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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는 황후님 (120)화 (120/122)

<120화>

외전 7화.

해리는 똑똑한 아이였지만, 성인 남성 둘을 때려눕힐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저항은 했지만, 남자들은 아이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 길로 아이들은 남자들에 의해 짐이 잔뜩 실린 짐마차에 가두어졌다.

“어떡해, 해리…. 괜찮아?”

마차에 벨을 던져넣은 것에 분노한 해리가 저항하다가 남자에게 얻어맞았다. 그 탓에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벨은 그런 해리의 얼굴을 보더니 더욱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었다.

“난 괜찮아, 벨.”

두 사람 모두 양손을 뒤로 묶인 채였다.

해리는 이제 와서 조금 후회스러운 것이 있었다. 언젠가 루카가 제 검술 수업에 함께하겠냐고 물었을 때, 거절했던 것.

제게 기본적인 실력이 있었다면, 벨 혼자서라도 도망치게 하는 것쯤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공부만 해서는 이런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곧이어 짐마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해리는 벨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 * *

둘의 외출에 해리까지 합세할 뻔한 것에 벨의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로렌스는 귀가를 서둘렀다.

벨 역시 로렌스는 무척 아꼈으니 말이다.

어차피 당분간은 발루아에 머물 테니 다음에 더 느긋하게 다녀오자는 말에 루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귀가한 두 사람을 맞은 집사는 놀란 얼굴로 그들의 뒤를 살폈다.

“두 분만 돌아오신 건가요?”

어리둥절한 집사의 물음에 로렌스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벨 아가씨와 해리도 함께 가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두 분만 돌아오신 건가 해서….”

집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로렌스는 다시 뒤를 돌아 공작저를 뛰쳐나갔다.

남은 루카가 놀란 얼굴로 집사에게 물었다.

“벨과 해리가 어딜 갔어요?”

“예? 로렌스 전하와 루카 도련님의 외출에 함께 나가신다고…. 두 분께서 저택을 나서시고 곧장 따라나서셨습니다.”

집사의 대답에 루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즈음, 기사 하나가 다급히 공작저로 달려왔다.

“고, 공작 각하! 작은 마님! 아르제오 님!”

기사는 되는 대로 누구든 찾았다.

“무, 무슨 일이라도….”

루카와 문가에 서 있던 집사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기사는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본론을 꺼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일을 알려야 했으므로.

“순찰 중의 보고로, 벨 아가씨로 추정되는 아이가 얼마 전 공작령으로 흘러들어온 조직에게 끌려갔다고 합니다!”

“예? 어떻게 그런…!”

“그, 그럼 벨이…!”

기사에게 얘기를 들은 집사와 루카가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일이지?”

루카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계단을 내려오던 아르제오는 심각한 표정의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그게….”

집사는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그 대신 기사가 다급하게 아르제오에게 말했다.

“아르제오 님, 얼마 전 공작령으로 흘러들어온 범죄조직이 벨 아가씨로 추정되는 아이를 끌고 갔다고 합니다!”

“뭐?”

발을 동동 구르는 루카를 보며 아르제오가 표정을 굳혔다.

“로렌스 전하와 루카 도련님의 외출에 동행한다고 따라나서셨는데, 두 분은 모르고 계셨던 듯합니다. 게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셔서 로렌스 님이 곧장 다시 나가셨는데…. 이런 보고가….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르제오 님…!”

집사가 바들바들 떨며 설명을 늘어놓자, 아르제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하게 굳어졌다.

“어떡해요, 아버지….”

루카는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는 아르제오를 바라보았다.

밤거리가 보호자 없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았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공작령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외부인이 늘어날수록, 밤거리는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의 손에 벨이 잡혀갔다는 보고라니.

루카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아르제오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는 자세를 낮춰 루카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괜찮아. 아빠가 가서 찾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루카가 엄마 곁에 있어 줄래? 소식을 들으면 엄마는 분명 엄청나게 걱정하실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를 확인한 아르제오는 하녀를 불러 아이를 레이라에게 먼저 올려보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검을 차며 집사에게 말했다.

“기사단장을 불러 주겠나? 단장 공작령을 봉쇄해야겠다. 헤레이스에게도 알려 도움을 청해 주고.”

“예, 아르제오 님.”

바쁘게 사라지는 집사를 확인한 아르제오는 그 길로 공작저를 뛰쳐나갔다.

누구든 벨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골로 보내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허리춤에 찬 검을 꾹 움켜쥐었다.

아르제오가 저택을 나서고, 하녀와 함께 나타난 루카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은 레이라도 창백하게 질렸다.

“벨이…”

“어머니!”

바들바들 떨며 입을 틀어막는 레이라를 루카가 꼭 붙들고 섰다.

“아버지와 삼촌이 가셨어요. 아버지가 꼭 찾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테니 저보고 옆에 있어 드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봐요, 네?”

옷자락을 움켜쥔 루카의 손에 레이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르제오는 루카에게 레이라를 부탁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반대의 의미이기도 했다.

‘내가 진정해야 해.’

그래야 루카를 달랠 수 있었다.

숨을 느리게 내뱉은 레이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곧장 하녀에게 말했다.

“유진을 불러주겠니.”

“예, 작은 마님.”

“맡겨놨던 것도 함께 가져와달라고 하고.”

“예.”

하녀가 방을 나서자 레이라는 루카를 꼭 끌어안고 가만히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별일은 없을 거야.”

“…네, 어머니.”

레이라는 반복적으로 길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하녀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유진이 막 방으로 달려왔다.

“찾으셨습니까?”

하녀에게서 대충 얘기를 들은 유진이 레이라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벨 아가씨가 전하를 더 닮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부분까지 닮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오도 어릴 때 그랬나요?”

“연례행사처럼 종종 황궁을 몰래 빠져나가셨죠.”

유진의 대답에 레이라가 픽 웃어버렸다.

“그런 건 닮지 않아도 되는데.”

어릴 적 꽤나 말썽꾸러기였을 아르제오를 떠올리니 레이라는 더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분명, 괜찮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두 분 전하께서 반드시 찾아내실 테니까요. 그놈들도 멍청하죠, 감히 플로스 상단의 아가씨를 건드리다니요.”

플로스 상단을 적으로 돌리려는 이들은 드물었다.

“어쨌든 이걸 쓰시겠다는 판단은 옳다고 봅니다. 아예 공작령을 봉쇄하시는 것이 좋겠죠. 아마 전하께서도 이미 그러한 명령을 내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봉쇄하는 것보다 제가 더 빠를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레이라는 유진에게서 받은 주머니를 꾹 움켜쥐었다.

“가자, 루카. 우리도 같이 벨을 찾는 게 좋겠구나.”

“예, 어머니.”

“서둘러 찾아야 하니 상단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있나 확인해보겠습니다.”

“부탁해요, 유진.”

레이라와 루카가 공작저를 나서려고 하니 바쁘게 그 곁을 지나던 집사가 놀란 얼굴로 멈춰 섰다.

“작은 마님? 이 시간에 어디 가시려고…. 포레스티아 기사단까지 움직이니 마님께서는 저택에서 기다리시는 것이 어떨까요?”

집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레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제오도 포레스티아령을 봉쇄하라고 했겠죠?”

“아, 예. 기사단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봉쇄하는 게 제일 빠르니까요.”

“예?”

그녀는 집사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며 대답 대신 걸음을 뗐다.

그녀의 뒤를 루카가 따라나서는 걸 보며, 저택에 남아 있던 포레스티아 기사 둘이 따라붙었다.

아르제오나 유진이 함께하지 않을 때는 늘 그랬듯이.

그녀는 곧장 저택 뒤쪽의 국경의 숲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적당한 땅을 찾아, 유진이 건넸던 주머니에 든 씨앗을 전부 쏟아냈다.

레이라가 땅에 떨어진 씨앗을 손으로 덮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깊게 심호흡한 그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힘을 씨앗에 쏟아냈다.

옅은 청록빛이 아니라, 진한 청록빛이었다. 그대로 씨앗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일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라는 성장했고, 그녀의 능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게 지켜야 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레이라는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아르제오가 지시한 포레스티아 기사단이 공작령을 봉쇄하기도 전에, 그녀의 힘으로부터 뻗어 나간 단단한 넝쿨이 공작령을 감쌌다.

쉬이 넘어설 수 없도록 높이 솟아오른 넝쿨은 두껍고 단단해서, 검으로 잘리지도 않았다.

“어머니, 이게….”

국경의 숲과 이어진 넝쿨은 마치 시타델 섬의 거대한 나무처럼 느껴졌다.

루카가 놀란 얼굴로 넝쿨과 레이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도 공작령을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 범죄조직이 붙잡은 것이 진짜 벨이든 아니든, 아이를 납치한 놈들이 공작령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감시 벨을 건드리고도 그냥 빠져나갈 수 있는 놈은 없었다.

땅을 짚었던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 레이라는 루카에게 말했다.

“어서 벨을 찾으러 가자.”

루카에게는 아마도 레이라가 제일 거대해 보인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이채를 띤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던 루카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머니.”

* * *

한참을 덜컹거리며 움직이던 짐마차는 어딘가로 바삐 향하더니 곧 멈췄다. 그러고는 마차 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야, 이거 뭐야!”

“저도 잘….”

“빨리 치워!”

밖의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는 없었지만, 저들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거, 검도 들지 않습니다!”

“뭐야, 이건 도대체! 검이 안 되면 불태워!”

“예!”

남자들이 바쁘게 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벨.”

한껏 목소리를 낮춘 해리는 조심스럽게 벨을 불렀다.

“괜찮아?”

“응. 해리는?”

“괜찮아.”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혹여나 벨이 어딘가 부딪혀 다치지 않도록, 해리가 줄곧 벨을 감싸고 있었다.

평소에 공부만 하느라 단련되지 않은 해리의 몸은 멍투성이였다.

“그보다,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아. 이 틈에 도망치자.”

해리의 말에 벨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을까?”

“응. 괜찮아.”

벨은 또 금세 잡힐 것을 걱정했지만, 해리의 표정은 단호했다.

‘벨만이라도….’

해리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벨만이라도 도망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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