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선당의 괴인 (上)
라온은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은 채 눈만 끔뻑거렸다.
대들보 위에 걸터앉은 귀신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초저녁인데 벌써부터 활보하는 귀신이 있네.
궁궐은 잡초마저도 범상치 않다더니.
저 귀신도 궁궐 귀신이라 좀 색다른 건가?
“하암.”
귀신이 길게 하품을 했다.
신기하군. 귀신도 하품을 하는구나.
“뭐냐? 왜 그렇게 쳐다봐? 귀신이라도 본 게냐?”
아! 말도 한다.
하긴, 귀신이라고 말을 못 할 이유는 없지. 저 입은 장식으로 달려있는 게 아닐 테니까.
감탄하는 사이 귀신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렸다.
귀신이라서 그런 걸까? 꽤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네놈. 뭐냐?”
귀신이 게으른 목소리로 물어왔다.
일순, 라온은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물러가라, 귀신!”
콩.
라온의 정수리에 귀신이 꿀밤을 먹였다.
“아얏!”
“계속 사람, 귀신 보듯 할래?”
귀신, 아니, 사내의 말에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 입니까?”
“네놈 눈에는 내가 귀신으로 보이느냐?”
사람으로 보기엔, 눈빛이 너무 서늘했다. 게다가 피라도 머금은 듯 붉은 입술과 새하얀 얼굴색이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라온은 손을 뻗어 사내의 얼굴을 만졌다.
조금 차갑긴 해도 체온이 느껴졌다.
사내의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의 간질거리는 느낌도, 사내에게서 전해지는 바람의 향기도 너무도 생생했다.
“정말 사람이십니까?”
라온은 위 아래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화초서생과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큰 사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만나는 젊은 사내들은 죄다 이렇게 훤칠하고 잘난 사내들뿐이다.
이거 복(福)이야? 아니면 재난(災難)이야?
“제대로 맞아야 정신 차리지?”
“하지만 여긴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장 내관의 말을 떠올리며 라온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수다쟁이 환관이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왠지 요즘 잘난 사내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이러다 버릇 되는 거 아냐?
라온의 물음에 사내가 턱짓하며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오늘부터 자선당에 머물게 된 홍라온이라 하옵니다.”
“예전부터 자선당에 머물고 있던 김병연이라 한다.”
“아, 김 내관이시군요.”
순간, 병연이 무서운 눈씨로 라온을 응시했다.
“내가 내시 따위로 보이느냐?”
"내시 따위라뇨? 내시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보시기엔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내시 따위가 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 아십니까?”
물론, 라온에겐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지만.
라온은 내관을 무시하는 병연을 향해 한껏 눈을 흘겼다.
그 성난 눈빛을 마주하던 병연이 문득 라온의 복색을 훑었다. 그리고는 시큰둥하고 내뱉었다.
“내관이로군. 어쨌든 나는 네놈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 어떤 사람입니까?”
“알 것 없다.”
“…….”
이 사람이!
핏대를 세우는 라온을 깔끔하게 무시한 병연은 지금껏 라온이 누워 있던 자리에 드러누웠다.
멀뚱히 서 있던 라온은 그의 발치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저기.”
“…….”
“예전부터 여기 계셨다고 하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여기 계시겠네요?”
“굴러 들어온 놈이 박힌 분 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제가 앞으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뭐라고 부르다니?”
“내관이 아니시라면, 맡으신 직책이 무엇인지요?”
“내 직책을 네놈이 알아서 뭐하게?”
“직책을 알아야 뭐라고 부를 것이 아니옵니까?”
궁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그가 맡고 있는 직책으로 호칭해야 한다고 배웠다.
“부를 것 없다.”
“네?”
“어차피 오래 머물 것도 아니질 않느냐?”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
“저기.”
“김 형(金兄).”
“네?”
“김 형이라고 부르던가.”
“김 형이라고 말입니까?”
“…….”
라온의 물음에 병연은 귀찮다는 듯 돌아누웠다.
더는 말 걸지 말라는 단호한 거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눈만 끔뻑대며 지켜보던 라온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병연을 불렀다.
“김 형.”
“…….”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한데, 이부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
“김 형.”
“꽤 성가시게 구는군.”
여전히 등을 보인 채 누운 병연이 발끝으로 건너편 벽을 가리켰다.
“저쪽이 벽장이다.”
라온은 서둘러 벽장문을 열었다.
안에는 낡긴 했지만 제법 쓸 만한 이부자리 몇 채가 얌전히 개켜 있었다.
라온은 그중 가장 깨끗한 이불을 들고 병연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병연을 불렀다.
“김 형.”
“난 이불 필요 없다.”
“그게 아니라…….”
병연이 느리게 라온을 향해 돌아누웠다.
중요한 일 아니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그는 성난 눈빛으로 라온을 응시했다.
눈빛으로 윽박지르는 병연의 기세에 잔뜩 기가 눌린 라온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자리, 제 자리입니다만.”
방금 전, 내 등으로 따뜻하게 데워놓은 자리란 말입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눈빛으로 라온을 올려보던 병연이 느릿느릿 몸을 안쪽으로 움직였다.
이내 한 사람 더 누울 공간이 생겼다.
“저보고 거기 누우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
“송구합니다만, 제가 낯선 이와 함께 자 본 적이 없는지라.”
비록 사정이 있어 내관복을 입고 있지만, 속 알맹이는 엄연한 여인이었다. 그것도 막 만개하기 시작한 성숙한 여인.
그런데 어디라고 함부로 사내와 동침할 수 있겠는가.
라온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라온을 병연이 별스럽다는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온은 이불을 움켜쥔 채로 병연이 비켜주기만을 기다렸다.
“성가신 놈.”
짧게 툭 한 마디 뱉은 병연이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성가셔서 송구합니다.”
미안한 마음에 라온은 느리게 걸음을 옮기는 병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김 형,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전각의 다른 곳을 청소하겠습니다. 그때는……응?”
숙였던 고개를 들던 라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느린 굼벵이처럼 움직이던 병연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지?”
휘휘 에두르는 고갯짓을 하던 라온은 잠시 후, 입을 헤 벌린 채 천장 대들보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올라갔는지 병연이 그 긴 몸을 대들보 위에 느리게 뉘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저긴 언제 올라간 거야?
“설마, 거기서 주무실 건 아니시지요?”
“함께 못 잔다며?”
“그렇긴 하지만.”
누군가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시는 겁니까?
“다시 내려가랴?”
“아닙니다! 됐습니다!”
옆에서 살을 부대끼느니, 차라리 위에서 누군가 내려다보는 것이 낫겠지. 낫겠지? 나을까?
정말…… 괜찮을까?
라온은 대들보 위에 들러붙은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병연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엔 잠자긴 글렀다.
***
짹짹짹짹.
동창 밖에서 아침을 알리는 참새소리가 들려왔다.
"상쾌한 아침이군.”
라온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창문 밖을 응시했다.
대들보 위에서 자는 병연 탓에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무슨 방도를 강구해야지. 이러다 내가 귀신이 되고 말겠다.”
라온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혼자 뭘 그리 중얼거려?”
그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대들보 위에 있던 병연이었다.
'아, 깜짝이야. 제발 기척 좀 하고 다니세요.’
라온이 놀라거나 말거나 병연은 그녀가 빠져나온 이부자리 속으로 쏙 들어갔다.
“여름도 이젠 끝인가? 새벽엔 제법 쌀쌀하군.”
이불 필요 없다더니. 하지만 대들보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도 우스꽝스러우리라.
“김 형께선 어쩌다 대들보 위에서 주무시게 된 것입니까?”
“…….”
“김 형께선 어디서 뭘 하시는 분이십니까?”
“…….”
“김 형께선 나이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
“그런데 김 형, 밥은 언제, 어디서, 먹는 것입니까?”
퍽!
병연이 발끝으로 라온의 등짝을 툭 찼다.
그리고는 시끄럽다는 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시끄러웠습니까? 죄송합니다, 김 형.”
라온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였다.
꼬르르륵.
라온의 배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고요한 방을 뒤흔들었다.
어제 저녁부터 굶주린 배가 시위하는 중이었다.
서둘러 제 배를 움켜쥔 라온은 이불을 쓴 병연을 돌아보았다.
못 들었겠지? 다행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 못 들었으리라.
안도하는 찰나.
병연이 별안간 몸을 일으켰다.
“왜, 왜요?”
자신의 부산함에 병연이 화가 난 것일까?
라온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병연을 응시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라온을 한번 쓱 쳐다보던 병연이 무심한 목소리로 툭 한 마디 했다.
“귀찮은 놈.”
졸지에 귀찮고 시끄러운 사람이 된 라온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라온이 어찌 된 상황인지 나름 변명을 하려는 찰나였다.
“홍 내관! 홍 내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잡초 밭 저 멀리, 솟을 대문 바깥쪽에서 겨우 머리만 안으로 살짝 들이밀고 있는 장 내관의 모습이 보였다.
“장 내관님!”
수다쟁이 장 내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라온은 반색을 하며 쪼르르 한달음에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물끄러미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병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꽤 성가시게 하는군.”
**
“홍 내관. 괜찮소?”
작은 보퉁이를 품에 안고 있던 장 내관이 라온과 자선당 안쪽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간밤에 잠을 설치긴 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잠을 설쳐요? 왜요? 혹시 이상한 것을 보거나 한 것이오?”
“이상한 것이요? 아, 그런 것이라면 봤습니다.”
장 내관의 물음에 라온은 대들보에 들러붙어 있던 병연을 떠올렸다.
이상해도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그래요? 정녕 봤단 말이요?”
“예. 봤습니다. 어디 봤다 뿐이겠습니까? 이야기까지 했는걸요.”
“허억!”
장 내관의 얼굴이 하얗게 바래졌다.
“이, 이거…….”
장 내관은 서둘러 품에 안고 있던 짐보따리를 라온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홍 내관이 갈아입을 여벌옷과 필요한 생필품이외다. 그럼 난 이만.”
“그러지 마시고 잠시 안으로 드시지요. 아직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아닙니다. 아니에요.”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그러합니다.”
“예서 물어보시오.”
“여긴 마땅히 앉을 곳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굳이 좋은 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자선당 안으로 한 발짝도 들이기 싫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표현하던 장 내관은 급기야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기도 편하고 좋기만 하구려.”
“정히 그러하시다면.”
하는 수 없이 라온도 장 내관의 옆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장 내관님, 자선당은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것이옵니까?”
“임진년의 왜란 때 불에 타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임진년의 왜란이라면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 아닙니까?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궁궐 안의 전각을 어찌 이리 방치해 두는 것입니까?”
라온의 물음에 장 내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홍 내관, 이건 비밀인데 말이요. 이곳 법궁의 음기가 워낙에 강해 예전부터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자주 생겼다오. 그런 법궁 안에서 가장 음기가 강한 곳이 다름 아닌 이곳 자선당이라 합디다. 그 말이 사실인지, 자선당에선 실제로 흉측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지요. 예를 들면…….”
“자선당의 연못에 궁녀가 둘이나 빠져죽은 일 같은 거 말이옵니까?”
라온의 말에 장 내관이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
“홍 내관, 고백할 게 있소.”
“고백이요?”
“사실…….”
말끝을 흐리던 장 내관이 라온을 향해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사실 넷이라오.”
“뭐가요?”
“자선당 연못에 빠져죽은 궁녀, 사실은 둘이 아니라 넷이라오. 세종대왕 시절에만 둘, 그 뒤로 둘이 더 있었지요. 듣자하니 내가 아는 것 외에도 더 많은 죽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으스스한 고백, 하지 마세요.
라온은 왼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의문에 장 내관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참, 장 내관님. 하나 더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뭔가요?”
“어제 분명 자선당엔 저 혼자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그럼 그분은 뉘옵니까?”
“그분이라니?”
“그 왜 머리카락을 이렇게 사선으로 내려뜨리고, 검은 복색을 하고 있는 사내 말입니다.”
“검은 복색을 한 사내?”
“천장에 딱 달라붙어서 밤새 밑을 내려다보던 그분 말입니다. 그분은 언제부터 자선당에 계셨던 것이옵니까?”
“글, 글쎄요.”
장 내관은 앉은 채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장 내관님?”
왜 저러시지?
“아하하하, 내가 너무 바빠서.”
“조금만 더 있다 가시면 아니 되옵니까? 아직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새털처럼 많은 날이 있소이다. 궁금한 건 나중에 묻는 걸로. 그럼 난 이만.”
다리가 저린지 연신 코끝에 침을 묻히던 장 내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장 내관님!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 자선당에서 제가 뭘 해야 하는 겁니까? 그보다, 밥은 언제 주시는 것입니까?”
주린 배를 움켜잡은 채 라온이 소리를 질렀지만, 허무한 메아리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
“아, 배고프다.”
다시 자선당 안으로 돌아온 라온을 반기는 것은 텅 빈 방과 텅 빈 위장뿐이었다.
라온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던 병연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나 대들보 위에 누워 있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셨나?”
조금은 걱정이 된 라온은 전각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나 찾는 것이냐?”
“아, 깜짝이야.”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방 한쪽 구석으로 병연의 모습이 보였다.
“어딜 다녀오신 것입니까?”
묻는 라온의 앞으로 병연이 툭, 보퉁이 하나를 던졌다.
“이건 뭡니까?”
“배고프다며.”
“네?”
라온은 병연이 던진 보퉁이를 열었다.
이내, 그녀의 눈앞에 먹음직한 음식들이 펼쳐졌다.
잘 삶은 닭고기, 기름기 반지르르한 너비아니, 푸르고 붉은 빛깔의 재료로 만들어진 산적, 호박전, 감자전, 밀병, 등등.
궁 밖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음식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감탄하듯 음식을 바라보던 라온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귀한 음식을 차려놓을 마땅한 밥상이 없었던 까닭이다.
“김 형, 혹시 음식 가져오실 때 밥상은 안 가져오셨겠죠?”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역시나 대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음식을 나열했다.
그런데…… 이번엔 숟가락이 없네.
난감한 표정으로 입맛만 다시고 있자니, 대들보 위에서 병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손으로 먹어.”
괜스레 까탈을 부리는 것 같아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던 라온이 병연을 올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김 형, 원래 궁궐에선 이런 식으로 밥을 먹습니까?”
아, 적응 안 된다, 궁궐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