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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계약-70화 (70/83)

70화

도망치는 이경의 목덜미를 붙잡고 입술을 맞물렸다. 부드럽게 입술을 빨다 입안으로 들어간 재하는 좋아 죽겠는 만큼 이경을 괴롭혔다.

“하아.”

한참 만에 떨어진 재하 때문에 이경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체력을 아껴, 차이경. 주말에 나한테 쓰려면.”

재하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흐트러진 이경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주말에 하경이 만나기로 했는데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이경이 재하를 보았다.

“아, 그렇지.”

그제야 약속이 생각이 난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말을 이었다.

“그럼 금요일 밤이랑 일요일에 쓰자.”

“금요일도 야근입니다.”

이경이 웃으며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재하는 로펌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며 이경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향하는 이경을 몇 걸음 만에 따라잡고 손을 잡았다.

“집 옮겨 준다고 하면 또 선 넘는 건가.”

공동 현관으로 들어서며 재하가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센서 등을 갈아 이제 계단에도 불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귀신의 집 같은 곳이다. 이곳에 이경을 두는 게 재하는 못마땅했다. 빨리 결혼을 해서 데리고 살든지 해야지.

“그 정도는 아니고 오지랖?”

이경이 재하를 올려다보며 조용조용한 투로 말했다.

“또 여우 짓.”

재하가 이경에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갈수록 여우 짓이 느니 미칠 노릇이었다. 허리 아래가 뻐근한 게 또 지 혼자 날뛰고 있는 모양이다.

“여우는 귀여우니까 서 전무님 눈에는 제가 귀엽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차이경, 적당히 하자.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재하가 잡은 이경의 손에 힘을 주었다. 예쁜 게 예쁜 짓을 하면 내가 어떻게 배겨. 이걸 그냥 확 데리고 가?

재하의 속도 모르고 이경은 재미있다는 듯 작은 소리로 웃었다.

“가서 잠이나 자, 차이경.”

이경을 고이 집 앞까지 데려다준 재하가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그걸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경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재하를 좀 놀란 눈으로 보았다.

“나 아이큐 되게 높아.”

문을 연 재하가 이경을 집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눈앞에서 치워야지 계속 보고 있다가는 납치해 갈 것 같다.

“잘 자.”

하경에게 들릴까 봐 입 모양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재하가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본 이경의 미소가 가슴에 콱 박혀 재하는 주말만 기다리고 살겠구나 싶었다. 여우한테 홀려도 단단히 홀렸지. 재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전무님, 큰일 났습니다.”

빠르게 노크를 하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황 비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뭔데 그래?”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재하가 황 비서를 보았다.

황 비서는 재빨리 집무실 안 TV를 켰다. 뉴스 채널로 돌린 황 비서가 리모컨을 쥐고 재하를 돌아보았다.

재하는 심각한 얼굴로 TV를 보았다. 기자가 로펌 송하 앞에서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다.

—취재 결과 서재하 전무가 모 로펌의 변호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서재하가 모 로펌 변호사와 스폰 관계라는 내용의 뉴스였다.

“더럽게 잘생겼네.”

TV 화면 속 띄워진 자신의 사진을 보며 재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비서실이고 홍보실이고 다 비상입니다. 로펌 송하면 설마 차이경 변호사님이랑…….”

“출처 어디야?”

재하는 황 비서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며 물었다.

“확인 중에 있지만 아마…….”

황 비서는 말을 삼켰지만 재하는 황 비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바로 알았다. 서석호 부회장밖에 더 있겠습니까, 황 비서가 하지 않은 그 말이 귀에 들리는 기분이다.

“장유유서지. 먼저 치셔야 내가 또 치지. 박 기자한테 연락해.”

“네, 전무님. 이쪽 건은 어떻게 수습할까요?”

대답을 한 황 비서가 TV를 힐끔 보며 물었다.

“그건 내가 컨펌받을 사람이 있어서 5분 후에 알려 줄게.”

“네, 알겠습니다.”

황 비서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황 비서가 나가고 재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경이 전화를 받았다.

—네, 전무님.

“이경아.”

—네.

이경의 목소리에 입가를 올리며 재하가 입을 열었다.

“나랑 결혼하자.”

***

—나랑 결혼하자.

핸드폰 너머 들려온 재하의 말에 이경이 느리게 눈을 껌벅였다. 무언가 잘못 들었나 싶어 이경은 핸드폰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랑 결혼해.

하지만 다시 들려온 재하의 목소리에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러포즈인가. 갑자기 전화로? 서 전무님은 프러포즈도 또라이처럼 하는구나, 이경은 작게 감탄했다.

—왜 대답이 없어? 나랑 결혼하자고.

“갑자기요?”

—결혼할 거지?

“제가 생각을…….”

생각을 좀 해 보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재하가 말을 끊었다.

—이경아, 내가 좀 급한데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결혼하자.

“네, 그럼 그렇게…….”

급하다니까 이경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재하의 프러포즈만큼이나 얼렁뚱땅 승낙이었다.

—알았어. 약혼자, 이따 봐.

재하의 전화가 뚝 끊어졌다.

약혼자로 바로 승격된 이경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그때, 안지혜 변호사가 허둥지둥 휴게실로 들어왔다.

“차 변, 여기 있었어?”

“무슨 일 있으세요?”

다급해 보이는 지혜의 모습에 이경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이거 차 변이지?”

지혜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지혜가 내민 것은 뉴스 영상이었다. 이경은 지혜가 보여 준 영상을 보았다.

“아, 그래서.”

뉴스 영상을 다 보고 나자 이경은 재하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가 이해가 되었다. 이경은 피식 웃으며 지혜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차 변호사, 웃음이 나와?”

“전 괜찮습니다.”

“부자 싸움에 애먼 사람 잡겠네.”

WR 전담 팀인 지혜는 재하와 석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보도가 석호 쪽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바로 파악했다. 고래 싸움에 차 변호사 등 터지는 상황이었다.

“안 변호사님.”

“고소해, 차 변. 내가 도와줄게.”

“저 서 전무님이랑 결혼합니다.”

방금 프러포즈받고,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아마 곧 정정 보도가 나갈 것이다. 로펌 송하의 차이경과 서재하는 스폰 관계가 아닌 곧 결혼할 사이라고. 그래서 재하가 그런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뭐?”

지혜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이경을 보았다.

이경은 작게 미소 지으며 재하와 만나는 사이고 최근에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지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근래에 들었던 말 중에 최고로 충격적인 말이야.”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이경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죄송할 일은 아닌데 충격이긴 하다. 서 전무한테 협박당하고 그런 건 아니지?”

지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경을 보았다.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십니다.”

지혜의 걱정에 이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서재하 이미지가 안 좋긴 하구나. 그냥 성질만 좀 더러운 것뿐인데.

“충격이야. 충격. 기분이 좀 그래. 도적놈이 동생 납치해 간 기분이야.”

지혜의 말에 이경은 쿡쿡 웃었다.

그때, 지혜와 이경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두 사람은 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WR 전담 팀 호출 메시지였다.

“자기도?”

메시지를 확인하는 이경을 보며 지혜가 물었다.

“네, 저한테도 왔네요.”

WR 전담 팀에서 빠진 지 오래인 이경은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다 이내 뉴스 보도 속 상대가 자신이라는 게 알려졌구나, 깨달았다.

“가자.”

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갯짓을 했다.

이경이 지혜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변호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다들 안됐다는 표정이라 이경은 머쓱했다.

“회의할 필요도 없어요.”

지혜가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왜 회의할 필요가 없어요? 송하 변호사하고 엮인 일인데.”

유창수 변호사가 말했다.

“차 변호사 서 전무랑 결혼한대요. 스폰 스캔들이 아니라 러브야, 러브. 국수 먹을 준비들이나 해요.”

“네?”

“뭐?”

지혜의 말에 그 자리에 있는 변호사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이경을 보았다. 그렇게 희한한 말은 처음이라는 표정으로 다들 이경을 쳐다보았다.

“심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경이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다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성현의 씁쓸한 표정에 이경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런 식으로 재하와의 관계를 성현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경은 미안한 마음에 성현의 시선을 피했다.

WR 전담 팀 변호사들은 한동안 이 놀라운 소식에 와글와글 떠들었다. 성현은 말없이 지켜보았고, 이경은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변을 해 주었다.

“어, 기사 바로 났네요.”

박기훈 변호사가 인터넷에 올라온 신문 기사를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기사는 뉴스 보도로 나온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스폰 관계가 아니고, 송하의 변호사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를 한 뉴스 채널과 기자를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거 준비하면 되겠네요.”

지혜가 기사를 띄운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난이도 확 내려갔네요.”

“또 밤새나 했네.”

WR 전담 팀 변호사들은 안도한 얼굴로 떠들었다.

“차 변호사는 이만 나가 봐.”

성현이 이경을 보며 말했다.

“네.”

이경이 꾸벅 인사를 하고 회의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결혼 축하한다는 변호사들의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 이경은 언제 로펌을 나갈지 모르는 천덕꾸러기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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