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그럼?”
재하가 인상을 쓰며 이경을 보았다.
“서 전무님 할 거 하십시오.”
“내가 할 게 뭔데? 내 몸뚱이 너한테 밀어 넣고 흔드는 거? 어?”
재하가 성질을 내며 이경을 내려다보았다.
“네.”
이경이 재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재하의 눈이 상처로 물들었다. 자꾸만 제 상처를 드러내는 재하 때문에 이경의 마음이 수런거렸다.
“해 달라고 아주 사정을 하네.”
작게 욕설을 내뱉고 재하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그 말에 잠시 잠깐 품었던 재하를 향한 연민이 사라지고 수치심만 남았다. 이경이 항의하듯 재하의 아래에서 몸을 바르작거렸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응? 차이경, 이걸 원해?”
바르작거리는 손목을 잡아 결박한 재하가 이경에게 하체를 밀착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경을 자극하는 몸짓이 외설적이었다.
“아.”
재하의 행동에 당황한 이경이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었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자극에 이경은 몸을 비틀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할 거 하시라니까요.”
흘러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으며 이경이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해 달라고 사정하는 거야? 싫은데?”
재하는 밉살맞은 표정으로 이경을 내려다보며 픽 웃었다. 그러고는 이경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을 머금은 재하가 혀를 굴렸다. 흐느낌이 동반된 신음이 이경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경이 다급하게 재하의 머리를 잡았다.
“이런 건 싫습니다.”
“…….”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흣.”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재하는 계속 이경을 자극했다. 재하의 머리를 잡은 이경의 손이 덜덜 떨리다 결국은 툭 떨어졌다.
이경은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칠 것 같은 자극과 그 자극이 불러온 쾌감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한참 만에 재하가 이경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었다. 풀려 버린 이경의 눈과 마주하며 재하가 혀로 제 입술을 핥았다.
불안정한 숨을 토해 내는 이경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눈꺼풀 역시 파르르 떨렸다.
“이런 거 말고 서 전무님 욕정이나 푸십시오.”
눈꺼풀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이경이 말을 내뱉었다.
“너나 즐겨.”
재하가 이경의 턱을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경의 바지에 손을 댔다.
이경이 허우적거리며 재하의 손목을 잡았지만 재하는 순식간에 바지를 벗겨 냈다.
몸을 물린 재하가 이경을 내려다보았다.
재하의 앞에 발가벗겨진 이경이 살짝 몸을 움츠렸다. 넥타이까지 하고 있는 재하 앞에 벌거벗겨진 채로 놓여 있는 것이 창피했다.
“너나 마음껏 즐기라고, 차이경.”
벌을 주고 싶었다. 제 손길에 반응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을 알기에. 작은 틈 하나를 주지 않는 이경이 미워 재하는 그녀를 벌주고만 싶었다.
절대 너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 밤에 느꼈던 감정 따위는 다시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재하의 손이 오므라진 이경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길이 이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아.”
이경이 몸을 비틀며 다리 사이로 들어온 재하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무리 손을 떼어 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흐읏.”
이경의 허리가 뒤틀렸다. 결국 재하의 손목을 잡은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재하가 흔드는 대로 이경은 흔들렸다. 감각의 끝, 신음 소리와 함께 이경의 몸이 축 늘어졌다.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에는 수치스러움도 부끄러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진한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침대 시트를 붙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재하가 몸을 웅크린 이경을 바로 눕혔다. 넥타이가 이경의 피부에 닿아 배를 간질였다.
“차이경, 좋았어?”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이경의 정신이 점점 돌아왔다. 하얗게 변했던 머리가 다시 수치스러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됐으니까 빨리하십시오.”
네가 나한테 원하는 거 빨리 가져가라고. 이경이 날이 선 눈으로 재하를 보았다.
재하는 같잖다는 듯 보며 이경의 뺨을 쥐었다.
“몸이 달았네, 차이경.”
다른 손으로는 이경의 가슴 끝을 쥐고 비틀었다. 재하의 손이 점점 더 자극적으로 움직였다.
이경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경은 울고 싶어졌다. 서재하가 정말 개같이 군다고 생각했다.
조롱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경이 재하의 넥타이를 쥐었다.
재하의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이경이 다급한 손길로 셔츠 단추에 손을 댔다. 하지만 재하의 제지에 단추를 하나도 풀지 못했다.
“벗으십시오.”
다시 이경이 재하의 셔츠를 벗기려고 했다.
“뭐 하려고 내 옷을 벗겨.”
재하가 이경의 양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왜 저만 벗고 있습니까? 서 전무님도 벗으십시오. 벗고 빨리하시라고요.”
“싫어.”
재하가 미운 네 살처럼 대꾸했다.
“가지고 놀면 재미있으세요?”
이경이 재하가 잡고 있는 손목을 비틀어 빼내며 물었다.
날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드니까 좋니? 양아치, 서재하.
“어.”
“…….”
재하를 노려보던 이경이 그를 밀치며 침대에 눕혔다. 재하는 순순히 이경의 손길대로 움직여 주었다.
“저는 재미없습니다.”
이경은 재하의 허리를 타고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차이경?”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집에를 가.”
재하가 한쪽 입가를 올렸다.
“제 할 일 마치면 집에 갈 겁니다.”
이경이 재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버릇이 나빠, 차이경. 남의 옷을 함부로 벗기고.”
재하가 이경의 양쪽 손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자세를 역전시켰다. 다시 이경의 위로 올라간 재하가 한쪽 손으로 이경의 양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결박시켰다.
그러고는 침대에 떨어진 넥타이를 주워 이경의 손목을 묶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재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며 이경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그러나 손목을 묶는 걸 막지 못했다.
“자꾸 내 옷을 벗기려고 하잖아. 난 벗기 싫은데.”
말을 하며 재하는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평소에도 첫 번째 단추는 풀어 놓았으면서 지금은 얄밉게도 끝까지 채웠다.
“벗으십시오.”
“싫어.”
“안 하실 겁니까?”
이경은 왈칵 짜증이 났다. 저 양아치, 또 또라이 짓 하고 있다.
도무지 재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자고 호텔에 데리고 왔으면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난 오늘 안 해. 근데 차이경은 계속 젖을 거야.”
“서 전무님!”
“내가 적실 거거든.”
재하가 손으로 이경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재하의 손이 허벅지에 닿고, 이경의 중심으로 올라갔다.
“읏.”
재하의 손길에 이경의 허리가 들썩였다. 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입술은 이경의 입술을 찾아갔다. 위와 아래가 끊임없이 재하에게 젖어 들어 갔다.
목덜미도 가슴도 허리 아래도 재하의 입술과 손으로 축축해졌다. 이경은 끊임없이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재하를 미워할 힘조차 남지 않았을 무렵에서야 이경은 그에게서 풀려났다. 그때까지도 재하는 셔츠 단추 하나를 풀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간이었지?”
재하가 이경의 손목을 묶은 넥타이를 풀어 주며 말했다.
“…….”
축 늘어진 이경은 대답할 힘도 없어 눈만 느리게 끔벅거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경의 머리와 등을 천천히 쓰다듬는 재하의 얼굴에도 피로가 묻어 있었다. 바지 위로 선명하게 드러난 하체가 재하의 상태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이경으로서는 재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이경을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던 재하가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커다란 뒷모습을 보다 이경은 까무룩 눈을 감았다.
잠시 잠들었던 이경이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재하가 옆에 누워 쳐다보고 있었다.
“서 전무님.”
재하와 눈이 마주친 이경이 그를 불렀다.
재하는 얄밉게도 샤워 가운 차림이었다. 그렇게 안 벗겠다고 하더니.
“왜?”
“왜 안 하십니까? 왜 저만 이렇게…….”
이경이 말을 삼켰다. 몇 번이나 재하의 손에서 쾌락을 느꼈다.
하경의 수술을 지원받는 대가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니 쾌락 같은 건 느끼면 안 될 것 같았다.
재하는 느끼지 못한 쾌락을 혼자만 느꼈다는 게 이경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할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수치스러움을 동반했다.
“왜 너만 좋아 죽게 놔두냐고?”
“서 전무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이해가 안 돼? 차이경 좋아서 빌빌거리는 거잖아.”
재하가 이경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경은 말문이 막혔다. 날 좋아한다면서 내 동생 목숨으로 거래를 제안한 남자. 날 조롱하고 놀리고 있는 남자. 여전히 서재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이경을 보던 재하가 가만히 이경을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재하의 품에 안긴 이경은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재하는 이경을 더 꽉 끌어안았다.
“놓으십시오.”
“싫어. 너만 좋고 끝내? 나도 좀 좋아야지.”
“그럼 하시라니까요.”
이경은 재하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하여간 차이경 내 몸 참 좋아해.”
“…….”
“좋아하니까 안 넣어 줘. 벌이야.”
재하가 이경의 귀에 속삭였다.
이경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지금 제 몸 상태가 어떤지 알고는 하는 소리인가.
“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요? 거슬립니다.”
아까부터 재하의 몸이 이경의 배를 찔러 댔다. 이건 어쩌려고 안 한다고 계속 버티는 건지 모르겠다.
“얜 어쩔 수 없는 거고.”
“불편합니다.”
“참아.”
“서 전무님!”
양아치 서재하.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이경이 재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재하의 시선이 한순간 이경의 입술에 닿았다가 다시 눈으로 향했다. 후, 한숨을 내쉬더니 재하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자를까? 잘라? 자르면 차이경이 데리고 살 거야?”
“자르라고 드린 말씀 아닙니다.”
“안 데리고 살 거면 그냥 둬. 없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해.”
재하가 이경의 머리를 가슴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재하는 이경을 품에 안고 이경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예의 없는 재하의 하체는 계속 이경을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정하게 쓰다듬는 재하의 손길에 이경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재하의 품에서 단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