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고양이와 운명
기껏 아침부터 나가서 붕어빵을 사다 줬건만, 이렇게 눈치 없이 굴 줄이야. 붕어빵 10개를 먹고도 또 밥을 찾을 줄이야.
해인은 야호에게 대놓고 찬밥을 떠줬다. 시율도 고기가 하나도 안 들어간 소고기 뭇국을 줬다.
“……거, 너무하네.”
“뭐가요?”
“왜 내 국에만 고기가 없는 거냐!”
“우연이에요, 우연.”
“찬밥 주고!”
“그야 야호 님은 혼자 세 그릇이나 먹으니까! 찬밥도 먹어야지 어쩌겠어요!”
야호가 수저와 젓가락을 양손에 잡고 흔들며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누구도 불쌍히 보지 않았다.
해인은 반찬 중에 김치를 야호의 앞에 가까이 밀어줬다.
시율은 고기 타령을 하는 야호에게 인심 쓰듯 멸치볶음을 내밀어줬다.
“이거나 드셔. 공짜로 밥 얻어먹으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밥값 까짓것 내면 될 거 아냐! 얼만데 그러냐!”
“돈 줄 테니까 차라리 나가서 사먹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식객이면 식객다워야 될 거 아냐.”
“……젠장, 이놈들! 날 이렇게 박대하고도…….”
“있죠. 야호 님? 다 먹으면 강이 간식으로 케이크 만들어 준대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해인은 이제 슬슬 야호 사용법을 익혀가는 중이었다.
야호는 얌전히 찬밥에 김치와 멸치볶음을 먹었다. 그 모양이 불쌍해서 해인은 제 뭇국에 있는 고기를 나눠 줬다.
가장 큰 것으로 꺼내서 옮겨 주자 야호의 눈은 반짝였고, 시율의 눈길은 매서워졌다.
“다음부턴 우리 방해하지 말아요. 알겠죠?”
“알겠다.”
“그것만 지켜줘요.”
“하지만 난 배고프면……. 아아, 알았다.”
줬던 고기를 다시 뺏자, 야호는 착한 호랑이가 되었다.
***
시율에게 계속 조른 결과였다. 시율은 간만에 솜씨를 발휘해서 온갖 종류의 케이크를 구웠다.
제철인 딸기가 듬뿍 들어간 치즈 케이크부터, 커다란 퐁당 쇼콜라, 녹차 롤 케이크, 사과 타르트, 바나나 초콜릿 무스.
테이블 위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들로 꽉 차버렸다.
하나를 먹으면 하나가 연달아 또 나오자, 야호는 상상만 하던 케이크를 종류별로 먹을 수 있는 행복한 한때에 기쁨의 콧김을 뿜었다.
“굉장하다!”
“맛있죠?”
해인은 제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뻐기듯 물었다. 시율의 솜씨가 이 정도였다.
“과연 엄청 나구나! 좋구나, 좋아. 좋은 세상이야. 이런 걸 집에서 해먹을 수 있다니.”
“뭐,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강이 이상하게 잘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난 이 검은 게 제일 맛있다. 코코아 맛도 나고 말이지. 이거 이름이 뭐냐?”
“퐁당 쇼콜라는 나도 좋아해요. 방금 한 건 초콜릿이 흘러서 더 맛있어요. 그리고 이쪽 사과 타르트는…….”
야호에게 케이크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동안, 시율이 마지막 케이크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마지막.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
“오오!”
“더 만들었다가는 오븐이 망가질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겨우 케이크 몇 개 먹더니 야호는 시율에게 호감이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무슨 호랑이가 이렇게 쉬운 걸까. 먹을 거만 주면 아무나 따라갈 것 같았다.
“인간 너, 존경해야겠구나.”
“이 정도 가지고 존경은 무슨.”
“건방지고 능력 있는 놈이었어.”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남기면 다신 안 만들어 줄 거라는 건 확실하지.”
엄청난 양을 만들어 놓은 게 걱정되는지 시율이 당부했다.
하지만 남길 야호가 아니었다. 그 위장 역시 다른 차원이라도 연결된 건지 끊임없이 먹어댔으니 말이다.
야호는 케이크 한 조각을 두 입 만에 먹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했고, 해인은 그 마수에서 겨우 타르트 한 조각을 사수할 수 있었다.
혹시나 그것도 뺏길세라 열심히 포크질을 했다.
케이크가 남을 걱정보다는 제 몫 걱정을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우물, 그러고 보니 어제 말하다 만 주술 약하게 하는 법 말인데.”
“풉.”
“왜 그러냐?”
“……강도 같이 있는데, 그런 걸 말해도 돼요?”
“내가 건 것도 아닌데 상관없다만. 그리고 네가 주술에 걸려 있다는 것쯤은,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거라도 말해줄 수 있으면 좀 진작 해달란 말이지.
해인은 제가 본래 사람이라는 것만큼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이거라도 어딘가 싶었다.
시율은 제게로 둘의 시선이 쏠리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공부해온 온갖 비과학적인 정보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우물, 이 녀석. 주술에 걸렸어.”
어차피 손으로 집어먹으니 쓰지도 않는 포크로 해인을 가리키며, 이 녀석 감기 걸렸어, 하듯이 쉽게 말하는 야호였다.
“그거 새삼 확신시켜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고마우면 이거나 더 만들어 오든가.”
“사온 재료도 전부 써버려서 오늘은 무리야. 내일 해주지.”
“그래? 아무튼, 그 주술을 약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려던 차거든.”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생크림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말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인은 여튼 야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시율도 그간 해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존재를 만난 적이 없어서, 이제야 야호의 존재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겨우 실감하는 것 같았다.
“잠깐,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주술, 동양적인 거야 서양적인 거야?”
“그런 구별은 사실 무의미하지만…… 주체가 동양적인 존재니까, 동양적인 거겠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그렇게 세세한 건 말할 수 없어. 애당초 저 녀석이 걸린 게 그런 주술이니까. 말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주술에 걸렸다, 거기까지야.”
“난해하게도 지껄이는구나.”
“뭐라고?”
“자, 이것도 마저 먹어.”
“아이쿠, 고맙습니다.”
시율은 해인이 하는 걸 보고 야호의 조련법이라면 대충 눈치챘고, 제 몫으로 무릎 위에 놔뒀던 케이크 세 조각을 미련 없이 야호에게 넘겨줬다.
“그래서 그 주술…… 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약하게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글쎄다? 잘하면 너한테 자기 본체가 뭔지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본체? 본체면…… 정체 같은 거였나.”
“그렇지.”
시율은 가만히 제 턱 끝을 긁적였다. 사람이 아닌 것과, 사람의 일이 아닌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래도 얻을 수 있는 건 얻어야했다. 그건 이 문제를 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스무고개도 아닌데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씩 내뱉었다.
“구미호.”
“아냐.”
“마녀.”
“땡. 그만둬라. 어차피 이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초승달이 뜨는 날이야.”
초승달. 보름달과는 반대인 것. 달이 가장 작아지는 날. 해인은 받아 적을 기세로 눈을 반짝였다.
주술을 약하게만 할 수 있어도 시율에게 무언가 말할 수 있는 게 생기리라.
야호의 말처럼, 자신의 정체를 말할 수 있게만 되어도 더 바랄 건 없었다. 물론 그 이전에 시율의 위기가 무사히 지나가야겠지만 말이다.
“여러 날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건 달로써 기준을 잡지. 그리고 너에게 주술을 건 존재가 가장 약해지는 날. 주술도 가장 약해진다. 그건 아주 기본적인 법칙이야.”
“……보름달과는 반대인 거군요.”
사신의 힘은, 보름달이 뜰 때 가장 강력하고, 초승달일 때 가장 약해진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분명 영향을 끼치는 기준이었다.
“맞다. 초승달이 뜨는 날. 강한 힘을 가진 신의 그늘로 숨어라. 너처럼 스스로에게 능력이 없는 경우는 그게 최선이니까.”
“신의 그늘?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영험하다고 소문난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 성당도 상관없다. 인간들의 믿음이 쌓이는 곳이면 돼. 그곳에는 반드시 신이 깃들어.”
“……나, 그런데 못 들어가요. 일본에 갔었는데…… 붉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어요.”
해인은 자신이 거부당했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신사의 입구에서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그날을 말이다.
“바로 그거야. 그 저항이 널 구해줄 거다.”
“아예 들어갈 수도 없는데도요?”
“그러니 억지로 들어가야지. 그리고 들어간다고 죽진 않아. 다소 괴롭겠지만 말이지.”
“그, 그 다소라는 거…….”
그날, 겨우 문 앞에 섰을 뿐인데도 피부 끝이 온통 저릿거렸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라니.
야호가 혹시 저를 죽이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인은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서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 안에서 네 모든 건 철저하게 억압당할 거다. 네 몸도 영혼도 약해질 거야. 그리고 주술도 함께 약해지지. 무슨 뜻인지 알겠냐?”
“…….”
“네가 거부당한다는 건, 네 주술도 함께 거부당한다는 거다. 너와 주술은 한 몸이니까. 네가 약해지는 만큼 주술도 쇠약해져. 그리고 그때를 노리면,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해인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한 번도 주술을 풀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인데, 야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저주를 풀려면, 축복이 필요했다.
독에는 약이 필요하듯, 주술에 독이 되는 게 필요했다. 그게 자신에게도 독이어도 말이다.
“참 쉽지?”
“……네, 붕어빵 열 개인 이유를 알겠네요.”
“간단하잖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고.”
“저기, 난 전혀 모르겠는데.”
주어가 전부 빠진 대화라서인지, 시율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느지막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구체적인 대답할 해줄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다 말해줄게, 강! 이 방법이면 말해줄 수 있어! 같이 교회에 가자!”
“……난 네가 힘들어질 거라는 것 말고는 못 알아듣겠는데?”
“그런 건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너 전에, 산책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쓰러지는 건…….”
“안 죽어, 안 죽어.”
야호가 껄껄거리며 거들었다. 야호는 마지막 남은 케이크를 장렬하게 해치운 참이었다.
그사이 텅 비어버린 테이블 위를 보며 시율은 이거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해인은 혼란스러운 눈이 된 시율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강, 부탁이 있어. 나 몰래, 나를 교회에 데려가줘.”
“…….”
“부탁해! 응?”
알아버리면 주술이 방해할 테니까. 될 수 있는 한 자신은 모르는 게 좋았다. 해인은 거듭 시율에게 당부했다. 그럴수록 어째 그의 표정이 나빠졌지만 말이다.
“혹시나 내가 아프다고 안 가려고 해도, 그래도 억지로 끌고 가줘!”
“……싫어.”
“강? 왜 그래? 우린 같이…….”
“난 못 해.”
그러고 보니 주술도 주술이지만, 제가 아픈 꼴은 못 보는 이 남자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인 혼자 거기에 가서야 주술이 약해져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 말이다.
곁에 그가 있어야 주술이 약해진 의미가 있었다. 해인은 극렬하게 거부하는 시율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그는 강경했다.
“강…….”
“네 정체 같은 거 몰라도 나는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아픈 건 죽어도 싫어! 그런 위험한 데는 안 데려가!”
시율은 아무래도, 교회나 절이 해인을 아프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주술이 약해져야 하는데.
그걸 말할 수는 없고, 말하려면 그곳으로 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반복이었다.
“절대!”
시율은 이를 갈며 소리치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해인은 허무하게 거실에 남아 답을 바라 듯 야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는 야호도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좋은 방법을 알려줬더니, 엉뚱한 쪽에서 반동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으음, 이건 또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네.”
“…….”
“……붕어빵은 못 돌려줘. 이미 먹었단 말이야.”
비법이 쓸모없어져서 저를 노려본다고 생각했는지, 야호가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해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강이…… 화났어요…….”
다만 왈칵 울먹이는 건, 시율을 화나게 해서였다. 제가 또.
그것이 못 견디게 속상했다. 잘 해본다고 하는데, 자꾸만 틀어졌다.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픈 걸 참는 것 말고는 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그건 또 그가 용납하지 않아서…….
“흑!”
자신이 너무 쓸모없게 느껴져서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시율을 위해서 하려는 일이 시율을 화나게 하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건가 싶어져서…….
해인은 눈가를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며 눈물을 훔쳤다.
야호가 예의상 토닥여 주려고 다가오는데, 시율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너! 울 거면 들어와서 울어!”
“……응.”
“왜 거기서 우냐? 왜?”
못마땅한 핀잔에 당장 쪼르르 시율의 품으로 달려가 버리는 해인을 보며, 거실에 혼자 남겨진 야호는 작게 중얼거려야 했다.
“……참내, 너무 대놓고 찬밥 취급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커플이지만…….”
짝을 만나고 싶어도 짝이 없는 서러움이라니.
야호는 어디 500년 묵은 암컷 호랑이 없을까, 하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제 짝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월이 보고 싶었다.
살다가 인간 커플에게 질투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
그건 야호가 시율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낸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점괘가 불길했다. 그건 흔히 안면 있는 자가 죽거나 큰 위기를 맞으면 나오는 점괘였다.
야호는 태평하게 빨래를 널고 있는 해인을 급히 불러들였다.
“뭔데요?”
“그 녀석, 오늘 언제 돌아오냐?”
“오늘은…… 아마 별일 없다고 했으니까 평소처럼 7시쯤 돌아올 거예요.”
“……불안한데. 점괘가 나빠.”
“점괘요?”
야호는 해인의 눈앞에 제 손 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마다 야호가 손바닥 안에 쥐고 끼릭, 끼릭 만지작거리던 게 뭔지 궁금하던 차였다.
희고 누런 그것들은, 여러 짐승의 어금니였다. 대체 왜 그런 걸로 점을 보는 걸까.
“물소의 어금니는 눕고, 곰의 어금니는 거꾸로 섰다. 그리고 삵의 어금니가 여우의 어금니와 붙었다. 늑대의 어금니는 바닥으로 떨어졌어. 그리고 내 어금니는 내 손바닥을 찔렀지.”
“……흉조예요?”
“수호신은 힘을 잃고 악운이 강해질 거다. 기상은 땅을 쳤고 스스로를 찌르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다.”
점 같은 거 잘 믿지 않았지만, 야호의 말에는 한없이 불안이 거세졌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손끝을 떨며 창밖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늘은, 보름달이 아니잖아요? 그냥 흔한 반달인데.”
“인석아, 그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했잖냐.”
“……나갈래요. 강한테. 가볼래요.”
해인은 들고 있던 빨래를 바닥에 우수수 떨어트리고는, 홀린 듯 현관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야호는 그대로 가게 두지 않았다.
해인의 손목을 붙잡아 저를 보게 했다.
시율이 얽히면 해인이 얼마나 이성을 잃는지 그간 봐와서, 야호는 해인을 보내는 것이 불안했다.
“한 가지는 약속해라.”
“뭘요? 이거 놔요. 빨리 강한테 가봐야…….”
“만약 그 녀석이 네 눈앞에서 죽어도, 네 탓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그건 운명일 뿐이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말아요. 강은 안 죽어요!”
해인은 제 입으로 소리치면서도 그렇게 불길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그런데 야호는 손을 놔주지 않았다.
야호가 위하는 사람은 제 손으로 사람으로 기른 해인이지, 시율이 아니었다.
야호는 시율이 죽는다 해도 그에 슬퍼할 해인을 가여워할 뿐. 수명을 다한 시율은 당연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야호 님, 빨리 이 손 놔줘요!”
“꼭 가야겠냐.”
“……안 가면요?”
“네가 간다고 변할 건 없다. 차라리 그냥 여기서…….”
죽어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건, 할 수 없었다. 해인은 고개를 내저었고. 그와 동시에 야호의 손아귀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러곤 겨우 두어 발치 앞으로 옮겨가 있었다.
제가 쓰고도 얼떨떨한지 잡혀 있던 제 손을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현관으로 바삐 뛰어갔다.
그렇게 쓰지 말라고 했는데. 이걸 쓰면…….
“인석아!”
야호는 뒤늦게 죽는 게 시율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지만 어금니들은 흩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래 가지고 있던 어금니 하나가, 왜인지 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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