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뚜렷하게도, 레이라의 흥미를 끌기 위한 말이었다. 조금만 지켜봐도 그녀가 관심 가지는 분야는 눈에 빤하게 알 수 있었다.
레이라는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사람인 것 같았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불편해하는 게 표정에 드러났다.
아르제오는 그게 눈에 보이는 게 꽤 재미있었다.
“관심 가질 식물이요?”
궁금해하는 것이 빤히 보였다. 그런데 관심을 가져도 될지 고민하는 얼굴.
아마도 죄인이 유배지에서 사라진 것을 이유로, 공작가에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일 터.
아르제오는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하는 식물.”
그의 대답에 레이라가 설명이 이어지길 바라며, 아르제오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해를 끼쳐? 독초인가?’
사람에게 독이 되는 식물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독이라고 말하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는 하지 않았다.
‘해로운. 해를 끼친다….’
어떻게 해를 끼친다는 걸까. 그가 대답해 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을 텐데 레이라는 입을 꾹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관찰하던 아르제오가 입꼬리를 올리며 나직하게 물었다.
“보고 싶어?”
“…….”
레이라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해를 끼치는 어떤 식물인지. 다른 쓰임새는 없을지, 독이라면 어찌 해독할 수 있을지. 제힘으로도 길러 낼 수 있을지.
시선을 떨어트린 채로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레이라를 보며 아르제오가 입을 뗐다.
“어차피 수도로 가는 길이기는 해.”
그 말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유배지에서 죄인이 사라졌다는 걸 이렇게 빨리 알아챌 리가 없지.”
그의 말대로였다. 보급선은 보름에 한 번 들어왔고, 그 사이에는 아무도 섬에 얼씬도 하지 않으니.
“만약 사라진 걸 알게 돼도 폭풍우에 휩쓸려서 죽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지. 스스로 도망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걸.”
아르제오의 말에 레이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은 거대한 파도에 덮쳐졌으니 그 섬이 멀쩡한 모습일 리 없었다.
그리고 포레스티아 공작가 때문에 그녀가 도망치지 않을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레이라의 마음이 흔들리는 걸 눈치챈 아르제오는 미소를 감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직도 망설임이 남아 있으니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었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그 유배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세상에 도망치지 않고 제 발로 유배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대밖에 없을 텐데?”
그러니 조금 늦어져도 그쪽에서는 죄를 묻지 않을 거라고. 돌아가기 힘든 곳까지 떠밀려 왔으니,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 부분까지 언급하자 레이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어요.”
“그렇지?”
생긋 웃는 아르제오를 보며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결과적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그럼 보고 가도록 하지.”
어차피 이미 그리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레이라에게 아르제오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녀를 위해서 가는 것처럼. 밖에 있는 유진이 보았다면 능구렁이라며 눈을 흘겼을 것이다.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서신에는 생활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만 쓰여 있었지만, 그곳에 관한 얘기는 아르제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피난민들이기에 가난으로 만들어진 환경일 테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 지역의 특정 식물을 악마 취급하며 모든 상황을 그 탓으로 돌리는 듯했다.
그들의 생활이 어찌 개선될 수 있을지, 그건 아직 고민 중이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나서서 그걸 행할 권한도 없었지만.
보고만 들었지,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전령이 올 정도면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아르제오는 다시 창가에 달라붙은 레이라를 보며 몰래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 보면 알겠지.’
* * *
리히덴 제국의 타냐 지역은 발루아 제국과는 거리가 먼, 다른 왕국들과의 사이에 있는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다.
발루아 제국은 리히덴 제국과의 국경 외에는 대부분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고, 리히덴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과 발루아 제국 사이에 끼인 모양일 때가 많았다.
해서 그곳은, 자주 전쟁을 일으키는 왕국들 사이에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피난민들만 숨어 사는 마을이 있을 정도였다.
타냐 지역의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이국인이 많았다. 상인보다는 여행객이 더 많았지만.
하지만 활발한 그 지역에도,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어둠처럼 취급되었다.
게다가 마을 근처를 붉은색으로 물들일 만큼 잔뜩 피어 있는 꽃도 그저 불길하기만 했다.
붉은 꽃잎 끝에 보라색 방울이 달린 신비한 꽃이었다.
생김새는 매혹적이긴 했지만, 가까이 가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맨손으로 만지면 꽃가루가 묻어나고, 그 꽃가루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음식을 먹으면, 기관지에 독소가 쌓였다.
그 사실이 밝혀지고는 사람들은 그 꽃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꽃은 잘라 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자라났고, 불태울 수도 없었다.
꽃을 태운 연기를 마셨다가는 환각 증상을 일으켰으니.
물론 아르제오는 그곳에 병이 도는 이유가 그 꽃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으로 생겨난 위생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타냐 지역 외곽의 피난민 마을. 그 근처에 마차를 세운 아르제오는 레이라에게 천을 내밀었다.
“얼굴을 가리는 게 좋아. 오면서 설명한 그 꽃은 인체에 해로우니까.”
“아, 네.”
레이라는 그에게서 천을 받아 코와 입을 가렸다.
이곳까지 오는 마차 안에서 얘기를 들은 레이라는 그 꽃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레드시크릿’이라는 신기한 이름의 꽃을.
유진은 마부에게 그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기다리라고 일러 두고는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작고 허름한 마을은,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가난함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 이런 광경을 레이라는 처음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귀하게 자란 공녀님이니.’
제 뒤를 따라오는 그녀를 힐끔거린 아르제오는 성큼성큼 마을로 들어섰다.
“콜록, 콜록!”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가장 먼저 들은 건 기침 소리였다.
같은 지역일 텐데도 마차를 타고 오면서 지나친 다른 도시나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밝은 대낮에도 어둡고, 음침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없었다.
다들 생기를 잃은 멍한 눈으로 막 마을로 들어선 그들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관심을 돌릴 기력도 없는 듯이.
“유진.”
“예.”
“레이라에게 꽃이 있는 곳을 안내해. 가까이 가지는 못하게 하고.”
“아르제오는요?”
“난 다른 볼일이 있어서.”
눈매를 곱게 휘며 눈웃음을 쳐서, 천 아래의 입도 분명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레이라는 아르제오를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전 마을을 먼저 둘러볼래요. 아르제오는 일 있으면 일 봐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먼저 마을 내부로 걸음을 떼서, 아르제오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유진은 그런 그의 모습이 신선해서 애써 웃음을 눌러 참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레이라를 따라나섰다.
마을은 지금껏 보아 온 그 어떤 장소보다 심각해 보였다.
포레스티아 공작령에 있을 때도, 영지 내를 살피러 다닌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은 그곳에 없었다.
이후로는 계속 황궁에 있었으니, 레이라에게 이 마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망설임 없이 마을 안으로 들어간 레이라의 뒷모습을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응시하던 아르제오도 이내 그 뒤를 따랐다.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자신을 따라오냐는 레이라의 물음에 그는 동그란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마냥 순수한 느낌이었다가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분위기도 풍겼다. 그런데도 청록색 눈동자는 맑기만 해서 어쩐지 시선을 끌어당겼다.
“마을을 둘러보는 게 내 일이야.”
그게 보통 상인의 일이던가? 하는 의문은 있었다. 하지만 아르제오가 무심한 시선으로 마을을 훑는 걸 보며 레이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보면 되겠네요.”
“그러든지.”
꽃은 마을 외곽 한쪽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레이라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아르제오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걸음을 내디디며 낮게 가라앉은 은회색 눈동자가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기침 소리, 바짝 마른 입술, 퀭한 눈. 허름한 옷차림이 전부인 그곳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관찰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그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지 오래인 것처럼.
‘상태가 심각하군.’
피난민들이 숨어 사는 곳이라고는 해도, 리히덴 제국 내에 있는 이상, 제국이 돌보아야 할 국민이었다.
잠시 마을 내부를 걷는 내내, 기침 소리는 멎지 않았다.
다른 병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저리도 기침을 달고 사는 건 꽃의 영향이 커 보였다.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조처를 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등 뒤의 아르제오가 어떤 표정인지도 모르는 레이라는 그저 제 눈에 보이는 참담한 광경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언젠가 그녀의 아버지, 포레스티아 공작이 그녀에게 해 준 말이 있었다.
사람의 행복이 우선이다. 자신들이 호화로운 삶을 즐기는 것보다, 영지민과 모두가 함께 행복한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함께 느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이곳에서는 모두가 짙은 어둠에 삼켜져 있었다.
‘이게 전부 정말 그 꽃 때문인 건가…?’
알싸한 쓴맛이 도는 기분이었다. 레이라는 모든 식물에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식물이라니. 어떤 마음으로 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차림새는 물론이고, 안색이 멀쩡한 이들이 드물었다.
“아가씨, 부디 자비를 베풀어 먹을 것을 나눠 주십시오.”
돌연 나타나 레이라의 앞을 가로막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허리를 숙였다.
굽신거리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이가 나타나니, 관심도 없던 주변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
레이라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제 앞에 선 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엇이든 내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저는 유배된 죄인의 신세였고, 더군다나 지금은 그저 조난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문제점은 과연 정말 그 꽃이 다일까?
그런 의문이 들어서 레이라는 걸음을 멈추고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제 뒤를 걷던 아르제오를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