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제3장. 아벨디온 下, 켄느 편 (32)
“저, 저게 도대체… 뭐야.”
유파시드의 신력으로 다시 힘을 얻은 마법학원의 세츠 하나가 자칸에 마치 형벌처럼 몰아치는 검붉은 마력을 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다 죽어가던 베이라 학생 하나가 제 몸속 가득 채워지는 강하고 견고한 힘을 느끼며 홀린듯 입을 열었다.
“숨어 살아야만 했던 나에게, 그리고 모든 베이라들에게.
살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신 분.
우리에게… 세츠들과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말씀해 주신 분…….”
친구의 말에 세츠 마법사 학생이 놀라 크게 떠진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붉은 회오리들은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해져 온 하늘을 모두 검붉게 물들였다. 그 빛에 어둡던 자칸의 하늘이 순간순간 밝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본 베이라 학생이 저도 모르게 제 눈 가득 맺힌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며 자그맣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르베나 드 디오니스… 사상 최강의… 베이라!”
쾅! 콰과광!!
마치 그 학생의 부름을 듣기라도 한 듯, 하늘에서 번쩍번쩍 더 크게 빛이 났다.
그 빛은, 그 굉음은, 쉬지 않고 점점 더 크고 더 강하게 몰려들었다.
회오리치는 검붉은 마력의 힘을 이기지 못한 듯 천둥소리가 온 자칸의 허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리고 그 큰 회오리가 하나로 합쳐진 바로 그때 번쩍!!!
콰과과과광……!!!
엄청난 빛과 함께 몸집을 불린 회오리 마력이 허공의 한 곳으로 가서 그곳의 모든 것을 처단하듯 몰아치기 시작했다.
“끼엑!!!”
“뀌이익!!”
“캬아아악!!!!”
몰아치는 검붉은 마력에 여기저기서 비명처럼 솟구쳐 오르는 몬스터떼의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콰광! 콰과광……!!!
하지만 그녀, 르베나의 마력은 단 한 놈도 빼먹지 않겠다는 듯 쉴 새 없이 허공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루드바하의 실드 속에서 간신히 안정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압도적인 힘에, 세상이 금방이라도 쪼개질 듯 몰아치는 엄청난 굉음에, 마치 하늘이 노한 듯 몬스터들을 벌하는 것 같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 누구도 감히 한마디 사족을 붙일 수 없었다.
몰아치는 르베나의 마력에 모두가 범접할 수 없는 힘에 대한 감탄을 넘어 비로소 경외심을 갖게 되었을 즈음, 그녀의 회오리들이 서서히 힘을 잃고 사라져 가며 하늘이 다시 어두운 밤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어, 없어졌어…….”
“맙소사… 허공에 새로 나타난 몬스터들이 모두… 모두 없어졌어!!!”
한 사람 두 사람의 비명 같은 소리에 모두의 눈이 떨리듯 허공을 향해다.
툭, 투툭.
하늘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희망이 되어 흘러내렸다.
자칸의 상공에 새로 나타난 몬스터들의 공간이동 통로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거기서 나오던 수백 몬스터들의 시체와 함께.
“최강의… 베이라, 르베나.”
하늘을 보며 누군가가 외친 그 부름에 답하듯 하늘에서는 다시 검붉은 마력이 지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마력은 제게 닿는 몬스터들을 모두 베어내듯, 그 마력에 닿는 누군가를 지켜내듯, 자칸에 있는 모든 베이라들을 응원하듯 번져갔다. 그렇게 자칸에 한바탕 몰아친 르베나의 천둥 같은 마력은 곳곳에 무리 지은 몬스터들이 더이상 눈에 띄지 않을 때까지 사정없이 몰아치다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멈춰 갔다.
루드바하의 강력한 실드와 르베나의 강력한 공격으로 자칸에는 어느새 아까보다 훨씬 안정된 적막이 찾아오고 있었다.
자칸의 두 기사 역시 그 광경을 빠짐없이 제 눈이 새겼다. 얼굴에서 흐르는 피로 눈이 감길 것 같아도 그 피를 모두 치워 내며 지켜 보았다.
그가, 그리고 그녀가 그들의 자국 자칸을 지켜내는 그 모습을.
하지만 그 잠시의 감탄과 고마움이 실수였을까? 개중에 살아남은 몬스터 하나가 무방비하게 있던 그들에게 달려든 것이다.
난데없는 공격에 눈을 부릅 크게 뜨고 한 기사가 제 손에 들린 무기를 휘둘렀지만, 순간 그는 직감했다.
‘늦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하지만 죽음을 직감한 순간조차 그는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해 휘두른 후 뒤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듯 뒤돌아선 채 기도했다.
부디 그의 가족들이 유파시드와 르베나의 구원속에 살아 숨쉬길. 또한, 가족만큼 소중한 그의 하나뿐인 제자 역시 어디에선가 살아있길.
그리고.
“나의 주군을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그 영광이, 내게 허락되길.”
기사의 말에 함께 있던 남자가 놀라 눈을 치켜떴다.
그를 지키기 위해 무방비하게 노출된 기사의 등, 이미 휘둘러져 기사의 손을 떠난 무기, 그리고 기사의 뒤로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몬스터.
서둘러 무기를 꺼냈으나 그 역시 알아챘다.
아주 많이, 그들이 늦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꾸에엑!!”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끈적한 몬스터의 피가 기사의 어깨와 그가 보호한 이의 얼굴에 질척하게 튀어 올랐다.
타앗. 그들의 앞에서 난 가벼운 착지 소리에, 그리고 뜨겁게 느껴지는 몬스터의 피에 그들의 온몸이 부르르 떨 듯 전율했다.
하나로 올려 묵은 검고 풍성한 머리, 늘씬하고 가벼운 몸놀림, 언제나 무감각해 보이는 검붉은 눈동자, 그리고 방금 벤 몬스터의 진득한 피를 여상하게 털어내는 은빛의 검신.
“르, 베나… 단장.”
뒤에 선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적과도 같은 부름에 그녀, 르베나가 휙 뒤로 돌아 그와 눈을 마치며 휙 무엇인가를 건넸다.
얼결에 그녀가 던진 그것, 검을 받아든 그에게 르베나가 머리를 다시 한번 올려 묵으며 말했다.
“바흐란의 검입니다. 지금부터 그를 찾을 겁니다. 그러니 그보다 먼저 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아쿤 단장님, 그리고 전하.”
자칸의 기사단장이자 바흐란의 스승인 아쿤과 자칸의 왕은 그들 앞에 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감각한 얼굴, 조금 전 그 천둥 같은 마력의 소유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태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바흐란의 생존을 확신하는 듯한 단호한 검붉은 눈빛.
“아… 아…….”
자칸의 왕, 듀칸의 온몸이 떨려왔다.
제 눈앞에서 어린 아이를 구하다 몬스터떼에 둘러싸이고 온 몸이 뜯긴 채 건물의 자재에 깔려버린 그의 아들, 바흐란.
“아… 그 애가… 정말… 살아… 있습니까.”
떨려오는 듀칸의 목소리에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 르베나가 이곳으로 떠나기 전 당부하던 아를의 말을 떠올렸다.
“절대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야, 르베나.”
아를의 그 짧은 말에도 르베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아를. 그 녀석과 꼭 한번 다시 붙어 보고 싶다고 한 너와 다한 경의 말, 내가 지켜 주지.”
아를의 말을 다시 한번 새긴 르베나가 듀칸과 아쿤을 보며 말했다.
“바흐란도 언젠가는 죽겠죠.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닙니다.”
탁.
르베나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로 가볍게 올라섰다. 멀리서 조금씩 밝아오는 사위가 그녀를 비추는 배경 같았다.
떠오르는 해에 윤곽선이 비춰 어느 때보다 커 보이는 그녀가 듀칸과 아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해치우면서 찾아야겠습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르베나의 질문에 아쿤이 제 험악한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대와 함께 싸울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이오, 르베나 단장.”
씨익.
그리고 듀칸 역시 바흐란의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 목숨을 내 나라 자칸을 지키는 데 쓸 것이오. 그리고 오늘의 은혜 또한… 절대… 잊지 않겠소.”
처음 보는 아쿤의 미소와 조금은 목이 멘 듯한 자칸의 왕, 듀칸의 목소리가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르베나가 검을 고쳐 쥐었다.
제 확신과는 다르게 바흐란,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을 그의 기척이 자칸에 도착한 그때부터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