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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성녀는 진짜가 되기로 했다-62화 (62/101)

62화. 아스테인의 약혼녀? (1)

나와 아스테인은 황궁을 찾아가야만 했다.

가는 동안 나와 아스테인은 불안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황제가 도대체 무슨 수로 알아냈다는 걸까요?”

“뭔가 있을 겁니다.”

“파미르 공녀……. 그녀가 아스테인 님께 황제가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아스테인은 미간을 좁혔다.

못마땅함이 얼굴에 가득 떠올랐다.

“무슨 꿍꿍이인지 정말 모르겠군요.”

“안되면, 마지막 신성력을 써야겠어요.”

나는 이제 희미해져 거의 투명해진 사파이어 팔찌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마도 내 예감에 신성력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신성력의 속박 말입니까?”

“네, 그것으로 후작이나 소후작, 둘 중 하나의 자백을 받아내야겠어요.”

“위험부담이 큽니다.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요.”

속박이라는 것의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죄 없는 사람을 속박으로 죽이는 실수를 범할까 봐 아스테인은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어쩌죠?”

“폐하께서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뭔가 증거나 이유가 있을 테니 살펴보는 게 나을 겁니다.”

차분하게 달래주는 아스테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고민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요……. 그 공녀 말인데요.”

대신 나는 계속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질문을 살짝 꺼냈다.

이건, 약간의 질투였을지도 몰랐다.

“파미르 공녀 말입니까?”

“네. 친했어요? 그…… 백작님은 성녀가 될 사람이 아스테인 님과 친분을 쌓기를 바라셨을 테니…… 교류가 잦았을 것 아니에요?”

아스테인의 얼굴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것이 안심되면서도 불안했다.

“글쎄요. 어릴 때 몇 번 만났지만, 그다지 친분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저?”

“라일락 숲에서 만났던 소녀가 프레이아 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혹시나 하고 만난 것이 전부입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나왔다.

기뻤다. 아스테인이 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프레이아 님을 마음에 품은 것이 그리도 좋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네, 좋아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에 나는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스테인이 이상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웃지…… 마세요.”

“저도 좋습니다. 제가 질투할 때 프레이아 님의 마음이 이랬겠군요.”

마차 안에 우리만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의 붉은 얼굴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절대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얽힐 일이 없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나는 아스테인의 다짐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황궁에 도착한 나와 아스테인은 황제를 보기 전에 황후부터 찾아갔다.

“황후 폐하!”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프레이아! 아니 성녀님! 왔나요?”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는 카렌시아의 혈색이 좋았다.

그날 이후 많이 안정된 모양이었다.

걱정스럽게 내가 그녀의 배를 바라보자 카렌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벌써 이렇게 무리해도 되는 건가요?”

“방 안을 걷는 건데요, 뭘. 이제 너무 많이 먹어서 움직여야 한다던데요?”

성녀가 된 나에게 존대를 하는 카렌시아의 모습이 벌써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후작가에서 또 신전에 폐를 끼쳤던데…….”

카렌시아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녀는 내게 허리를 숙였다.

“가문을 대신해 사죄드립니다.”

황제는 얼마 전, 이 일과 연루된 대사제와 푸토르 가의 기사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일의 주도자는 모두 신전의 대사제들이 되어 있었다. 푸토르 후작은 쏙 빠진 채. 나는 카렌시아의 입지를 생각해서 그 부분을 걸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피해갔네요. 폐하의 결정을 바꾸려고 했지만…….”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황제가 어떤 핑계를 댔을지 뻔했다. 후작이 카렌시아에게 했을 행동도 마찬가지고.

“괜찮아요. 그러니까 마음 편히 태교에만 신경 쓰세요.”

내 대답에 카렌시아가 내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부끄러움, 미안함, 죄책감, 그러면서도 가족에 대한 연민.

“내 아버지와 동생이…… 그리도 어리석은 사람들인 줄 미처 몰랐어요. 아니 애써 모르는 척하고 살아온 거겠죠…… 흐흑.”

카렌시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눈에 맺힌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카렌시아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줬다.

“엄마가 슬퍼하면 배 속의 아이도 슬퍼해요.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한참이나 달랜 후에야 카렌시아가 눈물을 그쳤다.

“미안해요. 요즘 들어서 감정변화가 너무 심해서…… 대공 앞에서도 내가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아스테인의 답에 카렌시아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나와 아스테인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러더니 작은 한숨을 쉬었다.

“대공, 그간 별일은 없었나요?”

갑자기 관심을 아스테인에게 옮긴 카렌시아에 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은 탓이었다.

“신전에서 프레이아 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음, 계속 프레이아, 아니 성녀님 곁에 계셔줄 거죠?”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반복해서 묻는 카렌시아의 모습에 나와 아스테인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스테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다시 미소를 보내며 카렌시아 쪽을 돌아봤다.

“신께서 억지로 갈라놓는다고 하여도, 저는 늘 프레이아 님의 곁에 있을 생각입니다. 저는 프레이아 님의 성기사니까요.”

“휴우, 다행이다.”

카렌시아의 이상한 모습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그게…….”

카렌시아는 곤란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폐하께서…….”

그녀가 한마디를 더 내뱉으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났다.

“황후 폐하, 파미르 공녀가 뵙기를 청합니다.”

시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그런 나를 본 카렌시아는 내 눈치를 살폈다.

“만나고 싶지 않다면, 안으로 들이지 않을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것보다, 폐하.”

“말씀하세요.”

나는 그녀를 향해 슬쩍 웃어주었다.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내 말에 카렌시아가 오늘 본 것 중에서 가장 싱그럽게 웃었다.

“그래도…… 돼?”

“그럼요. 우리는 자매잖아요.”

“고마워. 하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만 그럴게. 네 위치도 있는데 너무 격 없이 대하면 신전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내가 그러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카렌시아는 시녀를 돌아봤다.

“파미르 공녀를 들이도록 해.”

“네, 폐하.”

곧, 방으로 들어온 파미르 공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황후 폐하, 성녀님, 파미르의 막내가 두 분께 인사 올립니다.”

예법대로 인사를 올린 그녀는 아스테인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볼에 약간의 홍조가 어렸다.

그걸 나만 본 것이 아닌 듯했다.

“공녀, 대공은 그만 쳐다보고 자리에 앉지 그러니?”

“어머, 죄송해요.”

“아직은 공식적인 일이 아니고, 그게 실현되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과한 행동은 자제했으면 좋겠어.”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지금의 이 대화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슬쩍 아스테인을 쳐다보자 그는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인지…….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지?”

“아버지께서 산모에게 좋은 약재가 상단에 들어왔다며 황후 폐하께 드리라고 하셨어요.”

파미르 공녀의 말에 맞춰, 그녀를 수행하던 시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카렌시아는 내게 그 상자를 보여주었다.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녀는 그저 맑은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나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약재를 들어서 형태를 관찰하고 냄새를 맡았다.

“전부 임산부와 태아를 위한 약재네요. 위험한 조합도 아니에요. 드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럼요. 당연하죠.”

“워낙에 공작가가 나를 미워하기에 믿음이 가질 않아서 말이야.”

카렌시아답지 않게 조금 예민한 반응이었다.

파미르 공녀는 카렌시아가 날카롭게 구는데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은은하게 웃었다.

“아카데미로는 언제 돌아가는 건가요?”

“이미 모든 과정을 수료해 졸업이 있을 다음 달에만 가면 된답니다. 그때 소후작도 돌아갈 거예요.”

황후는 그것이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공작가와 후작가, 그 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둘 사이에 더 있는 것 같았다.

“성녀님, 단델리온 대공. 두 분은 이만 황제 폐하를 알현하도록 해요.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카렌시아가 일부러 우리를 공녀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저도 폐하께서 두 분을 모시고 오라고 해서 이리로 온 거예요.”

하지만 카렌시아의 바람과는 달리 공녀는 우리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 * *

결국, 우리는 공녀와 함께 황제가 기다리는 접견실로 갔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나와 아스테인이 인사를 끝내자 황제는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서 오너라, 아스테인. 마침 함께 왔구나.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나와 아스테인을 향한 말일까?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황제를 쳐다봤지만, 그는 나를 지나쳐 아스테인의 곁으로 갔다.

조금은 파격적인 황제의 움직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가 갑자기 아스테인에게 친근하게 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도 성녀의 목숨을 구하여 공을 세웠다며? 신전이 황실에 감사해야겠더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성기사들을 다 누르고 그들을 평정해 황실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것 역시 신전의 평화를 위해 힘을 쓴 것뿐입니다.”

겸손한 아스테인의 발언에 황제의 눈초리가 살짝 서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곧 황제의 눈빛은 친절한 미소로 바뀌었다. 소름 돋을 만큼.

“그래, 역시 나와 피를 나눈 동생답게 어디에서나 성실하구나. 황족의 모범답다. 안 그런가, 공녀?”

“물론입니다. 역시 폐하의 충성스러운 동생이신가 봐요.”

파미르 공녀가 황제에게 싹싹하게 구는 모습을 보자 뭔가 또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아스테인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금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말을 꺼냈다.

“성녀님을 황궁으로 모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너는 네 문제보다 프레이아의 문제가 더 급한 것이냐?”

성녀가 된 이후에도 내 이름을 부르는 황제의 모습에 아스테인의 이마에 있던 핏줄이 살짝 꿈틀댔다.

“성녀님의 문제가 아니라 신전의 문제이고, 나아가 제국에 영향을 끼칠 문제입니다.”

“신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쯧쯧.”

나를 앞에 두고 무례하게 구는 황제의 모습에 아스테인의 눈빛이 눈에 띄게 불손해졌다.

그것을 보고 아스테인을 달래려는 찰나, 파미르 공녀가 아스테인의 팔을 붙들었다.

“대공님, 동생이신 대공님의 미래가 염려되어 폐하께서 꺼낸 말씀이랍니다.”

내 앞에서 그저 해맑았던 공녀와는 달라 보였다. 현명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이 보였달까?

“폐하, 신전과 성녀님께 황제 폐하의 하늘과 같은 은혜를 다시 베풀고자 두 분을 부르셨잖아요.”

심지어 황제를 달래는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 공녀. 본론부터 마무리 짓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군.”

황제는 순순히 공녀의 말을 따랐다.

파미르 공작가와 황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걸까?

“선대 성녀님을 암살한 자를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는 황제의 눈을 응시하면서 물었다.

내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바로 황제를 찾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불신. 나는 황제의 검은 속을 믿지 않았다.

“그래. 그때 성스러운 샘 사건에 가담했던 푸토르 가의 기사들 말이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답을 알 것 같았다.

이건 후작가의 입김이 닿은 일일 것이다.

“그들이 자백했다.”

“뭐라고 자백했죠?”

“성수를 빼돌린 것을 들킬까 봐 성녀에게 독을 먹였다더군.”

“그 독은 어디서 구했고요?”

내가 꼬치꼬치 캐어묻자 황제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조금 전 파미르 공녀를 쳐다볼 때와는 달리.

“글쎄? 그건 이제 네가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꿍꿍이일까?

나는 황제를 잠시 빤히 쳐다봤다. 어쩌면 나를 모함하고 신전을 장악할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모른 척일까?

“그러면 그냥 공문과 함께 그들을 신전으로 압송하면 될 것을, 굳이 나를 먼 황궁까지 불렀네요.”

조금은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그러자 파미르 공녀가 나섰다.

“지금까지 신전의 문제를 황실에서 조사한 것은 그 피해자들이 제국민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 폐하?”

“그렇지. 내 소중한 제국민들이 고통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엄벌을 내린 것이고.”

코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황제가 제국민들의 아픔을 돌아봤다고 저렇게 뻔뻔하게 말할까?

“하지만 선대 성녀님의 죽음과 관련해 자백을 들었음에도 더는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신전의 문제이기 때문이고요.”

“하하, 그래, 그런 뜻이란다. 역시 내 동생의 짝으로 점지한 아이답게 현명하구나.”

황제가 아스테인과 공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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