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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계약-2화 (2/83)

2화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클럽 건물이었다. 재하가 보내 준 주소로 황급히 달려온 이경은 숨을 가다듬고, 출입구로 다가갔다.

입구를 지키는 클럽 가드가 이경을 위아래로 훑고는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런 곳에 오기에는 옷차림이 너무 단정했던 모양인지 가드가 이경을 붙잡고 물었다.

“서재하 전무님 연락받고 왔습니다. 변호사 차이경입니다.”

“아, 네.”

가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전기로 무언가를 소곤거렸다. 그러더니, 이경에게 생긋 웃어 보이며 들어가시라 손짓을 했다.

이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차이경 변호사님?”

이경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종업원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따라오세요.”

대답을 하자 종업원이 이경을 데리고 룸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눈이 빠질 것 같은 조명에 이경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런 곳에 난생처음 와 본 이경은 클럽을 가득 채운 젊은 남녀들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곳을 좋아할 수 있다니, 사람은 참 다양하구나 싶었다.

어느 룸 앞에 멈춰 선 종업원이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문을 연 종업원이 이경에게 들어가라 손짓을 했다.

이경은 이번에도 꾸벅 인사를 하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모습은 참 가관이었다. 재하의 무릎에 앉아 있는 여자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양아치 자식, 이경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았다. 소음이 차단되고 여자가 재하에게서 떨어졌다.

“왔어?”

여자의 립스틱을 얼굴에 묻힌 재하가 이경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아침에 봤을 때보다 더 양아치 같다고 생각하며 이경이 꾸벅 재하에게 인사를 했다.

“찾으셨습니까?”

“나 얘랑 자려고.”

재하가 고갯짓으로 옆에 앉은 여자를 가리켰다.

이경의 시선이 재하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잠시 닿았다. 화려하게 예쁜 여자가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경은 재하의 발언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 이미 다 들었기 때문이다.

서재하의 사생활 관리의 98%는 그의 여자 관리라고 들었다. 오죽하면 서재하를 위한 발설 금지 각서 양식이 따로 준비되어 있을까.

“서류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경은 가방에서 가지고 온 각서를 꺼내 여자 앞에 내밀었다.

“오빠, 이런 것까지 꼭 해야 돼?”

여자가 각서를 내려다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싫으면 말고.”

재하는 관심 없다는 투로 양주를 마시며 이경을 훑어 내렸다.

이경은 재하의 시선을 무시하며 여자가 각서에 주민 등록 번호와 연락처를 적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여자가 서명을 마치고 이경은 서류를 재하에게로 내밀었다. 하지만 재하는 의자에 기대 술만 마셨다.

“서명하셔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이경이 재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얼굴색 하나 안 변하네.”

“제 일이니까요.”

묘하게 빈정거리는 재하의 말투에 이경이 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

“차 변은 이해심이 많은 편인가?”

“…….”

“원나잇에 너그러워 보여서.”

“서 전무님이 원나잇을 하시든 수절을 하시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제 일만 할 뿐입니다.”

이경의 말에 재하가 소리 내어 웃었다.

이경은 웃는 재하를 빤히 보았다. 웃는 저 얼굴과 지금 이곳이 참 안 어울렸다.

“수절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재하가 술잔을 내려놓고 각서에 서명했다.

이경은 서류를 공증한 뒤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할 일을 마쳤기에 재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이경은 다음 업무 지침을 떠올렸다.

그다음은 서석호 부회장 비서에게 보고를 올려야 한다. 서재하가 여자랑 놀아났다고.

비서들도 극한 직업이구나 생각하며 막 문을 열려는데 뒤에서 재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

이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재하의 껄렁한 눈빛과 마주했다.

저 얼굴에, 저 배경에 왜 저러고 살아. 속으로는 몹시 한심해했지만 이경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얼굴로 재하를 보았다.

재하가 느긋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얼른 일어나 재하의 팔짱을 꼈다. 재하가 귀찮다는 듯 여자의 팔짱을 빼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차이경 변호사, 따라와.”

“네?”

이경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고쳤다.

“차이경 일, 아직 안 끝났으니까 따라오라고.”

재하는 성큼성큼 테이블을 빠져나와 이경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오빠, 같이 가.”

여자가 허둥지둥 재하를 따라 나갔다.

이경은 짜증을 꾹 눌러 담고 재하와 여자를 뒤따랐다. 시끄러운 음악에 머리가 다 아팠다.

앞서 걷는 재하와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이경은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을 떠올렸다. 그냥 이대로 바로 로펌으로 들어가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경은 말 한마디 못 하고 재하의 차에 타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 운전기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경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먼저 자. 언니 늦을 거야.]

동생 하경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뒷자리에서 쪽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아치 새끼. 마음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는 순간 성질을 부리는 재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붙지 좀 마. 저리 가.”

이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하경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알았어. 언니 빨리 와.]

[♡]

이경은 동생에게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뒤에서는 여전히 외설적인 소리와 재하가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경은 그 소리들을 무시하고 가방에서 검토해야 할 서류를 꺼냈다. 뒷자리에서 무슨 짓을 하든 일에 집중했다.

어느새 차가 호텔 앞에 멈추었다. 이경은 뒷좌석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내린 재하가 허리를 숙이고 이경을 삐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경은 운전기사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 서류를 가방에 쑤셔 넣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재하에게 다시 인사했다.

“좋은 시간…….”

하지만 곧바로 재하에게 팔이 붙잡혔다.

“어딜 내빼?”

“제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서 전무님.”

“내 사생활 관리한다며.”

“네.”

“그럼 제대로 해.”

재하는 그대로 이경을 끌고 호텔로 들어갔다. 옆에서 여자가 투덜거리며 재하를 쫓아왔다. 이경은 재하를 쥐어박고 싶었다.

***

“여기서 대기해, 차이경 변호사.”

다행히 룸 안까지는 끌고 들어가지 않았다.

재하는 여자를 데리고 스위트룸으로 들어갔고, 이경은 문이 닫히자마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또라이.”

닫힌 문을 잠시 노려보고, 이경은 바로 서석호 부회장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재하가 왜 자신을 여기에 세워 두는지 이경은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또라이에 양아치였으니 별 미친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할 생각이었다.

이경은 벽에 등을 기대고 다 보지 못한 서류를 보았다. 내일 오전까지 자료를 취합해서 넘겨야 했기 때문에 1분이 아쉬웠다.

그러다 5분도 안 되어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경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앞을 쳐다보았다.

여자가 씩씩거리며 나오더니 문을 쾅 닫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닫힌 문을 걷어찼다.

여자의 행동에 이경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서재하 전무님께서 위해를 가했다든가, 위압적인 행동으로 …….”

“변호사 언니 들어오래요.”

여자가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습니까?”

“나 안 꼴린다잖아! 저 새끼가.”

여자는 왈칵 짜증을 냈다.

또라이가 양아치 짓 했네. 이경은 덤덤한 얼굴로 여자에게 묵례하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여자가 짜증을 내며 멀어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고 샤워 가운 차림의 서재하가 나타났다. 재하는 들어오라는 듯 옆으로 비켜서며 이경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이경이 재하를 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스위트룸 거실 가운데에 서 있는 이경은 가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재하가 와인 병을 든 채 이경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향수와 술 냄새가 섞여 서재하처럼 독했다.

삐딱한 자세로 이경 앞에 선 재하는 병째로 와인을 마셨다. 입가에 흘러내린 와인을 거칠게 손으로 닦아 낸 재하가 이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한잔할래?”

재하가 마시던 와인 병을 이경의 앞에 내밀었다.

이경은 그가 내민 와인 병에 시선을 주고는 다시 재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괜찮습니다.”

“…….”

재하는 이경을 빤히 보며 다시 와인을 마셨다.

이경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와인 병을 입에 가져다 댄 재하는 마신다기보다는 그냥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와인이 그의 턱선을 타고 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치 핏방울처럼 목을 지나 가슴골 사이로 흘러갔다.

흘러내리는 와인을 눈으로 좇던 이경은 벌어진 샤워 가운 사이 보이는 그의 가슴 근육에 흠칫해 시선을 다시 그의 얼굴로 돌렸다. 긴장감에 목이 바짝 탔다.

재하는 여전히 이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숨 막히는 그의 시선에 이경은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그래서 아무 말이나 했다. 말을 내뱉은 순간에 바로 창피해졌지만 표정은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누굴 조루로 아나.”

재하가 픽 웃으며 와인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경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경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재하에게서 느껴지는 독한 향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어딜.”

재하의 입가가 비틀렸다.

재하는 이경이 사이를 벌린 만큼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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