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재하의 주먹에 맞아 남자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자는 “악악.” 비명을 질러 댔다.
“사람 살려! 깡패가 사람을 쳐요.”
남자는 바닥을 뒹굴며 억울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시끄러!”
재하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헉.”
남자는 무릎을 움켜쥐고 앓는 소리를 냈다.
“고자를 만들어야 두 번 다시 이딴 짓을 안 하지.”
벌어진 남자의 다리 사이로 재하의 발이 쑥 들어갔다.
“어어어.”
다리 사이로 들어온 재하의 발에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야, 인마. 그만해.”
준오가 재하를 말렸다. 겨우 남자에게서 재하를 떼어 놓았다.
그때,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이 들어오자 남자가 엉금엉금 기어가 경찰의 다리에 매달렸다.
“저 미친놈이 절 죽이려 했어요. 저놈 좀 잡아가세요.”
남자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그 꼴이 참 가관이라 재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가시죠.”
경찰이 웃음을 터트린 재하에게 다가왔다.
재하는 그대로 남자와 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 앞에 앉은 재하는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더 때려 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서재하 씨, 갑자기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때렸습니까?”
경찰이 재하에게 물었다.
재하가 뭐라 대답을 하기 전에 남자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겁먹은 눈으로 재하의 옆으로 다가온 여자아이가 입을 뗐다.
“제가, 저 때문에…….”
“학생은 빠져. 어른들 일이야. ……하준오!”
재하는 여자아이의 말을 막고, 근처의 서 있는 준오에게 데리고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준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이 새끼를 왜 때렸냐면 기분이 뭐같아서.”
재하가 옆에 있는 남자를 사나운 눈으로 보았다.
남자는 재하의 눈빛에 움츠러들었지만 이곳이 경찰서라는 것이 떠올랐는지 이내 당당한 얼굴로 경찰에게 말했다.
“저 합의 안 해요. 이 새, 새끼 콩밥 먹일 거예요.”
“그러시든지.”
재하는 껄렁한 자세로 의자에 기댔다.
“기분 나빠서 때렸다고요?”
“묵비권. 내 변호사 오면 그때 합시다.”
재하는 성현이 올 때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성현이 도착하고부터 재하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성현은 유능한 변호사였고, 온 지 30분 만에 남자와 합의를 봤다.
물론 “내가 다 들었어.” 하는 재하의 말이 남자에게 결정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경찰서를 나온 재하는 준오와 함께 경찰서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야, 너 이 씨.”
재하는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죄송해요.”
여자아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전화번호 찍어.”
재하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자아이는 훌쩍이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재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여자아이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까지 확인했다.
“너 내가 전화하면 받아라. 안 받으면 확.”
재하가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네.”
여자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집에 빨리 들어가.”
재하가 고갯짓을 했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걸어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저 불량 청소년.”
재하가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경찰한테 새별이 얘기했어?”
“쟤 이름이 새별이야?”
준오의 물음에 재하가 입을 열었다.
“오새별이래. 할머니랑 둘이 살고. 할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돈 벌고 싶어서 그랬대.”
“아, 진짜 저 개새끼 한 대 더 패고 올까.”
아직 경찰서에 남아 있는 남자를 몇 대 더 때리고 싶어 재하는 손이 근질거렸다.
“서재하, 성질 좀 죽여라, 인마.”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저 미친!”
재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끓어올랐다. 저런 놈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면 안 된다. 어디 건드릴 게 없어서 애를 건드려.
“그래서 경찰한테 새별이 얘기했냐고.”
“새별이 얘기를 왜 해.”
“하지, 좀. 알려지면 어쩌려고 그래? 벌써부터 WR 주가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들려.”
“떨어지면 사라. 돈 버는 길이다.”
재하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윤 변호사한테는 말했어?”
“윤 변호사한테 그 얘기를 왜.”
“답답한 새끼. 너 살 구멍은 만들어 둬야지.”
“어린애 인생 망칠 일 있냐? 난 돈 많으니까 계속 잘 살 수 있어. 윤 변한테 아무 말 마.”
재하는 경찰서를 나오는 성현을 보며 준오에게 말했다.
성현이 재하와 준오 앞에 섰다. 그는 준오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재하를 보았다.
“사고 제대로 치셨습니다.”
“알아.”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회장님께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성현이 재하에게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성현이 떠나고 준오가 재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이씨, 또 영감 한 걱정 하겠네.”
재하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회장님은 무슨 죄냐.”
“잘난 손자 둔 죄지.”
재하가 경찰서를 빠져나가며 피식 웃었다. 우리 권 회장님 뒤로 넘어가기 전에 얼른 집에 가 봐야겠네. 가는 길에 영감님 좋아하는 맘모스 빵이나 사 가야겠다.
다음 날, 재하는 새별과 카페에 마주 앉았다. 새별은 재하의 눈치를 잔뜩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왜 부르신 건데요? 아저씨도 저랑 하고 싶어서…….”
“야!”
재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굴 변태로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고요?”
“나쁜 짓인지는 알아?”
재하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지? 어디 겁도 없이.”
새별이 훌쩍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재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티슈를 던지듯 건넸다. 새별은 재하가 준 티슈로 눈물과 콧물을 닦고는 그를 보았다.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어. 어린 네가 뭘 알아. 어린 너한테 손 뻗은 놈이 죽일 새끼지.”
재하는 새별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새별은 재하의 명함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되게 높은 사람이네요.”
“돈도 많아. 돈 필요하면 빌려줄 테니까 그런 짓 하지 마.”
“조건 없이?”
“조건 없이.”
“왜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회 환원차 돈을 막 뿌려.”
“공짜로 막 받는 건 싫은데. 그럼 진짜 가난해 보이잖아요.”
새별이 입을 삐죽였다.
“섬세하기는.”
재하가 피곤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새별은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더니 주소 하나를 적어 주었다.
“여기 우리 할머니 갈비탕집이에요. 아저씨는 좋은 회사 높은 사람이니까 직원들이랑 우리 할머니 갈비탕집에 와서 회식하면 안 돼요? 가게는 엄청 작기는 한데 진짜 맛있거든요.”
“영업 뛰는 거야?”
재하는 피식 웃으며 새별이 적어 준 주소를 지갑에 잘 넣었다.
“감사해요.”
“감사하면 공부나 열심히 해.”
“저 공부 못 해요.”
“그럼 기술 배워.”
“네.”
“너 내가 가끔 전화해서 잘 사는지 감시할 거야.”
“흐흥, 아빠 같다.”
새별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 그 정도로 늙지 않았어.”
“…….”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생각하든가. 생각은 네 자유니까.”
새별이 실망한 것 같아 재하는 슬쩍 덧붙였다.
새별은 금방 헤헤 웃었다.
그 이후로 재하와 새별은 인연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재하도 새별도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재하의 차가 새별과 함께 서 있는 이경에게 점점 다가갔다.
***
“아저씨 괜히 저 때문에 나쁜 놈이라고 소문만 나고. 뉴스에 아저씨 얘기 나올 때 제가 인터넷에 글 올린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말렸어요. 제 인생 피곤해진다고. 아저씨 좀 괴팍해도 좋은 사람이에요.”
새별이 이경을 보며 말했다.
재하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이경은 새별에게 몇 달 전 서재하 폭행 사건의 진실에 대해 듣고 있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옆자리 사람을 때린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미친놈 응징한 정의로운 놈이었다.
“어? 아저씨 차 왔다.”
새별이 재하의 차를 발견하고 말했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재하가 이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차이경, 타.”
“네.”
이경은 고개를 돌려 대답하고는 새별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언니, 또 와요.”
새별이 이경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 공부 열심히 해!”
재하가 새별에게 소리쳤다.
“언제는 기술 배우라면서요.”
“기술 배우는 것도 공부지.”
재하의 말에 새별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경은 새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재하의 차에 탔다. 이경이 안전벨트를 매자 재하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이경은 힐끔 운전을 하는 재하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서재하에 대한 편견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었다.
“잘생겨서 눈을 못 떼겠어?”
“사과드릴게요. 전무님 파렴치한 사람으로 본 거.”
이경이 입을 열었다.
“고작 사과로 되나. 마음에 상처를 가득 입었는데.”
재하가 힐끔 이경을 보고는 다시 전방을 보았다.
“새별 학생한테 다 들었어요. 두 분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
재하는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좋은 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경이 계속 말을 이었다. 성격은 더럽지만 속은 깊은 사람인가 보다. 또라이 서재하가 좀 달라 보인다.
재하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쑥스러운지 연신 헛기침이다. 그러더니 휙 이경에게 고개를 돌려 무릎 위에 있는 검은 봉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건 뭐냐?”
부끄러운 건지 재하가 말을 돌렸다.
이경은 부스럭거리며 검은 봉지에서 홍시를 꺼내 재하에게 보여 주었다.
“주인 할머니가 주셨어요.”
“홍시네.”
“사무실 가서 같이 드세요.”
이경이 검은 봉지에 홍시를 집어넣었다.
“응.”
대답에 재하의 기분이 묻어났다. 목소리에서 즐거움을 읽은 이경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기쁜 얼굴이다.
홍시를 좋아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