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레이라는 잠시 로이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로이드는 그걸 예상하였음에도 조금 마음이 저릿했다.
“당신에게 죄가 없는 걸 알아.”
“그걸 알고도 시타델로 보내신 건 폐하십니다.”
이제 와서 이러는 로이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며 죽음의 섬으로 떠밀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 섬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고?
레이라의 반박에 로이드는 참담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시타델로 돌아갈 것입니다.”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니 로이드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바를 말하라고 하지 않았나. 내 명령에 따를 거라고도 했고.”
“명령이 시타델 섬으로 가지 말라는 건가요? 왜요? 제가 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걸 빌미로 공작가를 손에 쥘 생각이세요?”
로이드는 그러려고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아줄 리가 없는 마음이었다. 자신이 해 온 일들이 있으니.
입을 꾹 다문 로이드를 보며 레이라는 그저 불안해지기만 했다.
그가 전쟁을 원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로 공작령이 그 전쟁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충분한 설명을 해 주세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겨우 입을 떼도 레이라의 강경한 태도에 로이드는 금세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 않기에 그저 입을 닫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죄인이 아니니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야 제 결백을 믿으세요?”
“……”
“폐하께서는 그때, 제가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든 상관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사실 여부는 뒤로하고 저를 시타델로 보내셨죠.”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변명거리가 둥둥 떠다니는데, 정작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홀든 영애를 새 황후로 맞으셨죠.”
“그걸 어떻게….”
시타델 섬의 유배는 세상과 단절된다. 그러니 로이드는 저도 모르게 레이라가 그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폭풍우에 휩쓸리고 제가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폐하께서 황궁에 절 가두셨을 때처럼요?”
“……”
입매를 굳힌 로이드를 레이라는 온기 없는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뱉어내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이제 대답은 로이드의 몫이었다.
담담한 레이라와 달리 로이드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정확히는 할 수 있는 말이.
“…이유를 말씀하지 못하실 거면 전 보수가 끝나는 대로 시타델 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섬으로 들어가면, 폐하께서도 공작가의 안전을 지켜 주시지요.”
언제까지고 황제의 넓은 아량만 바랄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위한 작업을 미리 해 두어야 한다는 것도.
잠시 로이드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기에 레이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잠깐.”
레이라가 걸음을 떼려고 하니, 그가 다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당신이….”
목 끝까지 차오른 말에 로이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신이 없는 궁이 미치도록 숨 막힌다. 레이라, 그대가 없으니 궁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옥이다. 그러니 부디, 돌아와 달라.
혀끝에 걸린 말은 로이드가 입을 꾹 다물어 삼켰다. 그리고 쏟아 내려던 말들을 최대한 함축하고 또 함축해서 꺼냈다.
“당신이, 다시 황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하.”
레이라는 곧장 헛웃음으로 로이드의 간절한 바람을 쳐 냈다.
“폐하.”
그 짧은 헛웃음에 로이드는 직감할 수 있었다. 레이라가 거절할 것임을.
“새 황후가 버젓이 있는 황궁에, 저를 데려가서 어쩌시려고요? 이번엔 그 황후를 몰아내시겠습니까?”
차분한 목소리 톤. 평소였으면 편안했을 그 톤이 심장을 수십 번씩 쑤시는 느낌이었다.
찔러서 상처가 난 자리를 찌르고, 또 찌르고, 다시 찌르는 기분. 욱신거리는 통증에 로이드는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로이드의 표정에도 레이라는 그의 손을 떼어 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대로 홱 몸을 튼 레이라는 망설임 없이 포레스티아 공작가로 걸음을 뗐다.
로이드도 이번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 나름대로 살고자 필사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살아남았으니까.
황제의 자리에 오른 건 자신이었고, 자신을 위협하던 존재들은 이제 없었다.
그런데도 로이드는 후회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가두고,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레이라를 버린 것을.
이제 와 후회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 더 괴로웠다.
레이라가 돌아가 버린 후에도 로이드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 호위 기사가 다시 찾으러 오기 전까지.
* * *
황궁으로 돌아간 로이드는 늘 그렇듯 정무를 끝내고 비어 있는 황후궁으로 향했다.
이제는 엘라가 새로이 황후가 되었으니 그곳은 더 이상 황후궁이 아니었다.
동쪽의 버려진 궁 취급을 받는 곳이었지만, 로이드에게는 유일하게 숨이 트이는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들어섰는데도, 오늘은 여전히 숨이 막혔다.
단호히 돌아서던 레이라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로이드는 서늘해진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후원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들고 온 술을 병째 들이켰다.
독한 술을 막무가내로 넘기고 나니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후….”
로이드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술 한 병을 다 비워 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밤이어서가 아니라, 눈앞이 캄캄했다.
되돌려 놓을 방법은 없었다. 레이라의 마음은 돌아섰고, 제게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이 손으로 그리 만든 것이었다.
가만히 제 손을 내려다본 로이드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덮었다.
“…천하의 몹쓸 놈이 따로 없군.”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그녀를 되돌릴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는 제가, 끔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 * *
레이라의 단호한 태도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로이드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저 자신이 더 가관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편지를 받은 레이라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레이라 포레스티아의 결백이 밝혀졌다. 따라서 시타델 섬으로의 유배를 거두겠다.
섬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작저에 머물도록 허한다.」
편지에는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핵심은 저것이었다. 그리고 공작저에 머무르라는 명령까지.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려 편지를 내려놓았다.
로이드의 행동과 말은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이제 와서 자신이 다시 필요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줄곧 관심도 없던 제 능력에 관심이 생겼을 리는 없었다.
공작가의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자신을 버리지도 않았을 테니.
‘어쨌든, 공작가를 온전히 지킬 방법은 미리 준비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라는 방을 나섰다.
국경의 숲을 이용하면, 어느 쪽이든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그 숲은 포레스티아의 안내자가 없으면 길을 잃고 실종자는 발견하기 힘들었다.
숲이 방대하기는 하나, 실종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반면 포레스티아의 문장을 달고 있는 이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도, 공작가를 숲이 허락한 유일한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그 숲은 국경을 뒤덮고 있었으니 리히덴의 공격은 막아 내도, 황제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손 놓고 있다가는 영지민들만 희생될 터였다.
아예 숲 안으로 이주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 살고자 한다면 나무를 베는 일이 생기고, 결국 숲은 본래의 모습을 잃을 터였다.
‘그럼 국경의 방어벽이 허술해지는 것과 같아.’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레이라는 그대로 걸음을 옮기다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헤레이스가 당연한 듯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누님.”
헤레이스의 인사에 부드럽게 웃은 레이라는 자리에 앉았다.
제 앞에 차려지는 음식을 보며 헤레이스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편지 받으셨죠? 그 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나가셨습니다.”
“어머니까지?”
“예. 누님이 섬에서 지내는 동안 고생했을 거라시며 이것저것 준비하겠다고 하십니다.”
헤레이스의 대답에 레이라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어머니는 새로운 드레스와 온갖 물건들을 사러 나간 것일 테니.
“말리지 그랬니.”
“저도 동의했으니까요.”
“다 똑같네.”
다들 저리 기뻐하니 레이라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보수는 얼마나 남았어?”
“시타델 섬이요?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돌아가지 않으실 텐데요.”
“그거 말인데, 돌아가려고.”
“예?”
물잔으로 손을 뻗던 헤레이스가 멈칫했다.
“지금 무슨….”
눈동자가 요동치는 헤레이스와 달리 레이라는 차분히 식사를 이어 갔다.
“시타델로 돌아가려고.”
“왜요? 그럴 이유가 있어요?”
“유배의 형은 거둬들이셨지. 난 그냥 그 섬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빌미로 폐하께서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길 바라지 않아.”
“지금 공작저에 머무르는 대신 무언가를 요구하실 거라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저희에게 무얼 요구하려고….”
전쟁이 걸린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요구든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라에게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공작저에 머물게 하면서 자신을 계속 만나러 오는 것도. 그리고 시타델 섬으로 보내지 않고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이제는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을 거야.”
큰 은혜라도 베푸는 양, 공작가에 머물게 해 주는 거라면 거절이다. 목숨을 살려 준다는 그 태도도 이제는 싫다.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로이드가 주는 것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유배가 아닌, 제 의지로 시타델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이스, 네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어.”
“예, 말씀하세요.”
레이라는 싱긋 웃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소곳이 앉아서 헤레이스를 똑바로 마주했다.
“시타델 섬을 유배지가 아닌 곳으로 만드는 거야.”
“예?”
“유배형이 거두어졌음에도, 내가 시타델 섬에 들어가는 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