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푸른 날개의 기적
“화약과 마법을 섞었다고 했잖아. 화약의 폭발력과 힘을 마법으로 증대시켰지. 어때?”
유테르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뒤늦게 테라스의 상황을 눈치챈 사람들의 비명이 퍼져나갔다. 내게는 그 모든 순간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옆에서 속이 시원하다는 듯 웃는 유테르안. 빛을 피해 멀리 도망치는 사람들. 제 주인의 안전을 확인하러 옆 건물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장 밝은 빛을 내며 연속해서 터지는 폭발.
“가짜 누이, 섣불리 나서지 마. 그랬다가 가짜 성녀인 것을 들키면 곤란하니까 여차하면 차라리 놀라서 기절한 척하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물론 나는 네가 가짜인 것을 들켜도 상관없지만.”
유테르안이 잡았던 내 팔을 풀어내면서 잔인한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아스테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 힘이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찾아간 바람에 그는 또다시 죽음이라는 운명과 마주하게 됐다.
[제가 살아남는다면 프레이아 님의 하루를 제게 맡겨주십시오.]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당신과 온종일 함께하는 하루가 얼마나 달콤할지.
[프레이아 님의 하루를 얻기 위해서라면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했잖아. 다치지 않겠다고.
황제는 황후를 두고 뒤늦게 발코니로 돌아왔다. 나는 그가 기분이 좋은 듯이 웃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위험해! 다들 접근하지 말도록! 테라스가 무너질지도 모르니.”
하지만 황제는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처하는 지도자인 척했다. 가증스럽게도.
나는 충격에 반쯤 기어가다시피 아스테인이 있던 쪽의 난간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폭발은 계속 이어졌다.
“아스테인……. 아스테인. 대답해줘요, 아스테인. 응?”
내 목소리는 미친 사람의 것처럼 반복해서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잠시 뒤, 빛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펑 소리도 줄어들었고.
“프레이아,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포기해. 부상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신성력으로 치료해주면 좋겠군. 물론, 생존자가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황제의 말에 나는 심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아갔어야 했다. 최소한 내가 그의 곁에 붙어 있기만 했어도 됐을 것이다.
나는 절망감에 울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잔뜩 힘을 준 손에 남은 폭죽의 빛이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그 위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 저게 뭐야!”
“또 다른 마법인가?”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고 그쪽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테라스 위로 뭔가 반투명하고 기다란 것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니, 방패 모양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자는…….
“아스테인!”
그였다. 나와의 약속대로 한 올의 머리카락도 상하지 않고 굳건한 자세로.
황제의 미움을 받는 자들도 그 반투명한 방패 아래에서 다들 보호받고 있었다.
“저게 뭐야? 고작 저런 걸 가지고 흑마법을 막아냈다고? 젠장,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뒤에서 유테르안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의 못마땅한 신음도.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스테인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뭔가 기다란 것이 들려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알 것도 같았다.
“성물, 아이기스.”
그것은 전설 속에 존재하는 신의 방패였다. 사악한 마법이라면 무엇이든 막아준다는 신성한 방패.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면 신의 날개가 펼쳐져 주인을 보호한다.
어떻게 그것이 아스테인의 손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신전에서도 극히 몇 명만 아는 잃어버린 성물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아스테인이 살아남았으면 됐지.
“다들 조심히! 한 명씩 빠져나가시오.”
선대 황제가 남긴 유언 때문에 지금의 황제는 대놓고 아스테인을 죽일 순 없다고 했다. 사고로 위장하고 싶었을 황제의 뜻은 꺾였다.
아스테인은 당당하게 사람들을 구한 뒤 테라스에서 내보냈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믿음직스러웠다.
정원 쪽에서는 아직 폭죽이 터지는지 계속 펑펑 소리가 났다. 하지만 더 이상의 큰 폭발은 없을 듯했다.
“젠장. 저 녀석, 어떤 힘을 얻은 거야. 유테르안. 도대체 일을 어찌 처리한 거지?”
“아직 더 남았습니다. 기다려보시지요.”
황제와 유테르안이 작게 나누는 소리가 내 귀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내가 그들을 돌아보자 유테르안은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중한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 눈엣가시를 죽이려 하는 이들의 모습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스테인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어주는 눈동자.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폐하, 유테르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그때 발코니의 문이 열리면서 카렌시아가 들어왔다. 그러자 두 남자가 당황했다.
“황후! 여기에는 왜 돌아온 거야?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사고가 났다는 말에 폐하와 유테르안이 걱정돼서 돌아왔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카렌시아는 조금 어리둥절한 채 눈을 깜박였다. 그때 한 번 더 큰 폭발음이 들렸다.
“꺅!”
“황후! 이런, 안 돼.”
“누님, 이러다 놀라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두 남자가 카렌시아에게 한눈을 판 지금이 기회였다.
부들거리는 다리를 세웠다. 이대로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얼른 그의 곁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이기스는 안타깝게도 사악한 흑마법은 막아내도 순수한 물리적인 공격은 막지 못했다. 불완전한 물건이었다. 혹시 모르니 나를 방패막이로 세워 공격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작은 누님! 어딜 갑니까?”
나는 유테르안의 외침을 무시한 채 정신없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갔다. 중간중간 내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축언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 많은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내게는 오로지 단 한 사람만 보였다.
“아스테인! 괜찮아요?”
마침 마지막 사람을 내보내며 수습하던 그가 날 바라봤다. 그의 미소가 오늘따라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눈부심은 그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폭발이었다.
내가 조사했던 동대륙의 무기였다. 원통 안에 무기를 넣고 화약을 터트린 것이다.
섬광과 함께 뒤에서 화살과 단검들이 날아왔다.
“프레이아 님, 위험합니다.”
아스테인은 날 자신의 등 뒤로 세우고는 아이기스를 들어 올렸다. 그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손잡이를 휘둘러 위협적인 것들로부터 나를 구해냈다.
“아스테인!”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타박처럼 들렸다. 조금은 속상하게도.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서운했던 마음은 봄날의 살얼음처럼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우리 쪽으로 날아오던 무기를 모두 처리한 그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도 절 위해 이렇게 달려와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달콤한 그의 말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카렌시아가 있는 곳이었다.
“꺄아악!”
원래 내가 서 있던 곳, 2층 발코니를 향해서도 단검과 화살이 날아갔다.
유테르안과 황제는 자신들을 향하는 단검을 쳐내느라 황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저건, 반신전파 인테르가 명백히 날 노린 것이다.
그때 카렌시아가 뒷걸음질 치다 발코니 끝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대로 미끄러진 카렌시아의 몸이 발코니 2층 난간에 걸렸다.
“카렌시아! 안 돼!”
나는 겨우 친해진 황후의 위기에 크게 소리쳤다. 버둥거리며 팔을 휘젓던 그녀의 몸이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겨우 한 팔로 난간을 붙잡은 손을 유테르안과 황제가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날아오는 불붙은 폭죽에 뒤로 물러서야 했다.
“황후!”
“누님!”
힘이 빠진 카렌시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도 아스테인도 동시에 카렌시아가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물론 나보다 키가 크고 건장한 아스테인이 더 빨랐다.
그는 카렌시아의 몸을 받아냈다.
그리고…….
“안 돼!”
또 한 번 주변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배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은 카렌시아. 그런 카렌시아를 받아내느라 양손을 쓰지 못하는 아스테인.
그런 그들을 향해 날아가는 새로운 폭죽과 날카로운 단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직 아스테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주변의 시간이 느려진 탓일까? 날아오는 것들보다 내가 아스테인의 뒤에 닿은 속도가 더 빨랐다.
“멈춰!”
양팔을 벌린 나는 홀린 듯이 명을 내렸다. 하지만 단검은 내 말을 무시하고 날아와 내 옷에 닿았다.
“프레이아 님!”
단검이 내 옷을 뚫고 여린 피부에 닿은 순간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곳에서부터 하얀빛이 퍼져나온 것이다.
그 빛은 점점 색을 띠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을 닮은 푸른 빛을. 그것은 내 온몸을 덮었다. 곧 등에서부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푸른 빛은 신의 상징인 푸른 날개를 만들었다. 아름답고도 화려하게 흔들리는 푸른 날개를.
반투명한 빛을 뽐내는 그것은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것들을 푸른 빛으로 감싸 녹여버렸다. 무엇이든 나를 건드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성녀님의 기적이다!”
“오오! 이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날이 오다니!”
사람들의 감탄사가 연이어 들렸다.
나는 여전히 느릿하게 시간이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주변을 스르륵 훑어봤다. 사람들 속에 사악한 자가 섞여 있을까 봐.
“아니, 아가씨가……!”
뒤쪽에는 주인의 안전을 확인하러 몰려온 후작가의 집사와 기사들도 있었다.
평소에 날 무시하던 집사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오, 신이시여, 내 죄를 용서하소서.”
푸른 날개는 내 걱정을 아는지 뒤쪽의 사람들 주변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집사는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며 감동 받은 듯, 눈물까지 흘렸다.
집사를 지나친 날개는 폭죽들이 계속 터지는 곳에 내려앉아 그것들을 푸른 물로 적셨다.
불이 붙어 날뛰던 것들은 성스러운 기운에 조용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날개는 정원 뒤에서 수작질하던 이들에게 푸른 죄인의 낙인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곧 내게는 새카만 적막이 찾아왔다. 내 힘을 쓴 것도 아닌데 지쳐버렸다.
* * *
어둠 속에서 나는 아스테인의 식어버린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나와 아스테인을 버린 신을 원망하며…….
신은 이번에도 우리를 버린 것일까? 나에게도, 아스테인에게도 행복 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으려는 걸까?
“프레이아 님, 제발, 눈을 뜨십시오.”
그때 나를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게 다치면 안 된다고 하더니, 왜 프레이아 님께서 이러고 계십니까?”
슬픈 목소리와 함께 축축하고 따뜻한 무엇인가가 얼굴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 눈가에 희망의 빛을 보냈다. 반드시 따라가야만 하는, 따스한 보랏빛 향기가 가득한 구원자를.
“아스테인 님…….”
“프레이아 님, 괜찮으십니까?”
눈을 뜨자마자 만난 것이 아스테인이라 좋았다. 걱정 가득한 눈을 내게 깜박이고 있어서 행복했다.
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괜찮아요. 조금 놀랐나 봐요.”
내가 진짜 신성력을 얻어 그 충격이라도 받은 걸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회귀 직전과 같았다. 아스테인을 살리기 위해 없던 신성력마저 쏟아부었던 그때도 나는 이렇게 쓰러졌었다.
두 번째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내 것이 아닌 거대한 힘이 나를 통해 지나갔다.
그 사실에 얼굴이 굳었다.
“프레이아, 진짜 괜찮아?”
카렌시아도 곁에서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줬다.
“황후!”
“누님!”
이제야 뛰어 내려오는 황제와 유테르안을 보니, 내가 기절한 순간은 짧았던 모양이었다.
“단델리온 대공이 안전하게 받아주어 괜찮은 것 같아요. 감사해요, 대공. 프레이아, 너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스테인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황제와 유테르안을 노려보는 그의 눈은 매서웠다.
두 남자는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아스테인의 시선을 슬쩍 피한 채 황후만을 챙겼다. 감사 인사는 여전히 없었다.
나는 괘씸한 그들을 두고 카렌시아의 건강을 확인했다.
“배가 아프거나 당기지 않나요?”
“응, 괜찮아. 좀 놀라서 심장이 벌렁대기는 하는데 아이는 괜찮은 것 같아.”
카렌시아는 배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서 모성애가 가득 느껴졌다.
뒤늦게 이런 우리를 푸토르 후작이 찾아왔다. 황제는 후작을 노려봤다.
일이 성공하기는커녕 엉망이 되었으니 후작에게 단단히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이 기회에 둘의 균열을 간절히 바랐다. 다시는 아스테인을 노릴 생각을 할 틈이 없게.
“프레이아, 네가 일으킨 기적을 모두가 봤구나!”
고맙게도 어리석은 후작은 카렌시아가 아닌 나를 먼저 찾았다. 그것도 대단한 착각까지 하며.
황제는 그 모습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낮게 깔린 목소리를 내었다.
“후작, 자네는 황후와 내 아이보다 성녀가 더 중한가 보군?”
황제의 말에 후작이 다급히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돌렸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황후 폐하야 프레이아가 구했으니…….”
“훌륭한 내 동생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지.”
황제의 말 속에 이 가는 소리가 섞였다.
“유테르안, 자네는 누이를 거처로 데려가게. 후작, 자네는 프레이아가 잡은 반역자들을 심문하고.”
후작에게 뒤처리를 맡긴다고?
대놓고 일을 덮겠다는 황제의 명에 나와 아스테인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황제의 말을 거역할 명분이 없었다.
“프레이아, 곁에 있어 주면 안 될까?”
나를 의지하는 카렌시아의 시선을 피해 잠시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함께 가야 하는 유테르안을.
내키지 않았다. 아까 그의 진절머리나는 모습을 봤는데 함께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 있다가는 다시 숨이 막힐 테니.
“함께 가겠습니다.”
내 불편한 마음을 눈치챈 아스테인이 말을 꺼냈다.
“경, 아니 대공께서는 집안사람도 아닌데 왜 끼어들려는 겁니까?”
유테르안은 아스테인을 떼어놓으려 정색했다.
“내가 오늘 모셔야 하는 분을 따르는 것이 기사 된 도리다.”
아스테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맞아. 대공께서는 오늘 프레이아를 수행했잖아. 게다가 나와 내 아이의 은인인데,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해야지. 그렇죠, 대공?”
황후의 도움으로 나는 아스테인과 함께 갈 수 있었다.
황후가 먼저 유테르안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나도 뒤따라 일어나려고 했다. 조금 비틀대는 나를 아스테인이 든든히 받아줬다.
감사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들던 나는 눈을 비벼야 했다.
“엘라네르?”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붉은 머리의 그녀가 스쳐 지나갔다. 진짜 성녀인 엘라네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