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정상이 아닌가요?
재현이 홀로서기에서 일하기로 하고 며칠째, 하루를 만날 수 없었다.
-다른 직원분은 안 오시나 봐요.
은근슬쩍 물었더니,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홀로서기에서 일을 하게 되면 바로 하루를 볼 수 있을 줄 알았기에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재현은 매일 출근했다.
꼭 하루가 아니더라도 재현은 홀로서기에서 일하며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오늘도 하루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버리고, 낙성에게 허락을 구한 후 그동안 받은 의뢰 메일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낙성은 햄버거를 사 오겠다며 나간 터라 사무실에는 재현뿐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낙성이 들어온 줄 알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하루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하루를 보는 순간 만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낙성이 하루에게 새 직원이 들어왔다는 언질을 해주지 않았는지, 하루는 재현을 보고 무척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이 꼭 토끼 같아서 귀엽다고, 재현은 생각했다.
“오랜만입니다.”
재현이 일어나 하루에게 다가갔다.
내심 하루가 냉정하게 대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루도 미소로 재현에게 응답했다.
“그러게요.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사장님께 못 들으셨어요? 저, 여기서 일하게 됐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지난번에 재현의 인터뷰를 차갑게 거절했던 하루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낙성이 허락하면 괜찮은 모양이다.
“폐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나 싶어서 말했더니, 하루가 싱긋 웃었다.
“네, 작가님이 그런 행동을 하시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작가님, 이라는 호칭은 너무 딱딱한 것 같은데요. 우리, 이제 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아, 그런가요? 하지만…… 저한테는 너무 작가님이시라서.”
그건 안 될 말씀이다.
재현은 하루와의 사이를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로 구축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이름 불러주세요. 항상 작가님이나 선생님으로 불려서 이름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럼…… 강재우 씨?”
“아뇨. 재현이요. 강재현.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요.”
내가 너무 밀어붙이는 건가 싶었지만, 하루는 “강재현…….” 하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현 씨. 그럴게요.”
‘좋았어!’
재현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저 서로 이름을 부르기로 한 것뿐인데도 큰 성공을 거둔 기분이 들었다.
여자를 상대로 초조하기도 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는 건 처음이라,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꼴이 신기했다.
싱글싱글 웃으며 자리에 앉는 재현을 보며, 하루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름이 강우현 씨랑 비슷하네. 혹시 형제라거나…….’
재현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우현과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나는 왜 강재우 작가님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강우현 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루는 우현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희정과 만난 이후, 하루의 마음은 하루 본인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했다.
우현을 보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더 우울해져서, 낙성의 바보 같은 모습이라도 볼까 싶어 홀로서기에 방문했는데 재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재현을 보면서도 우현을 생각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그나저나 자기 일을 되게 열심히 하시는 분이네.’
그때 하루가 그렇게 매몰차게 인터뷰를 거절했는데도 이곳까지 찾아와 일을 얻어낸 걸 보니 내심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하루는 재현이 ‘하루 씨가 내 타입이라서요.’라고 말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지만 딱히 나눌 대화가 없었다.
하루는 어색했지만 재현은 그렇지도 않은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되게 잘 웃는 사람이구나.’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미소라서, 하루도 경계심을 풀 수 있었다.
이유가 뭐든 한동안 함께 일을 할 상대니, 너무 선을 그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작가님. 아니, 재현 씨는 원래 꿈이 작가였어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재현은 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작가였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하루는 자신과 같은 나이인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독자님들과의 만남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하루 씨와는 개인적인 관계가 되었으니 솔직하게 말해야겠죠.”
재현은 일부러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하며 대답했다.
“사실은 작가가 꿈이 아니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고요.”
“그럼 원래 꿈은 뭐였어요?”
“돈 많은 백수요.”
“아, 저도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꿈이죠.”
“그러게요. 그럼 어쩌다가 돈 많은 백수를 포기하고 작가가 되신 거예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형이랑 어머니랑 사이가 좀 안 좋아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도 형이랑 좀…… 그렇고요.”
“아…….”
하루는 당황스러웠다.
재현이 적당히 대답해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깊은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형은 항상 혼자예요. 우리 가족은 형을 사랑하지만, 형은 늘 혼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우리를 거부하죠. 전 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형은 들어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글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어 고민을 하다가 쓴 글이 제 첫 작품이에요.”
하루는 재현의 첫 작품을 떠올렸다.
첫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었다.
하루도 그 작품을 참 좋아했다.
“그 작품, 정말 좋았었는데. 그래서 형님도 그 글을 읽으셨나요?”
“아니요.”
재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형은 제 글을 보지도 않았어요. 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모를걸요.”
“그럼 아직도…….”
“네, 변한 게 없어요. 아, 그렇게 우울한 표정 짓지 마세요, 하루 씨. 언젠가는 변할 거라고 믿거든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루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재현은 그런 하루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물었다.
“하루 씨는 제 소설들 중에 특별히 마음에 안 들거나, 혹은 특별히 좋았던 소설이 있나요?”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요, 아니면 팬으로서 적당히 포장해서 말해야 하나요?”
하루의 장난스런 질문에 재현이 웃었다.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어요. 이럴 기회가 흔치 않거든요. 제 주변 사람들은 글을 안 읽어서요. 독자님들은 늘 좋다고만 해주시고.”
“그럼…… 음. 좋은 거 말고 나빴던 걸 말해볼까요? 좋은 점은 늘 들으실 테니.”
“네, 그래주세요.”
“세 번째 작품이요.”
“세 번째요?”
재현은 눈을 크게 떴다.
재현의 세 번째 소설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소설이었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고,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았다.
농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하루의 표정은 진지했다.
“저는 그걸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주인공을요.”
하루는 점점 놀라운 소리를 했다.
세 번째 소설의 주인공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깊은 공감을 끌어낸 인물이 아니던가.
딸 세 명 있는 집의 둘째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로 차별을 받고 자라온 주인공.
언니는 첫째이기에 부모님의 신뢰를 받고, 동생은 막내이기에 귀여움을 받는다.
둘째인 주인공은 “언니한테 대들지 마라.”, “네가 언니니까 동생에게 양보해라.”라는 말을 주문처럼 듣고 자란다.
뭘 하든 언니에게 양보해야만 하고, 동생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동생 대신 혼나게 된다.
그날, 주인공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서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때는 부모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주인공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독립을 하여 혼자 살아갈 힘을 키우기 위해 고독한 노력을 시작한다.
결국 주인공은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오고, 가족들과는 연을 끊은 채 자신의 일생을 살아간다.
소설은 결혼을 하여 딸을 초등학생까지 키운 주인공이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이 된다.
가족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주인공이지만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를 만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독자들은 ‘나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소설.’, ‘살아 계실 때 효도하자.’, ‘주인공이 안쓰러우면서도 가족과 연을 끊어야 할 정도의 일이었나 싶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만나게 된 배우들도 너무 재미있었고, 감동을 받았다며 칭찬을 많이 했던 소설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의 평가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강재우의 소설 중 이 소설이 가장 별로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점을 공감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재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공은 잘못한 게 없어도 혼이 났고, 잘해도 칭찬받은 적이 없어요. 차라리 그 집 부모가 다른 자식들에게도 공평하게 혼내고 칭찬한 적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자기 부모가 언니나 동생을 예뻐하는 모습은 자주 봐왔죠. 그래서 자기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어린 나이인데도 독립을 목표로 살아온 거고요.”
“그렇죠.”
“어릴 때는 말이에요. 물론 재현 씨도 잘 아시겠지만……. 어릴 때는 가족이, 내 부모가 세상의 전부예요. 부모가 세상이고, 신이고, 산타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고, 때로는 제일 무서운 괴물이 될 수도 있죠. 하여간 어린 자식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예요.”
거기까지 말하고 하루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순간 재현은 ‘괜찮아요. 말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할 뻔했다.
하루의 표정이 몹시도 지쳐 보였던 것이다.
“그런 어린아이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건…… 그건 정말 지독한 고독을 느꼈다는 거거든요. 성인이 되어서도 그 결심이 무너지지 않고 결국 독립을 했다는 건, 그 속에서 부모와 가족이란 존재가 최악의 형태로 굳어졌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용서가 가능할까요?”
하루가 재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을 준비해두었다.
소설을 발표한 후, 인터뷰할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정말로 용서가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주인공은 단지 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유로 용서를 할 수 있었던 건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재현은 유려하게 답변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몸속에 흐르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피가, 유전자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딸을 키우며 느낀 여러 감정이, 등등.
주인공의 심리를 포장할 문장은 많고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재현은, 어째서인지 절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루를 향해 그 어떤 답변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돌덩어리 하나가 재현의 목구멍을 콱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간절한 눈빛인 거지?’
하루는 재현의 소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답을 구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어떻게 용서가 가능할까요?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그렇다면 나도 알려주세요.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재현을 똑바로 향한 하루의 눈빛이, 그렇게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나를 낳아줬기에, 어린 날 먹여주고 입혀줬기에, 내 엄마이기에, 내 아빠이기에, 그들이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르기에, 곧 죽을 사람 소원이기에, 용서가 가능한 거라면. 그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면.”
재현이 아무 말도 못 하자, 하루가 말을 이었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저는, 그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 저는, 사람이 아닌 걸까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잊은 걸까요?”
하루의 입가에 떠오른 씁쓰레한 미소가, 재현의 심장을 콱 움켜쥐었다.
재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루가 그저 소설의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하루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가족들과 그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런 소설을 쓴 작가로서 질문을 하면 된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까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하루 씨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지만 재현은 하루에게 그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재현의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하루가 와장창 깨질 듯 위태로워 보였던 것이다.
그런 재현을 향해, 하루가 잔혹한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 눈에는, 그 주인공을 공감하지 못하는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