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레이라는 줄곧 아이를 원했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제 부모님처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알려야겠네요.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날이 점점 쌀쌀해지니 따뜻하게 하시고요.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말씀하시고, 당분간은 일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그럼.”
미켈은 잔소리를 와르르 늘어놓더니 후다닥 방을 나섰다.
잠시간의 침묵이 맴돌고 놀란 얼굴이던 아르제오는 레이라에게 달려들다가 멈칫했다.
“제오?”
그의 그런 행동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아르제오를 불렀다.
“아. 너무 확 안기면 위험할까 봐.”
그렇게 말한 아르제오는 살금살금 다가서 조심스럽게 레이라를 품에 안았다.
‘발소리는 상관없을 텐데.’
조심스럽게 다가오는데 발뒤꿈치는 왜 올린담. 그런 그가 우스워 레이라는 아르제오의 등을 토닥이면서도 키득거렸다.
“아이라니, 너무 좋다.”
“좋아요?”
“그럼!”
크게 고개를 끄덕이던 아르제오는 제 입을 텁, 틀어막았다.
“큰소리 내면 안 될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작게 키득거리던 레이라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르제오가 제게,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생기다니.
그녀의 맑은 웃음을 빤히 응시하던 아르제오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맞췄다.
이마, 뺨 그리고 입술.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춘 아르제오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사랑해.”
“저도요.”
“그대를 똑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
“제오를 닮을 수도 있죠.”
“날 닮아도 예쁘긴 할 거야.”
서로를 부둥켜안고 키득거리는 두 사람의 방에, 곧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때문에 그녀를 안고 있던 아르제오는 곧장 뒤로 밀려나야 했다.
“레이라!”
처음에는 공작 부부.
“누님!”
그리고는 헤레이스.
“아가씨!”
뒤를 이어 로라와 공작가 사람들 전부가.
그녀가 오래전부터 아이를 원했던 것을 아는 공작 부부와 헤레이스는 눈물까지 머금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레이라의 아이에 대한 기대를 품은 공작가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방에 몰려들었다.
“잠깐! 아가씨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몰려드시면 안 돼요!”
그리고 그들 뒤로 달려오며 미켈이 크게 한 말에, 로라와 하녀들이 숨을 훅 들이켰다.
“안정을 취하셔야지! 우린 얼른 가자.”
“아가씨,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꼭 말씀하세요!”
몰려들었던 이들은 공작 부부와 헤레이스만을 남겨 두고 모두가 방을 나섰다.
데이지는 레이라를 꼭 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축하한다, 레이라. 그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
“고마워요, 어머니.”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다. 배도 전과같이 납작했고, 그저 조금 나른하고 피곤할 뿐이었으니.
그래도 미켈이 전한 소식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웠다.
“이런 시기에 제가 상단 일에서 빠져도 괜찮은 겁니까? 필요하시면 전 양쪽 모두 병행 가능하니 말씀해주세요.”
걱정스러운 헤레이스의 말에 레이라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아르제오도 같은 생각인지 덧붙여 말했다.
“양쪽 일을 모두 하려다 무리하겠지.”
“맞아요. 이스, 무리하는 건 안 돼.”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무리해선 안 되는 건 누님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고개를 크게 끄덕인 아르제오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괜찮아, 유진이 있으니까.”
마침 소란스러운 밖을 살피러 집무실 밖을 나왔다가 하녀에게 뒤늦게 소식을 듣고 유진이 도착했다.
뚱한 얼굴로 아르제오를 보던 유진은 미소를 머금으며 레이라에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상단주. 필요하면 인력을 더 뽑을 수도 있으니 상단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이 있어서 든든하네요.”
“지금 진행 중인 방문객을 끝으로 당분간은 섬에 손님을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상단주 없이는 누군가 섬을 방문해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부탁할게요.”
“자, 자. 일 얘기는 그만.”
데이지가 웃으며 하는 말에 유진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조심해야 하니, 미켈의 말을 잘 들으렴.”
“네, 어머니.”
“제가 옆에서 잘 지켜보겠습니다, 어머님.”
레이라의 대답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데이지가 아르제오의 말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한동안, 레이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녀가 무언가 하려고 하면 아르제오와 온 공작가 사람들이 달려와 말렸기 때문에.
물건을 드는 것도, 저택을 나서는 것도.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산책하러 나갈 때는 반드시 아르제오가 함께였고, 그녀의 곁에는 늘 누군가가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초반에는 레이라도 아무렇지 않다며 다들 너무 과보호라고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입덧이 시작되며 그렇게 말할 수도 없어졌다.
물 마시는 것도 힘들어진 레이라는 산책은커녕, 침대를 벗어나는 것도 버거워했다.
“좀 괜찮아?”
“괜찮아요.”
얼굴이 핼쑥해졌는데도 레이라는 아르제오가 저리 물을 때마다 괜찮다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아르제오는 도리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숨을 푹 내쉰 그는 그녀에게 레벤의 꽃잎을 달인 차를 내밀었다.
“자, 이거라도 마시자.”
“고마워요.”
그 차가 레이라가 유일하게 문제없이 넘길 수 있는 거였다.
아르제오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가 찻잔을 든 채로 픽 웃었다.
“왜 또 그런 얼굴이에요.”
“그대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말랐는데 더 말랐잖아.”
“어머니가 아이를 가지면 대부분 이런 시기를 겪는다고 하셨어요.”
“알지. 그저 그대가 이리 힘들어하니 속상해서 그러지.”
차를 마신 레이라가 찻잔을 침대 옆 협탁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르제오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레이라가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그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아가, 엄마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돼.”
“아이만 건강하면 됐어요.”
“그래도….”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아르제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오, 한숨 너무 많이 쉬어요.”
“그대가 힘드니까.”
“전 진짜 괜찮아요.”
“이래서 정말 방문객 받아도 괜찮겠어?”
“어차피 당분간은 방문객을 받지도 않을 텐데요, 뭐.”
마지막으로 요청서를 진행 중이던 방문객까지만 받기로 정해졌었다. 하지만 그 일정이 다가오기 전 레이라의 상태가 이리 좋지 않아졌을 뿐.
아르제오는 물론, 유진도 일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지만, 레이라는 반대했다. 대신 조금 괜찮아질 때까지 일정을 늦추기만 하자고 말이다.
가만히 아르제오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레이라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제오.”
“응? 왜, 뭐 필요해? 차 더 줄까?”
찻잔을 힐끔거린 레이라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딸기가 먹고 싶어요.”
“딸기?”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아르제오는 당장이라도 딸기란 딸기는 전부 가져다주고 싶었다.
다만, 점점 날이 쌀쌀해지고는 있었지만 아직 가을. 딸기가 나올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그녀가 먹고 싶다는데.
아르제오는 레이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조금만 기다려. 딸기란 딸기는 모조리 가져올 테니.”
“딸기 셔벗이 먹고 싶어요.”
“주방장에게 일러둘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아르제오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곧장 로라와 재클린을 찾았다.
그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한 아르제오는 주방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딸기! 딸기 셔벗이 먹고 싶다고 했어!”
“딸기요?!”
레이라가 무언가 먹고 싶다고 했다는 말에 모두가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일러 딸기가 있을지….”
“무슨 소리야! 없어도 찾아내야지! 마법사를 시켜 만들어내서라도…!”
모두가 불굴의 의지로 딸기를 찾아내자고 다짐하는 사이,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작은 목소리였는데도, 모두의 시선이 한순간 그 하녀에게 쏠렸다.
“저희 고향에서는 매년 딸기를 조금 일찍 재배해서요…. 딸기 재배 기간을 늘리려고 설비도 매년 새로 하시고, 마탑에 의뢰해서 아티펙트도 조금씩 사용하시고요.”
그 말에 모두가 화색을 띠었다. 가을에 구하기 어려운 과일이라, 다들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막막했으니.
“당도는? 이 시기에 딸기라니, 당도가 떨어지지는 않겠지?”
주방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하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기르는 딸기예요. 당도도 떨어지지 않게 하도록 아티펙트까지 들여 설비를 정비하는걸요!”
“거기다! 지금 당장 거기서 딸기를 들여와!”
당장 그 하녀의 고향으로 사람을 보내라며 분주한 사이, 아르제오가 주방장에게 말했다.
“딸기 셔벗이 먹고 싶다는군. 그것도 준비해 줘.”
“예!”
주방장에게 말을 전한 아르제오는 제가 직접 딸기를 사러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전부터 가지고 있던, 리히덴의 제 황자궁으로 돌아갈 수 있던 아티펙트의 위치는 이미 바꾼 지 오래였다. 발루아의 이 공작저로 말이다.
그러니 거기가 어디든 그가 직접 가는 편이 빨랐다.
하녀에게 고향 위치를 물은 아르제오는 곧장 공작저를 나섰다.
다행히도 하녀의 고향은 공작령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르제오는 하녀의 편지와 함께 쉬지 않고 말을 달려 공작령을 벗어났다.
그곳에서 포레스티아에서 왔음을 밝히며 편지를 전하고, 딸기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 즉시 아르제오는 아티펙트를 이용해 공작저로 순식간에 돌아갔다.
후에 레이라가 아르제오를 찾았지만, 로라는 그가 딸기를 찾으러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만 전했다.
그날 밤은 아르제오가 돌아오지 않아서 레이라는 입술을 비죽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갑자기 너무 먹고 싶기는 했지만, 아르제오가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했다.
그리고 어스름한 새벽녘, 아르제오는 딸기를 한가득 들고 공작저로 돌아왔다.
그 새벽부터 주방에 나와 있던 주방장에게 딸기를 안겨 준 아르제오는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방 안에 새근거리는 레이라의 숨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먼 길을 다녀온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다녀왔어.”
나지막이 속삭인 아르제오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