아주 작은 울음소리를 따라 스릴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주택들 사이 건물의 잔해가 만들어낸 아주 좁은 틈. 소리는 그곳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응당 느껴져야 할 마력이나 신력의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여전히 아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그것이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스릴은 제 몸에 실드를 단단히 두르고 조심조심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르베나가 자칸의 전역에 뿌린 마력 덕분에 스릴의 실드는 여느 때보다 단단하고 강했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위험이 닥칠 경우, 최대 두 번의 실드로 공격을 막고 달아나는 게 현재 스릴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혹시 모를 위험을 생각하며 어느새 긴장으로 인한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스릴은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스윽.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온몸을 잔뜩 긴장시킨 스릴이 소리가 들려오는 좁은 틈으로 허리를 굽혀 얼굴을 내렸다.

방어적인 자세로 그 좁은 틈을 본 스릴의 눈이 곧 급격한 안심으로 곱게 풀어졌다.

이제 3, 4살 정도 난 아이가 제 무릎을 꼬옥 안은 채 작게 숨죽여 울고 있는 모습이 스릴의 녹안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라… 양이 적어서 내가 느끼지 못했나 보다. 하긴… 내 실력이 아직은 그렇지.’

긴장을 풀고 생각을 정리하며 스릴이 아이가 놀라지 않게 작고 다정한 말을 건네었다.

“안녕, 아가. 혹시 내가 누군지 알겠어?”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놀라 아주 옅은 회색의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겁에 질려 덜덜 떨다가는 이내 좁은 틈으로 겨우 비친 얼굴에 입을 헤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스릴이 다시 한번 더 크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공주님이야. 몇 번 본 적 있지? 이제 내가 우리 꼬마 기사님을 구해 줄 거야.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천천히 나와 볼래?”

백성들과 비교적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칸의 왕실은 대대로 귀족을 비롯해 사막에 몰려 사는 소수 부족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칸의 백성들과 교류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시찰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지냈다.

그렇기에 아주 자주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칸의 왕인 듀칸과 그의 자식들인 바흐란, 스릴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에 익숙한 얼굴과 다정한 말투, 그리고 예쁜 미소에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아이가 제 몸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틈을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스릴은 아이가 무섭지 않게 계속 다정한 말을 걸어 주며 아이를 기다렸고, 이윽고 스릴에게 다가온 아이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고급 원단의 옷과 그만큼이나 까이고 다친 다리.

아마도 어느 귀족가의 어린 아들이었을 아이는 몬스터떼의 습격으로 부모를 놓치고 좁은 틈에 들어가 이 모든 지옥이 끝나길 기다렸나 보다.

그런 아이가 가여워 꼬옥 제 품에 안은 스릴이 자신의 실드로 돌아가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스릴의 온몸은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뚝, 뚜욱. 뚜두둑.

스릴이 선 바로 앞 땅이 질척한 무엇인가로 젖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땅에 떨어지는 진득한 액체를 따라 스릴이 뻣뻣하게 굳어진 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흠칫.

그리고 스릴의 눈앞에 아주 큰 하나의 눈으로 스릴과 아이를 바라보며 커다란 입으로 침을 뚝뚝 흘리는 몬스터가 보였다.

“괴, 괴무울……!”

아이가 놀라 소리를 지르며 스릴의 품을 깊게 파고들었다.

스릴 역시 놀라 온몸이 굳어졌지만 제 품에 파고드는 아이를 꼬옥 안으며 단단히 실드를 둘렀다.

‘두 번… 아니 한 번?”

제 키보다 3배는 더 큰 몬스터를 바라보며 과연 스릴 자신이 저 몬스터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 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스릴이 채 눈을 한번 깜빡이기도 전, 몬스터의 외팔이 허공에 큰 원을 그리며 스릴과 아이를 향해 휘둘러졌다.

“아앙……!!”

아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질끈 눈을 감았고 스릴은 아이를 꼬옥 안은 채 몸을 웅크렸다.

꽈앙!!

엄청난 충격이 몰아치며 스릴의 실드가 순식간에 깨져 버렸고 그 바람에 아이를 안은 스릴이 몬스터의 반대 반향으로 나가 떨어졌다.

“윽… 으윽……!”

스릴이 땅에 사정없이 널브러진 제 몸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며 품에 안긴 아이를 서둘러 확인했다.

다행히 제가 놓지 않은 덕인지 아이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몇 군데 작은 생채기가 났을 뿐이다.

척, 척척.

곧 바닥에 쓰러진 스릴과 아이를 본 몬스터가 하나의 다리를 용수철처럼 튕기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한 걸음, 다음엔 두 걸음 그리고… 점점 빠르게.

처처처처처척.

몬스터가 외다리로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자 스릴이 본능과도 같이 자리에서 벌ᄄᅠᆨ 일어나 아이를 꽈악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실드.’

마음 속으로 작게 외친 실드가 스릴과 아이를 향해 씌워지기 시작했다.

쉬이익--- 하지만,

‘…너무 늦었어!!!’

실드가 그 두 사람을 감싸는 속도보다 외발의 몬스터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외눈박이, 외발의 몬스터가 다시 제 외팔을 크게 허공에 흔들며 스릴과 아이를 향해 휘둘렀다.

순간 스릴이 재빨리 바닥에 주저앉으며 제 품에 아이를 온전히 감싼 채 엎드렸다.

‘제발… 제발… 제발……!!’

스릴의 간절한 부름에도 몬스터의 팔이 허공을 매섭게 가르며 그들을 향하자 스릴은 생각으로만 되뇌었던 마지막 주문을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르베나 언니!!”

마지막 순간 아이를 품고 르베나의 이름을 간절히 소리높여 부르는 스릴에게 몬스터의 사정없는 외팔이 향해지고,

타다다다닥. 휘익-- 촤악!!

누군가가 빠르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베어지는 소리가 난 것은 순간이었다.

쿠웅!

이어 무거운 물체가 땅에 처박히는 소리와 자칸의 모래가 사위를 어지럽혔다.

아이를 안은 온몸을 공포와 긴장으로 부들부들 떠는 스릴에게 꿈같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 역시 그때였다.

“오랜만이야, 스릴 공주.”

이 목소리.

그리고 이 힘.

절대, 절대로 착각일 수 없는 이 따뜻하고 강인한 힘에 스릴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솨악- 어느새 주변을 메웠던 모래바람이 사라지며 스릴이 그렇게도 애타게 불렀던 그녀가 나타났다.

“흡… 흐윽… 언… 니… 르… 베나… 언… 흐윽!!!”

아직도 아이를 놓지 못하고 벌벌 떨며 르베나만을 부르는 스릴에게 다가간 르베나가 자세를 낮추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며 스릴을 바라보았다.

스릴이 그리고 그렸던 그것, 자칸에 온 직후부터 애타게 그렸던, 르베나가 여느 때보다 환한 미소로 스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멋지게 커서 못 알아볼 뻔했군.”

“으아앙~~!!”

르베나의 그 한마디에, 그 미소 한 번에, 스릴은 그만 이제까지의 인내가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르베나는 제 앞에서 정신없이 우는 스릴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주며 놀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옆에 무너져내린 몬스터의 시체를 본 르베나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스쳐지났다. 정확히 말하면 몬스터의 시체속 무엇인가를 보며.

하지만 그런 르베나의 얼굴을 보지 못한 스릴은 하염없는 안도감에 끊임없는 눈물만을 흘렸다.

‘됐다, 이제 됐어.! 이제 우리 자칸은… 된 거야!’

제 어깨를 두드리는 르베나를 보고서야 스릴은 엉엉 우는 눈물을 통해 비로소 모든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절망으로 가득 찬 순간들. 속절없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자칸의 찰나. 그래서 끝이라 생각한 순간들.

그리고… 단 한 사람, 르베나를 기다리며 버텨 낸 힘겨운 시간이 주마등처럼 제 머리를 스쳐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르베나가 왔음에도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건, 언제나 스릴을 달래 주던 한 사람, 바흐란이 지금 여기 없기 때문이란 사실에 스릴은 르베나의 품에서 더욱 소리높여 울어 버렸다.

* * *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살아남은 기사들을 위시한 자칸의 왕 듀칸과 아쿤이 루드바하, 르베나와 함께 무너진 궁전의 터로 돌아왔다.

그곳엔 르베나의 곁에 꼭 붙어선 스릴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모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루드바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일정 범위 내에서 마법을 차단하는 결정 같군요.”

르베나가 내놓은 불투명하게 빛나는 결정에 제 신력을 둘렀던 루드바하가 이내 힘을 거둬들이며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루드바하의 말에 르베나 역시 사뭇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구속구는 많이 봤지만 광물의 형태는 처음입니다. 게다가 일정 범위 내 마력과 신력의 움직임을 차단하다니…….”

르베나의 말에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루드바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험해 본 대로 이 결정엔 신력과 마력 모든 게 통하지 않고 결정의 일정 거리 밖에선 탐지조차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느 고서에서 그런 결정을 가진 몬스터가 있다고는 보았지만…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루드바하의 말에 이번엔 스릴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어요. 물론 제가 탐지 마법은 서툴지만 아까 그 아이의 바로 곁에 갔는 데도 아이에게서 신력이나 마력의 생명력 기척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스릴의 말을 들은 르베나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이 결정이 아까 스릴 공주를 쫓던 몬스터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몬스터가 당시 아이 근처에 있었다면 감지가 어려웠을 수 있겠지. 그리고 만약… 이런 결정을 가진 몬스터가 하나가 아니라면…….”

르베나의 말에 임시 회의장으로 꾸며져 달랑 어디서 구해온 책상 하나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어둡게 변해 갔다.

그 순간 임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며 듀칸의 명으로 나갔던 기사들이 저마다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본 모두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기사 중 한 명이 듀칸과 아쿤에게 말했다.

“명하신 대로 근처를 살펴보니 이런 결정이 몬스터들의 시체에 있었습니다. 모든 몬스터의 시체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몬스터 다섯 중 둘, 셋의 시체에선 발견되었습니다.”

기사의 말에 루드바하가 벽안을 서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척을 우리가 읽지 못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그중에는…….”

“바흐란 왕자가 있을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이 결정들을 치우며 생존자들을 탐색해 나가야겠군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부상당한 이들인 걸 생각하면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르베나에 이어진 말에 듀칸이 낯빛을 굳히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유파시드 님과 르베나 단장의 힘만으로 가능합니까?”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루드바하가 아닌 르베나가 했다.

“광역적인 마법을 써서 힘이 닿지 않는 곳을 느낄 수는 있으나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입니다. 루드께서 자칸의 전역에 마법을 써도 그건 마찬가지이고, 게다가 제가 텔레포트로 이동해 제거한다 해도 자칸 전역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소요되고 맙니다.”

“하아… 인력이 부족하군요…….”

르베나의 말에 아쿤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칸의 기사들은 2/3이상이 부상으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고 몇 안 되는 자칸의 마법사들만이 루드바하와 르베나의 힘 덕에 건재한 상황이었다.

마법학원의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탐지와 텔레포트 마법등에 실력이 부족하기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듯싶었다.

마법사의 부족. 자칸에 드리워진 위기가, 또다시 자칸을 구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먹고 있었다.

순간 주위를 둘러보던 루드바하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왕국도 위험에 빠져 있거나 곧 위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주어진 인력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시간이 부족하니 지금의 인원들로 시작하죠. 르베나 단장이 탐지를 하면 이동해 결정을 제거하는 건 제가 합니다. 저희 둘이 자칸의 3/4을 맡을 테니 힘드시겠지만, 나머지 마법사분들께서는 궁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을 세분화해 탐지해 주셔야겠습니다.”

현재 젠의 상황과 디오니스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로 더 많은 힘을 소비하는 건 루드바하와 르베나 모두가 원치 않는 상황이었지만 눈앞의 사람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빠른 결정과 판단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자칸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황을 정리해 지휘하는 루드바하의 말에 자칸의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들끼리 지역을 세분화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르베나가 모두를 향해 언제나와 같은 어조로 차분히 말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르베나의 말에 루드바하 역시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임시 회의장의 빈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있던 마법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놀란 듀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하나둘 자칸에 속한 마법사들과 아쿤, 스릴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회의장에 환한 빛무리가 나타났다가는 곧 빛이 섬멸하며 그 자리에 스무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자리한 것이다.

평온한 태도로 도착한 이들이 회의장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율엔을 모시는 종들이 가주의 명을 받아 이곳 자칸에 왔음을 정중히 알립니다. 부디 자칸을 위해 저희의 미력한 힘을 보탤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율엔 가문이라면…….”

“켄느 왕국 제일의 마법사 가문……?”

“맙소사 이게 무슨…….”

별안간 나타난 이들로 임시 회의장에는 때아닌 소란스러움이 번져 갔다.

약간은 들떠 있는 듯한, 결코 나쁘지 않은 소란스러움. 그것은 피비린내 짙은 사막, 자칸에 내린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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