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제2장. 아벨디온 上, 젠픽스 편 (34)
“우웁……! 이게 무슨 냄새야.”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속을 게워낼 듯 토악질을 해대는 자칸 기사의 모습은 결코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일행들 모두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키메라에 대한 공포심보다 그들이 뿜어내는 지독히도 역한 냄새에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바흐란 역시 오른팔을 들어 코와 입을 급히 막고는 가스트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정말 이곳에 스릴과 아한이 있는 게 맞습니까?”
바흐란의 물음에 가스트 역시 인상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일단 맞기는 합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가스트의 눈은 언제 갑자기 달려들지 모르는 키메라들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스트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바흐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어왔다.
“석연치 않다니 뭐가 말입니까.”
가스트가 작게 실드 마법을 일행의 주위로 치며 말했다. 실드는 키메라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인지 옅은 회색의 마력으로 만들어져 일행을 둘러쌌다.
“흠… 본래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은 가까울수록 그 힘이 더 강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건물 안에 들어왔음에도 느껴지는 마력의 수준이 밖과 비슷합니다.”
가스트의 말에 곁에 있던 칸이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게 정말 그 분들인지 아닌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겠군요.”
그리고 칸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긴장한 낯으로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스릉-!
소리와 함께 모두가 검을 들어 올리자 키메라들의 기색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점점 흥분이 고조되는 듯 코를 킁킁 거리거나 몸채를 부르르 떨었고 또 어떤 것들은 입에서 흐르는 침 같은 것의 분비량도 훨씬 많아졌다.
“…키메라라니. 정말로 키메라라니……!”
눈앞의 키메라를 보고 중얼거리는 한 기사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다소 굳어진 일행 속을 파고들었다.
르베나와 디오니스 제1기사단이 키메라를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멀리서 전해 듣기는 했지만 정말 이들 스스로가 키메라와 맞닥뜨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데 키메라를… 그것도 수백의 키메라를 고작 열 명 정도의 인원으로 맞닥뜨리다니!
게다가 지금 그들에게는 보호해야 할 비전투 인원도 속해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키메라를 마주 본 기사들의 착잡한 마음은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일행들에게 젖어 들었다. 그리고 기민하게 그들의 분위기를 읽은 칸이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키메라는 만들어진 사람에게 조종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는 공격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안심해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가스트 님의 공격 마법은 좁은 이곳에서는 자칫 일행들에게도 위험을 줄 수 있으니 기사들이 위험할 때만 물리적 실드를 쳐 주시는 쪽이 좋을 듯합니다.”
자칸 기사들의 얼굴에 어려 있는 약간의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칸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박학다식한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오는 길에 익히 들어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행의 반응을 확인한 칸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키메라는 보통 눈과 접합 부위로 보이는 곳이 약점입니다. 그러니 그곳들을 공격하면 덩치가 큰 일반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간혹 산성의 독을 내뿜는 개체들도 있으니 키메라의 몸에서 나온 그 어떤 것에도 접촉은 하지 마십시오.”
이어지는 칸의 말에 기사들은 그의 말을 외울 듯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적어도 키메라에 대한 지식을 그만큼 갖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하나의 정보라도 더 기억하면 그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스릴과 아한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칸이 본인의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리고 제 몸은 제가 지킬 테니 염려 말고 싸우십시오. 무엇보다.”
스릉--
그의 검집에서 주위를 환히 밝힐 만큼의 빛을 자랑하는 금신의 검이 뽑혀 나왔다. 검에 무지한 사람이 보기에도 칸의 검은 대단해 보일 만큼 찬란한 빛을 요요하게 내뿜고 있었다.
“저것들은 지능이 없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에도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말을 마친 칸의 검이 키메라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그와 동시에 기사들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칸은 분명히 비전투 인력인데. 누구보다 약하고 누구보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었는데.
지금 키메라들을 노려보는 그의 갈색 눈은 이곳의 어느 누구보다 강렬하고 그 누구보다 분노에 젖어 보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함께하는 자칸의 기사들마저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에 온몸이 오싹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보다 약하지만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사람. 이 순간 칸은 그들 모두에게 그런 존재였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르베나 공주님.”
마법사가 여상히 건네는 말에도 르베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르베나의 시선은 충격에 휩싸인 것처럼 어느 한 곳만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르베나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마력으로 목소리를 살짝 위조한
마법사는 태연하게 계속 말을 건네었다.
“이곳을 들킨 것이 알려지면 제가 단체에서 힘을 뺏길 위기인지라. 어쩔 수 없이 모두를 없앨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 부탁드리죠.”
계속해서 건네지는 마법사의 말에도 르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르베나의 모습에 슬쩍 못마땅한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던 그가 그제야 르베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르베나 일행과 저를 가르고 있는 수많은 키메라 떼를 지나서야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닿았다.
그러고는 아차, 싶다는 듯 말했다.
“아! 저 꼬마들을 찾으러 온 거였죠? 이런이런, 내 정신을… 나이를 먹으면 이렇답니다. 일부러 르베나 님께 보여 드리려고 정중히 모셔왔는데 말입니다.”
“…정중히?”
냉소적으로 내뱉은 르베나의 목소리가 위험할 만큼 차가웠다. 하지만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르베나의 답변이 그저 기쁜지 마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말했다.
“아! 목소리도 예쁘셔라! 마력도 황홀하기 그지없는데… 그 외모에 그 목소리라니…….하아……. 다른 베이라들이 탐내는 마음을 이제야 알겠군요.”
하지만 그가 하는 이번 말에 르베나는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르베나의 옆에 서 있던 아를만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참지 못한 살기를 쏘아댈 뿐이었다.
“이 미친 자식아……!! 애들한테…….하… 애들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솟구치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며 짓씹을 듯 내뱉어지는 아를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르베나의 시선이 고정된 곳, 아한과 스릴을 바라본 그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괴로움이 묻어났다.
“무슨… 짓? 아아……! 그게 궁금하셨구나. 키킥. 그냥 어린 베이라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까불 길래 예절 교육을 조금 한 것뿐입니다. 아이들은 원래 때리면서 알려 주어야 잊지를 않으니까요~~.”
여상히 건네오는 마법사의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의 행동을 약간은 뿌듯해하는 변태기질마저 느껴졌다. 그의 사뭇 자랑스러운 태도에 르베나의 입술이 다시 작게 열렸다.
“맞아야… 이해한다고?”
르베나가 되묻자 그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말했다. 저의 말이 이해받았다고 생각하는 듯 그는 꽤 즐거워 보였다.
“네, 네! 아, 르베나 님도 잘 아시겠군요! 어릴 때 맞으면서 배운 분이시니까! 크크크큭.”
광기에 물든 목소리가 르베나의 귀를 소란스레 울렸다.
“아이들은 맞아야 합니다! 쪼그만 것들이 어른들을 우습게 보고 달려들면 알아들을 때까지 패고 패고 또 패야지요. 르베나 님도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베이라로 자라신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
마법사의 말에 진득이 고정되어있던 르베나의 시선이 드디어 아한과 스릴에게서 겨우 떼어졌다. 하지만 시선이 떼어졌음에도 르베나의 머릿속에는 그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육체적인 구타를 심하게 당한 듯 잔뜩 피와 멍에 물든 아한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또 작고 가는 팔다리는 마법 구속구에 채워져 있었는데 얼마나 반항을 한 건지 발목과 팔목의 살갗이 전부 벗겨져 보기만 해도 아플 지경이었다.
그나마 옆의 스릴은 아한보다도 더 나은 모습이었지만 함께 반항을 한 건지 구속구를 찬 팔목과 발목의 살갗이 역시나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구타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상황에서조차 아한이 스릴을 보호하려고 한 덕분인 것 같았다.
“언제나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아한.”
르베나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가스트의 바르고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아한이 공포 스러웠을 상황에서조차 스릴을 감쌌다고 생각하니 대견스러움과 안쓰러움 그리고 차마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르베나의 전신을 감싸고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한의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낀 것은 비단 르베나와 아를뿐만이 아니었다. 제 안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룬 경의 눈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고 다른 아벨디온 기사들 역시 어린 아한과 스릴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마법사를 향해 엄청난 기세의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으득.
르베나가 자신의 입술을 피가 배어날 정도로 세게 짓 물고는 낮게 물었다.
“나이가 몇이지?”
다소 엉뚱한 르베나의 물음에 마법사가 피식하며 웃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 나이를 묻는 그녀의 붉은 눈이 자신을 향하자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얼굴과 모습, 그만큼 매혹적인 마력. 그리고 그 모든 걸 압도할 듯 불타오르는 검붉은 눈빛. 자신의 탐욕에 솔직한 베이라인 그는 눈앞의 르베나를 보며 살며시 끓어오르는 어떤 감정에 젖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르베나의 주위로는 흉포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네 녀석도 아주 애송이로 보이는데 말이야.”
르베나의 붉은 눈이 검게 일렁였고 어깨에 걸친 검붉은 망토가 찢어질 듯 세차게 펄럭거렸다. 어느새 르베나의 분노에 함께 동요한 팅 역시도 여느 때보다 요요한 푸른빛을 빛내며 검붉은 마력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법사를 향해 르베나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니 너도 그만큼 맞아야… 내 말을 좀 듣겠군.”
입술을 굳게 닫은 르베나의 주위로 압도적인 힘의 파장이 사납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공간의 모든 생명을 허락하지 않는 듯 검붉은 빛의 파장이 거칠고 무섭게
일렁거렸다.
파삭— 파사사삭--!!
검붉은 마력이 닿는 공기에서는 찢어질 듯한 마찰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르베나의 눈이 마법사를 향했을 때,
퍼엉-!!
폭사해나간 검붉은 힘이 빠른 속도로 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검붉은 마력이 지나가는 모든 자리에 먼지가 일었고 마력이 지나가는 모든 길에 가득 차있던 키메라들의 비명 소리가 처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한번 얼마나 잘 배우는지 볼까!”
르베나의 붉은 눈이 더없이 싸늘한 예기를 띠고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