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달칵, 문 열리는 소리에 침대 헤드에 느슨한 자세로 기대앉아 있던 재하가 몸을 세웠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경을 향해 재하가 팔을 넓게 벌렸다.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온 이경은 안아 달라는 듯 팔을 벌리고 있는 재하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토끼 같은 남자는 매일 애교가 늘었다.
가방을 티 테이블에 내려놓고 이경이 빠른 걸음으로 재하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남자를 안아 주자 피로가 사르르 풀렸다.
“매일 늦어. 잡아먹지도 못하게.”
재하가 이경의 뺨에 뽀뽀를 퍼부었다.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은.”
제법 규모가 큰 케이스를 맡았다. 송하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큰 케이스였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이경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다. 덕분에 재하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때려치우라고 할 수도 없고.”
재하는 이경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이경은 얼굴과 목 여기저기를 깨물고 뽀뽀를 하는 재하를 잠시 그대로 두었다. 귀찮기는 했지만 이것도 못 하게 하면 성질을 부릴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요. 옷 갈아입고 씻고 싶어요.”
목덜미에 닿은 재하의 얼굴을 이경이 부드럽게 밀어내며 말했다.
“씻겨 줄까?”
재하가 반색하며 물었다.
초롱초롱한 재하의 눈에 이경이 작게 웃었다. 씻겨 준다는 핑계로 그동안 서재하가 어떤 짓을 했더라.
“됐습니다. 정말 피곤해요.”
이경이 재하의 뺨을 쓰다듬으며 달래듯 말했다.
“알았어. 옷만 벗겨 줄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옷만 벗기는 겁니다.”
허튼짓하지 말고 정직하게 옷만 벗기라는 경고를 눈으로 하며 이경이 입을 열었다.
“신속 정확이면 서재하지.”
이경이 좋아하는 웃음을 지으며 재하는 맡겨 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냅다 입을 맞추었다.
“옷만 벗기기로 했잖아요.”
이경이 재하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서재하.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지.
“나 몰라? 입 맞추면서 옷 벗기는 게 내 특기인 거.”
재하는 다시 이경에게 달려들었다.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를 밀어 넣었다. 달래듯 장난치듯 이경의 혀와 여린 살들을 건드리며 재하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추를 푸는 손길이 너무 느긋했다. 정확은 몰라도 신속은 아니기에 이경이 다시 재하를 떼어 냈다.
“약속이 틀리잖아요. 그냥 제가 벗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이경이 재킷을 벗고, 셔츠 단추를 마저 풀기 시작했다. 셔츠를 벗으려는데 재하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를 이로 깨물고 핥는 재하의 행동이 이어졌다. 그의 숨결이 살결에 닿을 때마다 이경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러다 홀랑 서재하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다.
“아주, 아주 피곤합니다.”
이경은 피곤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했다.
“나 그렇게 못된 남편 아니야. 이건 신속 정확하게 옷 벗겨 주는 거라고.”
“어디가 신속하고, 어디가 정확하다는 겁니까?”
이경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투로 허리를 감은 재하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재하의 손이 이경의 캐미솔 안으로 숨어 버렸다.
배를 쓰다듬고 가슴으로 올라가는 손길이 은근했다. 가슴을 쥐고 쓰다듬는 손길에 이경이 옅은 신음을 터트렸다.
“하아.”
“너무 빠른데?”
재하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이경의 귀를 머금었다. 귀를 희롱하는 입술과 캐미솔 안으로 들어간 손이 점점 노골적이었다.
이러다 정말 잡아먹히겠다 싶어 이경은 캐미솔 안으로 들어간 재하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 마십시오.”
“알았어. 벗기기만 할게.”
재하가 속옷 후크에 손을 댔다. 그렇게 속옷과 캐미솔을 벗겨 냈다. 캐미솔을 벗겨 낼 때는 은근슬쩍 가슴을 건드려 이경은 웃고 말았다.
“눕자.”
재하가 이경을 침대에 눕히려고 했다. 이경은 눕지 않으려고 바동거렸다.
“눕긴 뭘 눕습니까? 씻고 잘 건데.”
“바지도 벗어야지? 바지는 안 벗어? 벗겨 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기어이 이경을 침대에 눕히고 재하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 밖으로 늘어트린 이경의 발목을 잡아 스타킹부터 벗겨 내고는 허리를 세웠다.
“섹시하네, 차이경. 괴롭히고 싶게.”
이경을 보며 재하가 짓궂게 웃었다.
“그냥 제가 벗겠습니다.”
“내가 벗겨. 차이경 옷을 감히 누가 벗겨. 네 옷은 나만 벗길 수 있어. 차이경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이경은 재하의 말에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지만 바로 재하가 배에 입을 맞추었다.
“나만 벗길 거야.”
배에서 고개를 든 재하가 싱그럽지만 다소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서재하를 누가 말리나 싶어 이경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재하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소리를 내며 이경의 바지 버클에 손을 대었다. 허벅지를 한번 쓰다듬고, 아랫배에 입을 맞추고, 속옷을 문질렀다가 허리를 간지럽혔다가 온 난리를 치며 10분 만에 드디어 이경의 바지를 벗겨 주었다.
그 난리 덕에 이경은 신음했고, 젖어 들었고, 피로를 푸는 것보다 다른 것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도 벗겨?”
커다란 재하의 손이 이경의 속옷 위에 내려앉았다.
“빨리요. 그리고…… 그것도.”
이경이 성이 난 재하의 허리 아래에 시선을 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점이 흐려진 이경의 눈빛에 재하가 한쪽 입가를 올렸다.
“야하네, 차이경.”
재하가 중얼거리며 이경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을 맞추며 이경의 하나 남은 속옷도 벗겨 버렸다.
이경의 옷을 벗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자신의 옷을 벗는 데는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옷을 벗어 던지고 재하는 이경과 몸을 겹쳤다.
“흐읏.”
터지는 이경의 신음을 기분 좋은 얼굴로 들으며 재하는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실컷 맛을 보고 고개를 든 재하가 말했다.
“차이경 가슴은 내 거야. 나만 맛볼 거야.”
“그러세요.”
소유권을 주장하는 재하 때문에 이경은 피식 웃었지만 그 후로는 웃을 정신이 없었다. 재하가 아주 제대로 권리를 행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경의 머리카락 한 올에서 새끼발가락까지 모두 재하의 것이었다.
***
단잠을 자고 일어난 이경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 재하는 이경이 좋아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잘 잤어?”
귀에 소곤거리는 재하의 목소리에 아침부터 이경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네.”
“피곤하지?”
“네, 덕분에요.”
이경은 재하의 품으로 파고들며 대답했다.
“출근하지 말까?”
이경의 등을 쓰다듬으며 재하가 물었다.
“해야죠.”
“로펌 싫어.”
어린아이 같은 재하의 말투에 이경은 웃음이 터졌다. 현재 재하의 가장 큰 라이벌은 로펌 송하였다. 늘 이경을 송하에 빼앗기는 것 같아 재하는 불만이 많았다.
“전 WR 좋습니다.”
“그럼 WR로 들어올래?”
이경의 말에 재하가 반색하며 물었다.
“나중에요.”
이경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밖으로 나가려는 이경의 허리를 끌어당겨 다시 품에 가둔 재하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실컷 이경의 냄새를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들었다.
“왜? 지금 들어와. 법무 팀으로 가면 되지.”
“할아버님도 송하에서 경력 더 쌓고 옮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송하에서 더 배우고 들어가고 싶어요.”
재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고 이경이 다시 침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곡선이 아름다운 이경의 몸에 재하의 입이 바짝 말랐다. 자동으로 몸이 딱딱해졌다.
“이경아.”
욕실로 향하는 이경을 재하가 불러 세웠다.
“네.”
이경이 돌아보자 재하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 자신의 몸 상태를 보여 주었다.
“어떡하지?”
고갯짓으로 하체를 가리킨 재하가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었다.
“알아서 하세요.”
솟아 있는 재하의 몸을 보며 이경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가끔은 그냥 자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재하를 버려 두고 이경은 다시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재하가 아니었다. 재하는 재빨리 이경을 따라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는 넓은 욕조도 있고, 두 사람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넉넉한 샤워 부스도 있었다.
샤워 부스로 들어간 이경은 욕실로 따라 들어온 재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알아서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알아서 할 거야.”
수상한 웃음을 지으며 재하가 얼른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좁아요.”
이경이 손으로 재하를 샤워 부스 밖으로 밀어냈다.
“그럴 리가.”
하지만 그런다고 나갈 재하가 아니었다. 재하는 몸으로 이경을 샤워 부스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경을 그렇게 가둬 놓고 재하는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결국 이경은 그렇게 또, 재하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이경과 함께 있고 싶어 같이 출근하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는 재하가 이경을 힐끔거렸다.
조수석에 앉은 이경은 아까부터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아침도 조금밖에 안 먹더니 체한 모양이다. 한동안 안 체하더니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나. 재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왜? 속 안 좋아?”
“어젯밤에 밤 식빵을 먹은 게 좀 체한 모양이에요.”
“약은?”
“가방에 있어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경이 재하를 보며 웃었다.
“말을 하지. 아픈 것도 모르고 잡아먹었잖아.”
“그럴 때는 아픈 것도 몰라요. 서재하가 차 있는데 아플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말 엄청 야한데.”
재하가 이경을 보며 씩 웃었다.
“여기선 안 됩니다.”
“운전 중에 누가.”
“농담이었습니다.”
“하고 싶게.”
재하는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재하가 향한 곳은 로펌 송하 지하 주차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