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르미 그린 달빛-42화 (42/131)

42. 왕세자답지 않은 일

영은 중희당의 너른 탁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선연한 얼굴 위로 가을 햇살이 덧씌워졌다.

시린 기운에 눈살을 찌푸릴 만도 하건만. 열린 동창 밖을 응시하는 영의 얼굴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고즈넉했다.

짙푸른 하늘과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종종걸음으로 걷는 궁녀들과 환관들이 여상한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영은 지루한 눈빛으로 그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박제된 듯 보이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지만 그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였다.

홍라온.

아까부터 이 세 글자가 뇌를 떠나지 않았다.

입소리를 낼 때마다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이름만큼이나 귀여운 녀석. 이 녀석 때문에 그의 완벽했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는 다음 보위를 이을 왕세자로 길러졌다.

조선 역사에 몇 안 되는 적통의 왕세자. 그의 세상은 정해진 규와 율, 형과 식에 맞춰 움직였다.

자고, 일어나고, 먹는, 이 사소한 일련의 행동들마저도 언제나 완벽해야 했다.

왕세자라는 막대한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도 함께 따라왔다.

그리고 그 의무에는 무심(無心)도 있었다.

왕은, 왕이 되어야 할 사람에겐 마음이 없어야 했다.

마음이란 무릇 범상한 목숨붙이들에게나 있는 것. 세상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하는 지배자에겐 필요없는 것이라 하였다.

아주 어렸을 적엔,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어느 시절엔 그런 말을 듣고 발끈도 하였었다.

하지만 채 생각이 여물기도 전에 깨닫게 되었다. 왕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여, 마음을 잘라냈다. 여린 새싹처럼 돋아나는 사람의 감정을 철저히 베어버렸다.

그렇게 마음의 잔가지마저 깨끗이 도려낸 이후, 영은 모든 것에 무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제 곁에 잠들어 있는 라온을 보는 순간, 마음이 동요했다. 평온했던 일상이 뒤틀리고, 냉정했던 사고가 성난 짐승처럼 날뛰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어린 아우 정도로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저를 화초서생이라 부르는 녀석의 맹랑함이 싫지가 않았다.

두고 보는 재미로 온종일 붙어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아 자주 찾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정이 들었고 이제는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녀석으로 인해 무심했던 심장에 마음이 생겨났다.

옹송그린 채 잠든 라온의 꿈자리가 평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心).

저 아이가 언제나 웃었으면 하는 마음(心).

그리고 저리 웃는 낯으로 자신만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원(願).

무심했던 심장에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이 어느덧 원이 되어 버렸다.

“쭉정이로구나.”

한숨 소리와 함께 낮게 자책하는 소리가 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릴 적부터 영민하다 귀가 닳도록 들어왔건만. 실상은 겉똑똑이가 아니던가.

고작 제 반치 품도 나가지 않는 작은 녀석이 친 덫에 꼼짝없이 잡혀 있는 꼴이라니.

“한심하군.”

영은 문득 탁자를 두드리고 있는 제 손가락을 내려 보았다.

라온의 얼굴을 만졌던 그의 손끝에는 따뜻한 기운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오늘 아침, 그는 곤히 잠들어 있는 라온을 위해 일평생 처음으로 늦잠이라는 것을 잤다. 아니, 정확히는 늦잠 자는 척을 하였다.

최 내관의 근심에도 불구하고, 영은 제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라온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든 라온의 얼굴은 세상에 갓 나오는 천진한 갓난아이 같았다. 보고 있노라니 절로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그렇게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봤어야 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망령된 마음이 욕심을 부렸다.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그의 마음 한쪽에서 불쑥 머리를 치켜들었다.

라온의 보드라운 뺨을, 저 붉은 입술을 만져보고 싶었다. 그 기묘한 감정에 영은 허둥대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잠든 라온을 흘겨보았다.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라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감히.”

이 나라의 국본인 나를 이리 허둥대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저는 세상에 다시없을 태평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니. 괘씸하였다.

하여, 반은 장난으로, 또 반은 골이 난 마음에 라온의 볼을 잡아 늘였다.

잠에 취한 라온이 미간을 찡그렸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휙 영의 손을 뿌리치던 라온은 한순간 고개를 돌려버렸다.

덕분에 라온의 작은 얼굴이 영의 커다란 손안에 오롯이 담겼다.

어린 짐승의 것처럼 한없이 연약하고 보드라운 감촉.

영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빠져나갔다. 그의 눈동자가 바람에 일렁이듯 흔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을 자각했다.

쥐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이 녀석을 온전히 갖고 싶어졌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이 녀석이란 말인가. 여인도 아닌 환관을 갖고 싶어 하다니. 어이없는 마음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실소와 함께 느닷없이 조갈이 일었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 갈증이 일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여, 영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대로 그렇게 라온의 곁에 있다간 근원모를 목마름에 타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한심하군.”

톡톡, 버릇처럼 탁자를 두드리며 영은 체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린 가을 햇살도 구기지 못했던 그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났다.

열린 덧창 너머로 낯익은 뒷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라온이다.

텅 비어 있던 영의 눈동자에 생기가 꽃처럼 피어오른다.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던 영은 주춤 멈췄다.

또다. 나답지 않은 일.

영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홍라온, 저 녀석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개구쟁이처럼 라온을 놀려댔고, 불퉁한 녀석의 모습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녀석이 웃으면 같이 웃었고, 녀석이 심술이 나면 함께 심술이 났다.

마음의 무게란 것이 원래 이리도 무거운 것이려나.

천근의 추를 단 듯 명치끝이 묵직했다. 마음의 무게만큼 영의 표정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적이 가득한 방 안에 최 내관이 들어섰다.

“저하.”

잠시 헛기침을 흘리며 영의 눈치를 살피던 최 내관이 허리를 조아린 채 다가왔다.

“홍 내관을 처소로 돌아가 쉬라 하였나이다.”

“잘 하였다. 아마도 곤했을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서 있었으니. 무쇠로 만든 사람이라도 쓰러지리라.

하지만 영의 말을 곡해한 최 내관은 귓불을 붉혔다.

저 혼자 은밀한 상상의 나래를 펴던 최 내관이 괜한 헛기침을 흘렸다. 밖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영에게 아뢰었다.

“하옵고, 부원군 대감께서 뵙길 청하시옵니다.”

“부원군께서?”

외조부의 독대요청.

일순간 영의 눈빛이 심연처럼 깊어졌다.

영은 라온으로 인해 흔들렸던 감정을 심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했다. 최 내관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완벽한 무심(無心).

사람의 마음을 도려낸 냉혈의 지배자.

차가운 왕세자의 가면을 얼굴에 덧씌운 영이 최 내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뫼시어라.”

이윽고 문이 열리고 깐깐한 인상의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

영안부원군 김조순이 입가에 자글자글한 웃음을 그렸다. 영이 일어나 가벼운 예를 취하며 그를 맞이했다.

“외조부께서 예까지 어인 걸음이십니까?”

“지나는 길에 마침 여유가 생겨 발길을 돌렸사옵니다. 그간 소원하였습니다.”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시간만 가는 듯합니다. 앉으시지요. 일간 한번 얼굴 뵙자 사람을 보낼 참이었습니다.”

“하하하. 사신단의 대접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신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전해 듣고 있었사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경험이야 세월이 쌓아 줄 것이옵니다. 저하께서야 워낙에 영민하시니, 무슨 일이든 잘 하시리라 믿사옵니다.”

“외조부께서 그리 믿어주시니 제 마음이 든든합니다.”

“허허허. 이 늙은이의 믿음이 무어라고 저하께서 든든하다 하시오니까. 하오나 저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늙은이야말로 힘이 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듣기 좋은 덕담이 오고갔다. 그러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

그 사이 최 내관이 다과상을 내왔다.

차를 권하며 영이 말했다.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외조부께서 아무 일도 없이 이리 걸음하실 리 없을 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큰일이야 있겠나이까. 다만.”

가느다란 눈매를 길게 휘며 웃음을 짓던 부원군이 작은 책자를 꺼내 영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한번 살펴봐 주시겠사옵니까?”

“이것은 내일 연회를 위해 준비한 홀기가 아닙니까?”

연회의 진행과정을 알기 싶게 정리해둔 홀기.

“이것이 무에 잘못되었습니까?”

영이 시치미를 뗀 채 물었다.

저 홀기에 김조순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 홀기를 제작하라 명을 내린 사람, 다른 아닌 영 자신이었으니.

“늙으면 느는 것이 걱정뿐이라는 말이 있더이다. 허허허. 늙은이의 노파심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이 부분, 충성서약의 부분이 이 늙은이의 마음에 걸리옵니다.”

“그것의 어떤 점이 부원군의 심려를 끼치게 하였는지요?”

“선왕께서 승하하시고 주상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셨지요. 연치 어리신 나이에 보위에 오르신 탓이라. 전하께서는 모든 것이 서툴렀고 두려웠지요. 게다가 임신년에 홍경래와 그의 역도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크게 놀라셨습니다.”

김조순은 미소를 거둬들이며 말을 이었다.

“반란이 일었을 당시, 전하의 곁을 지킨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중신들이었사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새삼스레 충성의 맹약이라니요? 그것은 그들의 충심을 의심하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충심을 의심하다니요? 그 무슨 터무니없는 말입니까? 소손은 그저 오랫동안 이어왔던 연회의 격식을 재현하려는 것뿐입니다.”

“이제와 그런 격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원군의 미소가 좀 더 가늘고 깊어졌다.

“그렇습니까? 소손의 생각은 부원군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 나라 조선에는 좀 더 엄격한 격식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답도록 앞으로도 규와 율을 좀 더 엄격히 할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감히 허물 있는 자들이 왕의 안전에서 고개 들지 못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원군을 응시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김조순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나라라. 옳은 말씀이십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하오나 저하, 허물이 있다 해도 재능이 있는 신하라면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들여 쓰는 것이 바로 정치이고 군주의 바른 덕이라 생각하옵니다.”

“군주의 바른 덕이라. 이 또한 좋은 말이오. 그러나 신하의 허물을 덮는 덕을 베푸는 대신 허물을 바로잡는 것, 하여 신하가 신하답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군주의 올바른 덕입니다.”

영의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이 김조순을 향해 날아들었다. 왕세자가 뿜어내는 강건함과 위압감이 김조순을 향해 여과 없이 짓쳐들었다.

세자의 말 속에 담긴 노골적인 저의.

한 마디로 말해 외척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었다.

부원군의 눈두덩에 잠시간 경련이 일었다. 그러나 노련한 정치가는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 영을 응시했다.

“허허허, 그런 깊은 뜻이 있으신 줄은 몰랐사옵니다. 이 늙은이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닙니다. 종종 부족함 많은 손자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릴 때부터 천재라 칭송이 자자하시던 저하가 아니시옵니까. 이 늙은이의 경험이 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허허허, 저하께서 이리 뜻을 곧게 세우시고 당당히 일어서시니. 이 늙은이는 그저 마음이 흡족할 뿐이옵니다.”

“그리 생각해주시니. 제가 고맙습니다.”

“하오면 소신은 그만 물러가겠나이다.”

고개를 조아리는 김조순을 향해 영 역시 목례로 답했다.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서늘한 기운이 오고갔다.

***

김조순이 동궁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영의정을 비롯해 그를 기다리고 있던 조정대신들과 궁인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풍고, 그래 저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었소?”

영의정의 물음에 김조순은 유유히 웃는 낯을 보였다.

“아직 연치 어리신 분이라. 젊은 혈기에 세상과 맞서 보고 싶으신 듯하오.”

“이런, 내 그럴 줄 알았소이다. 그래,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두고 보고만 있을 셈이오?”

“일국의 왕세자이신 분이시나, 내게는 귀한 손자이기도 한 분. 귀한 자식일수록 엄히 다스려야 한다지요.”

“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저하께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소."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게요?”

영의정의 근심 어린 물음에 김조순이 소맷자락에서 홀기를 꺼냈다.

“이 홀기가 필요 없게 해야지요.”

김조순이 등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조에 일러 오늘밤 사신단과 조정대신들이 타고 나갈 배를 준비하라 하게.”

“배라고 하셨소?”

느닷없는 그의 명에 영의정이 끼어들었다.

“하늘을 보니 밤 날씨가 청명할 것 같으니. 강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달밤의 뱃놀이도 나쁘지 않을 테지요.”

“뱃놀이가 홀기를 쓸모없게 만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오?”

“아무래도 오늘 밤의 뱃놀이가 길어질 것 같소이다. 그래서 내일 연회에 참석을 못 할 것 같단 말이지요.”

“허나, 내일은 전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있는 날이 아니외까?”

“전하께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을 보내 윤허를 받으면 될 일이오.”

“과연.”

모두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김조순의 얼굴에는 여전히 주름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영의 얼굴이, 그의 강건한 기세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계획을 좀 더 서둘러야겠군.”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김조순이 뒤따르던 환관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이 길로 목 태감에게 달려가 일정이 바뀌었음을 전하시게.”

“알겠사옵니다.”

아직 왕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

같은 시간 목 태감은 내반원에 들어 있었다.

성 내관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목 태감을 연신 곁눈질했다.

“태감,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것이옵니까?”

“그것이…….”

목 태감이 조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하여 그리 망설이시는 것이옵니까? 소인과 목 태감 사이에 못할 말이 무어가 있다고 그러시옵니까? 말씀해 보시옵소서.”

“내 실은, 자네에게 은밀히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네.”

“무엇이옵니까?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옵니다.”

“사실, 내게 특별한 취미가 있는데. 알고 있는가?”

“특별한 취미시라면…….”

“흠흠.”

목 태감이 헛기침을 흘리며 먼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것 말이옵니다.”

눈치 빠른 성 내관이 양손을 비비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청나라 황실의 실세인 목 태감에겐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 바로 어린 미소년을 취하는 것이다.

“혹여 눈여겨 봐 둔 아이라도 있사옵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찌 이리 내 속내를 척척 아는 것인가?”

“태감과 저 사이에 말이 무에 필요가 있겠나이까. 그저 눈빛만 주시옵소서. 소인이 알아서 준비하겠나이다.”

“그럼…….”

목 태감이 헛기침을 하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성 내관이 슬금슬금 앞으로 걸어가 목 태감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경청할 터이니, 뉘인지 말씀만 하여 주시옵소서.”

“어제 연회에서 세자저하의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 있던데.”

“세자저하의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요?”

“그 왜 얼굴이 조막만 하고.”

“네, 얼굴이 조막만 하고.”

“두 볼이 발그름하고 곱상한 것이 계집 뺨치게 생긴 아이 말일세.”

“계집 뺨치게 생긴 아이라면.”

이내 성 내관의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가에 음충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목 태감에게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그 아이를 태평관, 태감의 침소로 보내겠사옵니다.”

“그럼 나는 자네만 믿겠네.”

용무를 마친 목 태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반원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기대감으로 홍조가 맺혀 있었다.

***

“홍라온, 그 녀석을 말입니까?”

마종자가 놀란 눈으로 성 내관을 응시했다.

“그렇다.”

“하지만.”

마종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말씀 아뢰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성 내관님. 그 녀석,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듯하옵니다.”

“왜?”

“글쎄요.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녀석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드는 것이…….”

딱!

성 내관의 주먹이 마종자의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누가 널 더러 생각을 하라 했느냐. 너는 생각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내리는 명을 그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하오나 세자저하께서 자꾸만 그 녀석을 곁에 둔다 하옵니다. 혹여 세자저하께서 귀이 여기는 것은 아니신지.”

마종자의 말에 성 내관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뭐라?”

이내 웃음을 그친 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마종자를 응시했다.

“세자저하가 뉘시더냐? 천하에 둘도 없는 차가운 분이 아니시더냐. 그런 분이 뉘를 귀이 여겨? 그분께서는 그리 귀이 여길 사람도, 마음도 없으신 분이다.”

“하오나…….”

“토 달지 말고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마지못해 명을 받잡기는 했지만 마종자는 영 내키지가 않았다.

홍라온을 목 태감의 침소에 넣는다?

예전 같으면 별 대수롭지 않게 행했을 일이건만, 어쩐 일인지 등줄기를 훑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불길해. 정말 불길해.

“그런데 이놈은 어디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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