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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스-109화 (109/114)

109화. 고양이와 오래된 인연

해인은 허겁지겁,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뛰어봐야 병원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괘를 듣고 어떻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온갖 걱정에 사로잡히면서도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두려움과 마주 서는 것뿐이었다. 정말 그런 일뿐이었다.

“같이 가자니까!”

“……으앗!”

“나 원, 네가 그렇게 뛰어간다고 무슨 답이 나오냐. 얌전히 있으라니까 말도 참 안 들어요.”

“으, 깜짝이야! 언제 따라왔어요?!”

해인이 막 놀이터 앞을 지나는데 야호가 해인의 옆을 가뿐하게 앞질러 갔다. 부지런히 뛰는 사람이 무안할 만큼 야호는 느긋한 자세였다.

기척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

야호는 뒷짐까지 지고 유유자적 걷는 모습이었는데도 어째 해인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아무렴 내가 너보다 느릴까.”

“빨라!”

“축지법이라고 알기나 하냐. 이 몸은 구름도……. 거, 멈추라니까 그러네.”

무슨 늦게 돌아다니는 딸 잡으러 다니는 아빠도 아닌데, 야호는 먼저 가버리려는 해인의 뒷덜미를 인정사정없이 잡아챘다.

마치 버릇없는 고양이의 목덜미 잡아 올리듯 말이다.

“모달이 묘하게 널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거 놔요!”

“누가 전생에 고양이 아니랄까 봐, 얌전한 것 같으면서 온갖 사고는 다 치는구나.”

야호의 손에 목뒤의 옷깃을 잡힌 해인은 잠시 버둥거렸지만 하나도 소용없었다. 무슨 쇠사슬에 칭칭 감긴 것처럼 단단히 붙잡히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인이 다시 한 번 순간이동을 하려는데, 그보다 빨리 야호가 엄한 목소리를 냈다.

“가지 말라는 게 아니야. 같이 가자는 거잖냐.”

“……거짓말! 야호 님이 도와줄 리 없잖아요! 막으려고 그러는 거죠?”

“아니다. 혼자 보내기 불안해서 그래.”

야호는 분명 아군이었지만, 시율의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해인은 의심의 눈길을 빛내는 수밖에 없었다.

“야호 님은 강이 죽거나 말거나 관심 없잖아요! 순 먹을 것만 찾고!”

“으흠,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그게 순리니까…….”

“그거나 그거나요!”

“……난 너를 보호할 의지가 있다. 네 어린 몸을 새끼 기르듯 품에 끼고 몇 달간 기른 것도 나이며, 모달에게 널 부탁받은 것도 나야. 넌 더 살아야 해. 그런데 넌 마치 그게 부당하다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야 그 걱정과 호의의 반의반이라도 시율에게 나눠준다면, 이렇게 혼자 싸우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야호는 대부분의 짐승이 그렇듯이 제가 사랑하고 싶은 이만 사랑했다.

“날……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요. 그치만 내가 걱정되는 건 강이란 말이에요. 지금 위험한 것도 강이잖아요?”

“난 바로 그게 걱정되는 거야. 넌 그 녀석만 얽히면 네 안전은 안중에도 없잖냐.”

“……그동안 계속 별일 없었잖아요. 난 괜찮을 거예요.”

야호는 해인을 걱정했고 해인은 시율만 걱정해서 둘의 생각은 일치하려야 일치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야호의 눈에 시율이 더 거슬리는 건 그래서였다.

시율은 분명 존재만으로 해인은 위험하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네가 더 위험해 보인다.”

“내가요?”

“그래.”

애초에 둘은 영혼의 상성터부가 너무 달라서, 함께 있으면 한쪽이 불행에 빠지기 좋았다.

그리고 불행에 잡아먹히는 건 대부분 해인일 게 자명했다. 점을 칠 것도 없이, 지금 하는 것만 봐도 그런 모습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함께해서 한쪽을 죽게 하는 궁합이 정말 있었다.

“왜요? 단명…… 어쩌고 하는 건 강의 이야기였잖아요?”

“그것도 맞아. 하지만 오늘 점괘가 가리키는 건 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넌 분명 이전에도 그 녀석으로 인해 죽은 적이 있을 거다. 전생의 어딘가에서 그 녀석은 너의 원수였을지도 몰라.”

“…….”

“내가 보기엔 말이다, 넌 그 녀석과 조금이라도 빨리 떨어져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 점점 그런 확신이 든다.”

해인은 도망가려고 꿈틀거리던 몸에서 힘을 풀었다. 야호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야호의 말에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였다.

언젠가 사신 모달이 말한 적 있었다.

‘이번 생에서의 네 인연은 과거 네 간언에 분노해 너를 유배 보냈고, 네가 죽은 뒤에야 후회하며 너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던 왕이야.’

‘네가 구하고 죽은 그 아이도 왕의 환생이었어. 너도 참 대단한 충심이지 않냐. 두 번이나 목숨을 바치다니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시율이었다.

사신은 보지 못하는 것을 야호는 볼 수 있었다. 둘은 볼 수 있는 것이 비슷한 듯 달랐다.

사신은 남은 생과 지난 생에 대한 기록을 명부를 통해 읽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담당인 해인의 명부 말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야호는 그 신통한 눈으로 전생과 운명의 흐름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사신탈을 쓰고 있는 해인의 운명은 잘 보이지 않지만, 시율은 똑똑히 보인다고 했다.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 강이로구나.’

야호의 말에 의하면 시율은 과거에 인간들의 정점에 서 있었고, 그 권력으로 무수한 살생을 해서 지금도 그 업을 단명으로써 치르고 있는 남자였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릴 때마다 죽을 위기를 겪었을 거라고 했다.

드문드문한 이야기들을 조합해볼수록 확신이 들었다.

돌연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조용히 그런 납득을 하고 있자니 멍하니 멈춰 서는 수밖에 없었다.

“……너, 왜 말이 없냐? 충격 받았냐?”

야호의 걱정과는 반대였다. 해인은 이 와중에 조금 기쁜 감정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그게 시율이라는 건…… 이렇게 고양이가 되어서 만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간 그를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이번 생에 그가 자신의 인연이라, 헤어져도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니까. 그런 게 바로 운명이니까.

‘물론……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을 만큼 싫은 이야기였다.

문득, 운명이란 참 난해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것도 운명이지만 한쪽이 죽는 것도 운명이라면 말이다.

***

예의 그 동백나무가 심어진 집 앞은, 해인이 항상 시율의 퇴근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해인이 병원에 다가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기도 했다.

담장 앞에 쪼그려 앉은 해인은 공원의 출구를 지그시 바라봤다.

한심하긴 하지만 이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껏 뛰쳐나오더니, 그냥 이러고 기다리는 게 다냐?”

“음, 휴대폰이 있기는 한데, 얼른 오라고 연락하면…… 괜히 급하게 나오다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요.”

“어차피 무작정 기다릴 거면 집에서 있는 게…….”

“이러는 편이 덜 불안하거든요.”

야호는 이게 뭔 짓인가 싶은지 계속 툴툴댔지만, 해인은 이렇게라도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차도를 가로지는 것도 이곳뿐이었다.

저 공원의 후문을 나와서, 이 동백나무가 심어진 집 앞으로 신호등도 없는 2차선 도로를 시율은 매일 가로질렀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여길 지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 차가 많은 길목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니 위협적인 것도 같았다.

“그렇게 걱정되면 차라리 뭐냐, 그 동물병원인지 뭔지 하는 데로 가 있는 게 안 낫겠냐.”

“맞긴 한데…… 거긴 못 가요. 병원에 절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위험구역으로 찍혔다고 해야 하나…….”

“흠, 그렇구만. 결국 주술이 문제군.”

“……의외로 쉽게 약화할 수 있는데…… 강이, 싫어하니까.”

할 수 없이 찻길만 노려보고 있던 해인은 불쑥, 야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야호는 벽에 기대서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큰 키를 쪼그려 앉은 채 올려다보는 건 목이 아픈 일이었다.

“뭐냐?”

“야호 님! 아까 그 점 한 번 더 보면 안 돼요? 정말 내 얘긴지…….”

“……너 차라리 네 얘기였으면 하는 거 같다.”

“내 얘기면 내가 조심할 수나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무슨 일이 생겨도 정말 죽진 않으니까. 지금 이 몸은…… 사신탈인걸요.”

불안한 목소리와 떨리는 눈으로 해인은 야호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그리 협조적이지 않은데도 야호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다.

“점은 같은 주제로는 하루에 한 번밖에 볼 수 없어. 다시 봐봐야 적중률만 떨어질 뿐이야.”

“그래요……?”

“그리고 신통한 내가 봐도 적중률은 5할 정도다. ‘그럴 수 있다는’ 운을 점쳐줄 뿐이니까. 정말 10할, 100%에 가까운 점을 본다면 그건 점이 아니라 예언이겠지. 엄청 조심하라고는 해주겠지만 절대적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50% 확률이란 충분히 높은 수치였다. 절대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해도 그리 안도되지는 않았다.

해인은 영 찝찝한 얼굴이었다. 야호도 그랬고 말이다.

“그리고 너, 그게 네 진짜 몸이 아니라 사신탈이니까 죽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그거 큰일 날 소리다.”

“……또 나쁜 얘기 하려고 그러죠.”

“……그 몸은 그 안에 있을 때나 안전한 거다. 인간의 몸과는 달라.”

“으음, 어떻게 다른데요?”

“인간의 몸이라면, 어떤 충격에도 자기 영혼을 붙잡고 있어. 몸이 완전히 죽어서도 그렇지. 자신의 몸이니까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고 들어. 하지만 사신탈은 다르다. 임시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몸이 부서지거나 약해지면…… 영혼부터 뱉어낸다.”

“망가지면 영혼이 튕겨 나갈 거라는 이야기는, 얼핏 사신에게도 들었는데…….”

그걸 왜 조심하라고 했더라? 해인은 처음 이 몸을 받았을 때 들은 얘기들을 떠올려 봤다. 지금 야호가 하는 이야기와 비슷했다.

“영혼이 날로 노출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사신에게 붙잡히면 운이 좋은 거지. 최소한 영혼이 무사히 명계로 인도될 테니까.”

“운이 나쁘면요?”

“……운이 나빠서 악귀한테라도 잡혀가면…… 넌…….”

야호는 입에 담기도 싫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간 들은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악귀의 먹이가 되어서, 환생도 못 한다, 그거죠?”

“그래. 너 이 무서운 얘기를 잘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그건 영혼한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하물며 나도 무서운데.”

야호가 이렇게 겁을 주는데도 별로 두려움이 들지는 않았다. 영혼이니 악귀니 하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는 건 둘째치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들어서였다.

“……하지만.”

“흠?”

“저 골목으로 강이 나오는데, 그를 향해 차가 돌진한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그곳으로 날아갈 것 같아요. 다른 건 아무 생각도 못 할 것 같아요. 자의와는 상관없어요. 내가 죽어도 강이 살면, 그게 나은 것 같으니까.”

해인은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공원의 출구를 노려봤다.

“……안 된다. 인간의 본능이라는 건 말이야. 자기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게 되어 있어. 아니, 모든 생명이…….”

“본능대로 다들 위험을 감지하고 살면, 아무도 안 죽게요?”

왜일까. 작게 헛웃음이 났다. 시율이 저를 위험하게 하고, 이미 몇 번쯤 그로 인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야호의 경고에도 해인이 든 생각은 하나였다.

자신이 참 미련하게도 그를 좋아하는구나.

같이 있으면 죽는다고 해도 같이 있고 싶구나.

이미 몇 번이나 그런 운명을 반복한 것 같은데 또 그의 곁에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이쯤 되니 그와 만난 건 당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건 심각한 문제다. 네가 다신 삶을 부여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봐! 그래도 좋냐?”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거참, 겁이 많은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는 녀석이라니까.”

“겁은 많아요. 많은데…….”

“그런데?”

“강이 죽는 게 더 무서울 뿐이에요. 그것보다 무서운 게 없어서.”

해인은 제 무릎을 끌어안으며 불안한 얼굴로 웃었다. 만약의 일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다만 그가 죽는 게 무엇보다 싫을 뿐이었다.

“……그런 거냐.”

“네, 그런 거예요.”

야호가 커다란 몸을 숙여 해인의 곁으로 쪼그려 앉았다.

그러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눈으로 해인을 바라봤다.

“죽어도 좋은 거구나.”

“죽을 만큼 좋은 거예요. 그리고 아마, 내가 위험에 빠지면…… 강도 뛰어들 거예요.”

그러길 바라진 않지만, 그럴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련하다, 미련해. 역시 인간들은 미련해.”

“……아무튼 나는 강을 지켜야겠으니까! 야호 님은 날 지켜줘요!”

“너 뻔뻔해졌구나?”

“지킬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뻔뻔해도 설마 야호 님만큼은 아니겠죠.”

아직 시율이 퇴근하려면, 5시간은 남아 있었다.

***

“……뭐야? 어디서 나타났어?”

“강, 얼른 집에 가자!”

시율은 어디선가 나타나 제 옆구리에 팔짱을 끼는 해인 때문에 못내 당황하는 중이었다.

추위를 피해 목도리 속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제 오른손에 팔짱을 끼나 싶었더니 해인이었다.

오늘은 지독한 꽃샘추위였다. 당연히 집에서 배 깔고 누워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여기 나와 있는 걸까.

몸은 또 왜 이렇게 차갑고.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몸이 찬…….”

“가자꾸나!”

“……이건 또 뭐야.”

기척도 없이 이번엔 반대쪽에서 야호가 나타났다. 그러곤 해인이랑 짜기라도 했는지 양쪽에서 하나씩 시율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반강제로 차도를 건너고 있었다.

해인이야 그렇다 치지만, 왜 이 호랑이랑 자신이 팔짱을 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엄청 사이좋은 셋인 줄 알겠다.

“이게 뭐야! 그냥 걸어가면 되잖아?”

“잔말 말고 이대로 가!”

아니, 이건 걷다 보니 마치 형사들한테 연행되는 느낌이었다.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으니 걷기도 힘들었다.

한쪽은 너무 키가 컸고 한쪽은 너무 작아서, 그 사이에 낀 느낌이 아주 별로였다.

심지어 야호가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는 건 숨결이 느껴져서 기분이 더러웠다.

“이걸로 케이크 값은 했다.”

시율은 야호의 목소리가 닿은 귀를 손으로 덮으며 오만상을 써야 했다. 이게 보답이라면 다신 케이크를 해주지 말아야 되는 건 아닐까.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불쾌할 뿐이었다.

그래도 시율은 집까지 안전하게 이동됐다.

***

집에 도착한 시율은 우선 몸이 차가운 해인부터 욕실로 밀어 넣었다.

따듯한 물로 제대로 녹이고 나오라고 신신당부하고는, 야호를 노려봤다.

야호는 마치 백수 삼촌처럼 거실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일주일 사이 이 집에 너무 적응해 있었다.

“뭐였던 거야?”

“음, 네 녀석 운이 오늘 바닥을 치고 있었지.”

“……차 조심이었나.”

“그래.”

시율이 보기에 야호는 뭐랄까, 사이비 교주 같달까. 야호가 뭐만 말하면 해인이 쩔쩔매는 것도 보기 싫었다.

남의 집 거실에 저러고 누워 있는 것 자체도 민폐인데, 원룸을 한 달 구해줄 테니 그리로 가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해인 옆에 붙어 있으려고 구는 것도 야호의 수많은 얄미운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 있잖냐.”

“뭐, 또 배고프다는 거겠지.”

이 식객은 먹는 양도 어마무시 했다. 밥은 기본이 세 공기였고, 반찬은 주는 대로 먹긴 다 먹지만 타박이 심했고. 매일 단걸 먹이지 않으면 저 커다란 몸으로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리고 그 투정을 들어야 하는 건 결국 시율이었다. 시율은 야호 덕분에 태일이 얼마나 좋은 룸메이트였는지 새삼스레 깨닫는 중이었다.

“배도 고프긴 한데. 그보다 오늘은 그간 먹고 묵은 답례를 할까 하는데.”

“하? 뭘로?”

“그 아이의 말대로 해.”

“뭘.”

“성당이건 절이건, 데려가라.”

시율은 그 말이 어디가 어떻게 답례인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야호와 대화할 때면 늘 그랬듯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안 해.”

“해.”

“……네가 날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해.”

“그 아이 모르게 데려가. 어차피 네놈이 절대 안 데려간다고 해서 방심하고 있을 테니, 차라리 잘됐지.”

“……안 간다니까 그러네.”

두 남자 사이에 조용한 말싸움이 시작됐다. 야호는 시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제 딸 데려가서 고생시키는 사위 보듯이 말이다.

그리고 밥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 대접을 받고 웃어줄 시율이 아니었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앙숙이었다.

“그러고 보니 추천할 만한 성당이 있지. 산책하다가 본 곳인데 남쪽에 있더군. 정갈하고 오래된 곳이었어.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내 말은 또 무시하는군.”

“안 가면 후회할걸.”

“……얼마나?”

“얻을 걸 얻지 못한 후회.”

“……아파하는 건 싫어. 못 보겠다고.”

“그래도 들어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말에서 묘한 압박이 느껴져서, 시율은 야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가.”

“충분히.”

“……이름이라도 알 수 있는 건가.”

“그 정돈 안 되겠지만, 만난 이상 알아둬야 할 건 알 수 있겠지.”

시율은 해인이 씻고 있는 욕실 문을 바라봤다. 그는 갈등하는 눈이었다.

해인도 원하고 야호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뜻 움직이기에는 아직도 제 옷깃을 붙잡고 쓰러지던 해인의 얼굴이 똑똑히 기억나 망설여졌다.

한강변에서, 그는 정말 해인이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잠시지만 정말 숨을 쉬지 않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해인이 눈을 감고 있는 동안은 저도 산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공포가 도통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엄청 힘들어해. 하면 안 되는 무언가를 하면…….”

“뭐, 자기가 아파도 좋으니 가고 싶다잖아. 그런데 그 성의를 무시하면 예의가 아니지.”

“난 모르겠어.”

“적어도 그건 알잖아?”

“……?”

“너희에게 시간이 쥐꼬리만큼 남았다는 거.”

웃으면서 뭐라는 건지. 이러니 시율이 야호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율은 욱하는 동시에 마음이 움직이긴 했다.

마침 모레가 휴무였다. 달력을 노려보다가 다시 야호를 노려보며, 시율은 이를 갈았다.

“……젠장. 그래서 그 성당이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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