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다급한 손길로 재하가 이경의 몸에 둘러 준 수건을 빼내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 후, 재하는 이경과 몸을 겹쳤다.
부드럽고 말캉한 이경의 몸이 살갗에 닿자 몸으로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경의 가슴을 움켜쥐고 재하는 입을 맞추었다. 깊고 진한 호흡을 이경에게 전해 주고,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가슴, 허리, 허벅지. 재하의 손이 정신없이 이경의 몸에서 움직였다. 자신의 손길에 몸을 떨며 신음하는 이경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이경아.”
재하가 이경의 목을 입술로 지분거리며 이경을 불렀다.
“……네.”
이경이 끊어질 듯한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재하의 등을 움켜쥔 이경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 사랑해?”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고 재하가 이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치하지만 묻고 싶었다. 날 사랑하는지.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날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다.
달뜬 얼굴로 이경이 재하를 물끄러미 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재하는 입가를 올리며 이경의 뺨을 쓰다듬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좋았다.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준 것만으로도 재하는 만족했다.
이경은 이 정도만 보여 주면 되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알아서 네 사랑을 느끼고, 네 마음을 헤아릴 거니, 넌 그 표정으로 나만 쳐다봐 주면 돼.
뺨을 쓰다듬던 손길로 재하가 이경의 양쪽 볼을 쥐었다. 이경의 입술이 벌어지고 재하가 혀를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재하의 손이 이경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향했다. 이경이 신음을 터트리고, 재하의 입술과 손은 더욱 분주해졌다.
한참 만에 이경의 입술에서 떨어진 재하가 이경에게 몸을 밀어붙이며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하아.”
그 말의 대답을 이경은 신음으로 대신했다. 몸을 가득 채운 재하가 힘겨운 듯 이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재하의 몸이 빠르게 이경의 위에서 움직였다. 아래에서 흔들리는 이경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 재하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해, 이경아.”
목덜미를 지분거리고, 귀로 올라온 재하가 다시 이경의 귀에 속삭였다.
이경을 제 몸으로 가득 채운 채 재하는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재하의 속삭임은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
이경은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재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집 앞인데 들어갈 수가 없다. 재하가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늦었습니다. 그만 가십시오.”
이경이 재하에게 잡힌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하경이 자나?”
재하가 이경의 손을 꽉 잡았다. 잡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깍지를 꼈다.
“오늘 친구랑 경주로 여행 갔습니다.”
친구 효진과 머리를 맞대고 경주 맛집과 카페를 찾는 하경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건강한 몸으로 그동안 못 했던 것들 하나씩 해 나가는 동생을 볼 때면 이경은 가슴이 벅찼다.
문득 눈앞의 재하가 너무 고마워져 그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이경이 끌어안자 재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재하의 웃음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며 이경은 재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예쁜 짓 하면 집에 가기 싫잖아.”
재하가 커다란 손으로 이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들어갔다 가실래요?”
이경이 재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차피 하경도 없으니 좀 더 그와 놀아도 될 것 같다.
“문 열어.”
재하가 이경을 문 쪽으로 밀며 말했다.
재하의 힘에 떠밀린 이경이 뒷걸음질을 치다 등에 문이 닿았다. 재하가 입술을 겹쳐 와 살짝 그를 떠밀고 도어 록으로 몸을 돌렸다.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재하가 허리를 끌어안고 목을 깨물며 지분거렸다. 재하의 행동에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서 전무님.”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를 불렀지만 재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귀를 깨물고 귓불을 핥는 행동이 진해지기만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이경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귀와 목에서 느껴지는 재하의 숨결이 이경의 온몸을 훑어 내리는 기분이었다.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지만 재하가 이경을 문으로 밀어붙였다.
이경의 몸이 문에 닿았다. 등 뒤의 재하는 계속해서 이경의 목덜미와 귀를 자극했다.
“음.”
이경이 옅은 숨소리와 같은 신음을 냈다.
이내 도어 록이 다시 잠겼다.
“서 전무님.”
이경이 허리를 감은 재하의 손을 붙잡았다. 재하는 이경의 귀를 가지고 노느라 여념이 없었다.
“들어…… 흐, 가요.”
이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경아, 비밀번호.”
이경이 비밀번호를 다시 누를 상태가 아님을 알았는지 재하가 이경의 귀에 속삭이듯 물었다.
“공…… 사일…… 육.”
어느새 재하의 손이 블라우스 안으로 들어와 이경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끊어질 듯 가느다란 소리로 말하는 이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재하는 이경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비밀번호를 눌렀다. 잠금이 해제되고 재하가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대로 이경을 끌고 재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내심 따위는 개에게 준 재하는 문이 닫히자마자 이경을 현관에서 잡아먹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다급하고 성급하게 이경을 집어삼켰다.
재하는 이경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현관에서도 거실에서도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서도 이경은 재하의 것이었다.
욕실에서 겨우 재하를 떼어 낸 이경은 방으로 도망쳤다. 옷을 막 입었는데 재하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불쑥 이경의 방으로 들어왔다.
“여기가 차이경 방이야?”
재하는 작은 이경의 방을 둘러보았다.
둘러볼 것도 없이 침대와 책상 옷장이 가득 차 서 있을 곳도 마땅치 않은 작은 공간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 커다란 재하가 들어오니 더 작게 느껴졌다.
“네.”
대답을 하던 이경의 시선이 한순간 재하의 허리 아래로 향했다. 저건 왜 또 저래. 이경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옷 입으십시오.”
이경이 사나운 재하의 몸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옷이 없잖아.”
“발가벗은 채로 저희 집에 오지는 않으셨잖아요.”
거실에 내던진 옷이 멀쩡하게 있건만. 이경은 재하를 약간 한심한 눈으로 보았다.
“그걸 입고 불편해서 어떻게 자? 난 잘 때 원래 안 입고 자.”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실 생각입니까?”
이경이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말하는 꼴을 보니 자고 가겠다는 뜻 같다.
“그럼 이 밤에 나보고 나가라고? 밤길 무서운 줄 몰라.”
재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이경의 침대로 올라갔다. 작은 싱글 침대가 재하의 몸으로 가득 찼다.
“침대가 작네.”
재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경은 대자로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는 재하를 보았다. 가운데만 솟아 있어 아주 가관이었다.
“그럼 서 전무님은 여기서 주무십시오. 저는 하경이 방에 가서 자겠습니다.”
“방 주인이 손님을 두고 어디를 가.”
재하가 침대 옆에 서 있는 이경의 손을 잡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경은 힘없이 재하의 품으로 쓰러졌다.
“서 전무님.”
어느새 재하에게 안겨 침대에 누운 이경은 그를 흘겨보았다. 서재하 하나로도 꽉 찬 좁은 침대에서 어떻게 자라고.
“혼자 자면 무섭잖아.”
재하는 옆으로 누우며 이경을 꽉 끌어안았다.
“좁습니다. 둘이 못 잡니다.”
“이렇게 꼭 안고 자면 되지.”
재하가 뭔 걱정이냐는 투로 말했다.
이경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매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재하의 다정한 손길에 이경은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재하의 허리 아래가 잠을 깨웠다.
“근데 참 거슬립니다.”
“뭐가.”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이경이 건방진 재하의 하체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제야 이경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재하가 웃음소리를 냈다.
“자를 수는 없어. 차이경이 좋아해.”
“저는…….”
재하의 말에 이경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얼마를 해야 저게 잠잠해질까.
“안정감 느껴지게 잡고 잘래?”
“됐습니다.”
서재하 또라이. 오랜만에 서전또를 중얼거리며 이경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이경의 얼굴에 부드러운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잘 자, 이경아.”
재하가 이경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서 전무님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이경은 눈을 뜨지 않고 재하에게 말했다.
서재하의 향기가 참 달게 느껴졌다.
***
눈을 뜬 이경은 재하의 품 안이었다. 정말 밤새 이렇게 좁은 침대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든 모양이다.
“일어났어?”
재하가 이경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네.”
이경이 재하의 품에서 빠져나와 침대로 내려갔다. 호텔에서 재하의 품에서 잠든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아침을 함께 맞은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머쓱한 마음에 이경은 재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와 보니 재하가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경이 나온 것을 본 재하가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 다가왔다.
이경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재하는 욕실로 들어갔다. 누가 보면 이 집 주인인 줄 알 정도로 재하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이경은 재하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주방으로 향했다. 가볍게 요기할 거리를 찾다가 하경이 재하 준다고 사 온 시리얼을 발견했다.
이경은 집에서 제일 예쁜 그릇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시리얼을 그릇에 담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반갑네.”
때마침 욕실에서 나온 재하가 식탁 위의 시리얼 상자를 들며 중얼거렸다.
“하경이가 서 전무님 드린다고 사 온 시리얼이에요.”
“하경이가?”
이경의 말에 재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좋은 듯, 걱정스러운 듯, 재하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잘해 준 것만 생각난대요. 서 전무님께 감사하대요.”
이경이 하경의 마음을 재하에게 전해 주었다. 재하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하경이가 나 허락해 줄까?”
재하가 시리얼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스러움을 얼굴에 가득 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